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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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Wolfgang-amadeus-mozart 1.jpg
모차르트의 1770년대 초상화
기본 정보
예명 음악의 신동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움.
출생 1756년 1월 27일(1756-01-27)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기 합스부르크 군주국 잘츠부르크
사망 1791년 12월 5일 (35세)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기 합스부르크 군주국
국적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기 합스부르크 군주국
직업 작곡가
장르 서양 고전 음악
악기 피아노, 하프시코드, 바이올린 등
활동 시기 1761년 ~ 1791년
배우자 콘스탄체 모차르트
가족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장남 카를 토마스 모차르트
차남 프란츠 크사퍼 볼프강 모차르트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
모차르트의 친필 사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독일어: Wolfgang Amadeus Mozart, 문화어: 월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년 1월 27일~1791년 12월 5일)는 오스트리아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궁정 음악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서 작곡하는 법 및 지휘를 배웠다. 35년의 생애 동안 그는 수많은 교향곡과 오페라, 소나타를 작곡했으며,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 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널리 존경받고 있다.

생애[편집]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에 가톨릭의 성당에서 받은 세례명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우올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자르트(라틴어: 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us Mozart)였다. 흔히 알려진 중간성명인 아마데우스(독일어: Amadeus)는 세례명에 있는 중간성명인 라틴어 테오필루스(Theophilus)를 같은 뜻의 독일어로 바꾼 것이다.

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이었는데, 볼프강의 누나인 난네를을 어려서부터 가르쳤고, 이를 볼프강은 지켜보았다. 세 살 때부터 볼프강은 누나를 보고, 스스로 건반을 다루고 연주하는 법을 터득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어린 아들의 재주를 보았고, 아들의 음악적 재능이 뚜렷이 빛을 발하게 되면서 작곡을 그만두었고 볼프강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매우 뛰어났다. 난네를의 뮤직북에 쓰여진 레오폴트의 기록에 따르면 어린 볼프강은 네 살 때 여러 곡을 배웠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능력은 빠르게 발달하여, 다섯살 때 이미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믿지 못하여 일부러 모차르트의 집에 찾아와서 모차르트를 시험해 보았다.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가 모차르트의 곡을 써주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 사람들에게 뛰어난 작곡 실력과 재능을 보였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모차르트를 믿기 시작하였다. 그후 아버지 레오폴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 아들을 보내 작곡하는 법에 대한 기예를 더 배우게 했다.

1777년 모차르트는 어머니와 함께 뮌헨, 만하임, 파리를 여행하면서 많은 음악가를 만났는데, 그 가운데 1764년에서 1765년 사이 런던에서 만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바흐에게서 처음으로 교향곡을 작곡하는법을 배웠으며 이러한 토대로 모차르트는 사후까지 수많은 걸작의 교향곡을 남기는 중요한 계기가된다.

베토벤과의 만남[편집]

또한 모차르트는 에서 생활하던 1784년루트비히 판 베토벤과도 만났다. 그는 어려운 집안사정에도 자신을 찾아온 베토벤을 반갑게 맞이하였는데, 이때 베토벤의 나이는 불과 14세였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이 자신의 곡을 즉흥적으로 또다른 작품으로 훌륭히 소화하자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교육비를 일절 거절하고 베토벤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어머니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모차르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빈을 갑작스럽게 떠났다. 만난 지 불과 1달만의 일로 이것이 두 거장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베토벤이 다시 에 찾아온 건 1792년으로 그때는 모차르트가 죽은지 1년이 지난 뒤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전거는 오토 얀이 저술한 모차르트의 전기가 유일하다. 따라서 오늘날은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만났다는 일화에 대한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죽음[편집]

모차르트의 초상화. Johann Nepomuk della Croce의 1780년 경 작품.

모차르트의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해서는 수많은 전설을 비롯하여 학설이 많다. 낭만적인 주장으로는 모차르트의 건강이 점점 약해지면서 그의 모습과 작품 역시 다가오는 죽음과 함께 쇠퇴하였다는 것이 있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가 그에게 성공적이었으며, 그의 죽음이 가족들에게 충격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의 죽음이 급작스러웠다고 주장한다.

그의 죽음의 원인 또한 추측이 무성하다. 기록에는 그가 "무수히 난 좁쌀만한 발열"("hitziges Frieselfieber")로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현대 의학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사인에 대한 학설 중에는 선모충병, 중독, 류머티스열, 덜 익힌 돼지고기에 의한 식중독 등이 있다. 환자의 피를 뽑았던 당시의 의술도 모차르트의 죽음을 앞당기는 데에 이바지했다고 본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 5일 오전 0시 55분경에 죽었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한 작품 레퀴엠의 완성을 여러 제자에게 맡겼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하다가 결국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가 완성했다.

