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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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히브리어: חזקיה , חזקיהו , Hezekiah, Ezekias, 의미:여호와는 강대하게 하심)는 남유다 왕국 13대 왕으로 25세에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하였다. 유다 왕국의 왕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이며 예언자 이사야가 그의 재위기 때 활동했다.

성전 정화[편집]

전왕 아하스의 아들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옳은 일들을 하였다. 히스기야는 맨 먼저 성전의 문들을 열고 보수하였으며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모아 성전을 정화하도록 명령하였다.

그의 명령에 따라 레위인들이 나서 크핫의 자손 아마시이의 아들 마핫과 아자르야의 아들 요엘, 므라리의 자손 압디의 아들 키스와 여할렐엘의 아들 아자르야, 게르손인들 중에서는 짐마의 아들 요아와 요아의 아들 에덴, 엘리차판의 자손에서는 시므이와 여이엘, 아삽의 자손에서는 즈카르야와 마탄나, 헤만의 자손에서는 여히엘과 시므이, 여두툰의 자손에서는 스마야와 우찌엘이 나섰다.

그들은 형제들을 모아 자신들을 거룩하게 하고 성전을 정화했으며 부정한 것들은 레위인들이 가져가다 '키드론 골짜기'에 버렸다.

여러 달 동안 거룩하게 일을 지냈고 황소 7마리와 숫양 7마리, 어린양 7마리, 그리고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한 속제 제물로 숫염소 7마리를 가져와 제물로 바치게 하였다. 또한 레위인들은 성전에 배치하고 다윗의 악기들을 들었으며 사제들을 쇠 나팔을 들고 서 온 나팔과 음악 소리를 울리게 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였다.

파스카 축제[편집]

히스기야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내고 에프라임과 므낫세에는 편지를 보내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 파스카 축제를 지내라고 명령했다.

히스키야는 브에르 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기리는 파스카 축제를 예루살렘으로 와 지낼 것을 선포하기로 결정했고 보발꾼들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돌아다니게 하여 이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보발꾼들은 즈불룬에 이르기까지 에프라임과 므낫세 지방의 성읍들을 두루 다녔으나 사람들은 이를 비웃고 놀려댔다.

다만 아세르와 므낫세와 즈불룬에서 몇몇 사람만이 자신을 낯추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둘째 달 무교절에 많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자 제단들을 치우고 분향 단들도 모두 치워 키드론 골짜기에 버렸다. 또한 파스카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봉헌했다. 그러나 주로 에프라임, 므낫세, 이사카르, 즈불룬에서 온 사람들은 율법대로 하지 않고 정결하지 못한 몸으로 파스카 양을 먹었다.

예루살렘에 모인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며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내며 하나님을 찬양했고 히스기야는 능숙한 솜씨로 레위인들을 격려해 주고 친교 제물을 바치고 축제 제물들을 나눠 먹었다. 또한 히스기야는 회중에게 황소 1000마리와 양 7000마리를 내놓고 대신들 역시 황소 1000마리와 양 1만 마리를 회중에게 내놓았다.

이렇듯 다윗의 아들 솔로몬 시대 이후 예루살렘에서 이 같은 큰 파스카 축제를 지낸 일이 없었다.

종교 개혁과 이스라엘의 멸망[편집]

이 모든 일이 끝나자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에 착수했다. 맨 먼저 우상 숭배를 금지하여 산당들을 없애고 기념 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들을 잘라버렸다. 또한 모세가 만든 구리 뱀을 조각내 버렸다. 그리고 온 유다와 베냐민과 에프라임과 므낫세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무너뜨리고 모조리 없애 버렸다.

히스기야는 조에 따라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다시 배치해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저마다 조에 따라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치고 임무를 맡았다. 모든 번제물들과 십일조를 가져와 여러 더미로 쌓아 놓아 바쳤고 각자 몫을 나누어 주어 종교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아시리아가 힘을 키워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켜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왕국의 왕 호세아 왕을 포로로 끌고 갔다.

이에 히스기야는 각 지방의 성들의 방비를 튼튼히 하고 아시리아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아시리아의 1차 침입[편집]

이후 마침내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이 쳐들어와 히스기야에게 은 300탈렌트와 금 30탈렌트를 요구하며 쳐들어왔다.

산헤립은 곧 라키스를 공격하고 휘하 장수 랍 사리스랍 사케에게 많은 병력을 주어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이에 히스기야 왕과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기도하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아시리아 군대의 모든 지휘관과 장수를 쓸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산헤립은 수치심을 안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가 자신의 친아들들에게 암살당했다.

말년[편집]

이 무렵 히스키야가 병들어 죽게 되자 하나님께 기도했고 표징을 주어 15년을 더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바벨론 대사에게 이스라엘의 부와 명예를 보여주는 우를 범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려졌다. 그러자 히스키야는 바로 교만했던 것을 뉘우쳤고 그 이후 히스키야 재위기 동안은 하나님의 진노가 닥치치 않았다.

히스키야는 대단한 부와 영광을 누려 은과 금, 보석, 향료, 작은 방패와 온갖 값진 기물들을 보관한 창고를 짓고 수확한 곡식과 포도주, 기름을 저장할 곳집, 온갖 가축 우리와 양 우리들도 지었다. 또한 기혼 샘의 위쪽 물줄기를 막아 뒤잇 성 서쪽 밑으로 돌려 끌어들이는 데에도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