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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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뱅파가 근거지로 삼았던 자코뱅 수도원

자코뱅파(프랑스어: Jacobins, Jacobin Club)은 프랑스 혁명 기에 생긴 정당파 중 하나이다. 명칭의 유래는 파리의 자코뱅 수도원을 본거지로 한 데 유래되었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중심이 되어 급진적인 혁명을 추진한 시기로 유명하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주류로, 공포 정치로 활약하고 테르미도르의 쿠데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국민 공회에서 왼쪽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좌익’의 어원이 되었다.[1] 또한 마르크스가 높이 평가했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의 사상적 뿌리이기도 하다.

정의[편집]

원래는 자코뱅 클럽이라는 다양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치 클럽이었다. 이 정치적인 클럽은 프랑스 전국에 지부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혁명을 추진했다. 그러나 혁명을 거치면서 신념과 정책에 의해 분열되었고, 먼저 입헌군주파이던 푀양파가, 이어 온건공화파인 지롱드파가 이 클럽에서 탈퇴하고 궁극적으로 몽테뉴파(Montagnards)라는 급진공화파의 집단이 자코뱅 클럽에 남아 있고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러나 루이 16세의 '국가방위군'에 의해 진압되는 일이 있으나 3년후 다시 일어나게된다.

따라서 자코뱅파는 넓은 의미로 자코뱅 클럽에 속해 있던 시민, 또는 간단하게 혁명을 지지했던 혁명파를 가리키는 자코뱅파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후자의 급진공화파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실제로, 라파예트, 브리소와 같은 등의 푀양파나 지롱드파의 대표 주자도 한때 자코뱅 클럽에 속해 있었지만, 그들을 가리켜 자코뱅파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롱드파가 자코뱅의 지류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파벌[편집]

파벌 간 충돌이 심각해지기 이전에는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세 명을 가리켜 “자코뱅 세 거두”라고 불렀다.

에베르 파[편집]

급진 좌파로 극좌 세력이었다. 중요한 멤버 중 한 사람인 자크 르네 에베르의 이름을 붙였지만, 특정 지도자는 없었다.

당통 파[편집]

자코뱅의 우파 세력으로, 별칭 관용파로 불리기도 했다. 조르주 당통을 영수로 하고, 카미유 데뮬랭, 에도 드 세시르 등도 유력한 멤버이다. 술이나 여자, 갬블 등 인생을 즐기고 있던 향락적인 인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로베스피에르 파[편집]

편의 상 중도파로 분류하지만, 실제 중도파는 평원파이다. 엄밀히 말하면 중도 좌파 또는 좌파 중도이다.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를 영수로 하고, 생 쥐스트, 쿠통과 삼두 정치를 실시했다.

몽테뉴 파[편집]

라자르 카르노생상스 땅드 등으로 대표되며, 몽테뉴는 ‘산악’이라는 의미로 산악파라고 불리는 무소속 의원이다. 지롱드파의 평원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설정된다.

네오 자코뱅[편집]

후발 그룹으로 가장 급진적인 평등주의자 그룹이다. 너무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기 때문에 지지를 거의 얻지 못했고,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유 재산의 폐지를 요구하는 등 분배 중심의 초기 사회주의적 주장을 펼쳤다. 공산주의의 뿌리로 알려진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 국제적인 직업 혁명가 필리포 부오나로티 등이 여기의 멤버로 거론 된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