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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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겹(王唊, ? ~ 기원전 105년)은 위만조선의 장군이다.[1]

개요[편집]

왕겹은 조선 장수로서 한나라 군대가 위만 조선의 수도 왕검성에 쳐들오자 항복하였다.[2]곧 평주후(平州侯)에 봉해졌으나[3] 3년 후에 죽었고, 후사가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다.

각주[편집]

  1. 이도학(李道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의 정보, 왕겹(王唊)”. 한국학 중앙연구원. 2014년 12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3월 18일에 확인함. 
  2. 사마천“조선 상(朝鮮相) 노인(路人)·상 한음(相韓陰)·니계 상 참(尼谿相參)·장군 왕겹(王唊)이 서로 참여하여 일을 꾸며 이르기를, “당초에 누선에게 항복하고자 하였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있고, 홀로 좌장군이 아우르고 거느리니, 전쟁은 점차 급해지고 있고, 더불어 싸우지 못할까 두려운데, 왕은 또한 항복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하였다. 한음·왕겹·노인은 모두 도망쳐 한(漢)나라에 항복하였다.”/“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唊相與謀曰:「始欲降樓船,樓船今執,獨左將軍并將,戰益急,恐不能與,(戰)王又不肯降。」陰、唊、路人皆亡降漢。”
  3. 사마천 “왕겹을 평주후(平州侯)에 [...] 봉(封)하였다.” /“封[...]唊為平州侯,”

참고 문헌[편집]

선대
(10년 전) 소섭매
전한의 평주후
기원전 108년 4월 정묘일 ~ 기원전 105년
후대
(봉국 폐지)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