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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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홍
馮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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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연의 3대 천왕 | |
재위 | 430년~435년 |
대관식 | 풍홍(馮弘) |
전임 | 풍발(馮發) |
후임 | 없다 |
부왕 | 풍안(馮安) |
이름 | |
휘 | 풍홍(馮弘) |
이칭 | 자: 문통(文通) |
별호 | 미상 |
연호 | 태흥(太興) |
시호 | 소성황제(昭成皇帝) |
묘호 | 미상 |
신상정보 | |
출생일 | 생년 미상(生年 未詳)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439년 |
사망지 | 미상 |
왕조 | 북연(北燕) |
가문 | 미상 |
부친 | 풍안(馮安) |
모친 | 안은비(安殷妃) |
배우자 | 인빈 인씨(印嬪 印氏) |
자녀 | 풍현(馮顯) 풍왕인(馮王仁) 풍운(馮雲) |
기타 친인척 | 풍화(馮和) 인수현(印粹顯) 풍희(馮熙) |
종교 | 미상 |
묘소 | 미상 |
연 소성황제 풍홍(燕 昭成皇帝 馮弘, ? ~ 439년)은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의 북연의 제 3대(마지막) 천왕(재위:430년 ~ 435년). 자는 문통(文通).
생애[편집]
430년 풍발(馮發)이 병사하자 풍발의 아우 풍홍과 아들 풍익이 왕위 다툼을 벌였고, 결국 풍홍이 조카인 풍익과 그 형제들을 제거하고 천왕으로 등극하였다. 풍홍은 화북을 정복한 북위(北魏)의 압박을 받아 436년 고구려(高句麗)에 망명을 요청하였다. 풍홍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고구려 장수왕은 장수 갈로와 맹광에게 수만의 군사를 내주어 북연의 수도를 점령하고 풍홍과 풍훙의 부인과 풍홍의 어머니를 요동성으로 끌고 갔다.고구려군은 풍홍과 북연 백성들을 고구려 땅으로 끌고가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고구려에서 풍홍이 과거의 위세를 잊지 못하고 교만하게 굴자 438년 음력 3월, 장수왕은 풍홍을 평곽(平郭)으로 끌고 갔다가 다시 북풍(北豊)에 사로 잡아 두었다. 또한 고구려 장수왕은 풍홍 부인과 풍홍의 부모를 빼았고 시종도 빼았았으며, 아들 풍왕인(馮王仁)을 볼모로 잡았다. 그러자 풍홍은 분개하여 남조의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자신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풍홍의 요청을 받은 유송 문제 유의륭은 그를 구출하기로 하고, 사신 왕백구(王白駒) 등을 고구려에 보내 풍홍을 자신들에게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장수왕은 거부하고 손수와 고구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풍홍을 죽이라고 명했다. 손수와 고구(高仇)는 북풍에서 풍홍을 살해하는데 이 과정에서 풍홍의 부인이 풍홍을 지키다가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장수왕은 즉시 대군을 동원하여 송나라의 왕백구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왕백구를 송나라로 압송시켰다. 이후 고구려는 송나라를 칠려고 하였으며 송나라는 고구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왕백구를 감옥에 가뒀다.
가계[편집]
- 조부 : 풍화(馮和)
- 조모 : 인수현(印粹顯)
- 아버지 : 풍안(馮安)
- 어머니 : 안은비(安殷妃)
- 국왕 : 풍홍(馮弘)
- 제1부인 : 인빈 인씨(印嬪 印氏)
- 장녀 : 풍현(馮顯)
- 장남 : 풍왕인(馮王仁)
- 차남 : 풍운(馮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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