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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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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주
忠淸道
신라
685년~?
수도상주군
시대고대
 설치
685년
 해체
?
  하위 행정구역10군 31현
현재국가

사벌주(沙伐州) 또는 상주(尙州)는 신라의 광역 행정구역인 9주 5소경의 한 주(州)이다. 주치(州治)는 지금의 상주시이고 10개 군 31개 현이 소속되어 있으며 직접 관할하는 현은 3개이다. 영역은 지금의 경상북도 북서부 일대 및 충청북도 일부이다.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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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주의 치소 일대는 원래 진한사벌국(沙伐國)이었는데 신라 첨해 이사금(재위 247~261년)때 석우로가 사벌국을 정복하고 주를 설치하였다고 한다.[1] 그러나 실제 신라에서 주를 설치하는 제도가 시행된 것은 지증왕 때의 일이므로 이때 설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실제로는 사벌국의 옛 강토가 행정구역으로 유지되다가 지증왕 때 주가 설치된 것으로 이해된다. 525년(법흥왕 12년)에 군주(軍主)를 임명하고 상주(上州)로 고쳤다.[2] 557년(진흥왕 18년)에 사벌주는 폐지되고[3] 감문주(甘文州)가 설치되었으며, 다시 일선주(一善州)로 옮겨졌다.

685년(신문왕 5년)에 비로소 전국에 9주가 정비되었는데, 이때는 일선주였으나 687년에 사벌주로 옮겼다. 757년(경덕왕 16년)에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사벌주도 상주로 개칭되었다.[4] 이후 상주의 명칭은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혜공왕 때 행정구역 명칭을 원래 명칭으로 되돌렸다고 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경덕왕이 중국식으로 고친 명칭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있다.

소속 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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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 경덕왕이 지명을 고쳤을 당시 상주에는 10개 군, 30개 현이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권34〉(〈지리지〉)에 전해지는 상주 조(條)에는 10개 군 31개 현이 나타나고 있다.[5]

사벌주의 소속 군현
주·속 군의 이름 경덕왕 개칭 이전 이전 연혁 이후 연혁 현재 비정
상주(尙州) 사벌주(沙伐州) 본래 사벌국(沙伐國)으로, 신라 첨해왕이 정복하여 주(州)로 삼았다. 법흥왕이 상주(上州), 진흥왕이 상락군(上洛郡)으로 고친 적이 있다. 고려, 조선 대에도 상주로 유지되었다. 조선 말에 상주군이 되었다. 상주시
청효현(靑驍縣) 음리화현(音里火縣) 고려 초에 청리현(靑理縣)으로 개칭되어 상주의 속현으로 남아 있다. 조선 대, 세종실록 지리지에 상주의 속현으로 나오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폐현이 되어 있다. 상주시 청리면
다인현(多仁縣) 달기현(達己縣)

또는 다이(多已)

고려 대에 보주(예천군)의 속주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현으로 남아있으나 이후 폐지되었다. 의성군 다인면
화창현(化昌縣) 지내미지현(知乃彌知縣) 고려 초에 이미 폐지되었다. 상세를 알 수 없으나, 대동지지에 상주의 서북에 고성(古城)이 있다 하였다. 상주시 외서면[6]
예천군(醴泉郡) 수주군(水酒郡) 고려 초에 보주(甫州)로 고치고 안동부의 속현으로 삼았다. 나중에 현령을 파견하여 기양현(基陽縣), 승격하여 보주가 되었다. 조선 태종이 보천군(甫川郡)으로 고쳤다가 옛 이름인 예천군으로 정하였다. 예천군 예천읍
영안현(永安縣) 하지현(下枝縣) 고려 태조 대에 순주(順州)로 승격했다가 다시 강등하고, 풍산현(豊山縣)으로 고쳐 안동부의 속현으로 삼았다. 조선 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동의 속현으로 남아있다가 이후 폐지되었다. 안동시 풍산읍
안인현(安仁縣) 난산현(蘭山縣) 고려 초에 이미 폐지되었다. 상세를 알 수 없으나, 대동지지에 예천의 서북 40리 갈평창(葛平倉) 근처에 있었다 하였다. 문경시 동로면 남단[6]
가유현(嘉猷縣) 근품현(近品縣)

