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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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申榮福
신영복 (2007년)
신영복 (2007년)
출생 1941년 8월 23일(1941-08-23)
경상남도 의령
사망 2016년 1월 15일 (74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직업 작가, 교수
국적 대한민국
소속 前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前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원장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활동기간 1964년 ~ 2016년
장르 경제교육학 저술
종교 무종교
웹사이트
신영복 교수 개인 홈페이지

신영복(申榮福, 1941년 8월 23일 ~ 2016년 1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작가,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했다.[1] [2] [3]

생애[편집]

194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밀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4.19혁명과 5.16군부쿠데타를 겪으며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학사 학위하고, 숙명여자대학교 강사를 거쳐 육사에서 경제학 교관으로 재직하던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20일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감옥을 인간학, 사회학 교실로 여기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한 '관계론'을 일구었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이 평화신문에 연재되었고, 출소 후 출간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많은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1989년~2014년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경제학원론,한국사상사, 정치경제학,중국고전강독, 교육사회학 등을 강의하였다. 어릴적 할아버지 슬하에서 붓글씨를 시작했고, 대전교도소 시절 교도소 당국에서 초빙했던 만당 성주표(晩堂 成周杓)선생, 정향 조병호(靜香 趙炳鎬)선생으로부터 붓글씨를 옥중사사 받았다. 한학자인 노촌 이구영(老村 李九榮)선생과 같은 방에서 지내며 동양고전을 익혔다. 민중의 정서를 담은 글씨체를 모색하던 중 어머님의 모필에서 영향을 받아 연대체, 민체, 어깨동무체라고 불리는 신영복체가 탄생했다. 독창적이고 민중적인 [1][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서화 작품과 [2] 강연, 저서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연대하였다. 2년간의 투병끝에 2016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의 자택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사단법인 더불어숲 편집[3] [4]

저서[편집]

학력[편집]

경력[편집]

상훈[편집]

  • 제3회 임창순상(2008년
  • 제19회 만해문예대상(2015년

각주[편집]

  1. 박정환. 우리 시대의 지성 신영복 교수가 걸어 온 길. 뉴스1. 2016년 1월 16일.
  2. 한혜원. "우리는 한 그루 나무일 뿐"…故신영복이 남긴 위안과 지혜(종합2보). 연합뉴스. 2016년 1월 16일.
  3. 차은호. 신영복 교수 '희귀 피부암' 75세 타계 '우리시대 대표 진보 지식인'. 헤럴드경제. 2016년 1월 16일.
  4. 김성환. “모두에게 큰 스승이자 등대” 신영복 교수 별세 소식에 SNS 추모 물결. 한겨레. 기사입력 2016년 1월 15일. 최종수정 2016년 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