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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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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신라9주 5소경

웅천주(熊川州) 또는 웅주(熊州)는 신라의 행정구역인 9주 5소경의 한 주(州)이다. 주치(州治)는 지금의 공주시이고 1개 소경 13개 군 29개 현이 소속되어 있으며 직접 관할하는 현은 2개이다. 영역은 지금의 충청남도 대부분 및 충청북도 일부이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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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패망과 동시에 당나라는 백제의 고토를 병탄해 웅진 도독부를 설치했다. 이에 충청남도 일대는 백제 부흥운동나당 전쟁의 전장이 되고 말았다. 나당 전쟁중인 671년 문무왕 11년에 신라는 옛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당나라로부터 탈환해 이곳을 치소로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했다. 동시에 지금의 아산시 일원을 중심으로 탕정주를 설치했다.그 후 전쟁 뒤인 681년 신문왕 6년 주 치소가 웅진으로 옮겨지면서 사비는 치소로서의 지위를 상실해 명칭도 웅천주로 변경되었다. 동시에 탕정주도 웅천주에 합병되었다. 757년 경덕왕 16년에 전국의 행정체제및 행정단위의 명칭을 개혁하면서 웅주로 바뀌었지만 웅천주라는 명칭도 계속 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신라군으로는 황자•황청색의 만보당(萬步幢)과 고량부리정(古梁夫里停)이 주류했다. 822년 헌덕왕 14년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인근의 4개주까지 세력을 확장해 장안국을 세웠다가 패사한 적이 있다.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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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주에는 1개 소경 13개 군 29개 현이 소속되어 있었다. 한편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웅주 소속 군현의 옛 지명을 대부분 백제의 지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래 표에서 특별한 표시가 없는 옛 지명은 모두 백제의 지명이다.

웅천주의 소속 군현
주·속 군의 이름 경덕왕 개칭 이전 이전 연혁 이후 연혁 현재 비정
웅주(熊州) 웅천주(熊川州) 본래 백제의 도읍으로, 원 도읍인 한성(漢城)이 함락된 이후 문주왕 원년(475)에 옮겨왔다. 7세기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가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설치했다가, 신라의 문무왕이 이를 빼앗아 신문왕 때 웅천주(熊川州)로 고치고 도독을 두었다. 웅진(熊津)이라고도 하였는데, 양서(梁書) 백제전에는 고마(固麻), 일본서기에는 구마나리(久麻那利)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고려 태조가 공주(公州)로 개칭하였다. 고려 현종 9년(1018)에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공주시 산성동
이산현(尼山縣) 열야산현(熱也山縣) 고려 초에 공주(公州)에 내속(속현으로 삼음)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종 14년(1414)에 석성(石城)과 합쳐 이성현(尼城縣)을 두었다가 곧 되돌렸다. 정조가 즉위할 때 피휘하여 노성현(魯城縣)으로 개칭했다. 논산시 노성면
청음현(淸音縣) 벌음지현(伐音支縣) 당 웅진도독부가 설치하려 한 부림현(富林縣)의 위치라고 전한다. 고려 초에 신풍현(新豐縣)으로 고치고 공주에 내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폐현으로 나와 있다. 공주시 신풍면
서원경(西原京) 서원소경(西原小京) 본래 백제 상당현(上黨縣)이다. 일명 낭비성(娘臂城)이나 낭자곡(娘子谷)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신문왕 5년(685)에 서원소경(西原小京)을 설치하였다. 고려 태조가 청주(淸州)로 개칭하였다. 현종 9년(1018)에 8목(牧)의 하나가 되었다. 청주시 상당구 용담명암산성동
대록군(大麓郡) 대목악군(大木岳郡) 고려 초에 목주(木州)로 고치고 청주에 내속시켰다. 조선 태종 13년(1413) 목천현(木川縣)으로 고치고 현감을 두었다.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순치현(馴雉縣) 감매현(甘買縣)[1]

또는 임천(林川)