모차르트가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와 다르게 그는 나름 만족할 만한 수입이 있었고 프라하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꾸준한 작곡 의뢰를 받았다. 그가 말년에 전성기 때만큼의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으며 돈을 꿔 달라고 쓴 편지가 있지만, 이는 그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번 돈보다 더 많이 썼기 때문이었다. 그 실례로 모차르트가 입은 옷은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이었다. 모차르트는 빈 외곽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묻혔다. New Groove에 따르면 그가 여러 사람과 함께 묻힌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당시 빈 중산층의 장례 풍습대로였다. 그것은 잘 정비된 묘지였으며 나무로 된 것이었으나 묘비도 있었다. 묘비가 나무였던 것 또한 당시 빈 중산층의 장례 풍습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 당시 빈에서는 화려한 장례가 엄격히 금지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장례식 날 비가 오고 천둥이 쳤다고 하나 New Groove에 따르면 사실은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이었다고 한다. 현재 모차르트의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것은 성 마르크스 묘지가 더 많은 묘지를 수용하기 위해 이장을 거듭하였기 때문이지 아무렇게나 묻었기 때문은 아니다.

콘스탄체 모차르트는 남편이 죽은 후 추모 음악회, 미발표 작품의 출판 등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하였다. 1809년 그녀는 덴마크 출신 외교관이었던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Georg Nikolaus von Nissen)과 재혼했다. 그들은 덴마크로 이주했다가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여생을 마감했다. 콘스탄체와 새 남편은 모두 모차르트에 대한 전기를 남겼다.

음악[편집]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여러 장르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특히 오페라, 피아노 협주곡, 교향곡, 그리고 현악 사중주현악 오중주 작품들이 유명하다. 모차르트는 또 피아노 솔로와, 여러 형태의 실내악, 미사곡 및 여러 종교 음악, 무곡들, 디베르티멘토 등도 작곡했다.

  • "K." 쾨헬 번호/교향곡(1번-41번), 피아노 협주곡(1번-27번, 일부 초기 작품은 제외

교향곡[편집]

모차르트는 1764년부터 1788년까지 24년의 기간 동안 여러 교향곡을 작곡했다. 가장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전통적으로 알려진 41개보다 훨씬 많은 총 68곡의 완전한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마지막 세 교향곡이라고 하면 교향곡 번호 39번, 40번과 41번을 지칭한다. 일부 교향곡(K. 297, 385, 550)은 초판 이후 모차르트에 의해 수정되기도 했다.

이탈리아 서곡 형식(세악장:알레그로-안단테-알레그로) 일부만 미뉴에트 포함

  • 교향곡 1번 E flat 장조, K. 16
  • 교향곡 2번 B flat 장조, K. 17
  • 교향곡 3번 E flat 장조, K. 18
  • 교향곡 4번 D 장조, K. 19
  • 교향곡 5번 B flat 장조, K. 22
  • 교향곡 6번 F 장조, K. 43
  • 교향곡 7번 D 장조, K. 45
  • 교향곡 8번 D 장조, K. 48
  • 교향곡 9번 C 장조, K. 73 (1773)
  • 교향곡 10번 G 장조, K. 74
  • 교향곡 11번 D 장조, K. 95
  • 교향곡 12번 G 장조, K. 110
  • 교향곡 13번 F 장조, K. 112
  • 교향곡 14번 A 장조, K. 114

잘츠부르크 시기의 교향곡 (1772년-1781년)[편집]

이 교향곡들은 보통 "초기"(1772년-1773년)나 "후기"(1773년-1775년)교향곡으로 나뉘거나, 가끔은 "독일식"(미뉴에트를 포함) 또는 "이탈리아식"(미뉴에트 없음)으로 나뉜다. 이 곡들은 모차르트의 생전에 출판된 적이 없다.

이탈리아 서곡 형식의 세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 디베르티멘토 세 작품(K. 136-138)들은 비록 "교향곡"은 아니지만 "잘츠부르크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같은 g 단조인 40번 교향곡에 비교해서 "작은 g 단조 교향곡"으로도 불린다.

