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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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衛滿, ? ~ ?, 재위: 기원전 194년경 ~ 기원전 161년)은 중국 (燕)나라 사람으로 고조선에 망명하여 준왕(準王)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위만조선의 초대 국왕이다.

생애[편집]

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기원전 195년경에 전한(前漢)의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모반하여 흉노로 달아나자 위만은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하였다. 위만은 준왕에게 서쪽의 번병(藩屛)이 되기를 청하였고 준왕은 위만을 박사(博士)로 삼아 100리의 땅을 주고 서쪽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은 변방을 지키면서 연(燕)의 망명한 무리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키웠으며 기원전 194년 무렵에 준왕을 쫓아내고 스스로 조선왕이 되었다.[1] [2]

위만은 형식적으로 한나라의 외신(外臣)이 되어 그 대가로 병력과 재물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등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여 복속시켜 수천리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3]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적 문제[편집]

현전하는 모든 사료에는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사학의 일환으로 중국인 위만이 고조선을 식민통치한 것이라 평하였으며, 이에 대항하여 신채호는 위만이 찬탈한 지역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평하기도 했다. 이병도는 위만이 상투를 틀고 조선인 옷을 입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위만이 조선 유민 출신이라 추측하였다. 고조선이 진개의 침입으로 요동 일대를 상실했을 때 그 지역에 남아 연나라 국적으로 살았던 조선인이라고 본 것이다.

위만의 국적 문제는 위만조선 정권의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은 위만이 중국인이므로 고조선도 중국의 식민 정권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위만조선이 국호나 정치체제·수도 등을 옮기지 않은 채 기존 고조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므로, 지배층이 중국인이라고 해도 국가의 정체성은 고조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계 지배층과 고조선의 토착 지배층의 연합 정권적 성격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가족관계[편집]

  • 아들 : 미상
  • 손자 : 우거왕(右渠王)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사마천 “조선왕 위만(衛滿)은 원래 연(燕)나라 사람이다. 연나라 전성기때부터 일찍이 진번(眞番)·조선을 약탈하고 복속시켜, 관리(官吏)를 두고 보루와 요새를 쌓았다.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자 위만조선은 요동(遼東)의 외곽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한(漢)나라가 일어났지만 위만조선이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하여,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고쳐, 패수(浿水)에 이르기까지를 경계로 삼아 이를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연왕 노관(盧綰)이 배반하여 흉노로 들어가자, 위만(魏滿)이 망명하여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서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의복을 입고 동쪽으로 요새를 빠져 달아나 패수를 건너 진(秦)나라의 빈 땅의 아래위 보루에서 살면서 진번·조선의 만이(蠻夷)와 옛 연나라·제(齊)나라의 망명자들을 점차 복속하게 하고, 왕이 되어 왕검(王險)을 도읍으로 삼았다.” / “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嘗略屬真番、朝鮮,為置吏,筑鄣塞。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為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屬燕。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2. 삼국유사》 〈권제1-기이 상편 위만조선條〉“-이기(李寄)가 말하기를 [왕검은] 지명이라 하고, 신하(臣下) 찬(讚)이 말하기를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한다.-” / “李曰地名臣讃曰王倹城在樂浪郡 浿水之東
  3. 사마천 “때마침, 효혜(孝惠)·고후(高后)때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자, 요동태수(遼東太守)는 곧, 위만과 약속하였으니, 위만이 외측의 신하〔外臣〕가 되어, 요새(要塞) 바깥의 만이(蠻夷)를 보호하고, 변방이 도적질당하지 않도록 하였다. 여러 만이(蠻夷)의 군장(君長)들이 들어와 천자(天子)를 뵙고자 하였으니, 이를 금지(禁止)할 수 없었다. 이를 듣고, 천자는 이를 허락하였다. 이런 이유로, 위만은 군사(軍事)의 위엄과 재물을 얻어, 그 이웃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하게 하니, 진번(真畨) · 임둔(臨屯)이 모두 와서 복속하였고 사방이 수천리였다.” / “會孝惠、高后時天下初定,遼東太守即約滿為外臣,保塞外蠻夷,無使盜邊;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勿得禁止。以聞,上許之,以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真番、臨屯皆來服屬,方數千里。”

참고 문헌[편집]

전대
준왕 {고조선}
제1대 위만조선 국왕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61년
후대
(2대) 미상
(3대) 우거왕
전 임
준왕
한반도의 국가 원수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61년
후 임
미상
우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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