고려 초에 풍세현(豊歲縣)으로 고치고 천안부(天安府)에 내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천안군의 속현으로 나오나 이후 폐지되었다.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금지현(金地縣) 구지현(仇知縣) 고려 초에 전의현(全義縣)으로 고치고 청주에 내속시켰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감무를 두었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가림군(嘉林郡) 가림군(加林郡) 고려 성종 14년(995)에 임주(林州)로 고치고 자사를 두었다가 현종 9년(1018)에 도로 가림현(嘉林縣)으로 고치고 현령을 두었고, 충숙왕 2년(1315)에 임주(林州)로 승격했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임천군(林川郡)으로 개칭되었다. 부여군 임천면
마산현(馬山縣) 마산현(馬山縣) 고려 초에는 그대로 쓰다가 뒤에 한산현(韓山縣)으로 고치고 가림현(嘉林縣)에 내속시켰다. 명종 5년(1175)에 감무를 두고 홍산(鴻山)을 겸하게 하였다. 나중에 한주(韓州)로 승격했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에 한산군(韓山郡)으로 고쳤다. 서천군 한산면
한산현(翰山縣) 대산현(大山縣) 고려 초에 홍산현(鴻山縣)으로 고치고 가림현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5년(1175) 한산(韓山)에 감무를 두며 홍산을 겸하게 하였다. 부여군 홍산면
서림군(西林郡) 설림군(舌林郡) 고려 초에 가림현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충숙왕 원년(1314)에 서주(西州)로 승격했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에 서천군(舒川郡)으로 고쳤다. 서천군
남포현(藍浦縣) 사포현(寺浦縣) 고려 초에 가림현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우왕 6년(1380) 왜구의 침략으로 주민들이 흩어졌다가 공양왕 2년(1390)에 새로 진성(鎭城)을 쌓았다. 세조 12년에 진을 혁파하고 현감을 두었다. 보령시 남포면
비인현(比仁縣) 비중현(比衆縣) 고려 초에 가림현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서천군 비인면
이산군(伊山郡) 마시산군(馬尸山郡) 고려 초에 홍주(洪州)[당시는 운주(運州)]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덕풍현(德豊縣)과 합쳐 덕산현(德山縣)을 만들었다. 예산군 덕산면
목우현(目牛縣) 우견현(牛見縣) 삼국사기에는 지금[고려]은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고려사에는 등장한다. 고려 초에 고구현(高丘縣)으로 고치고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폐현으로 쓰여 있다. 홍성군 갈산면
금무현(今武縣) 금물현(今勿縣) 당 웅진도독부가 설치하려 한 기문현(己汶縣)의 위치라고 전한다. 고려 초에 덕풍현(德豊縣)으로 고치고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5년(1175)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이산현(伊山縣)과 합쳐 덕산현(德山縣)을 만들고 동 16년에 이산을 치소로 삼았다. 예산군 고덕면
혜성군(槥城郡) 혜군(槥郡) 고려 초에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충렬왕 19년(1293)에 면주(沔州)로 승격했다가 조선 태종 13년(1413)에 면천군(沔川郡)으로 개칭되었다. 당진시 면천면
당진현(唐津縣) 벌수지현(伐首只縣) 당 웅진도독부가 백제 부수지(夫首只)에 설치하려 한 자래현(子來縣)의 위치라고 추정된다. 고려 초에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가 예종 원년(1106)에 감무를 두었다. 당진시
여읍현(餘邑縣) 여촌현(餘村縣) 고려 초에 여미현(餘美縣)으로 고치고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가, 예종 원년(1106)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종 7년(1407)에 정해현(貞海縣)과 합쳐 해미현(海美縣)을 만들고 정해를 치소로 삼았다. 서산시 운산면
신평현(新平縣) 사평현(沙平縣) 고려 초에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홍주목의 속현으로 나오나 이후 폐지되었다. 당진시 신평면
부여군(扶餘郡) 소부리군(所夫里郡) 본래 백제의 소부리(所夫里) 또는 사비(泗沘)로, 백제 성왕 16년(538)에 도읍을 웅진(熊津)에서 사비로 옮기고 남부여(南扶餘)라 칭하였다고 한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사비주(泗沘州)[또는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였고 신문왕 6년(686)에 군(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공주(公州)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다. 부여군 부여읍
석산현(石山縣) 진악산현(珍惡山縣) 고려 초에 석성현(石城縣)으로 고치고 공주(公州)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다. 공민왕 20년(1371)에 부여(扶餘) 감무가 겸하게 하였다가 공양왕 2년(1390) 다시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종 14년에 이산(尼山)과 합쳐 이성(尼城)을 만들었으나 곧 되돌렸다. 부여군 석성면
열성현(悅城縣) 열기현(悅己縣)[2]

또는 두릉윤성(豆陵尹城), 두곶성(豆串城), 윤성(尹城)

당 웅진도독부가 설치하려 한 윤성현(尹城縣)의 위치라고 전한다. 고려 초에 정산현(定山縣)으로 고치고 공주(公州)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청양군 정산면
임성군(任城郡) 임존성(任存城) 본래 백제의 임존성(任存城)으로, 금주(今州)라고도 한다. 당 웅진도독부가 백제 지삼촌(只彡村)[또는 지분촌(只分材)]에 설치하려 한 지심현(支潯縣)의 위치라고 추정된다. 고려 초에 대흥군(大興郡)으로 고치고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다. 예산군 대흥면
청정현(靑正縣) 고량부리현(古良夫里縣) 고려 초에 청양현(靑陽縣)으로 고치고 천안부(天安府)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홍주(洪州)로 이속시켰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감무를 두었다. 청양군
고산현(孤山縣) 오산현(烏山縣) 당 웅진도독부가 설치하려 한 마진현(馬津縣)의 위치라고 전한다. 고려 초에 예산현(禮山縣)으로 고치고 천안부(天安府)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예산군 예산읍
황산군(黃山郡)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 고려 초에 연산군(連山郡)으로 고치고 공주(公州)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논산시 연산면
진령현(鎭嶺縣) 진현현(眞峴縣)

