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威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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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론

'파일:Made In Japan.png' 크기에 대해서[편집]

음반 표지 사진의 크기에 대하여 지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인용된 사진은 출력 시 가로와 세로 중 짧은 것을 기준으로 150 픽셀 이상, 250 픽셀 이하이어야 합니다. 표지 사진은 고품질의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하며, 직접 찍은 표지 사진을 업로드하지 않습니다. 또한, 저장된 사진의 크기와 품질은 적당한 수준이어야 합니다. 지침 문서(위키백과:비자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음반 표지 참고.)를 확인·참고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해당 파일 문서를 비롯하여 기준보다 크게 올리신 파일에 대해서는, 적절한 크기로 다시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 메이 (토론) 2018년 8월 19일 (일) 00:01 (KST)

해당 출처에서 '그대로' 파일을 가져와서 업로드했었습니다. 제가 크기를 임의로 조정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파일을 자체 조달한 셈이 되는데... 이래도 문제가 없나요? --威光 (토론기여) 2018년 8월 19일 (일) 00:07 (KST)
크기만 줄이는 것이라, 원래 이미지와 차이가 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편집(축소)시 파일 품질이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이 부분에는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메이 (토론) 2018년 8월 19일 (일) 00:20 (KST)
공연히 신경을 쓰이게한 점에 대하여 양해를 바랍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각각 취소선(●) 처리합니다. 제가 출력 기준에 맞추어 파일을 올렸던데에서 다소 착오하였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지침의 해당 부분에 대하여 다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양해를 바랍니다. -- 메이 (토론) 2018년 8월 19일 (일) 00:33 (KST)

가계도를 차트로 수정하시는 것은 어떨까요?[편집]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에서도 대부분 틀:차트로 가계를 설명하더라고요. 그림보다도 직관적이라서 다른 이에게 더 쉽게 읽힐 것 같은데 어떠시나요?--고려 (토론) 2018년 10월 17일 (수) 23:58 (KST)

예전의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가계가 방대한 가문의 경우 페이지가 한없이 커지기 때문에, 이미지로 대체해왔었습니다. 일단, 차트가 더욱 유용하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가계도 자체가 쓸데없이 지엽적인 정보라 여겨 손을 뗐습니다만, 만일 손을 쓸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18일 (목) 00:04 (KST)

알찬 글 후보 및 좋은 글 후보 토론에 참여해주세요![편집]

위키백과:알찬 글 후보위키백과:좋은 글 후보에 많은 글들이 사용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여 부탁드립니다.--Kenlee77 (토론) 2018년 10월 19일 (금) 15:41 (KST)

威光님께서 생각하시는 높은 관직이나 최초이지만 특이하게도 기록이 별로 없는 인물은 누구인가요??[편집]

저는 신라 신분제 중 대각간으로 기록 상 가장 먼저 보이는 인물인 구진(仇珍)인데 분명 551년(진흥왕 12년) 신라가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하였을 당시 출정한 8명의 장군 중 한명이었고 대각간이라는 신분이 거의 죽어서 추증된 사례인 것을 보면 분명 신라 정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양반인 것같은데 신기하게 기록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김옹(金邕)이라는 인물도 분명 대각간이니 여튼 정계에 영향력은 매우 큰 인물일텐데도 남아있는건 종에 새겨진 글자가 전부고;; 생각나시는 인물이 있으시나요?--고려 (토론) 2018년 10월 19일 (금) 23:52 (KST)

국사에 문외한이라서,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일단은 백제의 사택지적·사택적덕이 있겠습니다. 지금 한창 파는 전·후한이라면 열심히 말씀드릴 수 있으니, 이거라도 말씀드릴게요. 보시다시피, 대부분 열심히 문서를 만들어 놓아서... 그걸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전한[편집]

