한국의 선사 시대
한국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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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사 시대는 인류가 한반도에 나타난 시대로 문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기를 말한다. 한반도의 선사 시대는 유럽이나 지중해 지역과는 달리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이 정리했던 《세 시대 체계》로 구분하기 어려우며, 고고학적, 지질학적, 고생물학적 연구에 의존한다. 일반적인 역사 및 고고학의 시대 구분에 의하면 석기시대에 해당되며, 석기 시대는 발굴되는 유적의 성격에 따라 다시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로 나뉜다. 그 영역은 한반도를 위주로 하지만, 그 기원 및 전파와 관련이 있는 러시아, 만주, 랴오닝, 중국 동부의 문화도 함께 연구된다.
지질학적 선사시대
[편집]지질학적 선사시대는 한반도 과거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바위는 선캄브리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천의 지질시스템이 이에 해당하며, 서울 주위에서 북동쪽 방면으로 연천군으로 확장된다. 그리하여 위쪽과 아래쪽으로 나뉘며, 각섬석 - 석영 - 장석 편암과 대리석, 석회-규산염, 규암, 흑연 편암, 운모 - 석영 - 장석 편암, 운모 편암, 규암, 안구 편마암, 석류석 함석류석 화강암으로 구성된다. 한반도는 중생대에 활동적인 지질학적 선사시대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산맥이 형성되었어, 신생대에 가서 점차 안정적으로 되었다. 중생대에 형성된 주요한 곳으로 경상도를 포함하며, 흑운모 화강암, 혈암, 사암, 역암질 안산암, 현무암, 유문암, 그리고 오늘날의 경상도 지방 아래에 덮여 있는 응회암으로 구성되었다.
한반도 인류의 선사시대
[편집]구석기 시대의 유적지
[편집]- 초.중기.후기. 구석기(중석기) 유적
- 석장리 유적
- 초.중기 구석기 유적
- 후기 구석기 유적
중석기 시대
[편집]중석기 시대는 1만여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져서, 자연환경이 바뀌면서 구석기시대의 주요 사냥 대상물인 매머드, 쌍코뿔이, 물소 등의 큰 짐승이 사라져서 작은 짐승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짐승을 잡기 위한 무기인 활, 화살촉 등이 등장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플라이스토세의 종말기에서 이후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관련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중석기시대의 설정여부는 학계에서 논란이 많다.[1]
중석기 시대의 유적지
[편집]빗살무늬토기 시대
[편집]한국의 신석기 시대는 약 1만(중석기를 포함할 경우) ~ 8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신석기시대의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은 간석기와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토기이다. 이들은 주로 물가에 움집을 짓고 살면서 고기잡이와 사냥을 했고, 신석기시대 후기가 되면 초기 농경 단계로 들어간 곳도 있다. 또 돌쾡이와 돌보습으로 밭을 갈고,돌낫으로 곡물이나 이삭을 따 갈돌로 갈아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어 먹었다.
민무늬토기 시대
[편집]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구리와 주석 또는 아연을 조금씩 섞어 만든 청동기를 사용한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무문토기와 공열토기가 주로 쓰였다. 신석기시대처럼 돌쾡이를 사용하여 땅을 개간하여 곡식을 심고, 반달 돌칼로 추수하였다.
- 대평 유적 (大坪 遺蹟, 진주 옥방 유적)
- 사천시 이금동 유적 (泗川市 梨琴洞 遺蹟)
- 민무늬토기 시대 (無文土器時代)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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