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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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사건(實尾島事件)은 1971년 8월 23일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무의리(현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실미도에서 훈련을 받던 북파부대원들이 (1970년 <8.15 평화통일구상선언> 계획을 두고 있는) 정부로부터 자신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탈출하여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한 뒤, 서울로 진입해 청와대로 향하던 중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 사건을 말한다.

개요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훈련병들 앞에서 기간병들은 손 쓸 틈도 없이 전체 24명 가운데 18명이 희생당하고 6명만이 살아 남았다. 이것이 1971년 8월 23일 6시경의 일이다. 기간병들을 살해한 북파부대원 24명(본래 31명 중 7명은 훈련 기간 중 사망)은 12시 20분경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뒤, 인천시내버스(현대 R192)를 빼앗아 서울로 향하였다. 이어 인천에서 육군과 총격전을 벌인 뒤 타이어가 터져 버스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두 번째 버스(신진 FB100L, 태화상운 소속 수원-인천간 시외버스)를 탈취해 14시 15분경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 앞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총격전을 벌이다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부대원 대부분이 목숨을 끊었고, 4명만이 살아 남았다. 생존자 4명은 1972년 3월 10일 사형당하였다.

정부는 이 사건을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규정하였는데, 이후 이 사건의 진상은 갖가지 의문점을 간직한 채 30여 년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684부대의 훈련병들이 겪은 3년 4개월 동안의 실상을 파헤친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1999년)와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강우석 감독의 동명영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2004년 초에는 1968년 3월 충청북도 옥천군의 한 마을에서 실종된 7명의 청년이 684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이 국방부에 의해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684부대의 구성원들이 범죄자들이었는지, 아니면 민간인들이었는지를 비롯해 많은 점들이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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