  • 위맹: 어사대부 1
  • 우저: 어사대부 2. 사실, 전한의 어사대부는 특히 기록이 부족합니다. 특별히 위맹·우저가 눈에 띄어서가 아니라, 이런 식의 땡처리 어사대부들이 여럿 있습니다.
  • 풍경: 어사대부 3이자, 초한전쟁기의 소년 장수. 원래 유방의 적이었는데, 수십 년의 시간차를 두고 뜬금없이 전한의 고관으로 등장함. 이후 증발.
  • 영면: 거기장군을 단숨에 엑스트라로 만들어버리는 위엄.
  • 중위 패·정위 패: 동일인물로 확실시됨. 사마안·의종·왕온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혹리일 듯.
  • 이충: 역사상 최초의 사례교위로 확실시되는 인물. 당초 사례교위의 설치 목적을 생각하면, 수많은 사람의 목을 날렸을 인물.
  • 대홍려 현: 백관공경표에 이름자만 실린 구경들 중, 유달리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킴. 상당히 유능한 관료였나 봅니다.
  • 사요: 역임한 관직을 보면 경력이 매우 화려한데, 오로지 표에서만 확인됨. 경력만 보면 열전이 있었을 법할 수준입니다.

사실, 이쪽은 제 사용자 문서(사:威光/拾遺)에 실컷 갈겨놨습니다. 그냥 그걸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후한[편집]

  • 유요: 삼국지의 유요 말고, 다른 사람입니다. 금석문에서만 존재가 확인됩니다.
  • 백리숭: 송나라 때까지 사당이 있었을 정도로 칭송받은 명신인데, 범엽후한서에는 언급조차 없는 인물. 사승후한서의 기록 두어 줄이 현전하는 전부입니다. 청대 고증학자들의 주석을 보면, 이런 것때문에 범엽을 까는 게 왕왕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범엽이 날려먹은 인물이 상당히 많거든요. 거기장군도 날려먹은 사례가 보입니다.
  • 대부분의 삼공들. 그냥 ko:틀:후한의 재상 문서 중 만만해 보이는 것 아무 거나 눌러보세요. 정리가 안 돼서 그렇지, 구경 급도 똑같습니다.

촉한[편집]

  • 상관승: 촉한의 태위. 신당서 재상세계표라는, 신빙성은 쌈싸먹은 사료에서 보여서 좀 문제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신당서에서 이름만 확인됩니다. 삼국지·진서 따위에는 전혀 안 나옵니다.

동오[편집]

  • 승상 연: 금석문으로만 존재가 확인되는 승상은, 중국 역사상 이 친구가 유일무이하지 않을지...
  • 태위 구: 이 친구는 금석문으로만 확인되는 태위. 유일무이 어쩌고저쩌고 2
  • 대사도 섭: 금석문으로만 확인되는 대사도. 삼국지에는 그냥 동오 멸망까지 내리 '사도'였던 것처럼 나오지만, 도리어 금석문 덕분에 '대사도'였음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유일무이 어쩌고저쩌고 3
  • 대창: 역시나 땡처리 태위. 동오의 기록이 이렇게나 빈약하답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0일 (토) 02:08 (KST)

중국은 땅도 넓을테니 금석문이나 다른 사료도 좀 있을 것 같은데 어찌 자료가 부족하나보네요 ㄷㄷ; 특히 한-삼국시대는 그래도 여러 시대의 왕이나 신하가 이야기 했던 것을 보면 좀 남아있을줄 알았는디;--고려 (토론) 2018년 10월 20일 (토) 10:46 (KST)

사기와 한서랑 어떤 책이 더 중요시 여겨지나요?[편집]

저는 중국사는 전공이 아닌지라 그저 나무위키의 평을 보면서 그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사기랑 한서 모두 중국 역사서에서는 중요히 여기는 책으로 여겨지더라고요. 전한-삼국시대를 주로 편집하시는 것 같은데 어떤게 더 중요해 하나요? 그리고 제 개인적인 궁금함인데 중국 역사서도 없어진 책이 많은데 威光님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서는 뭐가 있을까요? 동생을 찾으셨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물어봅니다,--고려 (토론) 2018년 10월 28일 (일) 23:04 (KST)

