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강릉 함씨: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메이 (토론 | 기여)
2018년 7월 28일 (토) 12:36(KST) 21891895판으로 되돌림.
메이 (토론 | 기여)
잔글 "강릉 함씨" 문서를 보호했습니다: 계속되는 편집 분쟁 ([편집=관리자만 허용] (기한: 2018년 8월 11일 (토) 06:54 (UTC)) [이동=관리자만 허용] (기한: 2018년 8월 11일 (토) 06:54 (UTC)))
(차이 없음)

2018년 8월 4일 (토) 15:54 판

강릉 함씨 (江陵 咸氏)
관향강원도 강릉시
시조함혁 (咸赫)
중시조함규 (咸規)
집성촌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주문진읍
강원도 양양군
강원도 판교군
강원도 김화군
평안남도 문덕군
주요 인물함부림, 함우치, 함헌, 함세휘, 함태영, 함병춘, 함석헌, 함인섭, 함종빈, 함명수, 함태호, 함석재, 함종한, 함영준, 함승희, 함학수, 함진규, 함익병, 함정임, 함은정, 함덕주
인구(2015년)61,974명 (60위)

강릉 함씨(江陵 咸氏)는 강원도 강릉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기원

함씨의 선계는 한반도 토착 세력으로서 마한(馬韓)의 부족장이라는 설이있다. 함씨의 원조(遠祖) 함혁(咸赫)은 삼한 초기 한강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이 부족국가를 형성할 때 용문산 서록(西麓 : 현재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상곡)에 석성(石城)을 쌓고 웅거(雄據)한 촌장으로 세칭(世稱) 함왕주악(咸王周鍔)이라 불리었다고 전한다. 경기도 양평군용문산(龍門山) 기슭에 마한의 부족장 함왕(咸王)이 세웠다는 석성(石城) 유적과 그의 출생 전설이 서린 바위굴이 있다.

강릉 함씨(江陵咸氏)의 시조 함규(咸規)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에 책록되었으며, 광평시랑평장사(廣平侍郞平章事)를 역임하였다.

분파

함규의 후손 함제(咸濟) 때 명주(溟州: 현재의 강릉시)로 이주하면서부터 후손들이 양근 함씨에서 분적하여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예판공파의 파조(派祖)는 예조판서 함부실(咸傅實)이다. 함부실의 아들 함자예(咸子乂)는 1419년(세종 1)에 율학(律學)으로 잡과(雜科)에 급제하여 사직(司直)에 제수되었다. 그 후 동부령(東部令)에 이어 문화현령(文化縣令)을 지냈다

인물 [1]

함규(咸規, 생년 미상 ~ 945년)는 함씨의 중시조이다. 고려 초기 광주(廣州)의 대호족으로, 양근 함씨였으나 개국공신으로 왕씨 성을 태조에게 사성을 받아 왕규(王規)가 된다. 함규는 당시 양근을 포함한 광주목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인물이었고, 함규는 고려를 세운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앞장서 고려의 개국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등의 작위를 받았다. 중부의 강력한 호족이었던 함규는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었고,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대광(大匡)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왕규는 혜종을 보필하라는 태조의 유지를 받들었으나 혜종 사후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왕자의 난인 왕규의 난(王規之亂)으로 처형당하였다.

   고려왕실과의 인척관계 : 태조비 광주원부인, 소광주원부인, 혜종비 후광주원부인



함유일(咸有一, 1106년 ~ 1185년 11월 26일)은 고려의 관리이다. 본관은 양근(楊根), 자는 형천이다. 고려 건국공신 함규(規)의 5세손이며,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밑에서 컸다. 아버지 친구인 이준양의 도움으로 처음 관직생활을 시작했으며, 1135년 묘청의 난을 평정할 때 공이 있어 왕충의 추천으로 선군기사(選軍記事)가 되었다. 명종 때 병부낭중·공부상서 등을 지냈다. 일찍이 교로도감으로 있을 당시 서울에는 무당과 음사(귀신을 모시는 집)가 많 민심을 현혹시켰다. 그는 이 음사를 모두 불태워 버리고 무당들을 서울 밖으로 내쫓아 미신을 배척한 자로서 유명하였다. 또한 평생 베옷만을 입었으며 질그릇만을 쓰는 등 청빈하게 살았다.


