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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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왕
(右渠王)
위만조선의 3대 국왕
본명 위우거(衛右渠)
재위 기원전 2세기 ~ 기원전 108년
출생일 미상
사망일 기원전 108년
이전 왕 (1대) 위만
(2대) 미상

우거왕(右渠王, ? ~ 기원전 108년, 재위: ? ~ 기원전 108년) 또는 위우거(衛右渠)는 위만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위만(衛滿)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전하지 않고 있다.

생애[편집]

위만조선은 위만 대에 수천리의 영토를 차지하고 동방의 소국과 한나라의 중계 무역을 독점하여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위만의 손자 우거는 중국의 망명자를 많이 받아들이고 (辰)[1] 등 주변 소국들이 한나라와 직접 교섭하는 것을 막았다. 한나라는 기원전 109년 섭하(涉何)를 보내 우거를 달래려 하였으나 우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2]

귀국하던 섭하는 성과가 없이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국경인 패수(浿水)에서 전송을 나온 조선의 비왕(裨王)[3] 장(長)을 죽였다. 무제(武帝)는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는 섭하의 보고를 받고 섭하를 꾸짖지 않고 요동(遼東)의 동부도위(東部都尉)로 임명하였다. 섭하를 원망한 우거는 군사를 일으켜 그를 죽였고[4]무제는 조선 정벌을 선언하였다.[5]

무제의 정벌군이 조선을 공격하자 우거는 험난한 지형에 의지하여 대항하였다.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의 졸정(卒正) 다(多)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며,[6]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이 왕검성(王儉城)을 공격하자 이를 격파하고, 패수 서쪽에서 좌장군 순체의 군대를 저지하였다. [7]

이에 무제는 위산(衛山)을 보내 우거와 교섭하였고 우거는 항복하고 태자를 인질로 보냈다. 그러나 위산과 순체가 무장 해제를 요구하니 태자가 믿지 못하고 되돌아옴으로써 [8]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정벌군은 왕검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조선이 성을 굳게 지키는 가운데 정벌군도 순체와 양복이 내분을 일으켰기 때문에[9] 성은 몇달이 지나도록 함락되지 않았다.[10] 그러나 순체가 양복을 잡아 가두고 군대를 통합하는데 성공하면서 공격에 박차를 가하였다.[11] 위기를 느낀 조선의 대신들은 우거에게 항복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우거는 이를 거부하였고 일부 대신들이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기원전 108년 6월, 이계상(尼谿相) (參)이 자객을 보내 우거왕을 살해했다.[12] [13] 우거왕 사후에도 왕검성은 우거왕을 대신한 성기(成己)의 지휘 아래 계속 항전하였는데 순체가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과 재상 노인(路人)의 아들 최(最)를 시켜 성기를 죽임으로써 위만조선은 멸망하였다.[14][15]

가족관계[편집]

  • 조부 : 위만(衛滿)
    • 아버지 : 미상

각주[편집]

