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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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본염채몽유도원도
(絹本淡彩夢遊桃源図)
대한민국 대한민국중요문화재
종목 중요문화재 제1152호
(1939년 5월 27일 지정)
시대 조선 시대(1447년)
소유 학교법인 덴리 대학
위치
몽유도원도 (일본)
몽유도원도
주소 일본 나라 현 덴리 시 소마노우치쵸 1050 덴리 대학 부속 덴리 도서관
좌표 북위 34° 35′ 40.9″ 동경 135° 50′ 46.6″ / 북위 34.594694° 동경 135.846278° / 34.594694; 135.846278좌표: 북위 34° 35′ 40.9″ 동경 135° 50′ 46.6″ / 북위 34.594694° 동경 135.846278° / 34.594694; 135.846278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조선 초기 세종에 조선의 화가 안견(安堅)이 세종의 셋째 왕자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3일 만에 그린 산수화로서, 안견의 그림, 안평대군의 글씨, 그리고 집현전 문사들의 서예와 시, 문장이 세심히 어우러진 서화합벽(書畵合璧) 작품이다. 세종대에는 안평대군 이용을 중심으로 종합예술품인 서화합벽이 다수 만들어졌는데, 온전히 남아 전해지는 작품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1]

세종문종 때의 화가인 안견은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 작품은 명실상부 조선 산수화의 대가 안견의 의심할 여지 없는 유일한 진작이다. 이 그림에는 안견의 독창성이 잘 나타나 있다고 평가받는다. 1447년에 그려졌고, 비단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려졌다.

개요[편집]

신숙주의 찬시 (1447년)

세로 38.7 cm, 가로 106.5cm의 크기이다. 세종의 셋째아들이 꾼 무릉도원에 대한 꿈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도연명의 《도화원기》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통의 두루마리 그림과는 다르게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왼편 하단부에는 현실세계, 나머지 오른쪽 부분은 꿈속 세계를 표현하였다. 복숭아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절벽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대조적인 분위기이지만 통일감이 있고 조화롭게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중국 화풍인 이곽파 화풍을 이용해 그렸는데, 부감법을 이용해 그림 공간처리나 높이에 따른 대조, 운두준법, 세형침수, 조광효과의 표현 등에서 이곽파 화풍의 영향이 잘 나타난다.

그림 양쪽으로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1수가 적혀있고,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등의 당대 20여명의 찬문이 있는데 모두 친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사는 물론 서예사로써 큰 가치가 있고, 한국 산수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덴리 대학 부속 덴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어떤 경로로, 어떻게 반출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제4진으로 조선에 출병한 시마즈 요시히로경기도 고양현에 있는 절 대자암(大慈庵)에서 이 그림을 약탈해 일본의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추정만 할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몽유도원도를 소장했던 일본소장가 중에서 도진구징(島津久徵)의 생애나 활동을 미루어 볼 때, 1893년 이전에 이미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이 추정되고 있으며, 1955년경부터 덴리 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학계에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나 이 작품의 가치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사실상 약탈당한 문화재라고 추정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증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09년 9월 29일, 몽유도원도는 2009년 11월 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여민해락(與民 偕樂)'을 통해 1996년 호암미술관의 '조선 전기 국보전' 이후 13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전시되었다. 단, 본 전시와는 별도로 10월 7일까지만 일반에 공개되었다.[2]

갤러리[편집]

안견 <몽유도원도> (1447년), 한국의 중요문화재, 덴리 대학 부속 덴리 도서관 소장

각주[편집]

  1. 정윤회. “〈몽유도원도〉 권축과 세종대 서화합벽 연구”. 
  2. “안견 '몽유도원도' 13년 만에 고국으로”. 아시아경제. 2009년 9월 24일. 2009년 9월 24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