또는 건품현(巾品縣)

고려 초에 산양현(山陽縣)으로 고치고 상주목의 속현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현으로 남아있다가 이후 폐지되었다. 근암산성(近嵒城)이 위치한 현 문경시 산양면 현리로 비정된다. 문경시 산양면
은정현(殷正縣) 적아현(赤牙縣) 고려 초에 은풍현(殷豊縣)으로 고치고 안동부의 속현으로 삼았고, 공양왕이 기주(基州)에 감무를 두면서 은풍을 겸하게 하였고, 조선 초 기주를 기천현으로 고쳤다가 기천과 은풍을 합하여 풍기군으로 승격시켰다.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
고창군(古昌郡) 고타야군(古陁耶郡) 고려 태조 대에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였다. 이후 영가군(永嘉郡)이나 길주(吉州)로 고쳐졌다가 1030년(현종 21년)에 안동부로 되돌려졌다. 1197년 도호부, 1204년 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충렬왕이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쳤다가 공민왕이 다시 안동대도호부로 되돌렸다. 조선 말에 안동군이 되었다. 안동시
직녕현(直寧縣) 일직현(一直縣) 고려 초에 옛 이름인 일직현으로 되돌리고 안동부의 속현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동의 속현으로 남아있다가 이후 폐지되었다. 안동시 일직면
일계현(日谿縣) 열혜현(熱兮縣)

또는 니혜(泥兮)

고려 초에 이미 폐지되었다. 의성군 옥산면
고구현(高丘縣) 구화현(仇火縣)

또는 고근(高近)

고려 초에 의성부에 합쳐졌다. 의성군 단촌면
문소군(聞韶郡) 소문국(召文國) 소문국(召文國) 삼국사기에는 고려의 의성부(현 의성군)가 되었다고 써있다. 다만 최근 학자들은 사실 문소군에 속한 진보현에 의성부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 경우 문소군은 의성부에 편입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의성군 금성면?
진보현(眞寶縣) 칠파화현(柒巴火縣) 삼국사기에는 고려의 보성(현 청송군 진보면)이 되었다고 써있으나, 최근 학자들은 사실 명주 야성군에 속한 진안현(鎭安縣)이 보성부로 이어졌고, 오히려 진보현에 의성부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초 설치된 의성부는 안동부(安東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인종 대에 현령(縣令)을 두며 주현이 되었다. 의성군 의성읍?
비옥현(比屋縣) 아화옥현(阿火屋縣)

또는 병옥(幷屋)

고려 초에 상주목의 속현으로 삼았다. 공양왕이 안정현(安貞縣)에 감무를 두면서 비옥을 겸하게 하였고, 조선 세종 3년(1421년)에 이름을 합쳐 안비현(安比縣)으로 하였다가 세종 5년에 치소를 비옥으로 옮기고 비안현(比安縣)으로 고쳤다. 의성군 비안면
안현현(安賢縣) 아시혜현(阿尸兮縣)

또는 아을혜(阿乙兮)

고려 초에 안정현(安定縣)또는 안정현(安貞縣)으로 고치고 상주목의 속현으로 삼았다. 공양왕이 안정현(安貞縣)에 감무를 두면서 비옥을 겸하게 하였고, 조선 세종 3년(1421년)에 이름을 합쳐 안비현(安比縣)으로 하였다가 세종 5년에 치소를 비옥으로 옮기고 비안현(比安縣)으로 고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비안현의 속현으로 남아있다가 이후 폐지되었다. 의성군 안계면
단밀현(單密縣) 무동미지(武冬彌知)

또는 갈동미지(曷冬彌知)

