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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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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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출생 1964년 12월 14일(1964-12-14) (52세)
대한민국 충청남도 보령군 ( 충청남도 보령시 )
직업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장르 팝 발라드
악기 보컬
활동 시기 1984년 ~ 현재
배우자 윤희중 (1991년 ~ 1998년)
레이블 로엔 엔터테인먼트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leesunhee.com

이선희(李仙姬, 1964년 12월 14일 (음력 11월 11일)[1]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충청남도 보령 출생으로 신광여자고등학교인천전문대학 환경관리학과를 나왔다. 인천전문대 1학년 재학 시절인 1984년 제5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 라는 곡으로 선배 임성균과 4막 5장 이라는 팀으로 데뷔하였고, 대상을 수상하였다. 탁월한 가창력과 무대 매너, 차분하고 모나지 않은 선한 이미지의 소유자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국민가수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여성 보컬리스트이다.

80년대 중후반을 휩쓴 여가수로 가창력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뤘던 대표적인 경우이다. 작지만 힘있는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완벽한 가창력으로 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또한 최초의 언니부대를 탄생시켰으며, 이미자와 패티 김의 뒤를 이어 한국 최고의 디바로 성장했다.

벽을 뚫을 듯 쨍한 맑은 두성 고음이 특기이며 동시에 자연스러운 진가성구 전환을 사용한 감정 표현에도 능하다. 역대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반열에 올라 있을뿐 아니라 역대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데뷔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현, 소향 등 젊은 세대 가수들과의 현재 가창력을 논할 때에도, 이미자, 패티 김 등 레전드 디바들과의 히트곡 등 음악적 업적을 논할 때에도 결코 빠지지 않는 국민가수이다. 수식어로는 작은 거인, 여가왕, 국민가수, 디바, 만년소녀 등이 있다.

작사와 작곡에도 능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일례로 영화 '왕의 남자'에 쓰였던 명곡 '인연'을 포함한 13집의 노래들은 전부 그녀가 작사, 작곡한 것이다. 그 이후 14집과 15집은 대부분이 자작곡으로 채워졌다. 그녀는 중학교 때 부터 조금씩 곡을 쓰긴 했으나 앨범에 넣지는 못했고, 1996년 발표한 10집 '라일락이 질 때' 부터 본인의 자작곡을 앨범에 수록하기 시작했다.

데뷔 이래 똑같은 외모, 똑같은 목소리를 유지해 오고 있는 유일무이한 가수로 진정한 자기 관리의 화신으로 평가받는다. 대표곡은 J에게, 아! 옛날이여, 갈바람, 괜찮아, 연인의 눈물, 알고 싶어요, 영, 사랑이 지는 이 자리, 나 항상 그대를, 아름다운 강산, 달려라 하니, 나의 거리, 한바탕 웃음으로,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겨울 애상,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왜 나만,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조각배, 비 오는 거리에 서서, 라일락이 질 때, 너에게 가면, 이별 소곡, 살아가다 보면, 이 노래를 빌려서, 인연, 사랑아, 여우비, 떠나지 마,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바람꽃 등이 있다.

생애[편집]

History 1 | 1984년, 작은 거인 이선희의 등장 1984년, 강변가요제에 파마머리의 동그란 안경을 낀 소녀가 등장했다. 작은 체구의 눈에 띄지 않는 외모를 한 그 소녀 이선희는 폭발할 듯한 가창력으로 강변가요제 대상을 거머쥐었고, 그것은 앞으로 가요계의 큰 획을 그을 작은 거인의 탄생을 예고했다. 당시 타 방송사에서 데뷔한 가수는 다른 방송사에 출연하지 못했던 관례를 깨고, 이선희는 MBC 가요제 출신이었음에도 불구, KBS의 높은 벽을 허물고 신인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기록했으며, 그다음 해에 발매한 정규 1집은 앨범 내에서 무려 6곡이 대히트를 치며, 그녀가 단순한 반짝 가수가 아님을 입증했다. 

History 2 | 따뜻한 목소리만큼 따뜻한 마음을 베푸는 사람 1986년 학생 가장 돕기라는 타이틀을 걸고 공연한 첫 리사이틀. 그 이후 수년 동안 학생 가장 돕기 및 장한 청소년 돕기 공연을 이어가며 그 수익금을 학생 가장들에게 기부했다. 소년소녀가장들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그 당시 그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건 이선희였다.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회계층을 향한 따뜻함이 남달랐던 그녀는 이후에도 위안부 할머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공연 등을 이어나가며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꾸준히 따뜻한 마음을 베풀었고, 그녀의 이런 선행은 팬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나눔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History 3 | 오빠 대신 언니! 80년대 최고의 인기가수 조용필의 오빠 부대를 위협했던 언니 부대. 어린 여중생 여고생들이 공연장에서 오빠 대신 언니를 외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던 이선희. 당시 언니 부대의 규모가 어마어마해, 이선희 회사에서 돈을 주고 사람을 동원했다는 유언비어마저 떠돌 정도로 언니 부대의 위력은 위대했다. 

