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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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편집]

본문이 과도하게 연의와 대조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퇴프 2008년 1월 29일 (화) 15:55 (KST)

열조라는 묘호[편집]

열조가 확실한 묘호 맞습니까? 근거도 없구요, 시호와 묘호에서 겹치는 글자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예였기 때문에 열조 자체가 어긋납니다. --月兒 2008년 2월 16일 (토) 13:25 (KST)

저도 궁금한데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충념대군1397(빗살무늬··메일) 2015년 11월 19일 (목) 19:11 (KST)

지나친 주관적 서술[편집]

평가 항목에서 유비의 혈통에 대해서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근거와 출처가 없는 주장이 남용되고 있습니다. 중산정왕의 문란한 행실과 한 왕실 혈통의 계승여부 문제는 연관성이 떨어집니다.

또한 촉한의 성립과 유비의 죽음 항목에서 '아무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이릉으로 쳐들어갔는데 이것이 유비가 얼마나 군사적인 식견에 대해 문외한인지를 증명해주는 사건이 된다.' 라는 문장 역시 지나치게 주관이 개입되어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바로 뒷 부분의 '유비는 자귀에 주둔하고 있던 이전 등을 격파하고 무릉, 오계의 만족을 아군으로 만들었다.' 라는 문장만 보아도 유비가 군사적으로 무능하고 무계획으로 오에 쳐들어갔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됩니다. 좀 더 객관적인 서술을 부탁드립니다. 125.131.69.173 (토론) 2008년 11월 3일 (월) 04:59 (KST)

황건적의 난에서 형주 웅거까지 항목의 문제점들[편집]

1.여포에 대한 서술

본문에서 조조는 여포에게 하후돈급의 대우를 할 생각이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근거가 부족하고 출처 또한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토론 란에 명확한 출처를 명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2.주관적인 의견의 개입

'이는 여포가 조조의 장수가 되었을 경우 유비가 조조를 이길 가망이 아예 없어지게 될 것을 유비가 일찌감치 알았기에 한 행동이다.' 와 같은 문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고 과도한 주관적 평가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서주자사 차주를 아무 이유없이 살해하고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 와 같은 문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표현의 부적절함

'서주를 손에 넣은 유비는 잘 나가다', 여기서 '잘 나가다'라는 문구는 백과사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125.131.69.173 (토론) 2008년 11월 3일 (월) 04:59 (KST)

문서를 전면적으로 손보았습니다[편집]

정사 선주전에 기반하여, 전체적으로 문서 곳곳에 끼어있던 주관적인 표현, 평가와 정리되지 못한 표현들을 다듬었습니다. 오탈자 또한 대부분을 수정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의와 정사의 내용이 뒤섞인 부분, 평가 항목의 유비의 정통성 항목이나, 이릉대전에서의 육손의 유비에 대한 평가 등의 부분은 맥락이 맞지 않거나 양쪽의 의견이 충돌하기에 제외하였습니다. 누락된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문서가 상당히 어지럽혀져 있어서 수정이 불가피하였던 듯 합니다. 이전의 문서가 너무 어지러웠던 경향이 있으므로 유비 문서를 수정하실 때는 토론 게시판에 참여하여 의견을 통일한 후에 문서를 수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125.131.69.173 (토론) 2008년 12월 14일 (일) 05:50 (KST)

후손의 링크중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편집]

본문의 맨 아랫쪽에 있는 친족관계에서 손자와 증손자로 각각 유거유총이 나오는데요, 제 생각에는 두 링크가 다 유비와는 관계없는 다른 동명이인과 링크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유거는 기원전 인물로 링크가 되어 있고, 유총은 시기적으로는 유비의 증손자뻘일수 있을지는 몰라도 흉노 출신이기에 유비와는 무관한것 같거든요. 수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식으로 수정을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유비의 후손인 유거와 유총에 대한 독립적인 문서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잘 아시는 분이 수정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본문에서 두 링크는 삭제하였습니다. --Scott Rhee (토론) 2009년 5월 8일 (금) 13:52 (KST)

