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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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법왕
百濟 法王
지위
백제의 29대 국왕
재위 599년 ~ 600년
전임자 혜왕
후임자 무왕
부왕 혜왕
이름
부여선(扶餘宣)
신상정보
부친 혜왕
종교 불교(佛敎)

법왕(法王, ? ~ 600년 5월, 재위: 599년 ~ 600년 5월)은 백제의 제29대 국왕이다. 재위기간 중 불교(佛敎)를 숭상하여 사비미륵사를 지었는데, 살생을 금지하여 사냥용 를 놓아주고 어부들에게 그물과 고기 잡는 도구를 불태울 것을 명했다.

삼국사기》 권27 백제 법왕편에 따르면, 법왕은 혜왕의 아들이다. 이름은 선(宣) 또는 효순(孝順)이었다.

생애[편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법왕은 혜왕의 아들이다.[1] 한편,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중국 사서인 《수서》의 내용도 기록하여 '법왕은 혜왕의 장자이고 혜왕이 죽자 법왕이 계승했는데, 《수서》에서는 위덕왕의 아들이라 한다'고 부기하였다. 《일본서기》에는 위덕왕의 막내아들이자 아좌태자의 동생이라고 한다.

598년 9월, 위덕왕중국 수나라에 표문과 조공을 바치자, 고구려는 이를 문제삼아 백제의 변경을 공격하였다. 이때 효순은 백제의 장군으로 고구려군을 맞아 싸웠다. 효순은 아버지 혜왕598년 12월 왕위에 오른 직후 고령으로 사망하자 바로 즉위하였는데, 그가 바로 법왕이다.

법왕은 불교를 숭상하여 사비미륵사를 짓게 하는 한편, 살생을 막으려고 백성들에게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어업 조업 도구들을 태워버리라고 명하고 사냥용 를 풀어주었다.[2]

600년 5월 법왕이 사망하였다.[3] 아버지인 혜왕과 법왕 부자의 재위기간은 두 사람이 합쳐서 고작 1년6개월이었다. 불교를 숭상하여 시호를 법왕(法王)으로 하였다.

무왕과의 관계[편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무왕은 법왕의 아들이라 기록하고 있다. 무왕위덕왕의 서자 또는 서손자라는 주장은 중국의 《북사》에 '무왕이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적혀 있다는 단편적 기록에 근거한다. 그런데, 법왕에 대해서도 《수서》에서 '위덕왕의 아들이다'고 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기록은 법왕과 그의 아버지인 혜왕의 재위기간이 둘을 합쳐서 고작 1년6개월에 불과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계[편집]

혜왕
惠王
법왕
法王
무왕
武王
진이왕?
辰爾王

법왕이 등장한 작품[편집]

참고[편집]

참고문헌[편집]

각주[편집]

  1. 김부식 (1145). 〈본기 권27 법왕〉. 《삼국사기》. 法王 諱宣 或云孝順 惠王之長子 惠王薨 子宣繼位 隋書以宣爲昌王之子 (법왕(法王)은 이름이 선(宣)<혹은 효순(孝順)이라고도 하였다.>이고 혜왕의 맏아들이다. 혜왕이 죽자 아들 선이 왕위를 이었다. <수서(隋書)에는 선을 창왕(昌王)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2. 김부식 (1145). 〈본기 권27 법왕〉. 《삼국사기》. 冬十二月 下令禁殺生 收民家所養鷹鷂放之 漁獵之具焚之 (겨울 12월에 명령을 내려 살생을 금지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거두어 놓아주게 하였으며, 고기 잡고 사냥하는 도구들을 태워버리게 하였다.) 
  3. 김부식 (1145). 〈본기 권27 법왕〉. 《삼국사기》. 二年 春正月 創王興寺 度僧三十人 ... 夏五月 薨 上諡曰法 (2년(600) ... 여름 5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올려 법(法)이라 하였다.) 
전 대
혜왕
제29대 백제 국왕
599년 - 600년
후 대
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