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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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 초상 (국보 제111호)

안향(安珦, 1243년 ~ 1306년)은 고려의 명신(名臣)·학자이다. 초명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1] 본관은 순흥,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조선 문종 이후에는 문종의 휘인 향(珦)을 피해(피휘) 향(向)으로 적기도 했으며 초명을 따라 안유(安裕)로 불리기도 했다.

생애[편집]

흥주(興州 :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순흥 안씨의 관향) 출생으로, 아버지는 원래 흥주의 관리였으나 의술(醫術)로 출세하여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다.

1270년 (원종 11) 삼별초의 난강화(江華)에서 적중에 억류되니 학문으로 친교를 맺은 김관(金管)은 온갖 지혜를 다해 구출하므로, 왕이 감동하여 김관(金管)에게 상을 내렸다.

1286년(충렬왕 12)에 정동행성의 좌우사 낭중(左右司郎中)과 고려 유학제거(儒學提擧)가 되었으며, 같은 해 왕을 따라 김관(金管)과 함께 원나라에 건너갔다. 연경(燕京)에서 처음으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보고 기뻐하여 유학(儒學)의 정통(正統)이라 하여 손수 그 책을 베껴 쓰고, 또 공자(孔子)와 주자(朱子)의 화상(畵像)을 그려 가지고 돌아와서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였다.

또 학교가 날로 쇠퇴하여 감을 우려하여 유학의 진흥을 위하여, 장학기금으로서 6품 이상은 각각 은(銀) 1근씩, 7품 이하는 포(布)를 내게 하여 이를 양현고(養賢庫)에 귀속시키고 그 이자로써 학교를 운영케 하는 한편 박사(博士) 김문정(金文鼎) 등을 원나라에 보내어 공자와 그 제자들의 초상을 그리고, 제기(祭器)·악기와 경서(經書) 등을 구해 오게 하는 등 고려 말기의 유학 진흥에 큰 공적을 남겼다.

주자를 숭배하여 그의 초상을 항상 벽에 걸어 두고, 주자의 호(號)인 회암(晦庵)의 회(晦)자를 따서 스스로 호를 회헌(晦軒)이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이것은 주자의 저서를 보고 거기에 심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통 그를 한국에 맨 처음 주자학을 받아들인 최초의 주자학자(朱子學者)라 보고 있다. 묘는 장단(현 장풍군) 대덕산(大德山)에 있다.

기타[편집]

  • 초상화

죽은 지 12년째 되는 1318년(충숙왕 5)에는 왕이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궁중에서 일하던 원나라 화가에 명하여 그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다. 이 초상화는 현재 소수서원에 보관되어 있는데 고려 때 그린 것으로 이제현의 초상화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그림의 하나로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1962년 12월 20일 국보 111호로 지정되었다.

  • 서원

조선 중종 때 풍기 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이 순흥 백운동(順興白雲洞)에 안향의 사묘(祠廟)를 세우고 서원(書院)을 만드니, 이 백운동서원이 한국 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 성균관과 반촌

또한 자신이 거느린 노비를 개성 성균관에 보내어 성균관 유생을 돕게 하였고, 이것이 한양 성균관에까지 이어져 조선 시대의 반촌을 형성하게 하였다.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안향 - 한국학중앙연구원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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