후기 교향곡 (1781년-1791년)[편집]

모차르트는 그의 능력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1778년파리에 도착한다. 비록 그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그는 소위 "파리 교향곡"을 작곡하게 된다.
모차르트가 결국 빈으로 이사한 후에 작곡한 곡이다. 원래는 하프너 家("하프너 세레나데, K.249"를 의뢰했었음)를 위한 세레나데로 쓰여진 곡이었다. 미뉴에트와 마치 한 악장을 뺌으로서 교향곡 형식으로 만들었다.
모차르트가 린츠에 방문했을 때 작곡한 곡이다.
오랫동안 모차르트 교향곡으로 분류되어 왔으나, 후대의 학자들은 이 곡이 실제로는 미하엘 하이든이 작곡했고, 모차르트는 서주부만 작곡한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이 곡은 미하엘 하이든 교향곡 25번으로 분류된다.
프라하에서의 행복한 시절을 보낸 후 에서 작곡한 곡이다. 이전의 모차르트 교향곡보다 개념적으로 진보했으며,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다.
40번과 41번 교향곡과 더불어 "후기 3대 교향곡"으로 불린다. 이 세 교향곡은 모차르트의 생전에 출판되지는 못했었지만, 하나의 작품(opus)으로 출판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가운데 한 곡 또는 그 이상이 1789년 라이프치크에서 연주되었을 것이다. 세 곡 가운데 이 39번 교향곡이 가장 덜 알려졌고, 덜 연주된다.
같은 g 단조인 25번 교향곡에 비교해서 "큰 g 단조 교향곡"으로도 불린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이다. 두 번째 개정판에서 클라리넷이 추가되는 등, 관악기의 우아한 편성이 주목된다. 모차르트가 10살 때 작곡했다고 하지만 가짜일 수 있는 교향곡 a 단조 "Odense"(K.16a)를 제외하면 25번 교향곡과 이 40번 교향곡만이 모차르트가 작곡한 단조 교향곡의 전부이다.
첫 번째 악장에서의 트럼펫팀파니의 두드러진 사용이 특징이다. 마지막 악장의 네 음표로 이뤄진 동기는 모차르트에 의해 자주 사용되었다. 마지막 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따라 다섯개의 기본적인 주제가 대위법으로 전개되는 "코다"로 마무리된다. "쥬피터"라는 별칭은 모차르트가 붙인 것이 아니며 영국의 요한 페터 살로몬이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협주곡[편집]

모차르트는 여러 악기들을 위한 많은 협주곡들을 작곡했다.

피아노 협주곡[편집]

바이올린 협주곡[편집]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비록 모차르트가 후대의 다른 음악가들(베토벤이나 브람스 등)만큼 바이올린의 가능성을 모두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악기의 표현적이고 기교적인 특성을 기술적으로 잘 사용한 점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들의 특징이다. 다섯 곡 모두 모차르트가 아버지를 따라서 유럽을 여행하던 십대 후반 시절에 작곡한 것들이다. (알프레드 아인스타인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이름붙은 작품들보다도 세레나데의 바이올린 협주곡같은 부분들이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한다.)

호른 협주곡[편집]

호른 협주곡은 호른 주자와 오케스트라간의 세련되고 유머스러운 대화가 특징이다. 많은 호른 협주곡의 서명에는 헌정 대상에 대한 농담이 들어 있다.

두 번째 악장은 모차르트의 사후에 그의 제자인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 외의 협주곡[편집]

사뭇 다른 두 악기의 조화는 매우 독창적이다.
플룻 협주곡으로 알려져 왔지만, 원래는 거의 확실하게 오보에 협주곡이다.
비올라 부분이 특히 뛰어나다.
모차르트의 곡인지 아직까지 불분명(그의 서명이 없음)하다.
모차르트 말년의 작품 중의 하나로, 모짜르트가 클라리넷을 위해 작곡한 3곡중 하나이다. 특히 2악장은 모짜르트 작품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꼽히는 명곡이다.

신포니아 콘체르탄테[편집]

피아노 솔로곡[편집]

모차르트의 초년 시기의 작곡 시도는 피아노 소나타와 그 밖의 피아노 곡들로 시작되는데, 이는 그가 음악을 배우면서 사용한 악기가 피아노였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피아노 곡들은 모차르트 스스로(또는 능숙한 피아노 연주자였던 그의 누나)가 연주하기 위해 작곡하였다.

1782년부터 1786년까지 그는 소나타, 변주곡, 환상곡, 모음곡, 푸가, 론도 등을 포함해 20곡의 솔로 및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을 작곡했다.

  1. 안단테 C 장조, K. 1a
  2. 알레그로 C 장조, K. 1b
  3. 알레그로 F 장조, K. 1c
  4. 미뉴에트 F 장조, K. 1d
  5. 미뉴에트 G 장조, K. 1e
  6. 미뉴에트 C 장조, K. 1f
  7. 미뉴에트 F 장조, K. 2
  8. 알레그로 B flat 장조, K. 3
  9. 미뉴에트 F 장조, K. 4
  10. 미뉴에트 F 장조, K. 5
  11. 알레그로 C 장조, K. 5a
  12. 안단테 B flat 장조, K. 5b

실내악[편집]

바이올린 곡[편집]

모차르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곡들(16곡의 소나타와 여러 단편곡, 그리고 두 개의 변주곡모음)도 작곡했는데, 특히 성년 시기에 작곡한 곡들에서 피아노는 그저 다른 독주 악기의 보조에 머무르지 않고 대화를 만들어 간다.