History 4 | 뮤지컬로 하늘을 날다 1980년대 후반,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주제곡을 불러 청소년 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목소리였던 이선희는 그 인기에 힘입어 [피터팬], [오즈의 마법사], [박문수] 등의 어린이 뮤지컬에 출연하며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가창력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뛰어난 연기력까지 보여준 이선희는 세대를 뛰어넘어 당대 최고의 핫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History 5 | 노래의 감성을 글로 써 내려가다 폭발적인 가창력 속에서 남다른 감성으로 노래했던 이선희는 노래에 담았던 그 감성을 글로 써내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꿀 수 있다]라는 자작시집을 발간했다. 시집과 함께 발매된 낭송집은 노래를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당시 10대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대형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해 오랫동안 상위권에 랭크 되며,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History 6 | 전 세계 유명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초콜릿 CF로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장국영이 첫 내한했던 1989년. 장국영은 이선희와 'J에게'를 듀엣으로 열창했고, 듀엣 콘서트를 열었다. 그 인연으로 장국영은 추후 이선희를 홍콩으로 초청해 남다른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부모님이 이선희의 가창력에 반해 그녀에게 캐스팅 제안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그녀의 가창력이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History 7 | '원조' OST의 여왕 "나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달려라 하니] 하면 떠오르는 목소리! 바로 이선희다. 청량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극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만화영화 주제곡 히트의 물꼬를 튼 그녀. 이후, 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 [대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그리고, 영화 [왕의 남자],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작품 속 몰입도를 극대화 시키는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History 8 | 대중가수,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은 전혀 다른 장르로 인식되어 있던 시절, 이선희는 1990년 캐나다 몬트리올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들을 거리를 제공했다. 또한 장르불문!!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라면, 언젠가 한번쯤 꼭 서 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중가수 그 이상의 존재로 우뚝 섰다.

데뷔, 그리고 전성기[편집]

이선희는 1964년 12월 14일 보령에서 태어나 1984년 제5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과 선배 임성균 씨와 "4막 5장"이란 팀으로 참가하여 <J에게>로 대상을 수상하고 큰 관심을 모으며 데뷔하였다. 이선희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장욱조 음악 사무실에 찾아갔다가 한 작곡가가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악보를 '이거 제가 불러도 되느냐'고 말하고 주워 왔는데, 이 악보의 곡이 바로 <J에게> 였다고 한다. (이 작곡가는 이세건, 민해경의 <사랑은 이제 그만>을 작사/작곡 하였던 인물이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시한 매력으로 남성팬보다 여성팬을 더 많이 보유한 가수로도 유명했다. 일명 '언니부대'의 시초이다. 당시 이선희의 무대 영상을 보면 남자 아이돌의 무대에서나 나올 법한 여성팬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이선희의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가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유행할 정도로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다.

MBC 가요제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1월 25일 KBS 가요 톱텐에서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차지하였고, 84년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84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경이로운 점은 이 때까지 정규 앨범 한 장도 없이 강변 가요제 출전곡인 'J에게' 하나만으로 이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이 때 MBC-FM에서 'J에게'가 하룻동안 무려 16번 방송되면서 FM 라디오 하루 최다 방송 횟수 기록을 세운다.

