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진 (1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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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진
Юрий Данилович Тен
1946년 북한 주둔 당시 소련군 장교 시절 가족사진
1946년 북한 주둔 당시 소련군 장교 시절 가족사진
북괴 인민 정부 문화선전성초대 제2부상
임기 1948년 9월 2일 ~ 1953년 9월 9일
주석 김두봉
수상 김일성
장관 허정숙(북괴 문화선전상)

북괴 인민 정부 문화선전성제11대 제1부상
임기 1953년 12월 1일 ~ 1954년 4월 12일
주석 김두봉
수상 김일성
장관 허정숙(북괴 문화선전상)

북괴 인민 정부 문화선전성제14대 제1부상
임기 1955년 3월 24일 ~ 1955년 9월 2일
주석 김두봉
수상 김일성
장관 허정숙(북괴 문화선전상)

이름
별명 다른 이름: 정율(鄭律, 정률)
신상정보
출생일 1918년 5월 5일
출생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프리모르스키 변경주 블라디보스토크
거주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사망일 2013년 6월 18일(2013-06-18)(95세)
사망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학력 소련 크즐오르다 사범대 노문학부 학사
경력 소련 태평양함대 직속 해병대 복무
강원 원산 인민위원회 교육부 차장
함남 인민위원회 교육부 차장
문예총 부위원장
김대 노문학부장
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정당 무소속
배우자 있음(일찍 사별함)
자녀 2녀
군사 경력
복무 소련군 해병대
조선인민군 해군
복무기간 1942년 ~ 1949년
최종계급 소련군 해병 대위(1945년)
조선인민군 해군 대좌(1949년)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상훈 소비에트 적기훈장
소비에트 명예훈장
소비에트 2급훈장

정상진(鄭尙鎭 또는 鄭尙進[1], 일명 정률(정율), 러시아 이름 유리 다닐로비치 젠, 1918년 5월 5일~ 2013년 6월 15일)은 소련군 출신의 북한 관료(교육자, 군인, 정치인 출신)로 나중에 숙청되어 소련으로 돌아갔다.[2][3]

생애[편집]

문화사절단 대표로 해외순방 당시 정상진(1955년, 가운데 인물)
문화선전성 제1부상 시절 정상진(1955년, 오른쪽에서 2번째 인물)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1937년 8월 제빵공장의 노동자였던 부친이 소련안전기관에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그는 부친의 죽음 이후부터 소련의 체제를 믿지않았다고 한다.[2] 이후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그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에 처해졌다. 1940년에 크즐오르다주 사범대학에서 학사 취득 이후 크즐오르다주 잘라가 쉬구역의 중등학교에서 문학 교사로 지내다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태평양 함대에 입대하여 웅진, 나진, 청진 등 상륙작전에서 활약하여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승전 후 소련군으로부터 석방권을 권한 받아 청진정치범들을 석방했다.[2]

해방 후 1945년 9월 19일에 소련 정치부의 지시로 원산항에 귀국하는 김일성을 마중했다. 그는 '김성주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김일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소련 정치부에 김일성은 없었다고 보고하면서 그가 김일성임을 알았다고 한다.[4] 그는 10월 19일에 있었던 소련군 환영대회는 소련의 각본이었으며,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모든 연설문은 소련에서 작성했다고 폭로하였다.[5]

김대 러시아 어문학과 학과장 직과 문학 및 예술협회 부회장과 북괴 인민 정부 수립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을 지냈고,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에 해당)을 역임했다.

이후 최승희, 홍명희 등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숙청되면서 1957년 소련으로 돌아가 타쉬켄트의 고급당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61년에는 크즐오르다와 알마타의 레닌기치(고려일보)의 편집부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1991년 소비에트 한인재단의 이사장, 1992년부터는 북한민주화 및 해방재단의 이사장직을 겸임했다. 1989년부터 여러 차례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3년 6월 15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6]

상훈[편집]

  • 적기훈장
  • 명예훈장(언론)
  • 2급훈장(세계2차대전 승리40주년 기념)

각주[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