그리고 유총과 그 아들이라는 유찬은 오호십육국 시대의 전조의 시조인 유연의 후손과 이름은 물론 부자관계까지 같은 걸로 봐서.. 유거는 몰라도 유총, 유찬이 기입되어 있는 것은 흉노의 유연이 유비의 후손이라는 가상 설정하에 씌여진 후삼국지라는 소설에 의한 착오가 아닐까 의심되는데요. 유비의 후손관계에 대한 정확한 문서를 찾기 어려운데 이부분도 잘 아시는 분이 부연설명 또는 수정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Scott Rhee (토론) 2009년 5월 8일 (금) 14:06 (KST)

중국/일본/영문 위키백과와, 기타 몇가지 자료를 찾아본 바로는 유거의 후손에 대한 자료는 알려진 바 없으며 영가의 난을 피한 유비의 후손은 유현만이 알려져있기에 유비와 유선 관련 문서에서 유거의 자손에 대한 링크와 언급을 가능한 삭제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기원전 인물로 링크되어 있던 유거 대신 촉한의 유거에 대한 토막글을 새로 생성했습니다. 기타 유비의 자손중에서 링크가 엉뚱한 인물로 되어있거나 제목이 잘못되었던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소설 《후삼국지》가 유거가 개명하여 유연이 되었다는 설정이므로 누군가 이를 사실로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언급과 지적 부탁드립니다. --Scott Rhee (토론) 2009년 5월 19일 (화) 14:04 (KST)

유비의 죽음 관련 부분[편집]

안녕하십니까?! 이 문서를 편집을 하다보니, 유비가 이릉 전투에서 결국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백제성으로 가는 도중에 육손이 추격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이 제갈량이 어복포에 팔괘진을 만들어 육손의 군사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는 것 역시 정사에서는 나오지 않는 연의의 창작입니까?!

Gryphonman (토론) 2011년 2월 14일 (월) 12:29 (KST)

팔괘진 자체가 연의의 창작입니다. --威光 (토론) 2011년 2월 14일 (월) 19:55 (KST)

유비의 평가[편집]

유비가 독우를 때리고 도망간건 정사에 나와있는 명백한 사실이고 유표에게 의탁했을 때 채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다 사실입니다. 이릉대전 역시 제갈량, 조운등이 반대하였으며 더군다나 위나라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황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강행한 행동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독자연구라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211.200.19.246 (토론) 2011년 11월 16일 (수) 18:20 (KST)

우선 토론에 참여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귀하께서 쓰신 글을 보십시오. 그저 “유비가 독우를 때리고 도망갔고” “유표에게 의탁했을 때 채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와 같은 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였고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하였다. 처음 현령의 관직을 받았을 때는 독우에 대한 개인감정을 참지 못하고 독우를 폭행하고 현령 인수를 버리고 달아났으며 조조의 휘하로 들어갔을 당시에는 자신이 여포의 뒤통수를 친 것으로 인해서 후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조조에게 계속 여포를 참수하라고 간언했는데 조조는 유비에게 속아서 여포를 참수했다. 그 이후 유비는 조조에게 좌장군의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조조를 배신하고 도망쳤으며 그렇게 원소에게 의탁했다. 이후 종친인 유표에게 의지했으나 유표의 후사에 개입하는 바람에 채모와 원수지간이 되기도 했다.

