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부인
롤랑 부인(Madame Roland, 1754년 3월 17일 - 1793년 11월 8일) 또는 마담 롤랑은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로 지롱드파의 흑막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지롱드파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본명은 라 플라티에르 자작 부인 잔느 마리 오 마농 플리퐁 롤랑(Jeanne Marie ou Manon Phlipon Roland, vicomtesse de La Platière)이며, 남편은 내무장관이었던 장 마리 롤랑(Jean-Marie Roland, 1734년 - 1793년)이다. 뛰어난 미모와 지성 그리고 교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공화주의자가 되었다.
1793년 11월 8일 공포정치를 통해 39세의 젊은 나이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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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편집]
1754년 파리에서 중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영재교육을 받았고 루소 등을 즐겨 읽었다. 1776년 22세의 나이에 이후 남편이 되는 산업 감독관 롤랑 자작과 교제를 시작한다. 1780년 26세의 나이로 스무살 나이 차이가 나는 롤랑 자작과 결혼을 했고, 이후 아내의 영향으로 롤랑은 정치에 관여한다.
1791년 37세의 나이에 파리로 이주했다. 집에서 살롱을 열고 각계의 명사와 교류하며, 지롱드파를 형성한다. 1792년 3월 남편 롤랑이 내무대신이 되었지만, 그는 아내에 의존을 많이 했다. 국왕 재판에서는 루이 16세가 적국과 내통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9월 입헌 의회 성립 후 산악파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1793년 1월 국왕이 처형된 후 일부가 당통과 타협을 시도하지만, 롤랑 부인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6월 항쟁이 격화되어, 남편과 아이와 떨어져 있다가 체포되어 투옥된다. 그녀는 옥중에서 회고록을 집필한다. 11월 8일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고 처형되었다.
| “ | 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할 것인가! O Liberté, que de crimes on commet en ton nom! (Oh Liberty, what crimes are committed in thy name!) |
” |
이틀 후 피난처에서 아내의 소식을 들은 남편은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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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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