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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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비부(習比部)는 진한 6부의 하나로서, 비습부(比習部)라고도 한다. 천북, 갈곡(葛谷), 물이촌(勿伊村), 잉구며촌(仍仇旀村) 등 경주의 동북촌이 속하였다. 대체로 지금의 경주시 천북면 일대가 해당되었다. 천북면과 달리 안강읍강동면은 신라와 고려 기간 안강현(安康縣)이라는 독립적인 행정 구역에 속한 지역으로서, 습비부에 속한 지역이 아니다.

역사[편집]

촌장 호진(虎珍)이 경주 금강산(金剛山)으로 내려와서 사로 6촌의 일원이 되었다. 신라 유리 이사금이 명활산고야촌(明佸山髙耶村)을 습비부라 고치고 설(薛)씨라 사성하였다. 고려 태조가 임천부(臨川部)로 개칭하였다. 습비라는 명칭은 고구려 하서주 금양군에 소속된 습계현(習谿縣)의 고명(古名)이다.[1] 고려, 조선 시절에는 흡곡이라 불렸으며 1910년 통천에 흡수되어 지금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통천군에 속해 있다.

습비부에 소속된 지역[편집]

  • 나림(奈林)

지금의 영천시인 임고군(臨皐郡)의 골화(骨火), 지금의 청도군과 동경주, 안강 일대에 걸친 대성군(大城郡)의 혈례(穴禮)와 더불어 신라삼산 중 하나로, 대사(大祀)를 지낸 곳이다. 이명으로는 나력(奈歷)이 있다. 낭산(狼山)에 비정하는 설이 있지만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2]

  • 갈곡(葛谷)

궐곡(闕谷)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경주시 천북면 갈곡리이다.

  • 물이(勿伊)

현재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부 편에 따르면 이 곳에 자기를 굽는 자기소(磁器所)가 있었다고 한다.[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금양군》. 2021년 10월 4일에 확인함. 
  2. “신라삼산(新羅三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1년 10월 4일에 확인함. 
  3. “조선왕조실록”. 2021년 10월 2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