또는 정현(貞峴)

고려 초에 진잠현(鎭岑縣)으로 고치고 공주(公州)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대전광역시 서구 봉곡동
진동현(珍同縣) 진동현(珍同縣)

또는 珍洞縣

고려 초에 진례현(進禮縣)에 내속시켰다가, 공양왕 2년에 고산(高山) 감무가 겸하게 하였다. 조선 태조 2년(1393)에 진주(珍州)로 승격하였다가 태종 13년(1413) 진산군(珍山郡)으로 고쳤다. 금산군 진산면
비풍군(比豊郡) 우술군(雨述郡) 고려 초에 회덕군(懷德郡)으로 고치고 공주(公州)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
유성현(儒城縣) 노사지현(奴斯只縣)[3] 고려 초에 공주(公州)에 내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공주목의 속현으로 나오나 이후 폐지되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
적조현(赤鳥縣) 소비포현(所比浦縣) 고려 초에 덕진현(德津縣)으로 고치고 공주(公州)에 내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폐현으로 쓰여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덕진동
결성군(結城郡) 결이군(結已郡) 고려 초에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2년(1171)에 결성군(結城郡)으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홍성군 결성면
신읍현(新邑縣) 신촌현(新村縣) 당 웅진도독부가 설치하려 한 산곤현(散昆縣)의 위치라고 전한다. 고려 초에 보령현(保寧縣)으로 고치고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가, 예종 원년(1106)에 감무를 두었다. 보령시 주포면
신량현(新良縣) 사시량현(沙尸良縣) 당 웅진도독부가 백제 사호살(沙好薩)에 설치하려 한 산호현(珊瑚縣)의 위치라고 추정된다. 고려 초에 여양현(黎陽縣)으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가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폐현으로 쓰여 있다. 홍성군 장곡면
연산군(燕山郡) 일모산군(一牟山郡) 고려 초에 청주(淸州)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다. 고종 46년(1259)에 문의현(文義縣)으로 고치고 현령을 두었다. 충렬왕 때 가림(嘉林)에 합쳤으나 곧 되돌렸다. 조선 선조 때 청주(淸州)에 합쳤다가 광해군 때 되돌렸고, 고종 때도 청주에 합쳤다가 곧 되돌렸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연기현(燕岐縣) 두잉지현(豆仍只縣) 고려 초에 청주(淸州)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다. 이후 목주(木州) 감무가 겸하게 하였으나, 조선 태종 6년(1406) 나누어 감무를 두었다. 태종 14년에 전의(全義)에 합쳤다가 곧 되돌렸고, 숙종 때 문의(文義)에 합쳤다가 곧 되돌렸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매곡현(昧谷縣) 미곡현(未谷縣) 고려 초에 회인현(懷仁縣)으로 고치고 청주(淸州)에 내속시켰다. 뒤에 회덕(懷德) 감무가 겸하게 하였다가, 우왕 9년(1383)에 나누어 감무를 두었다. 보은군 회인면
부성군(富城郡) 기군(基郡) 고려 인종 22년(1143)에 현령을 두었다. 충렬왕 10년(1284)에 서산군(瑞山郡)으로 승격하고 동 34년에 서주목(瑞州牧)으로 승격하였다. 충선왕 2년(1310)에 서녕부(瑞寧府)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다시 서주(瑞州)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서산군(瑞山郡)으로 고쳤다. 서산시
소태현(蘇泰縣) 성대혜현(省大兮縣) 고려 초에 홍주(洪州)에 내속시켰다가 충렬왕 때 태안군(泰安郡)으로 승격하였다. 태안군
지육현(地育縣) 지륙현(知六縣) 당 웅진도독부가 백제 지류(知留)에 설치하려 한 평이현(平夷縣)의 위치라고 추정된다. 고려 초에 지곡현(地谷縣)[또는 북곡현(北谷縣)]으로 고치고 부성군(富城郡)에 내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미 폐현으로 쓰여 있다. 서산시 지곡면
탕정군(湯井郡) 탕정군(湯井郡) 고려 초에 온수군(溫水郡)으로 고치고 천안부(天安府)에 내속시켰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세종 24년(1442)에 온양군(溫陽郡)으로 승격하였다. 아산시
음봉현(陰峯縣)

또는 음잠(陰岑)

아술현(牙述縣) 고려 초에 인주(仁州)로 고치고 자사를 두었다가 현종 때 천안부(天安府)에 내속시켰다. 뒤에 아주(牙州)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아산현(牙山縣)으로 고쳤다. 아산시 영인면
기량현(祁梁縣) 굴직현(屈直縣)

또는 굴지현(屈旨縣)

고려 초에 신창현(新昌縣)으로 고치고 천안부(天安府)에 내속시켰다가, 공양왕 3년(1391)에 감무를 두었다. 아산시 신창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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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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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서 지리지 백제조에는 기매현(其買縣)으로 써있다.
  2. 자료에 따라 열이(悅已)로도 써있다.
  3. 고려사에는 노질지현(奴叱只縣)이라고도 한다고 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