  1. 삼국유사》 〈권제1-기이 상편 위만조선條〉 “안사고가 말하기를 진국은 진한을 말한다.”/“師古曰辰謂辰韓也
  2. 사마천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러, 한(漢)나라의 망명자를 점점 더 많이 꾀어들였고, 아직 들어가 천자를 뵙지도 않았다. 진번(真番) 옆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하였으나, 또한, 우거가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였다. 원봉(元封) 2년(기원전 109년), 한나라는 섭하(渉何)를 보내 우거를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마침내 우거는 조서(詔書)을 받들기를 거부하였다.” / “傳子至孫右渠,所誘漢亡人滋多,又未嘗入見;真番旁眾國欲上書見天子,又擁閼不通。元封二年,漢使涉何譙諭右渠,終不肯奉詔。”
  3. 비왕은 관직명이다.
  4. 사마천 “섭하가 물러나 국경에 이르러 패수(浿水)에 닿자 마부(馬夫)를 시켜 섭하를 전송하러 온 자인 조선 비왕(裨王) 장(長)을 찔러 죽이고 즉시, 강을 건너 말을 달려 요새로 들어가, 드디어 천자에게 귀국 보고를 하기를, ‘조선의 장수(將帥)를 죽였나이다’라 하였다. 천자는 그 명분이 좋다고 여긴 즉, 꾸짖지 아니하였고, 섭하를 요동 동부도위(遼東 東部都尉)로 삼았다. 조선은 섭하를 원망하고, 병사를 내어 섭하를 공격하여 죽였다.”/“何去至界上,臨浿水,使御刺殺送何者朝鮮裨王長,即渡,馳入塞,遂歸報天子曰「殺朝鮮將」。上為其名美,即不詰,拜何為遼東東部都尉。朝鮮怨何,發兵襲攻殺何。”
  5. 사마천“천자는 죄인을 뽑아 조선을 쳤다.”/“天子募罪人擊朝鮮。”
  6. 사마천 “우거는 군사를 풀어 험한 곳에서 막았다. 좌장군의 졸정(卒正) 다(多)가 요동(遼東)의 병사를 이끌고 먼저 방종(放縱)하다가, 패하여 흩어지고,”/“右渠發兵距險。左將軍卒正多率遼東兵先縱,敗散,”
  7. 사마천 “그 해 가을,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을 파견하여, 옛 제(齊)나라 땅으로부터 보하이 해〔渤海〕를 건너니 군사가 5만에 달했다.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는 우거(右渠)를 토벌하고자 요동(遼東)에서 나왔다. [...] 누선장군은 옛 제나라 땅 출신의 병사 칠천명을 거느리고 먼저 왕검(王險)에 도달하였다. 우거는 성(城)을 지키다가 누선장군의 군사가 적은 것을 알고 꾀를 내어 누선장군을 물리치니 누선장군은 패하여 달아났다. 장군 양복은 무리를 잃고 산(山) 속에서 십여일을 숨었다가, 점차, 흩어진 병졸을 구하고 거두니, 다시 갖추어졌다.좌장군은 조선 패수의 서쪽 군을 공격하였으나, 능히 깨뜨리지 못했다.” / “其秋,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樓船將軍將齊兵七千人先至王險。右渠城守,窺知樓船軍少,即出城擊樓船,樓船軍敗散走。將軍楊仆失其眾,遁山中十餘日,稍求收散卒,復聚。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未能破自前。”
  8. 사마천 “천자는 두 장수가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내, 위산(衛山)을 보내어 군대의 위엄으로써 가서 우거를 타일렀다. 우거는 사자(使者)를 뵙고 우거는 머리를 땅에 닿도록 꾸벅이며 사죄하여 말하기를, “항복을 원하였으나, 두 장수께서 사술을 써서 저를 죽이실까 두려웠습니다. 지금 믿을 만한 징표를 뵈옵고, 항복하기를 청하나이다.” 하였다. 태자(太子)를 보내어 입조(入朝)하여 사죄하고, 말 오천필을 바쳤고, 또한 군량(軍糧)를 보냈다. 사람들 만여 명이 무기를 들고 패수를 막 건너려 하자, 사자 위산과 좌장군은 변고가 있을 것을 의심하여 태자에게, 이미 항복했으니 사람들이 마땅히 무기를 소지하지 말라고 말했다. 태자 역시 사자(使者)와 좌장군이 사술을 써서 그를 죽이지 않을지 아닐지 의심하여 마침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다시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위산이 돌아가 천자에게 이를 알리니, 천자가 위산의 목을 베어 죽였다.”/“天子為兩將未有利,乃使衛山因兵威往諭右渠。右渠見使者頓首謝:「願降,恐兩將詐殺臣;今見信節,請服降。」遣太子入謝,獻馬五千匹,及饋軍糧。人眾萬餘,持兵,方渡浿水,使者及左將軍疑其為變,謂太子已服降,宜命人毋持兵。太子亦疑使者左將軍詐殺之,遂不渡浿水,復引歸。山還報天子,天子誅山。”
  9. 사마천 “좌장군은 원래 시중(侍中)이었고, 천자의 총애를 받았으며, 연(燕)과 대(代)의 병졸을 거느렸고, 사나웠으며, 승세를 타고 있었고, 그의 군사들은 많이 교만(驕慢)했다. 누선은 제(齊) 지방의 병졸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들어왔는데, 이미 여러 번 패하여 도망했었으니, 그에 앞서 우거와의 전투에서 모욕을 당함으로 인하여 병졸을 잃었으니, 병졸들이 모두 두려워했고, 장군의 마음은 부끄러웠다. 우거를 포위하고는 있으나, 항상 강화(講和)가 들어맞기만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좌장군이 이를 급하게 치니, 조선의 대신(大臣)은 이에, 몰래 아랫사람을 시켜 누선(樓船)에게 항복을 약속하였고 왕래하며 논의하였으나, 여전히 긍정적으로 결정(決定)하지 못하였다. 좌장군은 누선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를 것을 기약하였으나, 누선은 급하게 그 조선대신의 약속을 성취(成就)하려 하였으므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좌장군 역시 아랫사람을 시켜, 그 사이, 조선을 물리치고 항복시키려 했으나, 조선은 수긍(首肯)하지 않았고, 조선 대신의 마음은 누선을 따랐다. 이런 이유로 두 장수는 서로 협력이 불가능했다. 좌장군의 마음 속에는 누선이 예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다는 사실이 있었고, 지금 조선과 사사로이 친하니, 또한 조선이 항복하지 않으므로, 그 어떤 배반하려는 계획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나, 감히 드러내지는 않았다.” /“左將軍素侍中,幸,將燕代卒,悍,乘勝,軍多驕。樓船將齊卒,入海,固已多敗亡;其先與右渠戰,因辱亡卒,卒皆恐,將心慚,其圍右渠,常持和節。左將軍急擊之,朝鮮大臣乃陰閒使人私約降樓船,往來言,尚未肯決。左將軍數與樓船期戰,樓船欲急就其約,不會;左將軍亦使人求閒卻降下朝鮮,朝鮮不肯,心附樓船:以故兩將不相能。左將軍心意樓船前有失軍罪,今與朝鮮私善而又不降,疑其有反計,未敢發。”