삼국지 촉서 선주전을 보죠. 유비는 안회위(안회현의 현위)가 되었는데, 독우가 공사로 오자 유비가 뵙기를 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독우를 묶어 매를 때리고 관직을 버리고 망명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유비의 개인감정을 참지 못하고'란 말은 없습니다. 주석인 전략의 내용을 살피면, 당시 주 · 군에서 군공으로 관리가 된 사람들을 사태하라는 조서가 내려왔고, 유비는 자신이 쫓겨날 것을 의심했다는 배경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서 여포전을 보십시오. 여포가 살려달라고 하니, 조조가 의심하는 기색을 띠자, 유비가 “정건양과 동태사의 일을 잊었습니까!”라고 말하니 조조가 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여포가 유비를 지목해서 “이놈이야말로 가장 못 믿을 놈이다!”라고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귀하께서 쓰신 “자신이 여포의 뒤통수를 친 것으로 인해서 후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조조에게 계속 여포를 참수하라고 간언했는데 조조는 유비에게 속아서 여포를 참수했다.”라는 말이 설마 저 사서의 기술과 일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유비의 속내도 나와 있지 않고, 조조가 유비에게 속았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러면 위 문단에서 배신한 것은 조조뿐입니다. 한 사람을 배신한 것만 가지고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건은, 그나마도, 황제에게 조조를 주살하라는 밀조를 받았기 때문에 아직도 이것이 부당한 일인지를 두고 토론이 끊이지 않습니다. 황제의 명을 따르면 어쨌거나 유비는 조조가 자신에게 준 신뢰를 저버려야 하고, 조조의 신뢰에 부응하려고 하면 황제의 명령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두고 '유비가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다'고 단언한 것은 마땅히 독자연구의 범주에 들 것입니다.

그리고 유비가 유표의 후사에 개입한 정황은 사서에 보면 확실하지 않습니다. 선주전에도 유표전에도 유표가 유종을 후계로 삼으려 했다는 말만 있지 유비가 이를 반대하는 말이 없습니다. 유표 진영이 두 쪽으로 갈렸다는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채모와 괴월이 유비를 죽이려 한 것은 선주전에 인용된 《위진세어》의 말인데, 자세히 보면 유표가 유비를 겉으로만 예로 대우하고 속으로는 꺼리고 있었다는 배경 하에서 있던 일입니다. 유비가 유기를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나마도 배송지가 이것만을 인용한 게 아니라 이것을 반박하는 손성의 의견까지 인용한 것을 보면 정작 이 말을 후세에 남게 한 배송지도 의심하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더구나 이건 유비의 개인 감정이나 사기꾼 기질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말입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1년 11월 16일 (수) 19:50 (KST)

그리고 다음 문단을 봅시다.

게다가 자신이 손권을 속이고 형주를 차지하려는 천하야욕은 생각하지 않고 관우가 죽은 것만 억울해한 나머지 되지도 않는 국력을 긁어모아서 무리하게 이릉대전을 발발시키고 육손에 의해 처참하게 패하고 그 홧병으로 사망했다. 이로서 유비의 처신으로 인하여 촉은 재기할 가망을 잃었고 오나라에 힘이 약해서 빼앗긴 형주는 촉이 멸망하는 그시점까지 영원히 되찾지 못했다. 삼국의 군주 중에서는 가장 무능한 인물로 특히 조조나 손권에 비해서도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부족했다.

형주 문제는 유비와 손권 양쪽에게 문제가 있다는 게 보통의 논의입니다. 유비는 빌리고도 입을 싹 닦으려고 했고, 손권은 빌려주지도 않은 것까지 받으려고 한 데다 결국은 강제로 제 뜻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을 마치 유비만의 잘못처럼 보이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비가 형주를 치는 것은 개인 감정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유엽의 간언을 보시죠. 우선 유비의 세력이 약하지만 위무로써 아직 여력이 있음을 보이고자 함을 유비가 손권을 공격하려는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관우와의 친분은 그 다음입니다.

귀하는 사서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이것을 약간씩 비틀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끼워넣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독자연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서의 기록은 귀하의 의견만을 뒷받침하지 않습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1년 11월 16일 (수) 20:07 (KST)

채모와 전풍이 유비를 거부하라고 했을까?[편집]

전풍과 채모가 유비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다는 말은 《삼국지》 원소전, 유표전, 선주전이나 《후한서》 원소전, 유표전, 《자치통감》 권63(서기 199~200년에 해당), 권64(서기 201~205년에 해당)에 모두 나타나지 않습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1년 11월 22일 (화) 17:05 (KST)


삼고초려 부분[편집]

현재 문서의 삼고초려 항목이 예전 서술과 비교해서 지나치게 삼국지 연의에 기반한 내용으로 보이는데요. 정사에 기반한 서술로 되돌려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다른 항목들과 비교해서 이 항목에서 서술의 질이 떨어집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이런 형태의 연의 기반 소설에서 차용한 듯한 대사체 기입은 백과사전식 서술과는 거리가 좀 있지 않나 싶어요... 그 외에도 제갈량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격퇴하는 큰 공을 세웠다거나... 그냥 서술자께서 연의 혹은 관련소설을 보고 적었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네요.