  • 두 대의 바이올린이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현악 이중주

현악 사중주[편집]

이 시기의 작품(세 악장으로 구성)들은 이후의 보다 완전한 사중주 작품들의 전조격에 해당한다.
더 발전된 양식의 작품들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빈에서 모차르트는 요제프 하이든의 사중주 작품 Op. 17과 Op. 20을 듣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는 아래의 작품들에서 그를 따라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은 하이든에는 미치지 못한다.
모차르트는 빈으로 돌아오고 하이든을 개인적으로 만나 그와 친분을 맺은 뒤인 1780년대 초기에 다시 사중주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하이든이 당시 작곡했던 여섯 개의 사중주 곡들(Op. 33)은 모차르트가 다시 사중주 곡들을 쓰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의 사중주 곡들은 종종 사중주 장르의 정점에 놓여 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프로이센 사중주와 더불어 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에 의해 출판되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마지막 세 사중주 곡들은 프로이센의 왕인 프레드리히 2세를 위해 헌정되었으며, (왕이 직접 연주한 악기인) 첼로 파트의 칸타빌레적인 특징과 부드러운 선율, 여러 악기들간의 조화로 주목받는다.

현악 오중주[편집]

두 대의 바이올린, 두 대의 비올라 그리고 첼로를 위한 모차르트의 현악 오중주 곡들(K. 174, 406, 515, 516, 593, 614)은 그 수는 비록 사중주보다 적지만 그 가운데에는 사중주곡보다 더욱 뛰어난 평가를 받는 곡들도 있다.

  • 현악 오중주 B-flat 장조, K. 174
  • 현악 오중주 C 장조, K. 515
이 작품으로부터 교향곡 41번("쥬피터")의 웅장함이 유래하게 된다. 이 곡의 첫 번째 악장은 모차르트의 모든 작품 가운데서 가장 긴 악장 중의 하나이며, 극한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띠는 발전부를 갖고 있다.
  • 현악 오중주 g 단조, K. 516
모차트르의 대표곡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같은 조성의 교향곡 40번과 비슷한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감성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이 환희에 찬 G 장조로 끝나는 것이 곡 전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 현악 오중주 c 단조, K. 406 (516b)
이 작품은 이전에 작곡된 관악 세레나데 "나흐트 무지크"(밤의 음악, K. 388)을 현악 오중주로 편곡한 것이다.
  • 현악 오중주 D 장조, K. 593
  • 현악 오중주 E-flat 장조, K. 614

기타 실내악곡[편집]

  • 플룻을 위한 사중주 (플룻,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K. 285, 285a, 285b, 298 (1777년-1787년)
  •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사중주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바순) K. 452 (1784년)
  • 클라리넷 오중주 K. 581 (1789년)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와 기타 작품들[편집]

기악 앙상블을 위한 작품에는 "디베르티멘토", "노투르나", "세레나데", "카사치오네", "행진곡", "무곡"과 "교향곡" 등이 포함된다. 모차르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에는 현악 앙상블을 위한 것들(초기의 디베르티멘토 K.136-138 등)과 관악 앙상블을 위한 것들, 그리고 현악과 관악의 여러 조합을 위한 것들이 있다.

"그랑 파르티타 (세레나타) K.361"는 가장 대표적인 관악기를 위한 모차르트의 곡이다. 두 대의 오보에, 두 대의 클라리넷, 두 대의 바셋 호른, 네 대의 헌팅 호른, 두 대의 바순과 더블 베이스로 연주된다.

모차르트는 "미뉴에토", "콩트르당스"와 "알망드" 등 오케스트라를 위한 많은 무곡을 작곡했다.

현악 오중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이탈리아의 "서곡" 형식으로 되어 있다.

종교 음악[편집]

미사곡[편집]

이 곡은 모차르트의 유작이며, 그의 조수였던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가 완성했다.

기타 종교 음악[편집]

성악곡[편집]