1985년 첫 음반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고 그녀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 적인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송수욱/송주호) ,<갈등>(전 남편 윤희중/송주호), <소녀의 기도>(송수욱/송주호) 등 수많은 곡이 히트하며 등장과 동시에 KBS 가요 톱텐에 자신의 노래 7곡을 진입시키며 큰 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로 1985년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하고 발라드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그녀의 가창력이 빛이 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1985년 11월 2집 《갈바람》이 발매되면서 <갈바람>(정은이/남국인), <괜찮아>(박건호/이범희), <연인의 눈물>, <가난한 연인을 위하여>,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등이 인기를 모으며 TV가이드, 뮤직박스 1위로 선정되고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상, KBS 방송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갈바람이 인기를 구가하던 도중 "김연자의 <사랑의 미로>와 후렴 부분이 같다." 라는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곡 일부가 수정되어 다시 발표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1986년 3집 앨범 《알고 싶어요》가 발매되었다. 이후 1986년 대표곡 <알고 싶어요>(황진이.양인자/김희갑/김용년)가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하며 골든컵을 두 번째로 차지하고 한 달 방송 횟수 107회, MBC 라디오 음악차트에서 15주 1위 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 외 <영>(권혁찬/남국인), <어둠은 걷히고>(정은이/남국인/김용년), <청아한 사랑>등이 히트했다. 또한 학생가장 돕기를 위한 전국 투어를 계속 진행했다. (잘못 알려졌는데 <알고 싶어요> 곡을 양인자 선생과 김희갑 선생이 만든 후 소설가가 허락을 받고 소설 "황진이"에서 노래 가삿말을 인용해서 한시로 신문에 실었는데, 이게 반대로 알려져서 선후 관계가 바뀌어 알려진 경우가 많음. 편곡은 정은이/남국인, 양인자/김희감 전담 편곡가 김용년이 하였다.*)

이선희는 1988년 4집 《사랑이 지는 이 자리》에서 <나 항상 그대를>(김민정/송시현/변성룡)으로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로 3번째 골든컵을 수상했다. 또한 70년대 신중현과 뮤직 파워(26인조 악단)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하며 폭발적인 가창력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게 되고, 그 밖에도 <사랑이 지는 이 자리>(송시현), <안녕>, <길을 떠나자> 등이 히트하게 되었다. 다른 방면으로는 만화 주제가 <달려라 하니>(원작자 이진주/방용석)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에서는 <나의 거리>(전 남편 윤희중)가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로 4번째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그 외 <한바탕 웃음으로>가 1990년에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1989년, 1990년 한 앨범으로 2년연속 골든 디스크상을 차지했다. 그 외에 <겨울애상>(김요월/송시현), <불꽃처럼>(김범룡), <오월의 햇살>(윤항기) 등의 노래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발매하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송시현), <그리운 나라>(송시현), <왜 나만> 등이 히트했다. 5집《한바탕 웃음으로》의 수록곡 <한바탕 웃음으로>(송시현)가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으로 KBS 방송가요대상 6년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을 했다. 전성기 시절 이선희는 발매되는 앨범마다 대표곡 뿐만 아니라 앨범의 모든 노래가 히트하는 쾌거를 안았다.

데뷔곡부터 6집까지 매 앨범마다 KBS 가요톱10 1위곡을 배출하며, 가요톱10 골든컵(5주 연속 1위) 수상횟수 역대 2위(4회), 1위횟수 역대 2위(26주),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5년 연속 수상 등 빛나는 최전성기를 보낸다.

이렇게 80년대 중후반을 휩쓸며 승승장구를 달리다 갑자기 1991년 채 서른이 안된 나이에 서울시의회 시의원 선거에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나와 마포구에 출마하여 당선, 활동하기도 했다. 이는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새한국당을 창당한 이종찬을 따라 역시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여 야당 의원으로 끝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역시 이종찬이 소속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후일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 발언한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 부모님 없이 자란 친구로 인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시의원이 되면 그런 부분에서 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출마했던 것으로, 세비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위기, 극복, 그리고 부활[편집]

90년대로 접어 들면서 이선희에게도 고비가 왔다. 7집《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 떠나신 후에> 등이 인기를 끌게 되긴 하지만 이전만큼의 인기는 끌지 못하고 상업적으로는 가장 저조한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말처럼, 변화된 가요계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1992년 8집 《조각배》를 통해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끌었다. 8집 앨범은 이선희 앨범의 수작으로 평가 받았으며, 현재에도 색다른 이선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8집에서 이선희는 상당한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타이틀곡 <조각배>(조동배(공동 작사/작곡))와 <초원>, <작은 연가>, <성주풀이>(남도 민요/김종유 편곡), <한네의 이별> 등을 이선희만의 느낌으로 소화해 냈다.

