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 선제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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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작센 선제후국

1356년1806년
국기
국기
문장
문장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 신성 로마 제국내 작센 선제후국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 신성 로마 제국내 작센 선제후국
수도비텐베르크 (1356년–1547년)
마이센 (1423년–1464년)
드레스덴 (1464년–1806년)
정치
공용어독일어
정부 형태봉건제
역사
역사 
 • 금인칙서1356년 1월 10일
 • 마이센튀링겐 통합1423년 1월 6일
 • 라이프치히 조약1485년 8월 26일
 • 비텐베르크 항복1547년 5월 19일
 • 프라하 조약으로
루사티아 획득
1635년 6월 15일
 • 폴란드동군 연합1697년–1706년
& 1709년–63년
 • 왕국으로 승격1806년 12월 20일

기타
국교가톨릭
개신교
현재 국가독일 독일
폴란드의 기 폴란드

작센 선제후국(독일어: Kurfürstentum Sachsen, Kursachsen) 때로는 상작센(上작센)이라 불리는 이 국가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주로 카를 4세작센비텐베르크 공작을 아스카니아 가문의 수장에서 선제후로 진급시켰을 때 탄생했다. 1356년 설립된 이 국가는 1423년부터 베팅 가문이 다스렸다. 이 때부터 엘베 강드레스덴이 수도로 변경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 1806년에 해체됨에 따라 작센 선제후도 왕으로 자신의 지위를 높였고, 국가 명칭도 작센 왕국으로 바꿨다.

설립[편집]

비텐베르크 성 및 교회

중세 작센 공국이 사라진 후, 작센이라는 명칭은 엘베 강 중안에 있는 비텐베르크라는 작은 영주가 처음 차용했다. 1157년 이 지역은 루사티아의 마치에게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며, 브란덴부르크의 알브레히트 데어 베어가 소유하고 있었다. 이후 1180년 프리드리히 1세하인리히 사자공에게 넘겨주었고, 비텐베르크의 영토는 안할트 공작 베른하르트에게 넘어갔다. 베른하르트의 장남 알베르트 1세는 안할트를 헨리 1세에게 넘겨주었고, 이 영토는 후에 라우엔부르크와 통합되었다. 이후 작센의 영토는 작센라우엔부르크작센비텐베르크로 나뉘었다 1314년 선거에서 비테르바흐 가문의 공작인 바이에른의 루트비히가 루트비히 4세로 즉위하며 합스부르크가의 프리드리히를 제압했다.

루트비히는 이후 룩셈부르크 가카를 4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1355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된 그는 금인칙서를 1356년 반포하여 7명의 선제후가 독일 왕을 선출하는 방식을 정착하는 제국의 기능적 법률을 제정했다. 비텔스바흐 가문과 합스부르크 왕조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으나 작센비텐베르크 공작은 제국의 장군이 되어 선출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로 인해 영토가 작았음에도 작센비텐베르크는 제국 내에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비텐 가의 통치[편집]

작센비텐베르크는 곧 1422년 알베르트 3세의 죽음으로 소멸되었고, 지기스문트후스 전쟁 당시 그를 지지했던 마이센 백작 프리드리히 4세에게 그 영토를 하사했다. 알베르트의 아스카니아 친척인 에리크 5세가 헛되이 항의했다. 7명의 선제후 중 1명인 프리드리히는 베틴 가문의 일원으로 1089년부터 마이센 백국을 통치했었다. 1242년 이 지역은 튀링겐 공국을 병합했고, 1423년 작센비텐베르크와 마이센 백국, 튀링겐은 동군 연합을 이루게 되었다. 이 통합된 영토는 이후 상 작센이라는 명칭을 부여받게 된다.

프리드리히 2세가 1464년 사망함으로써 1485년 8월 26일 라이프치히 조약을 통해 두 아들이 영토를 분할하여 다스리기로 했으나 이는 베틴 가를 에른스틴 계열과 알베르트 계열로 나누는 계기가 된다. 작센 공작 어른스트는 어른스트 계열의 설립자로 옛 작센비텐베르크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튀링겐 공국의 남쪽 영토를 물려받았으나 알베르트 3세는 북튀링겐과 마이센 백국을 물려받는데 그쳤다. 이에 따라 어른스트 계가 더 높은 권위를 물려받았다. 이 분할은 베틴 가문의 적대성을 키웠고, 호엔촐레른 가문이 1415년 브란덴부르크 백국을 선제후국으로 성장시키며 이들과 대립하는 계기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