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현
탁경현 卓庚鉉 | |
출생일 | 1920년 6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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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사천군 서포면 외구리 (現 대한민국 경상남도 사천시 서포면 외구리) |
사망일 | 1945년 5월 11일 | (24세)
사망지 | 일본 오키나와 주변 해상 |
학력 | 리쓰메이칸중학교 교토약학전문학교 |
복무 | 일본 제국 육군 제6항공군 제51진무대 |
최종계급 | 대위(大尉)[1] |
탁경현(卓庚鉉, 1920년 6월 5일 ~ 1945년 5월 11일)은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이며, 조선인 출신 가미카제 특공대원이다. 일본식 이름은 미쓰야마 후미히로(光山 文博)이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1920년, 경상남도 사천군 서포면 외구리에서 태어났다.[2] 1929년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으며, 도쿄부의 리쓰메이칸중학교와 교토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취직했으나 일본의 병역법 개정으로 인해 1943년 일본 제국 육군 특별조종견습사관 1기생으로 입대한다.
이후, 만주 등에서 1식 전투기 연승 훈련 후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차출되어 가고시마현의 지란정에 있는 다치아라이 육군비행학교 지란분교소에 부임한다.
가미카제 출격 전날 밤에는 교육대 인근의 도미야 식당에서 도미야 도메에게 자신이 조선인임을 알리고, 고향의 땅 조선의 가요 아리랑을 불렀다.
생애 후반[편집]
1945년 5월 11일, 탁경현은 예정대로 250kg의 폭탄을 싣은 1식 전투기에 탑승하여 오키나와의 미군 주둔지를 향하여 출격하였고, 560km를 비행해 오키나와 해상에서 24살의 생을 마감했다.
사후[편집]
탁경현 귀향기원비[편집]
일본 배우 구로다 후쿠미의 주도로 2008년 탁경현의 위령비(귀향기원비)를 그의 고향인 경상남도 사천에 건립하려는 사업이 사천시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러나 사천시의회를 비롯하여 광복회 경남지부, 사천진보연합 등 시민단체와 여론의 반발로 제막식이 무산되었다.[3][4] 사천에 세워지지 못한 탁경현 귀향기원비는 이듬해인 2009년 10월 26일 경기도 용인시 법륜사에 세워졌다.[5]
탁경현 귀향기원비 건립 문제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2008년 5월 7일 "탁경현은 황민화교육과 침략전쟁의 희생자인 한편, 무고한 오키나와현민이나 연합군의 관점에서는 가해자인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6]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일본 제국 육군 소위였으나, 사망 후 2계급 특진으로 대위가 되었다.
- ↑ 이광표 (2007년 9월 27일). “꿈에 본 가미카제 조선 청년 16년간 눈에 밟혔어요”. 《사람속으로》 (동아일보). 2009년 9월 26일에 확인함.
- ↑ 김영신 (2008년 5월 7일). “강제징용된 조선 청년 탁경현 위령비 논란”. 《경남도민일보》. 2023년 2월 8일에 확인함.
- ↑ 지성호 (2008년 5월 10일). “경남 사천 시민단체 “가미카제 위령비 절대 안돼!””. 《한겨레》. 2023년 2월 8일에 확인함.
- ↑ 김종경 (2021년 8월 9일). “‘자살출격’ 탁경현, 아직도 착륙을 못하다”. 《용인신문》. 2023년 2월 8일에 확인함.
- ↑ “탁경현 위령비 건립에 대한 우리의 입장”. 《민족문제연구소》. 2008년 5월 8일. 2023년 2월 8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