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위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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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 ? ~ 기원전 104년? 103년?)는 위만조선의 관료로, 노인의 아들이다. '최'는 이름자로, 성씨는 알 수 없다. 노인의 '노'를 성씨로 혼동하여 '노최'라고 일컫기도 하나, '노인'은 이름자므로, 이는 잘못이다.[1]

개요[편집]

기원전 109년 전한이 위만조선을 정벌 할 때 아버지 노인과 함께 한나라에 투항하였다.

이계상(泥谿相) 이 모반하여 우거왕이 죽고, 대신 성기(成己)가 왕검성에서 항전을 할 때, 최는 전한의 좌장군 순체와 모의하여 우거왕의 아들 과 함께 백성을 선동하여 성기를 죽이고 위만조선을 멸망시켰다.[2]

기원전 107년, 무제로부터 열양(涅陽侯)에 책봉되었다.[3]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 또는 2년(기원전 103년)에 죽어[4] 시호(康)이라 하였고, 봉국은 폐지되었다.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사마정, 《색은》 권115: '여순如淳이 이르길: 상相은 그 나라의 재상이다. 노인路人은 이름자이다.…[후략]'(如淳云:「相,其國宰相。路人,名也…[후략])
  2. 사마천 “왕검성(王險城)이 항복하지 않으니, 고(故)로, 우거의 대신(大臣) 성기(成己)가 또한 모반하여, 다시 벼슬아치를 공격하였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과 노인의 아들 최(最)를 시켜 그 백성을 하소연하고 타일러, 성기를 죽이니 이로써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四郡)이 되었다.”/“王險城未下,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復攻吏。左將軍使右渠子長降、相路人之子最告諭其民,誅成巳,以故遂定朝鮮,為四郡。”
  3. 사마천 “최(最)는 아비가 죽어 공(功)을 가짐이 크므로 온양후(溫陽侯)가 되었다.”/“最以父死頗有功,為溫陽侯。”
  4. 한서에서는 태초 원년, 사기에서는 태초 2년이라고 한다.
선대
(68년 전) 열양장후 여승
전한의 열양후
기원전 107년 3월 임인일 ~ 기원전 104년? 103년?
후대
(봉국 폐지)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