저도 전공 아닙니다ㅎㅎ;;, 어쨌든, 뭐가 더 중요하다고 제가 평을 내릴 수 있는 위치는 아닌지라... 그냥 둘 다 중요하다고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사기야 뭐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테고, 한서는 상당수 사기를 복사+붙여넣기했지만, 사마천 사후의 일들은 오리지날이니 또한 중요합니다. 유실된 사료 중, 아깝다고 여기는 건 동관한기·사승후한서를 투톱으로 생각합니다. 동관한기는 후한판 조선왕조실록과 비슷한 물건이고, 사승후한서 또한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보면 볼수록 범엽이 싫어지는, 참으로 대단한 물건이에요. 아, 위략도 빼먹을 뻔했네요. 중국사 뿐만 아니라, 국사에서도 정말 중요한 물건인데...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8일 (일) 23:15 (KST)
말씀하신 '동생'은 일단 한서에서 발굴한 것이긴 한데... 문서에도 적어놨지만, 현행 판본에는 동생의 이름자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태평어람에는 이런 식으로 전질이 확보된 텍스트와도 다른 부분이 왕왕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평어람에 인용된 위지(魏志; 삼국지 위서)에는 장로의 차남 장광張廣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전하는 삼국지에는 아예 장광의 존재 자체가 안 나옵니다. 태평어람에 인용된 위지·촉지·오지가 삼국지의 원형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 만큼, 상당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위지·촉지·오지가 삼국지로 편수되면서 텍스트를 좀 날려먹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아니, 확실시되는 수준...)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8일 (일) 23:19 (KST)
날린 것 중에서 그냥 소실된 것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날려버렸다는 확신이 드는 사례가 몇몇있나요?--고려 (토론) 2018년 10월 28일 (일) 23:21 (KST)
그쪽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범엽이 동관한기·사승후한서를 기초로 해서 후한서를 집필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사승후한서의 그렇게나 많은 인물들을 '고의로' 날려먹었다고밖에 해석이 안 되네요.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8일 (일) 23:35 (KST)
ㅋㅋㅋ;; 사고전서 같은 것을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욧--고려 (토론) 2018년 10월 28일 (일) 23:48 (KST)
나오긴 나오는데, 이름자가 잘못 적힌 사례를 별개의 인물로 해석해서 같은 일을 여러 번 기록하거나, 타 사료의 해석 자체를 잘못해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단장취의 하는 등(방덕공의 자를 '상장'이라고 단정한 사례) 검증이 부족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좀 조심해서 봐야겠죠.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0월 29일 (월) 00:02 (KST)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우리의 사소한 일기라도 언젠간 내 직계 자손이든 친척이든 유명한 사람이 되면 읽어볼만한 사료가 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드네요 ㅋㅋ. 항상 수고하십니다.--고려 (토론) 2018년 10월 29일 (월) 00:15 (KST)

노최?[편집]