고려 초에 상주목의 속현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상주의 속현으로 남아있다가 이후 폐지되었다. 의성군 단밀면
숭선군(嵩善郡) 일선군(一善郡) 진평왕이 일선주(一善州)로 고쳤다가 신문왕 7년에 폐지했다. 고려 초에 선주(善州)로 고치고 상주목의 속현으로 삼았다. 인종 21년(1143년)에 현령을 파견하면서 일선현(一善縣)으로 고쳤다가 지주사를 파견하며 다시 선주로 되돌렸다. 조선 태종 대에 선산군(善山郡)으로 고치고 도호부로 승격했다.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효령현(孝靈縣) 모혜현(芼兮縣) 고려 초에 상주목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인종 21년(1143년)에 일선현, 공양왕 대에 군위현의 속현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군위현의 속현으로 남아있다가 이후 폐지되었다. 군위군 효령면
(불명) 이동혜현(尒同兮縣) 경덕왕이 고친 이후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 초에 이미 폐현이 되었다는 설, 고려의 해평현으로 이어진다는 설, 의흥현으로 이어진다는 설이 있다.[7] 해평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선산의 속현으로 나오는데, 동서에 따르면 이칭은 파징(波澄)이고 신라의 병병현(竝幷縣)을 고려 초에 해평군으로 고친 것이다. 해평은 나중에 선산에 병합되어 사라졌다. 의흥현은, 고려의 의흥군 이전의 연혁은 알 수 없고, 조선 말에 의흥군이 되었다. 구미시 해평면?[6]

군위군 의흥면?[8]

군위현(軍威縣) 노동멱현(奴同覓縣)

또는 여두멱(如豆覓)

고려 초에 상주목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인종 21년(1143년)에 일선현의 속현으로 하였다. 공양왕 때 감무를 파견하며 주현이 되었다. 조선 말에 군위군이 되었다. 군위군 군위읍
개령군(開寧郡) 감문군(甘文郡) 본래 감문소국(甘文小國)으로, 진흥왕 때 군주(軍主)를 두고 청주(靑州)로 삼았다가, 진평왕 때 폐지하였다. 문무왕 때 감문군(甘文郡)을 두었다. 고려 초에 상주목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명종 2년(1172년)에 감무를 두었다. 김천시 개령면
어모현(禦侮縣) 금물현(今勿縣)

또는 음달(陰達)

