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미누스 트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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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미누스 트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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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피톨리노 미술관의 막시미누스 트락스의 흉상 | |
지위 | |
로마 제국의 25대 황제 | |
재위 | 235년 3월 20일-238년 5월 초 |
전임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
후임 |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
이름 | |
휘 |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무스 |
존호 |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무스 아우구스투스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3년 경 |
출생지 | 트라키아 또는 모이시아 |
사망일 | 238년 5월 |
사망지 | 이탈리아 아퀼레이아 |
가문 | 세베루스 왕조 |
배우자 | 카이킬리아 파울리나 |
자녀 |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무스 |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트락스(라틴어: Gaius Iulius Verus Maximinus Thrax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트락스[*], 184년 ~ 238년)는 로마 제국의 25번째 황제(재위 235년~238년)이다. 트라키아의 농민 출신으로 라인 지방에 출정하여 공을 세웠으며,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암살되자 부하들의 지지로 마인츠에서 최초의 군인 황제로 추대되었다.
도나우 강과 라인 강 유역의 여러 부족을 정벌하였으나 원로원을 무시 내지는 외면하는 정책을 진행하다가 폐위 선언을 당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이탈리아로 진군하다가 자식들과 함께 부하들에게 피살되었다.
생애[편집]
막시미누스는 최초의 사병 출신 황제가 되었다. 트라키아 출신으로 양치기 노릇을 하다가 입대했다고 하는데 기운이 장사여서 당시 황제였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눈에 띄었다.
황제 즉위와 살해[편집]
카라칼라, 엘레가발루스 재위기에 백인대장으로 있다가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때는 라인 강 주둔 군단의 신병 훈련 책임자로서 대대장이 되었으며, 235년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암살되자 라인 강 주둔 군단에 의해 황제로 선포되었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도나우 강·라인 강 근처의 여러 게르만 부족들과 싸웠다. 이 지방에서 가도 건설 사업을 많이 벌여 이곳의 수많은 이정표에는 아직도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238년 제국의 세금 정책에 불만을 품은 아프리카 속주의 지주들이 반 막시미누스 봉기를 일으켜 세리를 죽이고 나이 많은 고르디아누스 1세를 황제로 선포하였고 곧 로마 원로원이 그를 폐위하고 공적(公敵)으로 선포하자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와 동북 이탈리아에 있는 아퀼레이아를 포위했다.
그러나 도시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몇 달 동안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 불만을 품은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 두 공동 황제를 거쳐, 고르디아누스의 손자 고르디아누스 3세가 다음 후계자가 되었다.
읽어보기[편집]
전임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
제25대 로마 제국 황제 235년 - 238년 |
후임 고르디아누스 1세 (공동 고르디아누스 2세) 푸피에누스와 발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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