1994년 9집《한송이 국화》는 락의 느낌을 가미하며 새로운 이선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송이 국화>를 시작으로 <Bluse Cafe>, <기분이 좋아>, <비오는 거리에 서서>, <아쉬움> 등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1996년 10집 《First love》(대표곡 <라일락이 질 때>)는 이선희가 직접 모든 노래의 작사, 작곡에 참여하며 큰 음악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회색 도시>는 락의 느낌으로 앨범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며, <성안의 아이>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또한 <아카라카치>는 삶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응원 구호를 접목시키며 가창력까지 돋보이게 해 현재까지도 응원가로 쓰인다. 이 앨범 이후로 이선희는 직접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이선희는 1998년 11집 《Dream of Ruby》(대표곡 <낯선 바닷가에서>) 뮤직 비디오 촬영 중 부상을 당하였다. 이 앨범은 큰 인기는 끌지 못했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팬들에게는 따뜻하게 다가왔다. 가성을 써서 부드럽게 고음을 무마하고 또 다른 면에서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만든 <너에게 가면>이라는 노래는 엄청난 고음을 선보이며 여전한 가창력을 나타냈다.

유희열, 박진영, 김종서 등 젊은 세대들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도운 12집 《My Life+Best》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2001년 이선희는 MBC 10대가수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다. <이별소곡>(매니저 권진영/이선희)은 조용한 느낌을, <이 노래를 빌려서>는 슬픈 감정을, <살아가다 보면>은 삶에 격려와 희망을 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 외 1988년에 발매했던 <나 항상 그대를>이 영화 "가문의 영광"에 삽입되며 젊은 층들에게도 인기를 모았다.

이후 앨범 활동은 4년 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이승기"라는 가수를 발굴해냈다. 직접 가수 제의를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가수로 데뷔시켰다. 또한 행사에도 동행하며 콘서트에 게스트로도 초대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성공시켰다. 이후 이승기는 가수로서는 물론 예능인으로서 <1박 2일>, <강심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며, 배우로서 <소문난 칠공주>, <찬란한 유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의 주역이 되었다. 현재는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방송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큰 성장을 한다.

2005년 이선희가 모두 작사,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면서 대표곡 <인연>(이선희/편곡:최태완)이 천만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며 큰 인기를 얻어 화려한 복귀에 성공하게 되며, 곡 <장미>(이선희)는 이선희의 싱어송 라이터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 외 <왜?>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선희는 그 동안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면서 자신을 담금질했다. 그 결과 2005년 13집 '사춘기' 앨범의 전체적 퀄리티가 역대 이선희의 앨범 중 최고로 평가받을 만큼 훌륭하여, 이선희가 왕년의 인기가수를 넘어 21세기에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창창한 현역이자 훌륭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시발점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선희는 돌연 미국행을 선택하며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 동안 잊혀질 것 같았지만, 2009년 귀국해 14집 《사랑아...》(매니저 권진영.이선희/이선희)를 발매하며 여러 방송과 행사에 출연했다. 특히 KBS의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역대 최고의 라이브다", "불후의 명곡다운 불후의 명곡을 본 것 같다", "이것이 바로 가수다" 라는 등 찬사를 받으며 <국민가수>, <20세기 최고의 디바>, <폭발적인 가창력> 이라는 명칭이 다시 한 번 떠올려지게 했다.

계속적인 음반 발매와 콘서트를 통한 활동으로 2010년 SBS TV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OST <여우비>와 <내가 사랑할 사람>, 《대물》의 OST <떠나지 마>를 불러 이선희 특유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OST계의 대모라는 칭호를 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편집]

이선희는 2011년 2월 3일에 세계적인 가수들만 설 수 있다는 뉴욕 카네기 홀 중에서도 가장 큰 메인 공연장인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움'에서 대한민국 대중 가수로는 4번째로 단독 공연을 가졌다.[2] 2800여 석에 이르는 좌석 전석 매진이라는 큰 기록을 세우며 한국인으로서는 최다 관객 동원으로 뉴욕 한인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2011년 5월 21일5월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섰다.[3][4]

2011년 9월부터 방송된 MBC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시즌 2의 멘토로 출연하였다. 멘티 구자명과 배수정을 모두 결승에 올렸으며, 멘티 구자명이 우승해서 국민 멘토로 불리며 또 다시 인기를 모았다.

2014년 3월 25일 이선희는 30주년 기념곡으로 '그 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곡을 발표했다. 4월 첫째 주 음악중심에서 2위를 차지하였는데 동시대 여가수들과 비교해 보면 가히 대단한 성적이다.

2014년 3월 29일, 4월 5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전설로 출연했다. 이선희의 명성을 반증하듯 기라성 같은 후배 가수들(임창정, 박정현, 윤민수, 신용재, 바다, 홍경민, 더원, 알리 등)이 경연 가수로 출연했다. 대중의 관심도도 높아 2회분 모두 무한도전을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였다.