모차르트의 성악곡 모차르트의 성악곡인 미사, 오라토리오, 칸타타, 레퀴엠, 아리아, 아리에타 등을 모은 명단

K1 K6 작품 작품(한글명) 날짜 장소
21 19c Aria for Tenor, "Va, dal furor portata" 테너를 위한 아리아 "분노로 나타내라" 1765년 런던
35 35 Die Schuldigkeit des ersten Gebots 제 1계율의 책무 1767년 초 잘츠부르크
42 35a Cantata for soloists, choir & orchestraGrabmusik 칸타타 장례음악 1767년 잘츠부르크
49 47b Missa brevis in G 짧은 미사 G 장조 1768년 10월 ~ 11월
65 61a Missa brevis in D minor 짧은 미사 d 단조 1769년 1월 14일 잘츠부르크
66 66 Missa in C, "Dominicus" 미사곡 C 장조 "Dominicus" 1769년 10월 잘츠부르크
77 73e Recitative and Aria for Soprano, "Misero me!...Misero pargoletto" 소프라노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불행한 나!...가엾은 아기" 1770년 3월 밀라노
83 73p Aria for Soprano, "Se tutti i mali miei"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모든 악이 나때문이라면" 1770년 4월 ~ 5월 로마
119 382h Aria for Soprano, "Der Liebe himmlisches Gefuhl"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사랑스런 봄이 벌써 활짝 웃네" 1782년 이전 빈?
139 47a Missa solemnis in C minor, "Waisenhaus" 장엄미사 c 단조 "Waisenhaus" 1768년 가을
140 Anh. C1.12 Missa brevis in G 짧은 미사 G 장조 1773년 이전 잘츠부르크?
152 210a Song for voice & piano (spurious, by Myslivecek) "Ridente la calma" 성악과 피아노를 위한 노래 "고요함은 미소짓고" 1775년
165 158a Motet in F for Soprano, "Exsultate, jubilate" 소프라노를 위한 모테트 F 장조 "환호하라, 기뻐하라" 1773년 1월 밀라노
167 167 Missa in C, "Trinitatis" 미사 C 장조 "Trinitatis" 1773년 6월 잘츠부르크
192 186f Missa brevis in F' 짧은 미사 B 장조 1774년 6월 24일 잘츠부르크
194 186h Missa brevis in D' 짧은 미사 D 장조 1774년 8월 8일 잘츠부르크
209 209 Aria for Tenor, "Si mostra la sorte" 테너를 위한 아리아 "운명이 보여주도다" 1775년 5월 19일 잘츠부르크
217 217 Aria for Soprano, "Voi avete un cor fedele"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당신은 충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1775년 10월 26일 잘츠부르크
220 196b Missa brevis in C, "Spatzen"' 짧은 미사 C 장조 "Spatzen"' 1775년 ~ 1776년  
255 255 Recitative and Aria for Alto, "Ombra felice" 알토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평화의 그림자" 1776년 9월 잘츠부르크
257 257 Missa in C, "Credo" 미사 C 장조 "Credo" 1776년 11월 잘츠부르크
258 258 Missa brevis in C, "Spaur"' 짧은 미사 C 장조 "Spaur" 1775년 12월 잘츠부르크
259 259 Missa brevis in C, "Organ Solo"' 짧은 미사 C 장조 "Organ Solo"' 1775년 12월 또는 1776년 잘츠부르크
262 246a Missa longa in C' 롱가 미사 C 장조 1775년 6월 또는 7월 잘츠부르크
272 272 Recitative and Aria for Soprano, "Ah, lo previdi, Ah! T'invola agl'occhi miei" 소프라노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제 예상대로군요. 내 눈 앞에서 사라지세요" 1777년 8월 잘츠부르크
275 272b Missa brevis in B flat 짧은 미사 B flat 장조 1777년 말 잘츠부르크
276 321b Regina Coeli in C 천국의 여왕 C 장조 1779년 이전 잘츠부르크?
294 294 Recitative and Aria for Soprano, "Alcandro, lo confesso" 소프라노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나는 모르네 이 따뜻한 애정이 어디서 오는지" 1778년 2월 24일 만하임
295 295 Aria for Tenor, "Se al labbro mio non credi" 테너를 위한 아리아 "그대 만약 나의 입술을 믿지 못한다면" 1778년 2월 27일 만하임
  295a Recitative and Aria for Soprano, "Basta, vincesti ... Ah, non lasciarmi" 소프라노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그만, 당신이 이겼어요...아, 저를 떠나지 마세요" 1778년 2월 27일 만하임
307 284d Arietta in C, "Oiseaux, si tous les ans" 아리에타 C 장조 "새들아, 만약 해마다" 1777년 겨울 ~ 1778년 만하임
308 295b Arietta, "Dans un bois solitaire" 아리에타 "숲 속에서" 1777년 겨울 ~ 1778년 만하임
316 300b Recitative and Aria for Soprano, "Popoli di Tessaglia" 소프라노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테살리아의 사람들이여! 나는 영원의 신에게 요청하지 않으리" 1778년 7월 파리
317 317 Missa in C, "Coronation" 미사 C 장조 "대관식" 1779년 3월 23일 잘츠부르크
321 321 Vesperae de Dominica in C 주일의 저녁기도 C 장조 1779년 잘츠부르크
337 337 Missa solemnis in C 장엄미사 C 장조 1780년 3월 잘츠부르크
339 339 "Laudate Dominum" from Vesperae solennes de confessore in C "주님을 찬미하라", 구도자를 위한 기도 中 5번 1780년 잘츠부르크
341 368a Kyrie in D minor 기도 음악 d 단조 1780년 11월 이전 ~ 1781년 3월 뮌헨?
349 367a Song, Die Zufriedenheit 노래 만족 1780년 겨울 ~ 1781년 뮌헨
