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토쿠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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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토쿠 천황
仁徳 天皇
Toyohara Chikanobu Emperor Nintoku.jpg
제16대 일본 천황
재위 313년–399년
전임자 오진 천황
후임자 리추 천황
별칭
시호 한풍: 닌토쿠 (仁徳)
화풍: 오오사자키노 미코토 (大鷦鷯尊)
능호 모즈노미미하라노나카 능 (百舌鳥耳原中陵)
신상정보
출생일 257년
사망일 399년
왕조 야마토 왕조
부친 오진 천황
모친 나카쓰히메노 미코토
배우자 이와노히메노 미코토
야타노 히메미코
다이센 고분 오사카의 닌토쿠 천황의 무덤

닌토쿠 천황(일본어: 仁徳天皇, 인덕 천황, 257년? ~ 399년 2월 7일?)은 일본의 제16대 천황(재위 : 313년 2월 14일? ~ 399년 2월 7일?)이다. 이름은 오호사자키노미코토(大雀命, 大鷦鷯尊)이며,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오호사자키노스메라미코토(大鷦鷯天皇), 성제(聖帝)로 나와 있고, 만요슈(万葉集)에는 난파천황(難波天皇)으로 나와 있다. 오진 천황의 네 번째 아들로, 리추 천황, 한제이 천황, 인교 천황의 아버지이다.

치세[편집]

일본서기에 따르면 닌토쿠 일왕은 313년부터 399년까지 왜를 통치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사학자들 대부분은 이러한 연대가 부정확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서기에 나와있는 닌토쿠 일왕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가와치 평야에 홍수를 막기 위해 '난바노호리에'라는 제방을 건설하였다. 이것은 일본 최초의 대규모 토목 공사로 생각된다.
  • 황실이 직접 관할하는 둔전(茨田屯倉)이 성립되었다.
  • 요코노 제방을 건설하였다. (오늘날의 오사카 시 이쿠노 구)

다이센 고분[편집]

오사카 부 사카이 시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큰 고분인 다이센 고분은 닌토쿠 천황의 무덤으로 여겨진다. 닌토쿠 천황의 부인인 이와노히메 황후의 무덤은 나라 시의 사키 정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두 고분의 특징은 열쇠구멍 모양을 하고 있으며 물로 채워진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천황의 무덤은 황실과 관련된 업무를 관할하는 궁내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궁내청에 따르면 천황의 무덤은 단순히 역사적인 유물이 묻힌 장소가 아니라 신성한 종교적 장소이다. 궁내청은 각각의 무덤들을 조상들의 영혼을 위한 성역으로서 해석하고 있다.

가족 관계[편집]

  • 부친 : 일본 제15대 오진 천황(應神倭王, 201~310)
  • 모친 : 나카츠히메노미코토(仲姬命)
    • 왕후 : 이와노히메노미코토(磐之媛命)[1]
    • 왕후 : 야타노히메미코(矢田王女) - 오진 천황과 왕비 미야누시야카히메의 왕녀, 황후인 이와노히메노미코토가 죽은 뒤 왕후가 됨.
    • 왕비 : 히무카노카미나가히메(日向?長媛)
      • 아들 : 오오쿠사카노미코(大草香王子, ?~454)
      • 딸 : 쿠사카노하타비노히메미코(草香幡梭王女) - 일본 제21대 유랴쿠 천황의 왕후
    • 왕비 : 우지노와키이라츠메(宇遅之若郎女) - 오진 천황의 왕녀
    • 왕비 : 쿠로히메(黒日売)

각주[편집]

  1. 그녀는 질투심이 심해 342년 그녀가 쿠마노에 놀러간 사이에 닌토쿠왜왕이 야타노히메미코(矢田皇女)를 입궁시킨 일에 격노해, 다른 궁으로 이거하였고, 그곳에서 죽었음.
  2. 형인 리추 왜왕의 약혼자 쿠로히메를 왜왕의 이름을 빌려 범함. 일의 발각을 두려워하여 리추 왜왕의 궁전을 포위하여 불태워 죽이려했으나 실패. 리추 왜왕에게 명받은 한제이 왜왕에 의해 살해됨.
전 임
오진 천황
제16대 일본 천황
313년 2월 14일? ~ 399년 2월 7일?
후 임
리추 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