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규
나운규 羅雲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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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2년 10월 17일 대한제국 함경북도 회령 |
사망 | 1937년 8월 9일 일제 강점기 경성부 | (34세)
국적 |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
다른 이름 | 호(號)는 춘사(春史) |
직업 | 영화인 영화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독립운동가 영화 기획가 영화연출가 영화 각본가 영화 편집감독 영화 각색가 |
활동 기간 | 1924년 ~ 1937년 |
학력 |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룽징 명동중학교 중퇴 |
부모 | 나형권(부) |
형제자매 | 형 2명 둘째형 나시규(연희전문학교 중퇴) 누이 3명 |
배우자 | 조정옥 |
자녀 | 나종익(장남) 나신자(딸) <bt /> 나봉한(차남) |
수상 | 199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나운규(羅雲奎, 1902년 10월 17일 ~ 1937년 8월 9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영화인이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선구자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호는 춘사(春史)이다.
생애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했으며 1920년에는 독립군 지도자 중 한 명인 홍범도 장군 산하의 부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 1924년 일본인 관리 하의 '조선 키네마사'에 연구생으로 입사하여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에 가마꾼으로 출연하였다. 《농중조》라는 작품에 출연하여 배우로서 명성을 떨쳤다. 1926년에는 무성 영화인 《아리랑》을 제작함으로써 대한민국 영화계의 선구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나운규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감독과 주연까지 겸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종로 단성사에서 상영한 이 작품은 대한민국 영화계에 큰 획을 그었다. 이후 영화계의 중심이 되어 많은 작품을 내고 대한민국 영화의 새로운 개혁을 시도하여 공헌하였다. 작품으로 《금붕어》, 《들쥐》, 《벙어리 삼룡》, 《오몽녀》 등이 있다. 1937년 8월 9일, 향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차남 나봉한도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활동했다.
그가 죽은 후 1993년 8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故 윤봉춘과 함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가족 관계
- 아버지: 나형권(羅衡權)
학력
상훈
주요 작품
- 감독
- 《아리랑》(1926년)
- 《철인도》(鐵人都, 1930년) - 《아리랑》 후편으로 제작되었다.
- 《오몽녀》(五夢女, 1936년) - 《아리랑》 3편으로, 유성영화로 제작되었다.[2]
- 《풍운아》(風雲兒, 1926년)
- 《옥녀》(玉女, 1928년)
- 《벙어리 삼룡이》(1929년)
- 《개화당 이문》(開化黨 異聞, 1932년)
- 《칠번통 소사건》(七番通 小事件, 1934년)
- 《무화과》(無花果, 1935년)
- 출연작
각주
- ↑ 강현식 기자 <아리랑> 지워지지 않는 '춘사'의 기억, 《오마이뉴스》, 2003년 5월 27일 작성
- ↑ 나운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