351 367b Song, "Komm, liebe Zither" 노래 "오라, 사랑하는 지터" 1780년 겨울 ~ 1781년 뮌헨
368 368 Recitative and Aria for Soprano, "Ma che vi fece...Sperai vicino il lido" 소프라노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별들아, 가엾은 데르체아 사람들에게 무엇을 했느냐...근처 바닷가에서 빌었다" 1779년 ~ 1780년 잘츠부르크
374 374 Recitative and Aria for Soprano, "A questo seno deh vieni" 소프라노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사랑하는 이여, 이 가슴으로 오세요" 1781년 4월
383 383 Aria for Soprano, "Nehmt meinen Dank, ihr holden Gonner!"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친절한 은인이여, 나의 감사를 받아주오" 1782년 4월 10일
391 340b Song, An die Einsamkeit (Sei du mein Trost) 노래 고독 (당신은 나의 위로) 1781년 ~ 1782년
416 416 Scena and Rondo for Soprano, "Mia speranza adorata...Ah, non sai qual pena" 소프라노를 위한 독창곡과 론도 "나의 사랑스런 희망..아, 당신은 그 고통을 몰라요" 1783년 1월 8일
418 418 Aria for Soprano, "Vorrei spiegarvi, oh Dio"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오 신이여, 제 얘기를 들어 보소서" 1783년 6월 20일
419 419 Aria for Soprano, "No, no, che non sei capace"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아니오,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1783년 6월
420 420 Aria for Tenor, "Per pieta, non ricercate" 테너를 위한 아리아 "자비의 이름으로 나를 찾지마오" 1783년 6월 21일
427 417a Missa in C minor "Great Missa" 미사 C 단조 "대미사" 1782년 6월 ~ 1783년 10월
431 425b Recitative and Aria for Tenor, "Misero! O Sogno...aura Che Intorni Spiri" 테너를 위한 레차타티보와 아리아 "불행한 나! 꿈인가, 생시 이런가" 1783년 12월 빈?
433 416c Aria for bass & orchestra "Warnung: Männer suchen stets zu naschen" 베이스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리아 "경고: 남자들은 한눈팔기를 좋아해" 1783 빈?
436 436 Notturno for Two Sopranos and Bass, "Ecco quel fiero" 두 명의 소프라노와 베이스를 위한 노투르노 "작별" 1783년 이전 ~ 1786년 빈?
469 469 Oratorio Davidde penitente 오라토리오 다윗의 회개 1785년 3월
472 472 Song, Der Zauberer 노래 마법사 1785년 5월 7일
473 473 Song, Die Zufriedenheit 노래 만족 1785년 5월 7일
476 476 Song, Das Veilchen 노래 제비꽃 1785년 6월 8일
505 505 Scena and Rondo for Soprano, "Ch'io mi scordi di te?...Non temer, amato bene," 소프라노를 위한 독창곡과 론도 "어찌 그대를 잊으리... 두려워 말아요, 사랑하는 이여" 1786년 12월 26일
517 517 Song, Die Alte 노래 노파 1787년 5월 18일
519 519 Song, Das Lied der Trennung 노래 이별의 노래 1787년 5월 23일
520 520 Song, Als Luise die Briefe 노래 루이제가 불성실한 애인의 편지를 태웠을 때 1787년 5월 25일
523 523 Song, Abendempfindung an Laura 노래 라우라에게 부치는 저녁의 추억 1787년 6월 24일
528 528 Scena for Soprano, "Bella mia fiamma" 소프라노를 위한 독창곡 "내 사랑이여, 안녕!" 1787년 11월 3일 프라하
530 530 Song, Das Traumbild 노래 1787년 11월 6일 프라하
539 539 Song, Ein deutsches Kriegslied 노래 나도 황제가 되면 좋겠네 1788년 3월 5일
549 549 Canzonetta for two Sopranos and Bass, "Piu non si trovano" 두 명의 소프라노와 베이스를 위한 칸초네타 "누구 한 사람 찾아 볼 수 없다네" 1788년 7월 16일 빈?
577 577 Rondo for Soprano, "Al desio di chi ch'adora" 소프라노를 위한 론도 "Al desio di chi ch'adora" 1789년 7월
578 578 Aria for Soprano, "Alma grande e nobil core"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위대한 혼과 고상한 마음은" 1789년 8월
579 579 Aria for Soprano, "Un moto di gioia mi sento"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내 마음에 춤출듯한 환희감이" 1789년 8월
582 582 Aria for Soprano, "Chi sa, chi sa, qual sia"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누가 내 연인의 괴로움을 아는가?" 1789년 10월
583 583 Aria for Soprano, "Vado, ma dove? -- oh Dei!"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신이여, 저는 갑니다. 하지만 어디로?" 1789년 10월
596 596 Song, Sehnsucht nach dem Fruhling 노래 봄을 기다리며 1791년 1월 14일
597 597 Song, Im Frulingsanfang 노래 1791년 1월 14일
598 598 Song, Das Kinderspiel 노래 어린이 놀이 1791년 1월 14일
618 618 Motet in D, "Ave verum Corpus" 모테트 D 장조 "오, 거룩한 성체여" 1791년 6월 17일 바덴
Anh. 245 621a Aria for Bass, "Io ti lascio, o cara, addio" 베이스를 위한 아리아 "당신, 혹은 내 사랑을 떠나며, 안녕" 1791년 9월 이전 프라하?
626 626 Requiem in D minor 레퀴엠 d 단조 1791년 말

