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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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시
하기 시의 위치
하기 시의 위치
한자 표기 萩市
가나 표기 はぎし
나라 일본의 기 일본
지방 주고쿠 지방,
산요 지방,
산인 지방
도도부현 야마구치 현
분류코드 35204-7
면적 698.31 km²
인구 47,639명
(2017년 10월 1일)

하기 시(일본어: 萩市)는 야마구치현 북부, 동해에 접한 이다.

에도 시대조슈 번(長州藩, 현재의 야마구치 현)의 본거지였던 곳이며 관련 유적지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고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도시의 하나이다. 2005년 3월 6일, 구 하기 시와 아부 군 가와카미 촌, 다마가와 정, 무쓰미 촌, 스사 정, 아사히 촌, 후쿠에 촌이 통합하면서 새로운 하기 시가 되었다.

개요[편집]

한편은 동해에 면하고 세방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그 위에 도로·철도·항만의 정비도 늦었기 때문에 산요측의 시정촌과 비교하면 발전이 약했다. 산요 신칸센 하카타 역 개업시에 관광객이 증가해 인구도 증가하였지만 이후 관광객의 감소와 함께 인구도 감소했다. 새로운 하기 시 성립 후인 2005년 국세조사에서도 인구의 감소가 현저하며 특히 합병 전의 구 정촌에서의 감소 경향이 눈에 띈다.

에도 막부 말기부터 전쟁 전까지는 정·재계의 거물을 대부분을 배출하는 등 이전에는 중앙인 도쿄긴키 지방으로의 지향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진학·취직 등도 규슈로의 지향이 강하다. 시바 료타로의 에도 막부 말기 소설인 《세상에 사는 나날》과 《화신》은 이 도시가 무대이다.

하기 시는 일본 유수의 델타 지대에 있다. 구 가와카미 촌으로부터 흐르는 아부 강은 가와시마 지구에서 두 개로 나뉘어 하시모토 강과 마쓰모토 강이 되고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

지리[편집]

야마구치 현 북부의 동해에 접하고 동쪽은 시마네현 경계에서 서쪽은 나가토 시까지, 남쪽은 야마구치 시, 미네 시에 접하고 있다. 외딴 섬으로서 미시마 섬(見島), 오시마 섬(大島), 아이시마 섬(相島), 히쓰시마 섬(櫃島), 하지마 섬(羽島), 히시마 섬(肥島), 오시마 섬(尾島)이 있고 그 중 미시마 섬, 오시마 섬(大島), 아이시마 섬, 히쓰시마 섬은 유인도이다.

주요 산으로는 해발 532.8 m의 고야마 산이 있고, 또한 인접하는 아부 정은 하기 시에 둘러싸여 있다.

인접하는 자치체[편집]

역사[편집]

옛날에는 오우치 씨의 가신인 요시미 씨의 영지이며 쓰와노 성의 외성이 쌓아져 있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인 1608년, 모리 데루모토가 동해로 돌출한 시즈키 산의 기슭에 하기 성을 축성해 이후 야마구치의 정사당에 번청이 옮겨질 때까지의 약 260년간 조슈 번 36만석의 성시로서 발전했다. 에도 막부 말기에는 요시다 쇼인쇼카손주쿠에서 많은 인재를 육성해 이곳에서 기도 다카요시, 요시다 도시마로,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이토 히로부미 등을 배출하고 또 이들과 우호가 있던 이노우에 가오루 등의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를 냈다. 또한 일본의 근대적 군사제도를 만든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고향이기도 하다.

  • 1889년: 정촌제 시행에 의해 아부 군 하기 정이 성립하였다.
  • 1923년: 아부 군 진토 촌, 진 촌, 야마다 촌이 하기 정에 흡수 합병되었다.
  • 1932년 7월 1일: 하기 정이 야마구치 현내에서 4번째로 시로 승격하였다.
  • 1933년 2월: 산인 본선이 개통하였다.
  • 1955년 3월: 산미 촌, 오이 촌, 로쿠토 촌 및 미시마 촌이 구 하기 시에 편입 합병되었다.
  • 1975년: 구 가와카미 촌에 아부가와 댐이 완성되었다.
  • 2005년 3월 6일: 구 하기 시와 가와카미 촌, 다마가와 정, 무쓰미 촌, 스사 정, 아사히 촌 및 후쿠에 촌이 대등 합병해 새로운 하기 시가 되었다.

교통[편집]

철도[편집]

도로[편집]

자매결연 도시[편집]

자매 도시[편집]

우호 도시[편집]

우호 관계를 거부한 도시[편집]

에도 시대 말에 메이지 유신의 중심 세력이 된 조슈 번, 사쓰마 번(薩摩藩, 현재의 가고시마현)과 에도 막부가 싸운 보신 전쟁에서 막부 측이었던 아이즈 번(會津藩)은 조슈 번으로부터 심한 공격을 당하였다.
그로부터 120주년을 맞이한 1986년, 조슈 번의 본거지였던 하기 시가 아이즈 번의 본거지였던 아이즈와카마쓰 시에 대해 화해와 우호 도시 결연을 제안했으나, 아이즈와카마쓰 시민의 대부분이 "아직 그 시기가 아니다", "우리는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고 반대했다.
현재도 아이즈와카마쓰 시와는 화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이즈와카마쓰 시를 비롯한 아이즈 지방 출신자와 하기 시를 비롯한 야마구치 현 출신자의 결혼이 무산되는 등 심한 지역 감정이 남아 있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