  10. 사마천 “좌장군은 패수 상류의 군을 격파하고, 곧 나아가 성 아래에 이르러 그 서북쪽을 포위하였다. 누선장군도 역시 가서, 모여서 성 남쪽에 자리잡았다. 우거가 마침내 수개월을 견고하게 지켜내니 능히 없애지를 못했다.”/“左將軍破浿水上軍,乃前,至城下,圍其西北。樓船亦往會,居城南。右渠遂堅守城,數月未能下。”
  11. 사마천 “천자가 이르기를, “장수들이 능력이 없어 예전에 위산(衛山)을 보내어 우거를 항복하도록 회유(誨諭)하자, 우거는 태자(太子)를 보냈다. 위산(衛山)이 행하였으나,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었고, 좌장군과 일을 꾀하였으나, 서로 그르쳐, 마침내 약속을 깼다. 지금 양(兩) 장수가 성(城)을 포위하고는 있으나 또한, 서로 맞지 않고 달라서, 오래되도록 결정이 나지 않았다.”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천자는 이를 바로잡게 하려고 제남(濟南) 태수(太守) 공손수(公孫遂)를 보내어, 편의(便宜)를 가지고 이로써 일을 맡기에 이르렀다. 공손수가 도착하니 좌장군이 이르기를, “조선이 당연히 항복하여야 함이 오래이나, 항복하지 아니함에는 어떤 정황이 있습니다.”라 하였다. 누선에게 여러 차례 기약(期約)을 말하였으나, 누선과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고, 원래 뜻하던 바에 의하여 일일이 공손수(公孫遂)에게 고(告)하여 이르기를, “이제 이와 같이 취하지 아니하니, 큰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누선은 혼자가 아니고 또한, 장차 조선과 함께 우리 군을 멸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공손수 역시 이를 그렇다고 여기고 나서, 부절(符節)로서, 누선장군을 좌장군 진영(陣營)에 들어 오도록 소환(召喚)하여 일을 꾸몄다. 즉, 좌장군 휘하(麾下)에게 누선장군 및 그의 군사(軍士)의 체포를 집행하도록 명하였다. 이를 천자에게 보고하자, 천자는 공손수를 죽였다. 좌장군은 그 후 얼마되지 아니하여 양군(兩軍)을 아우른 즉, 조선을 급히 쳤다. ”/“天子曰將率不能,前(及)[乃]使衛山諭降右渠,右渠遣太子,山使不能剸決,與左將軍計相誤,卒沮約。今兩將圍城,又乖異,以故久不決。使濟南太守公孫遂往(征)[正]之,有便宜得以從事。遂至,左將軍曰:「朝鮮當下久矣,不下者有狀。」言樓船數期不會,具以素所意告遂,曰:「今如此不取,恐為大害,非獨樓船,又且與朝鮮共滅吾軍。」遂亦以為然,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營計事,即命左將軍麾下執捕樓船將軍,并其軍,以報天子。天子誅遂。左將軍已并兩軍,即急擊朝鮮。”
  12. 사마천 “조선 상(朝鮮相) 노인(路人)·상 한음(相韓陰)·니계 상 참(尼谿相參)·장군 왕겹(王唊)이 서로 참여하여 일을 꾸며 이르기를, “당초에 누선에게 항복하고자 하였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있고, 홀로 좌장군이 아우르고 거느리니, 전쟁은 점차 급해지고 있고, 더불어 싸우지 못할까 두려운데, 왕은 또한 항복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하였다. 한음·왕겹·노인은 모두 도망쳐 한(漢)나라에 항복하였다. 노인은 도중(道中)에 죽었다. 원봉(元封) 3년(기원전 108년) 여름, 니계 상 참은 아랫사람을 시켜 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였다.”/“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唊相與謀曰:「始欲降樓船,樓船今執,獨左將軍并將,戰益急,恐不能與,(戰)王又不肯降。」陰、唊、路人皆亡降漢。路人道死。元封三年夏,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13. 우거왕(右渠王) - 두산백과
  14. 사마천 “왕검성(王險城)이 항복하지 않으니, 고(故)로, 우거의 대신(大臣) 성기(成己)가 또한 모반하여, 다시 벼슬아치를 공격하였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과 노인의 아들 최(最)를 시켜 그 백성을 하소연하고 타일러, 성기를 죽이니 이로써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四郡)이 되었다.”/“王險城未下,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復攻吏。左將軍使右渠子長降、相路人之子最告諭其民,誅成巳,以故遂定朝鮮,為四郡。”
  15. 우거왕(右渠王)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문헌[편집]

같이 보기[편집]

전대
(1대) 위만
(2대) 미상
제3대 위만조선 국왕
? ~ 기원전 108년
후대
(멸망)
(한사군 설치)
전임
(1대) 위만
(2대) 미상
한반도의 국가 원수
? ~ 기원전 108년
후임
동명성왕
온조왕
혁거세 거서간
수로왕
이진아시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