오페라[편집]

모차르트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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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처음 작곡한 오페라, 또는 종교 악극이다.
  • 《아폴로와 히야킨투스》(Apollo et Hyacinthus), K. 38 (1767년)
  •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Bastien et Bastienne), K. 50 (1768년)
  • 《보아라 바보 아가씨》(La finta semplice), K. 51 (1768년)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모차르트가 오페라 부파 요소를 처음으로 도입한 작품이다.
  • 《폰토 왕 미트리다테》(Mitridate re del Ponto), K. 87 (1770년)
최초의 이탈리아어 오페라 네 작품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알바의 아스카니오》, 《시피오네의 꿈》, 《루치오 실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들에서 기본적으로 기존의 오페라 세리아의 틀 속에서 작곡되었다.
  • 《루지에로》(Ruggiero), (1771년)
  • 《알바의 아스카니오》(Ascanio in Alba), K. 111 (1771년)
  • 《베툴리아 리베라타》(Betulia Liberata), 오라토리오, K. 118 (1771년)
유디트홀로페르네스의 주제로 작곡되었다.
  • 《시피오네의 꿈》(Il sogno di Scipione), K. 126 (1772년)
  • 《루치오 실라》(Lucio Silla), K. 135 (1772년)
  • 이집트 왕 타모스》(Thamos, König in Ägypten'), (1773년, 1775년)
  • 《가짜 여자 정원사》(La finta giardiniera), K. 196 (1774년 - 1775년)
이 작품으로 모차르트는 다시 오페라 부파 장르로 돌아온다. 대본에는 조악함이 남아 있지만, 등장 인물들은 더 이상 도식적이지 않고, 더욱 현실적인 인물로 나오며, 음악은 그들의 성격을 명확하게 해 준다.
  • 《양치기 왕》(Il rè pastore), K. 208 (1775년)
  • 《차이데》(Zaide), K. 344 (1779년)
  • 《이도메네오》(Idomeneo), K. 366 (1780년)
  • 후궁으로부터의 유괴》(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K.384 (1782년)
징슈필 장르의 작품을 처음 쓴 지 몇 년 만에 이 작품을 통해 다시 징슈필 장르로 돌아왔으며 , 나중에는 마술피리도 작곡한다.
모차르트의 유명 3대 오페라 (돈 죠반니의 경우 비극적인 요소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오페라 부파임) 중의 첫 작품이다. 피에르 보마르셰의 희극인 《피가로의 결혼》에 기초한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을 기반으로 작곡되었다.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와 함께 다 폰테의 대본을 기반으로 한 세 작품에 속한다.
엠마뉴엘 슈카데너의 대본을 기본으로 해 작곡된 이 작품은 처음의 공연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징슈필 장르를 확고히 하는 등 큰 역할을 했다. 이 작품은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받았다.

음악 듣기[편집]

모차르트가 받은 영향[편집]

모차르트의 유년기는 궁정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 레오폴트의 교육으로 클라비어에 숙달하여 유럽 각지를 일찍부터 순회연주하였다. 당시 유럽의 각지에서는 여러 가지 새로운 양식적 시도가 있었으므로 모차르트의 여행은 그러한 새로운 예술적 동향에 직접 접할 기회를 부여받고 그의 창작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처럼 그가 일찍부터 부친의 천재교육과 유럽의 연주여행에서 직접 체험하고 또한 받은 중요한 영향을 살펴보면 대강 아래와 같다.