2014년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마돈나의 'Like A Virgin',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Woman In love'를 열창했다. 휘트니의 노래에선 특유의 성량과 고음, 마돈나와 바브라의 노래에선 특유의 무대매너와 음색이 돋보여서 듣기 좋았다는 후기가 쏟아져 나왔다.

2014년 8월 23일 히든 싱어 시즌3 첫방송에 출연하여 모창능력자를 누르고 우승하였다. 이 방송분은 시청률 7.181%로 왕중왕전을 제외한 히든 싱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동시에 동시간대 공중파 포함 전체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10월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가수 부문에서 조용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16년 4월 SBS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하였다. 정규 편성 이후 초대 우승자가 되었으며, 결국 5연승의 쾌거를 이루고 규정상 하차를 하게 되었다.

2016년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OST 작업에 참여한다고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고, '바람꽃'이라는 OST를 내놓으며 대중의 극찬과 찬사를 받았다.

일화[편집]

마이클 잭슨 부친인 조 잭슨으로부터 미국 데뷔하자고 러브콜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아시아판 잭슨 파이브를 만든다고 조 잭슨이 한국에 직접 와서 오디션 합격하고 안전지대가 만든 앨범까지 다 완성된 상태였는데 결국 시의원을 하게 됐다고 한다.

1992년에는 8집 앨범에서 위안부를 기리는 노래인 '어느 조센삐의 극락'을 타이틀곡으로 실었다. 그러나 노래 제목의 조센삐라는 단어가 되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고발 당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8집 앨범의 타이틀곡을 '조각배'로 변경하고 제목도 '어느 할머니의 극락'으로 바꾸면서 일단락되었다.

1998년에는 11집 앨범 수록곡인 '낯선 바닷가에서'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가 금속으로 된 전등이 기울어 쓰러지면서 머리를 직격하는 바람에 전치 6주 이상의 부상을 입고 수술까지 받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이것 때문에 활동 복귀도 취소되는 등 본인에게 가장 큰 흑역사다. 당시 연예관련 프로에서 이선희가 전등에 머리를 맞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 엄청난 비난을 듣기도 했다.

2001년 5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였던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 연출된 상황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심지어 먼저 인사를 건네도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굴욕을 겪기도 하다가, 게릴라 콘서트 현장에는 9217명의 관객이 모이는 선방을 해낸다.

동안으로 유명하다. 우현, 안내상, 한석규, 정진영과 동갑이고, 김상중, 조재현, 김국진, 김태원보다 한 살 많다. 오죽하면 강변가요제 때부터 나이를 속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선희의 아버지는 스님(대처승)이었고, 불교 음악인 범패 전수자였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졸업 즈음까지 큰 절에서 자랐기 때문에 많은 스님들과 함께 지내며 스님들의 불경 독송을 따라하곤 했다고 한다. 어린시절 이선희는 아버지가 스님이고 절에서 산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선희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홍콩 영화배우이자 톱스타였던 故 장국영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장국영이 1989년 내한했을 때 함께 합동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었다. 당시 MC가 장국영에게 이선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묻자 장국영 왈 귀여운 여동생 같다고 했다. 이후 홍콩에 초대받아 장국영이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주윤발 등이 참석한 선상파티에도 초대되어 즐거웠다고 훗날 추억하기도 했다. 장국영이 홍콩에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는걸 보면 장국영이 이선희를 마음에 들어한 모양이다.

제자들도 길렀는데 이선희의 첫 제자가 바로 조정린이었다. 모창대회에서 조정린을 보고 목소리가 예뻐 스타성과 실력을 겸비한 가수로 키우려 했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는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타성과 실력을 갖춘 그 다음 타자가 이승기였다. 이선희가 소극장에서 밴드 공연을 하던 이승기를 우연히 보고 바로 제의를 했는데, 처음에 이승기는 이선희가 누군지 몰라 거절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 바로 그 이선희가 제의했다는 사실을 안 이승기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이승기에게 어서 가서 사과드리고 제자로 받아 달라고 말씀드리라고 했고, 그렇게 이승기는 이선희의 제자가 되었다.

그 밖에 이선희가 유난히 아끼고 좋아하는 후배가수들로는 홍경민, 백지영 등이 있다. 홍경민은 불후의 명곡에서 밝혀지기로는 자신과의 약속을 깬 적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얘기를 안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홍경민은 '그때 김창환 작곡가와 미팅이 갑자기 잡혔다'며 그 자리에서 받은 곡이 <흔들린 우정>이었다고 했다.

콤플렉스로는 다리가 못생겨서 치마나 드레스를 입지 못한다고, 한번 콘서트 때 드레스를 입었더니 관중들이 실망해서 그 뒤로 안입고 있다고 한다.

