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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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옆구리를 꿰뚫는 창, 프라 안젤리코(1440년경)

성창(聖槍, 라틴어: Sainte Lance)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한 병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는데 예수의 피가 묻었다고 여겨지는 이다. 기독교의 성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신약성경요한 복음서 19장 34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부에선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 집필 당시 가현설 논란이 있자 예수가 죽었음을 확실히 하고자 집어넣은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중에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병사의 이름이 론지노라고 알려지면서 론지노의 창(라틴어: lance de Longin) 또는 운명의 창이라고도 불리게 된다.

성서의 언급[편집]

성창에 관해 언급한 것은 요한 복음서(19,31-37)뿐이며 다른 공관 복음서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복음서에서는 원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로마인 병사들은 그의 다리를 부러뜨릴 예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하기 전에 예수가 일찍 죽어버려 그의 다리를 부러뜨릴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가 확실하게 죽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한 로마 병사(외경에서 론지노로 나옴)가 긴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세게 찔러보았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4)

피와 물이 동시에 나온 이 현상은 오리게네스에 의해 기적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는 그에 관해 보다 깊은 의미를 둔다. 즉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교회(더 정확하게는 세례성사성체성사)가 나온 것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성창 후보들[편집]

성창 또는 성창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바티칸의 창[편집]

제1차 십자군 전투에서 성창을 앞세우는 르퓌의 아데마르(주교관을 쓴 사람).

에쉬미아드진의 창[편집]

빈의 창(호프부르크의 창)[편집]

빈의 황실보물관에 전시된 성창
성창 위 명각

기타[편집]

아서 왕 전설[편집]

아서 왕 이야기에서 아서 왕은 대마법사 멀린의 유언에 따라 모든 원탁의 기사들에게 성배와 성창을 찾으라 명했다. 그러나 성배와 성창을 찾은 기사는 퍼시발, 보호드, 개러해드 세 명 정도였고 이것은 완벽한 도덕자만이 찾을 수 있다는 성배와 성창을 모든 기사들이 찾지 못했으므로 원탁의 기사들 상당수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그 뒤 원탁은 사분오열되어, 란슬롯이 아서 왕의 아내 기네비어와 내연으로 도주, 기사들은 아서 왕 파와 란슬롯 파로 나뉘어 대결 끝에 베디비어 경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하지만 아서 왕 전설에서 등장하는 성창은 롱기누스의 창이라기 보다는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쿠 훌린게이볼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십자군[편집]

1차 십자군의 안티오키아 공격 당시 은자 피에르는 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 전투에서 십자군은 승리했지만 결국 피에르는 성창의 진위 여부때문에 시죄법 재판을 받고, 죽었다. 이로 인해 피에르와 성창을 옹호하던 생질의 레몽이 십자군 내부에서 약해지고, 보에몽의 입김이 세지게 된다.

헌데 중요한 것은 성창의 발견자에 대한 설이 여럿이라는 것이다. 위의, 은자 피에르가 발견했다는 설은 안나 콤네나공주의 기록이고, 또다른 기록으로는

  • 은자 피에르와 동명이인인 피에르 바톨로메오가 있었다는 기록
  • 보에몽 밑의 어느 꾀바른 부하의 자작극이라는 기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