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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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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경의 인천 지도. 杻峴驛(축현역)으로 표기된 동인천역까지 뻗어 있는 수로가 보인다.

수문통(水門通)은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에서 동인천역 북광장까지 이어진 뒤 두 갈래로 갈라져 서쪽으로는 화평동, 동쪽으로는 금곡동 배다리까지 이어지던 수로이다.[1] 1930년대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어 나룻배가 오갔으나[1],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길전수차랑(吉田秀次郎)이라는 일본인이 하수도와 수문을 건설한 이후로는 이것이 불가능하였다.[2][3] 1989년과 1994~96년 두 차례에 걸쳐 매립되었으며[4][5][3], 매립된 구간에는 수문통로라는 도로가 건설되었다. 화평동 화평치안센터 앞에 수문통을 건너던 송현교 표지석이 남아 있다.[6]

각주

[편집]
  1. 최도범 (2017년 2월 9일). “[기획] 인천 송현동 수문통 복원, 해양도시 성장 위한 필수 과제”. KNS뉴스통신. 2017년 7월 9일에 확인함. 
  2. “總工費十萬五千圓(총공비십만오천원)으로 海面三萬餘坪埋築(해면삼만여평매축)”. 동아일보. 1936년 1월 24일. 2017년 7월 9일에 확인함. 
  3. 차준호 (2002년 8월 16일). “[인천/경기]이곳을아시나요…인천 송현동 수문통”. 동아일보. 2017년 7월 9일에 확인함. 
  4. 김인완 (1988년 10월 22일). “水門通(수문통)하천 복개공사”. 매일경제. 2017년 7월 9일에 확인함. 
  5. 김영환 (1996년 8월 31일). “인천 3개간선도로 연내 완공”. 한겨레. 2017년 7월 9일에 확인함. 
  6. 강신일 (2011년 9월 30일). '옛 수문 표지석'유물 아닌 흉물 전락”. 인천일보. 2017년 7월 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