예외적으로 MBC의 어린이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도로시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때에도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미 30대였을 텐데 도로시라니, 무서운 동안이다.

1992년 음반제작자 겸 자신의 매니저와 결혼하여 딸을 낳지만 결혼 6년만에 파경, 이후 2006년 6살 연상의 건축사업가와 미국에서 재혼했다. 

2016년 4월부터 SBS방송국 프로그램인 판타스틱 듀오에서 예진아씨란 예명으로 함께하는 김예진 양과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초대 우승을 포함한 5연승을 이룬 뒤 규정상 하차를 했다.

자신의 노래에 '인연', '운명'과 같은 가사를 자주 사용한다. 13집 사춘기의 타이틀곡 제목이 아예 인연인 것도 그렇고, '인연'과 '운명'이라는 가사가 '인연',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바람꽃' 등의 노래에 전부 들어가 있다.

가사를 자주 개사하여 부른다.

1. '나 항상 그대를'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돌아와 그대 내게 돌아와 난 온통 그대 생각뿐이야'에서 2000년대부터 '그대여 내게 돌아와 난 온통 그대 생각뿐이야'로 굳어졌고, '그대여 돌아와요 나에게' 등의 바리에이션도 있다.

2. '인연'의 후렴구는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와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의 두 가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날의 기분에 따라 후렴구의 가사를 원래대로 부르기도 하고, 전자 또는 후자로 통일시켜 부르기도 한다.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등의 바리에이션도 있다.

3.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후렴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와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서로를 만나'가 있는데, 후렴구의 가사 원래대로 부르기도 하고, 주로 전자로 통일시켜 부르기도 한다.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을 '우리 사랑 인연이었다면'으로 개사하여 부른 적도 있으며, 마지막 부분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을 전자로 통일하여 마무리하기도 한다.

평가[편집]

80년대 여가수의 대중적 인기의 최고봉은 단연 이선희이다. 다만 앨범 발매 및 활동주기가 지금보다 길었던 당시 환경상, 정수라, 나미, 이은하, 이상은 등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많은 가수들 중 2000년대 이후에도 히트곡을 낸 것은 조용필과 이선희 정도에 그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데뷔한 지 30주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선희는 '현역' 여자가수들과 수없이 비교되고 회자되는 당대의 톱스타이자 전설의 '현역' 보컬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 이견도 있는데, 다른 여가수의 팬들은 당대 평가는 서로의 전성기가 엇갈리며 서로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최소한 백중세였는데 이선희가 201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고평가 받는다고 주장하곤 한다. 거기다 이승기를 발굴해 낸 스승이라는 점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를 넓히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지는 못한다.

이선희가 당대 여자가수 중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하는 쪽이 주로 드는 근거는 당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던 가요순위 프로그램 KBS 가요톱10 수상 실적이고, 최고까지는 아니고 최고 인기 여가수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쪽은 이선희가 당시 양대 방송사 가요대상인 KBS 가요대축제, MBC 가요대제전에서 대상 수상실적이 없다는 점을 주로 이야기한다.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80년대 중반에서부터 후반까지가 이선희가 전성기를 보낸 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80년대 극후반부터는 이선희의 인기가 꺾였다고 할 수 있지만, 이선희는 현대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유일무이한 동시대의 가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엄밀히 따지자면, 80년대 이선희보다 인기가 많았던 여자가수는 없었다. 80년대 인기가 많았던 여자가수는 심수봉, 주현미, 김완선, 이상은, 정수라, 나미, 김수희, 이지연, 유미리, 혜은이, 양수경, 민해경, 이은하, 임희숙, 장미화, 최진희, 노사연, 신형원, 윤시내, 양희은, 김연자, 조갑경, 신효범 등 무수히 많지만, 이 중에서 가요 프로그램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것은 이선희이다. 또한 그 중 유일하게 홍당무라는 이름의 팬클럽이 있었고, 조용필 팬클럽과 함께 가장 큰 팬덤을 보유하였다.

2017년, 데뷔 30년이 지난 현재에 이선희보다 히트를 친 동시대 여자가수는 없다. 데뷔 20주년, 30주년 기념 콘서트는 커녕 10주년 기념 콘서트라도 개최했던 동시대 여가수도 없다. 또한 21세기 들어서 '히트곡' 이라고 말할수 있는 곡을 낸 가수는 이선희가 거의 유일하다. (인연, 그 중에 그대를 만나) 이것이 바로 이선희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한결같음이다.