노인이 이름이 아니라 노+인이었나요? 저는 이런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3일 (토) 20:47 (KST)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예전엔 '이름'으로 배웠고, 또 그렇게 알아왔습니다. 한서 공신표에서도 '최'라고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달리 볼 건덕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학계의 경향인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최'라고 쓰인 예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타국어 위키백과까지 그렇게 점령(?)되었고요. 그것 때문에 당초 '최 (위만조선)'으로 바꿨다가, 나중에 토론으로 문제제기가 들어오면 설득시킬 자신이 없어서 되돌렸답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3일 (토) 22:28 (KST)
노가 성인지도 알 수 없고 인도 “노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고;; 그래도 나름 공신인데 기록을 별로 안해주네요... 여튼 근데 궁금한게 아버지가 왕, 공, 후 같은 작위를 받아도 아들에게 자동승계가 아니라 아들이 왕에게 새로 작위를 받는건가요? 유럽도 보니깐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있는데도 임명을 안해주니 그대로 국가가 사라지더라고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3일 (토) 22:36 (KST)
'노 성을 가진 사람'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표를 보기라도 했다면 그런 주장을 할 리가... 어쨌든, 이민족은 공신이더라도 표기가 빈약합니다. 기록 부족이 아니라, 성씨가 없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둬야 할 겁니다(고려 때까지도 정착이 안 된 성씨를, 위만조선에서 꼭 갖고 있었어야 한다는 강박을 왜 갖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나라의 작위 승계는, 그냥 아비가 죽었다고 아들이 반드시 잇는 것이 아니라, 작위를 이어도 되는지 조정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대홍려가 이걸 담당함). 자식이 있더라도, 죄가 있으면 후사를 둘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시무·평간유왕·위홍의 예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3일 (토) 22:43 (KST)
감사합니다. 한나라는 이성왕을 때려잡고도 반란이 계속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겠네요... 대홍려는 실제 맘이 어떻든 참 미움많이 받고 왕에게 버려지면 끔살 확정이겠군요... 과거도 그렇고 현재까지도 저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참 고달픈 것 같습니다.--고려 (토론) 2018년 11월 3일 (토) 22:50 (KST)
아, 대홍려는 아무 잘못 없습니다ㅋ 제후가 조정의 대홍려에게 '누구누구를 후사로 삼겠습니다' 하는 글을 제출하면, 대홍려가 허락을 받아다 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겁니다. 황제가 안 된다고 하면 그냥 끝이죠. 물론 왕우처럼 말 한 마디로 제후국을 끝장내기도 하고, 이외에도 대행령 구처럼 시호에 대해 의견을 내는(*'대행령'은 대홍려의 옛 이름), 그래도 비중이 쏠쏠한 양반입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3일 (토) 22:56 (KST)
시호까지 허락을 받아야 올릴 수 있는거였군요;; 사실 여러 역사를 보면 그 메신저 땜시 될 것도 안되고 참 ㅋㅋ... 물론 황제도 믿을만 한 놈을 앉히겠지만... 여튼 가끔 모든 기록이 편년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 많던 행정 문서와 기록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련지... 참 아쉽습니다.--고려 (토론) 2018년 11월 3일 (토) 22:59 (KST)
아... 그냥 드리는 말씀인데, 사마천은 이미 '~ 성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의 고정표현으로, 을 썼습니다. 田씨 아무개 田甲, 徐씨 아무개 徐甲, 石씨 아무개 石甲 등 이미 여러 차례 용례가 확인됩니다. 즉, '路 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路甲이라고 적혔어야겠죠. 혹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꼭 이 얘길 해주시기 바랍니다...ㅎㅎ--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3일 (토) 23:11 (KST)

아 맞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는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노인을 “어양현 사람(漁陽縣人)”이라고 했는데 이 경우에는 대체로 이 기록을 부정하나요? 그리고 사기색은이라는 사서는 신빙성이 있나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20일 (화) 23:39 (KST)

