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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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천문학(中國-天文學)은 역서(曆書)의 제작으로 시작된다. 은대(殷代)에 이미 조잡한 태음태양력을 만들었다. 주대(周代) 중엽에 윤달을 넣는 규칙이 정확하게 되고, 정연한 태음태양력이 만들어졌다. 또 기원전 4세기경부터 행성을 관측했으며, ·월식의 주기성 등을 주목하였다.[1]

BC 104년 한나라 무제(武帝)의 태초 원년에, ‘태초력(太初曆)’이 제정되었다. 이 태초력은 한나라 말기에 유운(劉韻)이 수정한 것으로 ‘삼통력(三統曆)’으로 되었으며, 이것이 후세 역법의 표본이 되었다. 우주론선진 시대와 후한 시대에 활발하였다.[1]

주비산경》에는 개천설(蓋天說)이 자세히 기술되었다. 이 개천설에 대해서 후한의 장형(張衡)이 《혼천의》에서 혼천설을 논했다.[1]

천문학적으로 보아 주목할 만한 역법은 후한대 유홍(劉洪)의 《건상력(乾象曆)》이다. 이 역법에서 처음으로 달의 운동이 등속(等速)이 아니고, 현재 ‘중심차(中心差)’라고 불리는 불규칙성이 인정되었다. 이 발견으로 삭(朔)의 시각의 계산이 정확하게 되고, 드디어 일·월식의 예보 계산을 하게 되었다.[1]

진나라 시대에는 천문학자 우희(虞喜)가 세차(歲差)를 발견했다. 수나라 시대의 역법 《황극력(皇極曆)》은 유탁의 것인데, 이것은 달뿐이 아니라 태양 운동의 불규칙성도 고려하여 실제의 합(合)에 의거해서 삭의 시각을 계산하는 정삭법(定朔法)이 채용되고 있다. 또 세차가 채택되어 윤달을 두는 법도 개량되었다. 이 역법은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이양풍(李凉風)의 《의봉력(儀鳳曆)》으로 유탁의 이상이 실현되었다.[1]

그 후의 역법으로는 원나라 시대의 곽수경(郭守敬)에 의한 《수시력(授時曆)》이 있다. 이것은 명나라 시대에 《대통력(大統曆)》이라고 개칭하여 사용되었다.[1]

각주[편집]

  1. '중국의 천문학', 《글로벌 세계 대백과》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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