이선희는 음원, 음반 두 부문 모두에서 현재도 대단한 파워를 자랑하며, 콘서트 티켓팅 또한 이선희 말고는 동세대의 여가수들 중에서는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한 가수는 없다. 권위 있는 세종문화회관 대공연장을 사용할수 있는 가수는 더더욱 없다. 2014년 이선희가 속한 후크엔터테인먼트의 수익은 그녀의 콘서트에 힘입어 전해 대비 1,300% 신장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 잘한다는,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내용을 포함한 모든 순위에서 이선희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한 여자 가수는 없다. 뛰어난 음악적 업적을 남겼거나, 인기가 많은 레전드를 가리는 순위에서는 이미자와 패티 김이 유일하게 이선희 윗순위를 기록하기도 한다.

"국민가수" 라는 호칭을 받을 만한 가수는 여자가수 중에선 이선희가 거의 유일하다. 이미자, 패티김은 너무 옛날이라 젊은층이 잘 모르며, 심수봉은 국민가수라고 하기엔 음악의 장르가 다양한 층에게 사랑받기엔 조금은 제한적일 수가 있다. 그들은 각각 트로트, 스탠다드 팝, 성인가요의 디바라고 평할 만하다.

아직도 대한민국 최고여성보컬, 국민가수, 여가왕, 가요계의 여제 등의 칭호를 받는 가수는 이선희, 이미자, 패티김 등 밖에 없다. 또한 80년대 대부분의 여자가수들이 활동시기에 비해 가창력이 퇴보하였지만 이선희는 노래가 더 좋아졌다. 대중들과 가요계 선배, 동기, 후배들 모두가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진정한 최대의 장점이라고 인정한다. 이 부분이 이선희가 여제라는 말을 듣는 가장 큰 이유이다.

2014년 불후의 명곡, 힐링캠프, 히든싱어를 통해 이선희의 시청률 파워를 입증했고 단독콘서트가 공중파 방송으로 나온 가수는 조용필, 이선희 정도에 불과하다. 거기다 2015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또한 이선희 편은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세계적인 무대인 미국의 '카네기홀'의 메인공연장에서 단독콘서트를 가진 가수는 대한민국에서 조용필, 이미자, 패티김뿐이다. 그 곳에서 단독콘서트를 진행했으며, 좌석 또한 당연히 전석 매진이었다.

음악적 능력[편집]

압도적인 성량의 소유자. 노래할 때 소리가 커질수록 마이크가 입에서 멀어지는걸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계가 고장난다고 한다. 이런 성량 때문에 그에 관련된 일화가 많은데 전남대학교 운동장에서 무대를 가졌는데 그 소리가 건물 두개를 뚫고 도서관까지 들렸다는 일화도 있고, 2002년 월드컵 끝난 후 광화문 일대에서 국민대축제를 할때 세종로 사거리에서 공연 구경하던 사람들은 유일하게 이선희 노래소리만 들리더라는 일화도 있다.

한 누리꾼은 자신이 군악대로 복무 중 행사를 나갔을 때 이선희가 초청 가수로 왔는데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다 부대 음향 앰프 하나를 날려 먹었다고 증언했다. 아예 신문에 까지 나올 지경이니 말 다했다. 성량이 누가 듣기에도 엄청나기 때문에 성량으로는 이견 없이 대한민국 최고로 평가된다.

또한 성량이 좋을 뿐더러 목소리가 무척 맑고 발음이 정확한 가창 스타일을 보여준다. 고음역대에서도 파워와 함께 정확한 발음을 구사할수 있는 가수는 무척 드물다. 노래란 멜로디에 가사를 실어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인데, 전달이 우선 정확해야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야외 무대에서 이선희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섬세함과 맑은 음색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음색의 경우 극도로 맑은 톤인데, 이선희 본인은 탁하고 허스키한 음색을 부러워하는 기색을 비추기도 했다. 그런데 맑은 것도 이 정도로 맑으면 오히려 개성일지도 모른다. 이선희의 팬들 중에는 이선희의 이 맑은 음색을 더욱 좋아하는 경우도 많고, 이선희도 최근으로 올수록 성량과 고음보다는 음색과 감성을 강조하는 노래를 더욱 많이 부르는 추세이다.

