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구 (19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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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구
출생 1903년 11월 1일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경상남도 동래
사망 1986년 1월 25일 (82세)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 일본 메이지학원 신학부
미국 프린스턴 신학 대학원
에딘버러 대학교 대학원
직업 대학총장, 목사, 교수

윤인구(尹仁駒, 1903년 11월 1일 ~ 1986년 1월 25일)는 경상남도 부산 출신의 대한민국의 종교인이자 교육자이다. 부산대학교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이다.

1956년 부산대학교 중심에 채플 건물을 세우다. 윤인구 설계

생애[편집]

윤인구는 '독립운동을 후원했던 영남최고의 가문' 부 윤상은, 모 박영자의 장남으로 1903년 출생하였다. 16세에 3.1 운동 삐라 구포로 배달하여 동래고보에서 퇴학을 당했으며[1], 이후 일본 명치학원 신학부, 메이지 신학대학과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영국 에딘버러 신학대학원을 수료하였다. 특히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하리라"로 삼고, 진리로 많은 그시대의 청년들에게 진정한 진리안에서 자유를 획득하게 하는 교육적 종교적 소명의 길을 걸어갔다.

윤인구가 일본 메이지 신학대학생 시절, "진리는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앨범에 붓글씨로 적어 간직하였다.

귀국 후 29세(1931)의 나이에 경남 3대 교회 중 하나인 진주교회 목사로 부임하였고, 32세(1935년) 마산복음농업실수학교 교장으로 부임 농촌교회 사역자와 농촌지도자 양성을 꾀한 것은 개인적 사역에서 민족인재 기르기로 방향을 전환한 셈이었다. 38세(1941)에는 조선 신학원을 설립하였고, 일제 말기 일제의 민족 지도자 예비 검속으로 치안유지법 등 7 개의 죄목으로 50일간 용산 유치장에서 수감되었다[2]. 해방 직후 미군정과의 치열한 협의를 통해 국립부산대학을 설립하기로 합의하였으며, 흩어진 대학 설립 기성회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부산시민의 힘을 통합하여 마침내 1946년 5월 15일에 국립부산대학을 개교하게 되었다[3]. 이는 해방후 설립된 첫 국립대학이자 민립대학이 되었다. 시민들의 힘으로 대학의 설립자금을 모으고 국가에 기증하여 해방 이후 우리나라 첫 국립대학교가 태어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6.25가 터지자 피난 온 대학을 하나로 모아 전시 연합대학을 만들어 대학의 명맥을 이었으며, 종전 이후 1953년 종합대학 승격 후에는 부산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임명받았다[4]. 당시 미군 군수기지 사령관 위트컴 장군과 만나 그림 (대학배치도) 한 장을 팔고 지금의 대학부지 (당시 벽촌인 동래군 북면 장전리, 지금의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50만평을 받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5]. 이는 장군이 이승만 대통령과 경상남도 도지사를 설득하여 무상으로 기증 받게 해 준 것이었다. 이 부지 위에 구 대학본관 (현 부산대 인문관)과 무지개문[6]을 건립하였고

윤인구가 디자인한 부산대학교 인문관에 그가 평생 노래하던 하늘의 광명이 임한 것을 표현함

이는 대한민국 문화재 641호와 642호로 등록되었다[7]. 광복교회, 소정교회 등을 설립하였으며, 연세대학교의 제3대 총장도 역임하였다[8].

학력[편집]

경력[편집]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1. “부산이 낳은 인물 윤인구 박사 (1) - 한국기독신문”. 2017년 8월 20일에 확인함. 
  2. 방, 덕수. 《윤인구 박사 그 참다운 삶과 정신》. 
  3. “부산대학교”. 2017년 8월 18일. 
  4. “부산대학교”. 2017년 8월 18일. 
  5. “박창희 대기자의 人香萬里(인향만리) <2-1> 지역 정신을 세운 사람들- 부산대 초대총장 윤인구(上)”. 《국제신문》. 2017년 8월 20일에 확인함. 
  6. “부산대학교 무지개문 및 구 수위실”. 2016년 3월 15일. 
  7. “교수신문”. 2017년 8월 20일에 확인함. 
  8. “연세대학교 역대총장”. 2017년 8월 23일에 확인함. 
제1대 부산대학교 총장
1954년 12월 - 1960년 5월
후임
문홍주
전임
고병간
제3대 연세대학교 총장
1961년 11월 - 1964년 8월
후임
박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