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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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콤마신약성경 요한의 첫째 편지 5장 7절에 나오는 부분이다. 삼위일체를 명시하는 내용이다.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흠정역 성경 요한일서 5장 7절)[1]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의 성경 초판에는 없었으나 2판에는 들어가 진위 논란이 있다. 한국 개신교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반영하지 않았다.[2]

요한의 콤마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영어 킹제임스 성경).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킹제임스 흠정역).

[역자 주: 개역성경은 원래의 6절을 둘로 나누어 마치 6절과 7절이 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거기에는 흠정역 성경의 7절이 없다.]

(요일 5:7, 개정)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요일 5:8, 개정)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이 구절은 보통 ‘요한의 콤마’(Johannine Comma)라 불리며 대다수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성에 대한 훌륭한 증거이며 우리의 성경에서 반드시 유지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이 구절의 교리적 중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이 구절의 확실성을 증명하는 외적 증거와 내적 증거 때문이다.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비록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요한의 콤마는 몇몇 증거들에서 발견된다. 요한의 콤마는 629(주후 14세기), 61(주후 16세기), 918(주후 16세기), 2473(주후 17세기) 그리고 2318(주후 18세기)에 들어 있다. 또한 221(주후 10세기), 635(주후 11세기), 88(주후 12세기), 429(주후 14세기) 및 636(주후 15세기)의 난외에 들어 있다. 현존하는 요한일서 5장의 사본들 중에서 이 콤마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 500여 개나 된다. 그러므로 공인 본문에서 발견되는 본문이 그리스어 사본들의 증거 면에서 후대 사본들의 지지를 받는 소수의 본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본문을 가진다는 사실이 그 구절이 원본의 본문이 아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비평 본문은 ‘Iesou’(예수의)라는 단어가 공인 본문 요한일서 1장 7절에 있는 ‘Iesou Christou’(예수 그리스도의)를 대신하는 진짜 본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Iesou’(예수의)를 지지하는 사본은 24개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것은 소수의 본문이다. 반면에 공인 본문에서 발견되는 ‘Iesou Christou’(예수 그리스도의)라는 본문은 무려 477개 사본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일서 2장 20절에서 ‘pantes’(모든)라는 본문은 단지 12개 사본의 소수 지지를 받지만 ‘panta’(모든 것)라는 본문은 491개 사본들의 다수 지지를 받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평 본문은 그 구절에서 다수의 본문이 아니라 소수의 본문을 선호한다. 이런 현상은 요한일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서 생기는 공통 현상이다. 그러므로 간단하게 어떤 본문이 소수의 사본들에 있기 때문에 원본의 본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비록 그리스어 본문의 증거는 약하지만 요한의 콤마에 대한 라틴어 본문 증거는 매우 강하다. 요한의 콤마는 그리스어 사본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라틴 사본들의 대다수에 들어 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요한의 콤마가 제롬의 원본 라틴 벌게이트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만 외적 증거는 그것이 분명히 그 성경의 일부분임을 보여 준다. 제롬은 구 라틴 역본들이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요한일서 5장 7절을 포함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제롬의 인용문은 그리스어 공인 본문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구 라틴 본문 역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라는 진술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른 교부들도 요한의 콤마를 인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키프리안(주후 258년)이 그 콤마를 알았을지 의문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용문은 확실하게 그가 이것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키프리안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주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마찬가지 사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에 대해서도 ‘이 세 분이 하나이다’라는 기록으로 확증된다.” 또한 프리스킬리안(주후 385년)이 이 콤마를 인용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요한은 ‘땅에서는 물과 육체와 피 이 셋이 증언을 하며 이 셋은 하나이다. 하늘에서는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 증언하시며 이 세 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를 반대한 아리우스에 대항하기 위해 무명의 작가가 수집한 ‘바시마둠’(Vasimadum, 주후 380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복음전도자 요한은 ‘하늘에서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 증언하시며 이 세 분은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카씨안(주후 435년), 카씨오도루스(주후 580년)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 등장한 아프리카와 서방 지역의 다른 감독들 다수가 요한의 콤마를 인용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이 그리스어 증거를 제외한 다량의 고대 본문들의 지지를 받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내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요한의 콤마 구조는 양식 면에서 확실히 사도 요한의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언급한다. 만약 요한일서 5장 7절이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8절의 해석이라면 우리는 그 구절이 ‘말씀’ 대신 ‘아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구절은 그리스어 ‘logos’를 사용하는데 로고스는 독특하게 요한의 양식에만 있으며 이 구절이 참으로 요한의 것이라는 증거를 제공한다. 또한 우리는 요한이 하나님의 삼위와 그 세 분이 증언하는 것 즉 요한일서 4장 13-14절을 연결하려 함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세 개로 된 그룹들 - 이 중 하나는 하늘에 있고(7절) 다른 하나는 땅에 있다(8절) - 을 포함하는 증거들이 병행해서 나오는 것 자체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강력한 증거는 그리스어 본문 자체에서 발견된다. 요한일서 5장 8절을 보면 그리스어로 중성의 세 명사 즉 ‘영과 물과 피’가 있다. 그렇지만 이 단어들 뒤에 남성인 분사가 따라온다. 여기서 그리스어 구절은 ‘oi marturountes’(who bare witness, 증언하는 자)이다. 그리스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만약 그 자체로만 남는다면 형편없는 문법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심지어 더 확실한 것은 6절은 동일한 분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중성으로 되어 있다(그리스어로는 ‘to marturoun’임). 어떤 이유로 이 세 개의 중성 명사가 남성 분사의 지지를 받는가? 7절을 보면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 7절에서 우리는 두 개의 남성 명사(아버지와 아들) 뒤에 한 개의 중성 명사(성령)가 오는 것을 본다. 이 구절은 또한 그리스어 남성 분사인 ‘oi marturountes’를 가지고 있다. 8절을 소개하고 있는 이 절과 함께 7절에 있는 남성 명사들로 인해 8절의 분사가 남성이 되는 것은 매우 적합하다. 그러나 만약 7절이 없다면 그리스어 문법 면에서 부적합할 것이다.