  • 잘츠부르크 음악 - 어린 모차르트가 출생지에서 받은 영향은 그의 예술적 소질을 형성하였다. 잘츠부르크의 음악은 결코 깊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아함이 감도는 경쾌감이 특징으로서, 이 지방의 작곡가 에이베를린이나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 미하엘 하이든의 음악에 기조를 이룩하기도 했다.
  • 파리의 음악 - 1763년에서 1764년, 파리에서 알게 된 요제프 슈베르트, 에카르트(Eccard), 르그랑(Legrand)의 영향을 받아 당시 파리를 휩쓸던 우아하고 경쾌한 클라브생 음악에서 감명을 받았다.
  •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 1764-5년의 영국 체재 중, 대 바흐의 막내아들 크리스티안의 교향곡에서 배운 바가 많았다. 이시기 쳄발로 소나타로 곡을 편곡한 쳄발로 협주곡 3곡을 작곡하였다.
  • 이탈리아 음악 - 1770년의 이탈리아 여행 중, 마르티니 신부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아 엄격한 대위법 음악에 대한 흥미를 더하였다.
  • 전(前)고전파의 작곡가들 - 1773년 여름의 빈 여행에서 하이든, 바겐자일, 몬 등의 견고한 구성미의 음악에 결정적인 자극을 받아 독일 음악을 재인식하였다.
  • 갤런트 양식 - 미하엘 하이든의 우아한 작풍에 감명을 받고 모차르트의 선천적인 음악적 기질과도 어울려 우아한 표현이 개화하였다. 미하엘곡의 작품 중에는 쾨헬목록에 잘못 포함되어있는 곡도 있다.
  • 요제프 하이든 - 모차르트가 1781년 빈에 정착한 뒤부터 직접적인 교류에 의하여 한층 그 유대가 강해졌으며 그는 1782-1785년에 걸쳐 작곡한 6곡의 현악 4중주곡 <하이든 4중주곡>을 하이든에게 바쳐 감사를 표하였다.

후세에 준 영향[편집]

그는 감정과 감각이 극도로 예민하여 당시의 각종 음악 양식을 부드러운 태도로 흡수, 여기에 개성의 심오한 특성을 반영하여 독일 고전주의 음악의 정수를 표현함으로써 후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의 교향곡은 그 개성적인 창작이 베토벤에게 이어졌고, 가극은 베버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조아키노 로시니는 모차르트가 "천재성만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지식만큼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음악가"라고 말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그의 제자 페르디난드 리스에게 자신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 의 1악장의 주제만큼 대단한 선율을 생각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베토벤이 모차르트에게 보내는 경의로 쓴 작품이 있는데, 마술 피리의 주제에 의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곡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위해 쓴 카덴자 등이 그것이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을 만나고 나서 그를 칭찬한 적이 있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는 모차르트를 위해 《모차르티아나》를 썼으며, 구스타프 말러는 모차르트의 이름을 부르다 죽었다. 막스 레거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모차르트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에 의한 것이다.

쾨헬 번호[편집]

모차르트의 작품을 정리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1862년 루트비히 폰 쾨헬에 의해서였다.

쾨헬은 쾨헬 번호에 따라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정리했다.

일화[편집]

전설[편집]

모차르트는 전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작곡가이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가 남긴 레퀴엠이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는 것인데, 많은 작가들이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글을 썼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학자들의 연구에는 방해가 되는 것이다.

유명한 것은 모차르트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독을 먹여 죽였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연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피터 섀퍼의 연극 《아마데우스》의 주제로 다뤄졌다. 《아마데우스》는 영화로 만들어져 여덟 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섀퍼의 연극에서 모차르트가 천박하고 촌스럽게 그려졌다 하여 이를 거짓 과장이라 비난하였다.

다른 전설은 모차르트의 음악적 천재성에 대한 것이다. 또한 영화《아마데우스》에서 그려진 것처럼 모차르트가 영감을 받아 머릿속에서 음악을 완성한 다음 한 번도 고치지 않고 써내려갔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한번에 거침없이 작곡하는 것이 아닌 신중하고 노력하는 작곡가였으며, 그의 음악적 지식과 기법은 오랜 시간 동안 이전 시대의 음악을 연구함으로써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 그는 젊은 시절에 당대 내려오던 작품들을 분석하지 않은 게 거의 없었다 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을 했으며, 한 편에서는 '표절의 천재'라는 비아냥과 오명에 대해 평생을 싸워야 했다고 한다.

프리메이슨[편집]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784년12월 14일에 프리메이슨 '자선' 지회에 가입하였고, 후에는 장인, 마스터 메이슨까지 되었다.[1] 다만, 당시에는 프리메이슨에 가입한다는 것이 가입자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과시의 의미가 컸으므로, 친목 단체인 프리메이슨의 특성상 그리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작곡가 모차르트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한 작품[편집]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

  1. “모차르트는 왜 열렬한 프리메이슨이 되었나”. 《네이버캐스트》. 2014년 6월 17일. 2014년 6월 2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