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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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 id=1224820 아달랴(재위 기원전 841년경-835년경)는 분열 유다 왕국의 7대 왕이자 전왕 아하시야의 어머니로 이스라엘 유일의 여왕이다.

아달랴는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예후의 혁명으로 살해당한 것을 보고 유다 집안의 왕족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다행히 전왕 여호람의 딸이자 여호야다 사제의 아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숨겨주었다. 아달랴가 6년째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그들은 성전에 숨어지냈다.

7년째 되는 해에 여호야다 사제가 용기를 내어 백인대장 여로함의 아들 아자르야, 아타야의 아들 마아세야, 지크리의 아들 엘리사팟과 계약을 체결했고 유다 땅을 돌아다니며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레위인들과 이스라엘 가문의 우두머리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오게 했다.

그리고 여호야다 사제는 백인 대장들로 하여금 궁궐 주변을 지키게 하고 숨겨둔 왕족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게 했다. 이를 본 아달랴는 반역이라고 소리쳤으나 여호야다 사제의 명령으로 백인대장들에 의해 끌려가 '말 문' 입구에서 살해당했다.

틀:내용추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역대 왕들 가운데 유일한 여왕.

아달랴는 북 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로서 남 유다 왕국의 5대 왕이었던 여호람과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이렇듯 분단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서로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왕가끼리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간교하고 잔인한 왕비였던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는 그 어머니의 냉혈한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은 여자였다.

그녀는 야훼 하나님께 반기를 들었고 가나안의 신 바알을 섬기는 열렬한 우상 숭배자로 왕가를 이교신앙으로 물들였다.

여호람은 왕위에 오르자 여섯 형제를 살해하는 등 악행을 자행하다가 결국 선지자 엘리야의 예언대로 병들어 죽게 되었다.

아달랴의 아들들은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모두 살해당하였고 오직 막내아들인 아하시야만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였다.

여호람이 병들어 죽자 살아남은 막내아들 아하시야가 남 유다의 6대 왕이 되었고 아달랴의 섭정을 받던 아하시야는 왕위에 오른 지 1년이 채 되지도 않아 북 이스라엘 왕 요람과 동맹하여 아람(지금의 시리아 지역)을 치다가 쿠데타를 일으킨 예후에게 치명상을 입고 도망가다 살해당하였다.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권력에 한껏 굶주린 야수가 되어 요아스를 제외한 모든 손자들을 무참히 도륙하였다.

이세벨의 핏빛 광기가 유다 역사에 되살아난 듯 아달랴는 자신의 피붙이까지도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살해한 것이다.

손자들이 행여 왕위를 차지할까봐 살해한 아달랴의 이러한 잔학한 행위의 이면에는 남 유다 왕국의 정통 계보인 다윗 가문의 씨를 진멸하기 위한 정략적인 의도 또한 있었으리라.

예후의 반역으로 아달랴의 친정인 아합 가문이 몰락하였고 주변 국가인 아람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혼란한 국내외 정세에도 불구하고 아달랴는 6년 동안 다스렸으니 정치적 역량이 있는 여인으로 판단됨.

그러나 아달랴는 재위 7년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가 자행한 살해 현장에서 용케 살아남은 요아스를 성전에서 기름 붓고 면류관을 씌워 왕으로 삼았다.

백성의 무리가 즐거이 환호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자 그 소리를 듣고서 온 아달랴는 "반역이로다."고 소리쳤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결국 아달랴는 성전 바깥으로 끌려가 왕궁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민심과 천심이 이미 떠난 권력이 오래갈 수 없는 법이다. 토마스 홉스(영국의 철학자)의 말처럼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추는 끝없고 쉼없는 인간의 권력욕"의 덧없음을 아달랴의 인생 종말이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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