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의 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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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거상
Rhodes0211.jpg
문명 그리스 문명
건립 연대 기원전 304년 ~ 기원전 292년
건립자 카레스
발굴자 ---
현 소재지 현재 파괴

로도스의 거상 혹은 크로이소스의 거상로도스에 있던 조각상이다.

배경[편집]

또 다른 가상의 로스의 거상도

기원전 16세기에는 미노스 문명의 사람들이, 그리고 기원전 15세기아카이아 인이 도래하였고, 기원전 11세기에는 도리아 인이 섬으로 왔다. 도리아 사람들은 후에 본토의 코스, 크니도스, 할리카르낫소스 이외에 린도스, 이알리소스, 카메이로스 라는 3개의 중요한 도시(이른바 도리아 헥사폴리스)를 건설했다.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소아시아에 까지 그 세력을 확대하면서 로도스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페르시아 전쟁 이후 기원전 478년에 로도스 섬의 도시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에 가입했다. 이후 기원전 431년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지만, 로도스 섬은 델로스 동맹의 일원이 있었지만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전쟁이 끝난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결과 그리스는 피폐해졌고, 그것으로 침략을 초래하게 되었다. 기원전 357년마우솔로스 왕에 의해 로도스 섬은 정복되었고, 기원전 340년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후 기원전 332년에 동정 중인 알렉산더 3세가 로도스 섬을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로부터 해방하여 자기 세력권의 일부로 삼았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마케도니아 제국은 대왕의 후계자들이었던 유력 장군들에 의해 분열되어 디아도코이 전쟁에 돌입했다. 이 전쟁에서 로도스는 이집트를 통치하고 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협력을 했다.

기원전 305년, 그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와 적대하고 있었던 안티고노스 1세는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에게 40,000명의 군대를 주어 로도스에 파견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로도스의 요새는 단단했고, 데메트리오스는 공성탑을 만들어 접근하려고 했다. 먼저 6척의 배에 공성탑을 탑재해서 보냈지만, 폭풍우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다. 데메트리오스는 헬레폴리스(Helepolis)라고 불리는 대형 공성탑을 제작하여 육상에서 로도스로 보냈다. 그러나 성내에서 출격한 로도스의 수비대가 헬레폴리스가 성벽에 도달하기 전에 막아내었다.

기원전 304년 프톨레마이오스가 파견한 군대가 로도스에 도착했기 때문에, 데메트리오스는 매우 당황하여, 서둘러 군대를 철수시켰다. 너무 갑작스럽게 철수를 했기 때문에 많은 군사 물자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데메트리오스는 로도스의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많은 도시를 포위하여, 함락시켰기 때문에 폴리오르케테스(Poliorcetes 폴리스 포위자)라고 불렸다.

건조[편집]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마틴 힘스케르크가 그린 제작 상상도

로도스 도시 국가 연합은 그들의 단일성을 축하하기 위하여 데메트리오스가 버리고 간 군수품을 팔아 모은 돈으로 기념물을 만들기로 했다. 건축물의 지휘는 린도스카레스에게 맡겨졌다. 그는 20m가 넘는 제우스 상을 건조한 경험이 있는 리시포스의 제자였다. 또한 큰 동상의 제작에 관여한 적이 있었던 로도스의 주민들도 협력했다.

고대의 설명에 의하면, 로도스의 거상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선, 로도스 항구의 입구 부근에 높이 15미터(50피트)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받침대를 설치했다. 그 받침대 위에 철제 뼈대를 만들고, 더 얖은 청동판으로 칼집을 덮었다. 외장은 데메트리오스 군이 버리고 간 무기와 공성탑을 녹여 사용했다. 건조에는 충분한 양의 경사로를 이용하여 조립이 진행됨에 따라 경사로의 높이를 조절하여 대응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동상 자체의 높이는 34m, 대좌를 포함하면 약 50m에 달했다. 후일 로도스의 거상이라고 불리게 된 이 거상이 완성된 것은 착공한 지 12년 후인 기원전 284년이었다.

(상상에 의해 만든 한 돋을새김 작품이 표현하듯이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항구 입구에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기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은 중세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소실[편집]

로도스의 거상은 56년 동안 서 있었으나, 기원전 224년 지진이 일어나 양 무릎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거대한 조각들은 바닥에 남아 있었으며 관광 명물이 되었다. 대 플리니우스1세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팔로 엄지손가락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이가 드물었으며, 손가락만 해도 대부분의 조상보다 컸다. 팔다리가 부러지자, 안쪽에서 입을 벌린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이 잔해도 결국은 부서졌으며, 그리고 결국 654년 아랍인이 로도스를 침범하여 부서진 대거상의 나머지를 분해하였으며, 그것들을 시리아의 한 부유한 유대인에게 판매함으로써 거상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후대의 삽화에 거상은 항만 입구에 두 다리로 버티고 선 모습으로 나오지만, 오늘날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세우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1]

현재의 거상[편집]

거상의 재건에 관한 논의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재건이 되면 로도스의 관광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으며, 1970년대부터 여러 번 안건이 제기되었었지만, 그 때마다 자금 부족을 이유로 포기했다.

각주[편집]

  1.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 2009.8.20, 마로니에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