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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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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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경기도 평택시 |
시조 | 임팔급(林八及) |
중시조 | 임언수(林彦脩), 임세춘(林世春) |
집성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 전라남도 나주시 전라남도 곡성군 고달면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충청남도 부여군 경상북도 김천시 |
주요 인물 | 임견미, 임치, 임정, 임경업, 임병찬, 임예환, 임기호, 임광원, 임내현, 임인배, 임영호, 임해규 |
인구(2015년) | 225,872명 |
비고 | 평택 임씨 대종회 |
평택 임씨(平澤 林氏)는 경기도 평택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
[편집]평택 임씨는 고려 말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임언수(林彦脩)를 기세조로 하는 「충정공계(忠貞公系)」와 고려 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 겸 연희궁부사(延禧宮副使)를 지낸 임세춘(林世春)을 기세조로 하는 「전객령계(典客令系)」의 두 계통이 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0명을 배출하였다.
충정공계
[편집]기세조 임언수(林彦修)는 아들인 임견미(林堅味)가 고려 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는 등 귀한 신분이 되자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으로 봉해졌다.[1] 혹칭 팽성 임씨(彭城 林氏)라고도 한다.[2]
임견미의 형인 임성미(林成味)의 6세손 임형수(林亨秀)는 1535년(중종 30)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에 올랐으나,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파직되었다.
전객령계
[편집]기세조 임세춘(林世春)이 고려 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 겸 연희궁부사(延禧宮副使)를 지냈다.[3] 그의 증손 임정(林整)은 조선 태종조에 형조 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혜(恭惠)이다.[4] 혹칭 평성 임씨(平城 林氏)라 한다. 평성(平城)은 평택(平澤)의 별호이다.[5]
임정(林整)의 7대손인 임경업(林慶業)은 1624년(인조 1) 이괄의 난을 진압하여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정묘호란 이후 친명배청(親明排淸) 무장(武將)으로 활약하였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인물
[편집]항렬자
[편집]- 전객령공파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
순(淳) | 口식(植) | 병(炳) 희(熙) |
口규(奎) 口규(圭) |
종(鍾) 석(錫) |
口호(浩) 口수(洙) |
동(東) 상(相) |
口섭(燮) 口열(烈) |
배(培) 경(坰) |
口진(鎭) 口호(鎬) |
태(泰) 철(澈) |
口모(模) 口근(根) |
형(炯) 경(炅) |
집성촌
[편집]-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
- 전라남도 곡성군 고달면
- 전라남도 나주시
- 전라남도 담양군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 충청남도 부여군
- 충청남도 아산시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옥산리
- 경상북도 문경시 공평동 임촌
- 경상북도 청도군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인구
[편집]- 1985년 46,670가구 194,550명
- 2000년 65,015가구 210,089명
- 2015년 225,872명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각주
[편집]- ↑ 『고려사』 권126, 열전39
- ↑ 《조선씨족통보》
- ↑ 《조선씨족통보》부 맹양, 조부 판윤 제미, 증조부 평성부원군 언수
- ↑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4월 28일 병자 1번째기사
- ↑ 《조선씨족통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