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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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수

연 세조 성무황제 모용수(燕 世祖 成武皇帝 慕容垂, 326년~396년, 재위: 384년~396년)는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후연의 초대 황제, 는 도명(道明)이다.

생애[편집]

즉위 이전[편집]

전연(前燕) 모용황(慕容皝)의 셋째 아들로 모친은 단씨(段氏)이며 원래 이름은 모용패(慕容覇)이다. 326년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용황의 총애를 받았다. 모용황은 모용패를 태자로 삼으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그만두었다. 그러나 태자 모용준(慕容俊)보다 모용패를 더 총애하였고, 이로 인해 모용준은 모용패를 시기하였다. 모용준이 즉위한 이후 모용패는 견제를 받아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하고 많은 제한을 받았다. 모용패는 낙마하여 앞니가 부러지게 되자 이를 핑계로 이름을 (垂)로 바꾸기도 하였다. 모용수의 부인은 단씨(段氏)였는데, 모용준의 황후인 가족혼씨(可足渾氏)와 불화가 있어 누명을 쓰고 죽었다. 황후는 동생을 모용수의 부인으로 삼았으나 사이가 좋지 않아 모용수를 더욱 미워하였다.

360년, 모용준이 죽자 모용위(慕容暐)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뒤를 이었으며, 모용수의 형 모용각(慕容恪)이 정권을 잡았다. 모용수는 모용각에게 협력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모용각이 367년에 죽자 모용수는 권력자 모용평(慕容評)의 시기를 받아 다시 견제를 받게 되었다. 369년, 동진(東晉)의 환온(桓溫)이 북벌군을 일으켜 전연으로 쳐들어오자, 모용수는 북벌군을 물리치는 1등 공신이 되었다. 이에 모용수의 세력을 두려워한 모용평과 태후 가족혼씨는 모용수의 암살을 모의하였으며, 이 소식을 들은 모용수는 전연을 탈출하여 전진(前秦)으로 망명하였다.

370년전연이 멸망하자 모용수는 전연의 귀족들을 회유하는 한편 전진의 장수로 각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383년부견(苻堅)이 비수대전(淝水大戰)을 일으키자 모용수는 군단을 이끌고 형주(荊州) 지역에서 작전을 벌였다. 부견이 비수에서 패전하자 대부분의 군대가 와해되었으나 모용수의 부대만 온전히 퇴각에 성공하였다. 부견은 모용수의 보호를 받으며 퇴각하였다. 모용수는 부견이 몰락한 것을 깨닫고 독립할 것을 꾀하였는데, 부견을 설득하여 (鄴)에서 북방을 방어하도록 허락받아 부견의 곁을 떠났다.

업에는 부견의 아들 부비(苻丕)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모용수는 모반을 계획하였다. 이때 정령(丁零)족 적빈(翟斌)이 낙양 근방에서 모반을 일으켰고, 모용수는 토벌을 명받아 업에서 출진하였다. 모용수는 감시역으로 파견된 부비룡(苻飛龍)을 살해하고 군대를 모으는 한편 적빈의 군대까지 흡수하여 강력한 세력을 키웠다.

치세[편집]

384년 1월 모용수는 연왕(燕王)에 즉위하여 후연을 건국하였다. 이후 전진의 부비가 지키는 업을 포위하고 1년 동안 전쟁을 벌였는데, 부비의 수비가 견고하여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385년 8월에 부비가 업에서 빠져나가자 업을 점령하였고 황하 이북 일대를 대부분 점령하였다. 386년 1월에는 황제에 즉위, 수도를 중산(中山;지금의 하북성 정주)에 정하고 내정을 정비하였다. 392년에는 정령족 적교(翟釗)의 적위(翟魏)를 멸망시켰고, 394년에는 서연(西燕)을 멸망시켜 화북 일대를 평정하였다. 동진과는 주로 산동 지방에서 충돌하였는데, 394년 이후 동진을 축출하고 산동반도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한편 탁발부의 내전에 개입한 모용수는 탁발규를 지원하여 탁발규가 북방을 통일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탁발규북위가 성장하자 위협을 느낀 모용수는 395년태자 모용보(慕容寶)를 보내 북위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참합피(參合陂)에서 탁발규에게 대패하여 군대가 학살되었고, 이에 모용수는 396년에 직접 대군을 이끌고 다시 북위를 정벌하였다. 평성(平城)을 점령하고 북위에 큰 타격을 입히는데 성공한 모용수는 전해에 참합피에서 학살당한 군대의 해골을 보고 충격을 받아 병을 얻었다. 이로 인해 북위 정벌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돌아오던 도중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가족[편집]

아내[편집]

정궁[편집]

  • 성소황후(成昭皇后) 단씨(段氏) - 모용령, 모용보의 어머니
  • 장안군(長安君) 가족혼씨(可足渾氏)
  • 단왕비(段王妃)
  • 성애황후(成哀皇后) 단씨(段氏) - 모용랑, 모용감의 어머니

후궁[편집]

아들[편집]

  • 헌장황제(獻莊皇帝) 모용령(慕容令) - 장남, 모용전(慕容全)이라고도 함.
  • 요서왕(遼西王) 모용농(慕容農) - 3남
  • 혜민제(惠愍帝) 모용보(慕容寶) - 4남
  • 고양왕(高陽王) 모용륭(慕容隆)
  • 조왕(趙王) 모용린(慕容麟)
  • 발해왕(渤海王) 모용랑(慕容朗)
  • 박릉왕(博陵王) 모용감(慕容鑒)
  • 양평왕(陽平王) 모용유(慕容柔)
  • 모용주(慕容州)
  • 소문제(昭文帝) 모용희(慕容熙)

모용수가 등장한 작품[편집]

참고 문헌[편집]

제1대 후연 황제
384년 ~ 396년
후임
모용보(慕容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