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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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재위:)은 대가야의 초대 국왕이다.[1] 대가야를 건국한 것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름[편집]

삼국사기에 따르면 대가야국의 시조를 이진아시라고 하고, 그를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위와 같이 대가야국의 시조를 이진아시라고 하였는데, 일설에는 내진주지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진아시의 ‘진(珍)’은 우리말 고어의 ‘들’의 한자표기이다. ‘아시(阿豉)’는 우리 고어의 ‘아기'로서 ‘알지(閼智)’로도 표기되었다. 그것은 고대에 성모(聖母)를 뜻하는 말이었다는 설이 있다.

탄생과 대가야의 왕[편집]

이진아시왕은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하며, 경상북도 고령군(高靈)지방을 중심으로 대가야국을 세웠다.

대가야의 건국설화에는 정견모주설(正見母主設)과 난생설(卵生設)의 두 가지가 있다. 정견모주설은 가야산의 산신인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夷毗訶)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한 명은 아진아시왕인 뇌질주일이고, 다른 한 명은 김수로왕인 뇌질청예(惱窒靑裔)이다.

6세기 초 가락국(駕洛國)이 쇠퇴하면서 대가야는 큰 세력을 떨쳤으나 신라 진흥왕이사부(異斯夫)와 사다함을 앞세워 공격해옴으로써 562년 멸망하였다. 대가야는 시조 이진아시왕부터 16대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520년 동안의 역사를 가졌다.

금관가야 중심의 형제설화[편집]

여신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희고 갸름했다는 뇌질청예는 가락국(駕洛國)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별칭이다. 이는 최치원(崔致遠)의 석리정전(釋利貞傳) 전기에 기록되어 있는 가야국 설화이다.

뇌질청예이 맏형[2]

대가야를 중심의 형제설화[편집]

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주일은 이비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 이진아시왕의 다른 이름이 뇌질주일이다.

뇌질주일을 형이라고 함[2]

가계[편집]

이진아시가 등장한 작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전 임
(위만조선 3대 우거왕)
(대가야 건국)
제1대 대가야의 국왕
? ~ ?
후 임
(3,4대) 금림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