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military.png
선거이
宣居怡
생애 1550년 ~ 1598년
출생지 조선 전라도 보성군
사망지 조선 경상도 울산군 울산왜성
본관 보성
사신(思愼)
별명 호 친친재(親親齋)
복무 조선군
최종 계급 황해도 병마절도사
근무 거제현령, 진도군수, 성주목사, 전라수사, 전라병사, 충청병사, 황해병사
지휘 조선군
주요 참전 녹둔도 전투
임진왜란

정유재란

서훈 내역 선무원종공신 1등 추록
기타 이력 1570년(선조 3년) 무과 급제
사당 전남 보성군 오충사(五忠祠)

선거이(宣居怡, 1550년 ~ 1598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보성, 자는 사신(思愼), 호는 친친재(親親齋)이다. 보성선씨 시조 선윤지(宣允祉)의 8세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의 휘하에서 한산도 대첩에 참전하여 승전했고, 그해 12월에는 전라도병마절도사로서 독산산성에서 일본군과 분전하는 권율을 도와, 행주산성으로 넘어가도록 도와주었다. 1594년 9월의 장문포 해전에서 승전하였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일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추봉되었다.

생애[편집]

1569년선전관으로 등용되고, 1570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6년에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李鎰)의 계청군관으로 함경도에 배치되어 그곳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만났다. 1587년 녹둔도에서 조산보 만호 이순신과 함께 여진족을 막는 공을 세웠으며, 1588년에는 거제현령,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어 청백(淸白)으로 성주목사를 거쳐 1591년에 전라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순신과는 가장 가까운 전우였으며, 나이는 이순신보다 5살 어렸지만 계급은 7등급이 앞서갔다.

1592년 7월에 한산도해전에 참전하여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함께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1592년 12월 독산산성 전투에서는 전라도병사로서 전라순찰사 권율과 함께 승첩을 올렸는데 전투에서 크게 부상당하였다. 다음해인 1593년 2월에는 행주산성전투에 참가하여 권율이 적을 대파하는 데 공을 세웠다. 9월에는 함안에 주둔하고 있던 적군이 약탈을 일삼고 있었으므로 이를 공격하다가 부상을 당하였다. 그 뒤 충청병사에 올랐다.

이후 한산도에 내려와서는 이순신을 도와 둔전을 일으켜 군대의 식량을 비축하여 공을 세운 바도 있고, 1594년 9월에는 이순신과 함께 장문포(長門浦))에서 일본군을 맞아서 승전, 공을 세웠다.(장문포 해전) 이어 충청도수사가 되고 다음해 황해도병사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남해·상주 등지에서 활약하였으며, 올라오는 일본군을 격퇴하여 주춤시켰다. 1598년 제2차 울산성 전투에서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양호(楊鎬)를 도와 싸우다가 울산서에서 전사하였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일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추봉되고 보성의 오충사(五忠祠)에 제향되었다.

관련 항목[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