앗, 전혀 모르는 기록이었네요. 삼가주를 살펴봤는데, 바로 다음에 '「노인」은 이름자이다.'라는 여순의 주석까지...-_- 더 볼 것 없습니다. 그냥 이걸 최 문서에다가 기록하고, 당당히 '최 (위만조선)'이라고 돌려야 겠습니다.--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20일 (화) 23:44 (KST)
근데 여순이 누군진 잘 모르겠고 여양현 사람이라고 단정지은것도 그렇고 흠..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일까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20일 (화) 23:57 (KST)
여순은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사람입니다. 색은에, 여순의 주해가 상당수 인용된 것이 확인될 뿐입니다. 어쨌든 색은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어양 사람이라는 기록은 응소가 남겼군요. '단정'이 왜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사료의 출신지 기록은 '단정' 뿐이거든요. 의심을 하려 한다면 한도 끝도 없겠죠 ㅎㅎ;;... 색은 자체의 신빙성은 제가 따로 말씀드릴 것은 없습니다만, 초한춘추 등 전한의 1차사료까지 인용한 물건이라서 가치는 상당히 높습니다. 일단은 출전을 명기하고 문서에 기록할 만한 사항이락 생각합니다.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21일 (수) 00:03 (KST)
너무 명백하게 노인은 이름자고 출신지도 어디다 라는게 적혀잇는데도 남들이 쓰지 않고있길래 신뢰성이 떨어지나 궁금해서 무러봤는데 문제는 없나보네요. 근데 진짜 어양현 사람이면 베이징에서 태어났다는 건데 흥미롭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고려 (토론) 2018년 11월 21일 (수) 00:08 (KST)
일종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사료의 주석서라는 게 다 그렇더라고요. 마치 훈고학을 보듯이, 그냥 'A는 B다'라는 식의 기술이 파다합니다. 그저 사료에서 다뤄진 시기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의 양반들이니, 그만큼 믿고 읽는(?) 관계랄까요... 명청대의 고증학자들의 주석도, '응소가 참조한 판본은 그만큼 더 오래된 것이니, 그쪽이 옳았을 터이다' 뭐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꽤 보입니다. (둔막여가 그러한 예입니다) ㅎㅎ; --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21일 (수) 00:14 (KST)

威光님께서 보시는 전한은 어떤가요?[편집]

제가 요즘 중국 개략사를 대충 읽고 있어서 후한까지 읽었는데 왠지 참 알게모르게 무너져간다라는 느낌이 크게 들더라고요. 그나마 장제까지가 좀 정상적으로 가다 틈만 나면 급사에 요절에 갑자기 죽어버리니 의심도 많이가고... 사실 통일 왕조의 말기는 참 고달프긴합니다만 후한은 그런 언급이 좀 적은것 같은데.. 여러 인물을 글을 쓰시니 잘 알것 같으니 대충 어떤 느낌이시나요?--고려 (토론) 2018년 11월 13일 (화) 20:51 (KST)

개설서 같은 걸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제가 느끼는 바로는, 전한은 후한에 비해서 멸망 직전의 상황이 훨씬 나았는데도 너무나 뜬금없이 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한이야 조조가 협천자 이후 근 20년을 군림했지만, 전한은 왕망이 정말 짧은 시간동안 설쳤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원제 때부터 망조가 들었고, 성제 때 제대로 썩었다고는 하지만... 그냥 성제가 급사하지만 않았어도, 아니 한 발 더 양보해서 애제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도 그럭저럭 버티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애제가 죽고나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광속으로 무너졌다고 느껴집니다.
사족으로, 열전에서는 전한에 대한 애국심(?)을 잊지 않은 인물로 그려지는 왕정군은... 그냥 미화된 기록이고, 실제로는 '성공한 고황후'가 아녔을까 생각합니다. 옥새를 집어던졌네 뭐네 해도, 왕씨가 기세등등하니까 좋다고 꿀 빨았잖아요. 옥새 이야기도 개인적으로는 뻥 같고(헌목황후 생각나죠?).--威光 (토론기여) 2018년 11월 14일 (수) 21:43 (KST)
그렇군요... 사실 읽다보면 한 왕조 때려치고 새로운 왕조가 나왔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긴 합니다. 어째 궁중에서 태어난 사람 보다 민간에 살던 후손들이 더 오래사는;--고려 (토론) 2018년 11월 14일 (수) 22:14 (KST)

올해의 위키인 후보 추천[편집]

Silverwiki 1.5.png 올해의 위키인 후보
귀하께서는 2018년 올해의 위키인 후보로 추천되셨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위키미디어 프로젝트를 위해 열심히 활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Motoko C. K. (토론) 2018년 12월 7일 (금) 23:12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