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마르굴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5번째 줄: | 5번째 줄: | ||
[[1978년]] 그는 필즈상 수상자가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정치적인 이유로 시상식 장소였던 [[핀란드]]의 [[헬싱키]]로의 여행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이 상황은 이듬해에 개선되어 [[1979년]]에는 [[독일]]의 [[본]](Bonn)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차후에는 자유로운 여행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에도 대학의 수학과에서 근무한 것이 아니라 기술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
[[1978년]] 그는 필즈상 수상자가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정치적인 이유로 시상식 장소였던 [[핀란드]]의 [[헬싱키]]로의 여행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이 상황은 이듬해에 개선되어 [[1979년]]에는 [[독일]]의 [[본]](Bonn)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차후에는 자유로운 여행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에도 대학의 수학과에서 근무한 것이 아니라 기술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
||
[[1986년]]에는 [[2차 형식]]과 디오판틴 근사에 대한 [[오펜하임 가설]] |
[[1986년]]에는 [[2차 형식]]과 디오판틴 근사에 대한 [[오펜하임 가설]]을 증명하였다. 이 가설은 [[하디-리틀우드 원 방법]]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진전이 이루어진 이후에 50년간 별다른 성과가 없던 문제였었다. |
||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후 [[미국]]의 [[예일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후 [[미국]]의 [[예일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
2011년 8월 10일 (수) 05:14 판
그리고리 알렉산드로비치 마르굴리스(Grigori Aleksandrovich Margulis, 1946년 2월 24일 ~ )는 리 군의 격자점에 대한 위대한 업적과 에르고드 이론을 디오판틴 근사에 응용한 업적으로 유명한 수학자이다. 마르굴리스는 1978년에 필즈상을 수상하였고, 2005년에는 울프 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까지 이 두 상을 모두 수상한 사람은 총 6명이었다.
마르굴리스는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를 다니면서 에르고드 이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이 초창기에는 데이빗 카즈단(David Kazhdan)과 함께, 이산 군(discrete group)에서 기본적인 결과인 카즈단-마르굴리스 정리를 증명하였다. 그 후 1975년에는 초강체 정리(superrigidity theorem)을 증명하였다.
1978년 그는 필즈상 수상자가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정치적인 이유로 시상식 장소였던 핀란드의 헬싱키로의 여행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이 상황은 이듬해에 개선되어 1979년에는 독일의 본(Bonn)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차후에는 자유로운 여행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에도 대학의 수학과에서 근무한 것이 아니라 기술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986년에는 2차 형식과 디오판틴 근사에 대한 오펜하임 가설을 증명하였다. 이 가설은 하디-리틀우드 원 방법을 통해서 어느 정도 진전이 이루어진 이후에 50년간 별다른 성과가 없던 문제였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후 미국의 예일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