거기에 여기서 적벽대전 서술이 나와버리면 뒷부분과 시간대가 뒤엉켜 버리지요.

적벽 관련해서 정사 선주전 서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손권은 주유(周 瑜), 정보(程普) 등 수군(水軍) 수만을 보내 선주와 힘을 합해, (주24) 조공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이를 대파하고 그 주선(舟船-배)을 불태웠다. 선주는 오군(吳軍)과 함께 물과 뭍으로 아울러 진격하고, (조공의 군을) 추격해 남군(南郡)에 이르렀다. 이때 또한 질역(疾疫-역병)이 돌아 북군(北軍-조조군)에 사망자가 많자, 조공이 군을 이끌고 되돌아갔다. (주25)

제갈량이 아니라 유비가 군을 지휘해서 적벽에서 조조를 격퇴했다는 말이죠. 정사 제갈량전이나 주유전을 보면 오군 3만여명과 유비군 2만여명(관우의 수군 일만 및 유기의 지원병)으로 연합군이 구성되었으리라 추정되구요.


하여간 사람들이 연의와 정사를 혼동해서 큰일이에요...

문서의 퀄리티와 유비 폄하에 대한 의견[편집]

그 외에도 반년에 한번씩 삼국지 관련 문서를 살펴볼때마다 느끼는 점이 이문열이나 나그네식 삼국지 해석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문서를 흐트러뜨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1년 전까지만 해도 예전에 비해서 문서가 정립되었다고 느꼈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좀 서술의 질이 더 낮아졌다는 느낌이 드네요.

위의 토론 항목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받는 부분이 독자연구가들이 역사적 인물인 유비의 행적을 개인의 주관에 의해 폄하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위의 독자연구가의 서술에서도 근거 없이 유비가 사기꾼 혹은 배신자라고 매도하기도 했구요. (아니 백과사전에 <되지도 않은 국력>이 왠말입니까? 어이가 없어서...)

제가 2008년에 기록했던 내용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했었는데

3 지나친 주관적 서술

4 황건적의 난에서 형주 웅거까지 항목의 문제점들

5 문서를 전면적으로 손보았습니다

위 항목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2008년 당시의 수정기록을 보면 문서가 아주 가관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독자연구자들이 공통점으로 보이는 문제점이 정사 촉서 선주전이나 자치통감 등의 역사적 사료에 기반하지 않고 연의 혹은 대중서적의 내용을 뒤섞어서 서술한다는 점인데요.

아무래도 삼국지연의 및 삼국지 관련 컨텐츠의 높은 인기로 인해서 정사 한번 들여다본 적 없는 대중들이 쉽게 위키백과의 삼국지 관련 문서에 접근하지 않나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시점 유비 문서의 문제점은 정사에 기반한 퀄리티 있는 서술들과 연의에 기반한 부분들, 아예 질이 지나치게 낮은 문장들이 뒤섞여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문서 전체의 질이 균일하지 않은 거죠. 또 지나치게 한문이 쓰이는 감도 있고 문장이 딱딱하기도 하네요. 조조 문서와 비교해보니 더 그런 점이 두드러지는 듯 합니다.

음,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유비 문서의 관리자분께서는 완성도가 높은 판본 또는 수정 일자를 지정하시고 쉽게 쉽게 복원을 하는 쪽으로 가야 되지 않나 싶어요.

그게 어렵다면 아예 대공사를 벌여서 정확한 문서를 만들어야 할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