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다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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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라이오넬 다머
Jeffrey Lionel Dahmer
고등학교 시절의 제프리 다머
고등학교 시절의 제프리 다머
출생 1960년 5월 21일(1960-05-21)
미국 위스콘신 주 웨스트앨리스 시
사망 1994년 11월 28일 (34세)
미국 위스콘신 주 포티지 시
별명 밀워키의 식인귀 (Milwaukee Cannibal)
신장 183cm
체중 82kg
죄값 종신형
유죄선고 아동 성폭행
풍기문란행위
성기노출죄
모살
범행동기 쾌락살인, 정신 분열증
피해자 수 17
범행기간 1978년 6월 18일
~ 1991년 7월 19일
체포일자 1991년 7월 22일
수감처 컬럼비아 교정시설

제프리 라이오넬 다머(Jeffrey Lionel Dahmer, 1960년 5월 21일 ~ 1994년 11월 28일)는 미국의 연쇄 살인범이다. "밀워키의 식인귀"(Milwaukee Cannibal)라는 별명이 있다.

1978년부터 1991년에 걸쳐 주로 밀워키주 또는 위스콘신주에서 10대를 포함한 17명을 살해하고 그 후에 시간, 사체 절단하고 그 인육을 먹기도 하였다. 이 잔학행위는 1990년대 초반의 미국을 뒤흔들었다. 또한 이 사건에서 밀워키 경찰 당국의 무능과 인종적,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다머의 만행을 가능하게 했다고 혹독하게 비난받았다.

유년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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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21일 제프리 다머는 밀워키에서 아버지 라이오넬(1936년생)과 어머니 조이스(1936 ~ 2000) 부부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4살이 되었을때, 제프리는 오하이오주의 아크론으로 이사했다. 아버지인 라이오넬은 당시, 마케트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생활이 불안정하였다. 이 때문에 부부는 위스콘신주 웨스트 앨리스에 있는 라이오넬의 본가에 의지하였는데 어머니인 조이스가 정서불안 기미를 보여 임신중에 심하게 입덧으로 괴롭힘을 당해서 의사로부터 바루비투르, 모르핀 같은 약물을 투여받고 임신중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26정의 정제를 복용하였다. 제프리 출산후에도 그녀의 정신상태는 악화될 뿐이어서 사소한 일로 남편과 충돌하길 반복하여 부부사이는 험악해져갔다.

그 후 분석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라이오넬은 화학기업의 연구원으로 취직하고 업무 편의상 일가가 각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차남 데이빗을 임신했을 때에도 약물에 의존 상태에 빠져들어 대부분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정신상태가 악화되어 짜증내는 어머니와 연구에 빠져서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 아버지사이에서 어린 제프리는 정신적으로 안정이 결여된 소년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제프리가 6살이 되었을 때 제프리 동생의 출산 준비에 들어가자 제프리는 하루 종일 멍하게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그는 유소년기부터 거의 웃지 않았다.

[1]다머는 부모는 물론이고, 다른 어른으로부터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 어려서 이웃에 사는 10대에게서 성폭행을 당하지도 않았다. 열다섯 살 때 같은 동네에 사는 남자아이와 성행위(다머는 그걸 <입맞춤과 진한 애무>라고 묘사했는데)를 한 적은 있지만, 서로 합의하에 한 것이었다.

성인기[편집]

제프리 다머는 1978년 리비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기 이전인 1978년 6월 18일 스티븐 힉스라는 18세 남성을 살해한 이후였다. 그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 서류가방에 술을 숨겨 주고 마셨다. 그는 기숙사가 비어 있을 때 룸메이트들의 물건을 훔쳐 고물상에도 판 적이 있었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 나온 이후에 초콜릿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의 살인은 1978년 일어난 한 건을 제외하고 1987년부터 1991년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체포[편집]

1991년 7월 22일 다머는 트레이시 에드워즈를 유혹해 집으로 데려와 이상한 약을 먹였다. 정신을 차린 에드워즈는 가까스로 탈출했고, 이에 수사를 나선 경찰은 그의 집을 수색해 인육이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를 체포했다. 체포된 이후 그는 위스콘신 주에 있는 콜럼비아 교정 기관에 수감되었다.

재판과 죽음[편집]

1992년 법원은 제프리 다머에게 징역 957년을 선고받았다. 다머가 거주하던 위스콘신 주는 1853년에 사형을 폐지한 상태였다. 수감 중이던 1994년 11월 28일 크리스토퍼 스칼버와 말싸움을 벌이던 중 둔기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같이 있던 제시 앤더슨이란 죄수도 함께 살해당했다. 유해는 다머의 부모에게 넘어갔으며 다머의 유언에 따라 무덤을 만들지 않았다.

피해자[편집]

제프리 다머를 다룬 작품[편집]

각주[편집]

  1. 더프 백더프, 더프 백더프 (2015년 12월 30일 초판 1쇄). 《내 친구 다머》. 미메시스. 2017.8.23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