함순(咸淳) : 고려 중기 문신. 자는 자진(子眞). 형부낭중(刑部郞中)을 역임했다. 고려 건국공신 규(規)의 6세손이며, 명종 때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치사(致仕)한 유일(有一)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절행(節行)이 있었다. 또한, 순박하고 중후하여 정도(正道)로 책임을 삼으며 효경과 충신을 바탕으로 한 문사(文辭)가 탁월하였다. 최충(崔冲)이 설립한 문헌공도(文憲公徒) 출신으로 급제 후 양양과 남방 어느 고을의 지방관이 되었고, 최충헌(崔忠獻) 집권시에는 사직(司直)이라는 한직에 머물렀다.


함부열 : 함규(王規)의 13세손 함승경의 둘째 아들로 고려 우왕 13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공양왕2년에 예부상서이다​ 그는 이성계의 조선개국을 반대한 두문동(두문불출이 생긴유례) 72현의 학사로써 폐위 공양왕을 끝까지 섬기다 공양왕 사후 그 시신을 자신의 손으로 거두고 자신의 묘지 위에 ​가묘로 그 충성을 다한 만고충절의 학사로써 양근함씨 죽계공파의 시조이다​.


함부림(咸傅霖, 1360년 ~ 1410년) :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해 예문검열(藝文檢閱)을 거쳐 좌정언과 형조정랑을 지냈다. 1392년(공양왕 4) 이성계(李成桂)가 실권을 잡자 병조정랑 겸 도평의사사경력사도사에 복직되었고, 조선의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어 개성소윤에 임명되었다. 형조의랑에 이어 대사성·좌산기상시로서 상서소윤(尙瑞少尹)을 겸하고 명성군(溟城君)에 봉해졌다. 태종 초기에 충청도관찰출척사·예문관제학·동북면도순문사·동북면도순문찰리사 겸 병마도절제사 겸 영흥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404년(태종 4) 참지의정부사로서 대사헌에 올랐다. 다음 해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406년에 계림부윤·경상도관찰출척사를 지냈다. 다음 해 다시 참지의정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8년 형조판서가 되었다. 시호는 정평(定平). 강릉함씨 정평공파의 시조이다.


함우치(咸禹治, 1408년 ∼ 1479년) : 함부림의 아들. 음보(蔭補)로 감찰이 되고, 고부군수·군기시부정·나주목사를 거쳐, 1451년(문종 1)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에 올랐다. 1453년(단종 1)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55년(세조 1) 공주목사에 이어 1457년 함길도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459년에는 대사헌을 거쳐 중추원부사를 역임하고, 같은 해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를 두루 역임하고 개성부유수가 되었는데, 재임할 때는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1465년 형조참판이 되어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졌으며, 1470년(성종 1) 형조판서에 올랐다. 1471년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좌우참찬을 역임하였으며, 뒤에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시호는 평양(平襄).


함헌(咸軒, 1508년 ∼ ?) : 함부림(傅霖)의 4대손. 아버지는 부호군 함좌무(左武). 1534년(중종 29)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간성군수가 되었다. 1552년(명종 7) 예빈시정(禮賓寺正)으로 있을 때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 북경(北京)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이천부사가 되었다. 1562년 삼척부사를 지냈으며, 재임중 관리들의 기강을 확립하고 백성들을 구휼하여 치적을 남겼다. 저서로는 『칠봉문집』이 있다. 중종 때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오자도가 그린 공자의 초상을 강릉으로 가져와 오봉서원을 세웠다. 강릉함씨 칠봉공파의 시조이다.


