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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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진사왕
百濟 辰斯王
지위
백제의 16대 국왕
재위 385년 11월~392년 11월
전임자 침류왕
후임자 아신왕
부왕 근구수왕
이름
부여진사(扶餘辰斯)
신상정보
부친 근구수왕

진사왕(辰斯王, ? ~392년 11월, 재위: 385년 11월~392년 11월)은 백제의 제16대 국왕이다. 휘는 진사(辰斯) 또는 휘(暉) 또는 여휘(餘暉,余暉)이며 중국사서에 진사왕의 휘가 휘(暉)라고 하지만 진사왕의 아들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아이부인(阿爾夫人)이다. 침류왕이 즉위한 지 1년 7개월 만에 사망하자, 아직 나이가 어린 침류왕의 맏아들 아신, 즉 자신의 조카를 대신하여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 진사왕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국경을 방비하는데 힘썼으며 389년390년에는 고구려를 선제공격하여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가 도압성(都押城)을 함락시키기도 하였다.

생애[편집]

제14대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며 제15대 침류왕의 동생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침류왕이 죽었을 때 태자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가 즉위했다고 하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진사가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백제근초고왕(346년~375년 재위 말년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공격으로 긴장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는 즉위 직후인 386년에 15세 이상의 주민을 동원하여 관방(關防)을 쌓게 했다.

389년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기도 했고 390년에는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를 시켜 고구려의 도곤성(都坤城)을 함락하게 해 200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러나 고구려광개토왕이 즉위하면서부터 백제는 수세에 몰렸다. 391년 7월 광개토왕이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북쪽 변경의 석현성(石峴城)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으나 진사왕은 광개토왕이 군사작전에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맞서 싸우지 못했다. 10월에는 험준한 요새지인 관미성(關彌城)마저도 함락당했다.

391년에 궁실을 중수하고 연못과 산을 쌓는 등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력을 낭비하였으며, 이로 인해 말갈과 고구려의 침입을 받았다. 392년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4만 병력으로 내습하여 한수(漢水) 이북의 석현성 등 10여 개 성과 수많은 부락이 함락되었다. 또한 10월에는 북방의 중요 요새인 관미성을 함락당했다. 진사왕은 광개토왕군사를 부리는데 능하다는 말을 듣고 이 침입에 대응하지 않았으며, 11월에는 구원(狗原)에서 사냥을 하다가 행궁에서 사망하였다.

진사왕은 그해 구원(狗原)에 사냥을 나갔다가 행궁(行宮)에서 죽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진사왕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어 정치세력간의 갈등으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쿠데타 암살설[편집]

침류왕의 아들인 아신은 숙부인 진사왕이 부왕의 죽음에 관련된 것으로 보고 반기를 들었다. 한편 일본서기에 의하면 일본 일왕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아, 일본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百濟의 辰斯王이 왕위에 있으면서 貴國(日本)의 天皇에게 예의를 잃었으므로, 기각숙례(紀角宿禰), 우전시대숙례(羽田矢代宿禰), 석천숙례(石川宿禰), 목면숙례(木菟宿禰)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책망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百濟國에서는 辰斯王을 죽여 사죄하였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기각숙례 등이 아화(阿花, 아신왕의 별칭)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고 적고 있다.

자연재해[편집]

  • 386년 가을 음력 7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해쳤다.[1]
  • 390년 가을 음력 7월에 살별이 북하(北河)에 나타났다.[2]
  • 392년 여름 음력 5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3]

진서에 나오는 백제왕태자 여휘[편집]

진서(晉書) 9권, 효무제본기, 태원 11년(386년) 여름 4월조에는 백제왕세자(百濟王世子) 여휘(餘暉, 여는 백제왕의 성)로서 백제왕의 휘라고 생각되는 인명이 나타난다. 이 여휘를 세자라는 호칭이 있어서 조카 아신왕에 해당된다고 보는 설도 있지만, 시대상으로 진사왕이나 진사왕의 아들로 비정 하는 설이 많다.《삼국사기》에서 이름을 휘(暉)라고 하는 백제왕의 기록이 없다.

가계[편집]

그의 아들 진손왕은 왕인과 함께 일본으로 파견되었다. 진서 효무제 본기에 나오는 백제 왕세자이며,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 등장하는 진사왕의 다른 아들로 진손의 형이 되는 여휘(餘暉)는 이름만 알려졌을 뿐, 행적은 미상이다.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각주[편집]

참고[편집]


전 대
침류왕
제16대 백제 국왕
385년 - 392년
후 대
아신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