기본적으로 80년대에 데뷔한 가수이기 때문에 대표곡들은 8비트 기반의 노래들이고, 또 따라서 현대적인 청자들에게는 올드하게 들릴 수 있다. 80년대 이전의 레전드급 가수들의 노래들이 다소 촌스럽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 8비트 기반의 리듬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선희의 놀라운 점은 90년대 이후 16비트 기반의 리듬감을 요구하는 노래들도 아무렇지 않게 불러낸다는 점으로,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00년대 이후로는 R&B 등 리듬을 더 쪼개는 곡들도 부르고 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들은 80년대 곡들이 많다.

이선희하면 파워풀한 가창력만 떠올라서 가려지기 쉽지만 이선희만큼 다양한 음악을 한 뮤지션도 많지 않다. 국악풍의 '조각배' 등 8집 전곡, 13집에 실린 모던락 스타일의 자작곡 '왜?', 싸이의 곡에 피쳐링한 '안녕히', 타이거 JK가 피쳐링한 14집 수록곡 'You Too' 등이 그 예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들어보면 음악적 실험, 도전과 발전을 위한 노력, 점점 성숙해지는 기량이 함께 묻어난다.

또 이선희의 대단한 점은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도 나이가 들다보면 목이 상하게 되는데 이선희는 먹는 것도 일일이 주의할만큼 목관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지금도 예전 목소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 진정한 자기관리의 화신이라고 할만하다.

30주년 앨범의 타이틀인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절정 부분 브릿지에는 F5라는 어마어마한 고음이 있는데, 그걸 또 라이브에서 완벽하게 소화한다. 고음도 고음이지만 이 노래, 가뜩이나 개마고원처럼 고음이 이어지는 후렴부에 숨 쉬는 데가 없는 노래인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이선희는 호흡을 정말 잘 쓰는 가수이다. 라이브에서도 호흡소리가 거의 안 들리게도 노래에 따라 섞어 쓰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호흡소리가 안들리게 하는건 무척 어렵다. 다른 가수들이 그녀의 노래 중 몇곡을 원곡 그대로 부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선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선희는 이 정도가 한계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엄청난 성량, 음역대, 정확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지만 노래에 적절한 감성을 담아내고 전달하는 데는 약하지 않긴 하나 그리 강하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정서의 표현력이나 전달력이 강하거나 독특한 나미나 정수라, 주현미 등과 비교해 볼 때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평가가 있지만 그러나 이견 없이 역대 대한민국 가수 중 최고의 가창력과 성량을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가수, 여가왕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완벽에 가까운 자기관리 능력은 대한민국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음반 목록[편집]

정규 음반[편집]

OST 참여 앨범[편집]

기타 비정규 앨범[편집]

CF 목록[편집]

역대 수상 및 활동[편집]

시상식[편집]

연도 수상 및 활동내역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 4월 27일 뮤지컬 '피터팬' 주인공 피터팬 역 출연
  • 6월 20일 서울특별시의회 시의원 당선
  • 7월 [7집 앨범]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출반 (서울음반)
1992년
  • 8월 [8집 앨범] '조각배' 출반 (서울음반)
1993년
  • 4월 동요 앨범 '이선희 애창동요' 출반
1994년
1995년
1996년
1998년
  • 5월 어린이 마당극 '박문수' 출연
  • 11월 2일 [11집 앨범] 'Dream of Ruby' 출반 (예당음향, cream)
1999년
2001년
2005년
  • 4월 6일 [13집 앨범] '사춘기 (四春基)' 출반 (EMI), 20주년 기념콘서트 실황앨범 출반
2009년
  • 2월 25일 [14집 앨범] '사랑아...' 출반 (Mnet), Best of Best 라이브 앨범 출반
2010년
  • 8월 11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OST Part.1] '여우비' 발매
  • 9월 8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OST Part.5] '내가 사랑할 사람 (Piano Ver.)' 발매
  • 11월 3일 [대물 OST Part.5] '떠나지마' 발매
2011년
2014년

가요 프로그램 1위[편집]

연도 수상 내역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같이 읽기[편집]

각주[편집]

  1. http://www.leesunhee.com/RBS/Fn/FreeForm/View.php?RBIdx=Ver1_8 프로파일 참조
  2. 권수빈 (2011년 1월 19일). “이선희 한국가수 4번째 카네기홀 공연, 이서진-이승기 미국행 지원사격”. 뉴스엔. 2011년 5월 24일에 확인함. 
  3. 김현록 (2011년 5월 6일). “이선희 콘서트..2주앞서 전회·전석 매진”.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011년 5월 24일에 확인함. 
  4. 〈`2011 이선희 콘서트〉를 SBS에서 방송하였다. (방송일시 : 2011년 7월 11일 오후 11시 15분 ~ 12시 50분)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