  • 함태영(咸台永, 1873년 ~ 1964년) : 대한민국 제3대 부통령, 제2대 심계원(감사원의 전신) 원장, 법조인(대한제국, 일본총독부의 판사 및 검사 역임) 독립운동가, 종교인, 정치인 [2]
  • 함병춘(咸秉春, 1932년 ~ 1983년) : 학자, 대한민국 제9대 대통령비서실장, 주미한국대사,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정치특보 [3]
  • 함인섭(咸仁燮, 1907년 ~ 1986년) : 학자, 대한민국 제6대 농림부 장관, 강원대학교의 설립자 (초대 학장) [4]
  • 함명수(咸明洙, 1928년 ~ 2016년) : 군인, 정치인, 대한민국 제7대 해군참모총장, 제9, 10대 국회의원, 국회 보건사회위원장 [5] [6]
  • 함석재(咸錫宰, 1938년 ~ ) : 법조인, 서울지검 차장검사, 제14, 15, 16대 국회의원, 국회 법사위원장, 농림해양수산위원장 [7] [8]







  • 함병선(咸炳善, 1920년 ~ 2001년) : 군인, 육군 중장, 합참 작전참모본부장, 국방대 총장, 육군교육사령관, 제2군단장, 육군훈련소장 [44]
  • 함덕선(咸德善, ~ ) : 군인, 육군 중장,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 제11군단장, 제26사단장 [45]
  • 함세영(咸, ~ ) : 군인, 육군 소장, 제28사단장 [46]
  • 함원용(咸元龍, 1954년 ~ 2015년) : 군인, 해군 소장, 해군작전사령부 부사령관,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 [47] [48]
  • 함태상(咸, ~ ) : 군인, 공군 소장 [49]




  • 함익병(咸翼炳, 1961년 ~ ) : 의사, 함익병 앤 에스더 클리닉 원장, 이지함 피부과 원장 [61] [62]
  • 함대훈(咸大勳, 1907년 ~ 1949년) : 소설가, 국립경찰전문학교(경찰교육원의 전신) 교장 [63]
  • 함택삼(咸, ~ ) : 충남경찰국(충남지방경찰청의 전신) 국장 [64]
  • 함기용(咸基鎔, 1930년 ~ ) : 체육인, 보스턴 마라톤 우승 (1950년) [65] [66]
  • 함승덕(咸, ~ ) : 학자, 충북도립대학 총장 [67]



  • 함지훈(咸志勳, 1984 ~ ) : 농구선수, 울산 모비스 피버스 소속, KCC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상 수상 [73]
  • 함은정(咸𤨒晶, 1988 ~ ) : 가수, 그룹 티아라의 멤버 [74]
  • 함덕주(咸德柱, 1995 ~ ) : 야구선수, 두산 베어스 투수 [75]
  • 한다민(咸, 1983 ~ ) : 배우, 본명 함미나(咸美那) [76]


과거 급제자

강릉 함씨는 문과 급제자 5명, 무과 급제자 21명, 생원·진사 15명을 배출하였다.[77]

고려 문과

함부림(咸傅霖) 함승경(咸承慶)

고려 사마

함부림(咸傅霖)

문과

함사겸(咸士謙) 함우복(咸遇復) 함헌(咸軒)

무과

함경록(咸卿祿) 함경행(咸敬行) 함구령(咸龜齡) 함대기(咸大起) 함대영(咸戴英) 함대훈(咸戴勲) 함덕기(咸德淇) 함덕춘(咸德春) 함득신(咸得信) 함세형(咸世亨) 함유태(咸有泰) 함응길(咸應吉) 함응철(咸應哲) 함의신(咸義信) 함이성(咸以成) 함인욱(咸仁郁) 함인혁(咸仁赫) 함자정(咸自正) 함정의(咸挺義) 함창억(咸昌億) 함태신(咸泰信)

생원시

함구성(咸九成) 함대형(咸大亨) 함동수(咸東洙) 함석견(咸錫汧) 함우공(咸禹功) 함종표(咸鍾彪) 함창수(咸昌洙) 함헌(咸軒)

진사시

함구명(咸九命) 함기영(咸基榮) 함달면(咸達冕) 함성화(咸星花) 함영식(咸榮植) 함원직(咸元直) 함원회(咸元會)

취재

함영부(咸永孚)

항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