고려 초에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태조 2년(1393년)에 김산군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폐현하고 직촌(直村)이 되었다. 김천시 어모면
김산현(金山縣) 동잠현(桐岑縣)[9] 고려 초에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공양왕 2년(1390년)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정종 원년(1399년)에 김산군으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 중심지이던 군내면(郡內面)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릉면(金陵面)을 거쳐 현 김천시 시내의 북부로 이어진다. 김천시 신음동
지례현(知禮縣) 지품천현(知品川縣) 고려 초에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공양왕 2년(1390년)에 감무를 두었다. 김천시 지례면
무풍현(茂豐縣) 무산현(茂山縣) 고려 초에 진례현(進禮縣)의 속현이 되었다가 명종 6년(1176년)에 감무를 두고 주계현(朱溪縣)을 겸하였다. 공양왕 3년(1391)에 주계현(朱溪縣)을 합쳤다가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무주현(茂朱縣)으로 고치고 치소를 주계에 두었다. 무주군 무풍면
영동군(永同郡) 길동군(吉同郡) 고려 초에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명종 2년(1172년)에 감무를 두었으나 곧 폐지하였고,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현감(縣監)을 두었다. 영동군 영동읍
양산현(陽山縣) 조비천현(助比川縣) 고려 초에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충선왕 5년(1313년)에 옥천(沃川)을 옥주(沃州)로 승격하면서 그 속현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현으로 나오나 이후 폐지되었다. 영동군 양산면
황간현(黃澗縣) 소라현(召羅縣) 고려 초에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공양왕 2년(1390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 14년(1414년)부터 동 16년(1416년)까지 잠시 청산현(靑山縣)과 합쳐 황청현(黃靑縣)이라 하였으나 다시 갈라졌다. 영동군 황간면
관성군(管城郡) 고시산군(古尸山郡) 고려 초에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인종 21년(1243년)에 현령(縣令)을 두었다. 충선왕 5년(1313년)에 지옥주사(知沃州事)로 승격하며 이산, 안읍, 양산을 속현으로 삼았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옥천군으로 고치고 충청도에 소속시켰다. 옥천군 옥천읍
이산현(利山縣) 소리산현(所利山縣) 고려 초에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명종 6년(1176년)에 감무를 두었다. 충선왕 5년(1313년)에 옥천(沃川)을 옥주(沃州)로 승격하면서 그 속현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현으로 남아있으나 이후 폐지되었다. 옥천군 이원면
안정현(安貞縣) 아동혜현(阿冬兮縣) 고려 초에 안읍현(安邑縣)으로 고치고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충선왕 5년(1313년)에 옥천(沃川)을 옥주(沃州)로 승격하면서 그 속현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현으로 남아있으나 고종 대에 폐지되었다. 옥천군 안내면
삼년군(三年郡) 삼년산군(三年山郡) 고려 초에 보령군(保齡郡)으로 고치고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종 16년(1416년)에 보은현(報恩縣)으로 개칭하였다. 보은군 보은읍
청천현(淸川縣) 살매현(薩買縣) 고려 초에 청주목(淸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현으로 남아있는데 여기에는 청천현(靑川縣)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후 폐현되었다. 괴산군 청천면
기산현(耆山縣) 굴현(屈縣) 고려 초에 청산현(靑山縣)으로 고치고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공양왕 2년(1390년)에 감무를 두고 상주의 주성부곡(酒城部曲)를 속현으로 삼았다가, 동 11년(1399년)에 다시 상주에 소속시켰다. 조선 태종 3년(1403년)에 감무를 두고, 동 14년(1414년) 잠시 황간(黃澗)과 합쳐 황청(黃靑)이라 하였다가 다시 나누었다. 옥천군 청성면
고령군(古寧郡) 고동람군(古冬攬郡)

또는 고릉현(古陵縣)

본래 고령가야국(古寧加耶國)으로, 신라가 취하여 고동람군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 함녕군(咸寧郡)으로 개칭하고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나중에 함창군(咸昌郡)으로 고치고 명종 2년(1172년) 감무(監務)를 파견하였다. 상주시 함창읍
가선현(嘉善縣) 가해현(加害縣) 고려 초에 가은현(加恩縣)으로 개칭하고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 공양왕 2년(1390년)에 문경군(聞慶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현으로 남아있으나 이후 폐지되었다. 문경시 가은읍
관산현(冠山縣) 관현(冠縣) 고려 초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개칭하고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가 문경군(聞慶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공양왕 2년(1390년)에 감무를 설치하며 가은현을 속현으로 삼았다. 문경시 문경읍
호계현(虎溪縣) 호측현(虎側縣) 고려 초에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 되었다가, 조선 태종 16년(1416년)에 문경에 내속시키며 직촌(直村)이 되어 사라졌다. 문경시 호계면
화령군(化寧郡) 답달비군(荅達匕郡)

또는 답달(沓達)

고려 초에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화령현(化寧縣)이라는 속현으로 나온다. 상주시 화서면
도안현(道安縣) 도량현(刀良縣) 고려 초에 중모현(中牟縣)으로 개칭하고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으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속현으로 나온다. 상주시 모동면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삼국사기》 〈권34
  2. 삼국사기》 〈권34
  3. 삼국사기》 〈권34
  4. 삼국사기》 〈권34
  5. 이하의 기술은 모두 《삼국사기》 〈권34〉를 출처로 하고 있다.
  6. 1 2 3 정구복 외, 1997d,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 삼국사기, 권 제34잡지 제3, 지리(地理)一 신라(新羅), 숭선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8. 박성현, 2019 「신라 문소군, 숭선군의 구조와 군현 편성 원리」, 『한국학논집』 74
  9.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경덕왕이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고 써있으나 대동지지 등 다른 자료들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본래 이름이 동잠현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