비록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주후 390년)가 요한의 콤마의 확실성에 대해 증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요한의 콤마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법의 결함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신학적 성향」(Theological Orientations)이라는 글에서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는 자신의 용어들에 있어서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셋’(three)이라는 단어를 남성으로 표현한 뒤에 당신이나 혹은 당신의 문법책 규칙과 정의와 반대되는 중성의 세 단어를 넣는다. 처음에 ‘셋’이라는 단어는 남성으로 표현하고 그 뒤에 중성으로 한 단어 한 단어 한 단어를 더하는 것과 먼저 한 단어 한 단어 한 단어를 남성으로 표현하고 그 뒤에 남성이 아닌 중성으로 ‘셋’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 하나님을 나타내는 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역자 주: 그레고리는 7절이 빠지면 그리스어가 부적합하게 됨을 지적한다. 그런데 7절이 들어가면 아버지와 말씀이 남성이므로 그리스어 문법에 아무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해 연합성서공회의 그리스어 본문에 있는 대로 요한일서 5장이 되려면 그리스어 문법에 따라 ‘셋’(three)과 ‘하나’(one)라는 단어가 중성이어야 한다. 그런데 ‘셋’(three)과 ‘하나’(one)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무언가가 그 그리스어 본문에서 빠졌음을 뜻한다. 그것이 바로 공인 본문의 요한의 콤마이다.]

만약 우리 모두에게 7절이 없이 단지 6절과 8절만 있다면 그레고리가 여기서 그리스어 문법과의 불일치를 인식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사실 다른 학자들도 동일한 것을 인식했다. 이것은 「The Doctrinal Various Reading of the New Testament Greek」(1891)이라는 논문에서 연합신학대학원(Union Theological Seminary)의 다브니(Robert Dabney)가 주장한 바이다. 미들톤 감독은 「Doctrine of the Greek Article」이라는 저서에서 7절이 이 구문의 그리스어 구절에 따라 반드시 그 본문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매튜 헨리의 유명한 주석서에는 우리가 만약 8절에서 적합한 그리스어를 가지려면 반드시 7절이 있어야만 한다는 진술이 있다.

외적 증거가 요한의 콤마의 진실성을 지지하며 내적 증거도 그것을 매우 가능하게 한다. 종교 개혁 때에 하나님께서 전통 본문과 함께하시고 오직 그 본문만을 사용하셨다는 생각할 때 우리는 요한의 콤마가 믿을 만하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출처 http://keepbible.com

각주[편집]

  1. 바이블포유, 성경보기, 온라인 성경
  2. 위키문헌 개역한글판 요한일서 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