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은 사고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따른 문서를 정리한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하였으나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박근혜는 세월호 침몰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2014년 4월 16일 오후 5시 15분까지 약 7시간 동안의 행적과 관련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는 박근혜가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 보고 받은 시각이고, 2014년 4월 16일 오후 5시 15분은 박근혜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시각이다. 청와대는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고 모두 18차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보고를 받았으며 오전 10시 15분과 오전 10시 30분 두 번에 걸쳐 구조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구명 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장면이 뉴스로 공개된 바 있다.[1][2][3][4][5][6]

사상자가 많이 늘어난 데에는 최초 침몰 징후 후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초기 대응을 전혀 하지 못하고 승객들 몰래 탈출한 선장 이준석과 승무원들의 책임이 대두되고 있으며, 배를 무리하게 운행한 청해진 해운 역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해수부 마피아로 불리는, 해운계의 정경유착 역시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경의 뒤늦은 대처 역시 책임론이 있다.

본 문서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언론의 취재 등과 발표를 근거로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의 책임 수행 관련 논란을 정리한다.

선장과 승무원[편집]

1차 탈출[편집]

승객들을 선박에 두고, 1차 탈출한 선박직 승무원들에 대하여 사회윤리적 책임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세월호 사고의 공학적·물리적 분석에 따른 직접원인 보다 근본원인을 지적했다. 선박이라는 한 집단의 범위 내에서는,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항해와 승객 구조임무 책임을 지닌 리더인데, 그들의 리더십 부재가 세월호라는 한 집단의 침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몇 가지 근거로, 충분한 탈출 가능시간이 있었음에도(약 2시간) 승객들에게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과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시기적절한 유효 조치가 없었다는 점. 오히려 방송 지시의 합리성에 의문을 품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탈출을 시도했던 승객들이 생존율이 높았다는 점. 해당 선장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뒤로하고 1차 탈출했다는 점을 든다. 따라서 이 분석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문제가 리더들의 판단착오와 책임감 부재로 인재(人災)가 되었음을 지적했다.[7][8][9] 세월호 선장 이준석(69, 경북 칠곡)은 승무원들이 승객들이 남겨진 상황에서 1차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10] 특히 선장의 경우, 선원법에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 선박,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고, 이를 따르지 않았을 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있다. 해경은 선장 등 승무원들이 법규를 위반하였는지 조사 중이다.[11]

한편, 세월호 선원들이 침몰사고 직전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에서 탈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으며,[12] 이후 4월 28일에는 승무원들이 신분을 숨기기 위해 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타 승객보다 먼저 구명정과 선박으로 은밀하게 이동한 사실이 드러났다[13].

퇴선명령 여부

퇴선명령을 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선박이 완전히 침몰하기 전 2시간가량 시간이 있었는데, 생존자들은 당시 선내에서는 "더 위험하니, 동요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고 전했다. 당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오히려 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구명조끼를 착용 후 탈출을 시도한 승객들의 생존율이 높았다. 반대로, 그 지시대로 따른 승객들이 더 위험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어, 승무원들의 직무유기와 위기대처 미흡논란이 가중되고 있다.[14] 하지만 선장은 승객들에게도 퇴선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 그보다 앞서 승객들에게 선내에서 대기하라고 방송한 이유도 두 가지를 들었다. 구조선이 당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점. 조류가 빨라 구명조끼를 입었든 아니든 퇴선시 승객들이 멀리 떠내려갈 수 있다는 점.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세월호 구조자 및 승무원들의 증언과 차이가 있다. 특히, 당시 지시를 전달받아 안내방송을 담당했던 승무원 강아무개는 퇴선명령을 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15] 하지만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런 주장을 일축하였다. 이 선장이 퇴선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긴 했지만, 옆 사람에게 말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퇴선하라는 방송이 없었던 만큼, 퇴선명령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셈이라는 입장이다.[16] 그러나 조타수 중 한명이었던 오아무개는 선장이 1항사에게 퇴선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침몰당시 선장이 1항사에게 퇴선을 지시했다"며 "선장이 퇴선명령을 하면 1항사는 승무원에게 이를 전달하기 위해 통해 전화ㆍ방송, 육성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1항사가 휴대폰을 들고 있었지만 다른 승무원에게 전화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또 "(저는)수사기관에도 이 같은 사항을 진술했으며, 1항사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조사해 이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면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선장이 배가 60도 전후로 기울 때부터 부랴부랴 수습을 시도했지만, 상황이 악화되면서 1항사에게 퇴선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청해진해운 사고매뉴얼을 보면 선장이 1항사에 퇴선을 명령하면 1항사는 각 업무에 따라 방송을 맡은 사무장, 여객유도를 맡은 비선박 운행 관련업무자들에게 이를 전달해야 한다. 윤종휘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선장이 지시하면 1항사는 안내방송을 지시하고 방송, 전화가 안된다면 층마다 사람을 보내 알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탑승자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측은 1항사가 인터뷰에서 "선장이 옷 두껍게 입고 퇴선하라는 말을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를 다른 승무원들에게 전달했느냐는 질문에는 "너무 먼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17]

3등 항해사가 맹골수도를 지휘한 데에 대해서도 논란이 인다.[18] (변침 당시 선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3등 항해사는 현재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조타수는 시키는 대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조타수는 조타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수사결과가 무리한 변침으로 잠정결론 난 상태에서 변침의 이유가 주요 수사대상이 되고 있다.[19][20] 한편 조타수는 인터뷰에서 "선장님이 퇴선 명령을 내려서 10명이서 좌현 쪽으로 퇴선했다. 먼저 퇴선한 사람은 못보고 나는 7~8번째로 퇴선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선장이 퇴선 명령을 내리면 바로 무조건 나가는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뉴얼에 의하면 우선 가서 노약자를 구하고 아이들을 퇴선 시켜야 한다"고만 답했다. 이에 기자들이 "왜 매뉴얼을 안 지킨거냐"고 묻자 "지킬 상황이 안 되지 않나"고 오히려 되물은 뒤 "객실에 어떻게 가냐"는 어이없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조타수는 "당당하게 설 테니까 방송 그대로 내보내달라"고 큰소리를 쳐 논란이 있다.[21]

관제센터와의 교신[편집]

세월호가 초기 사고 신고를 가까운 진도가 아닌, 제주 관제 센터에 보고를 한 것은 사고 이후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 논란이 있다. 세월호 전 항해사 김아무개는 4월 21일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보도부문 사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해상 조난에 있어서 필요한) 공용 채널인 16번 채널을 쓰면 해양수산부해경 등에 보고되어 사실을 다 알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모든 곳에서) 연락이 오고 이러다 보면 선박 직원도 머리 아프고 이러다 보니까 (사고 은폐를 위해) 할 수 없이 12번을 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고 초기 진도가 아닌 제주 VTS(관제센터)에 연락하게 된 것에 대해 김 씨는 "그걸(16번 채널)로 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니까 오히려 12번으로 해서 하는 게 더 낫다 싶어서 그쪽(제주 VTS)으로 먼저 연락을 한 것"이라며 "제일 가까운 데를 놔두고 왜 불렀겠나"고 반문했다. 김아무개의 발언에 손 앵커는 황당해해하며 "16번 채널을 쓸 경우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인 것이냐"고 재차 확인하자 김씨는 "그렇다"며 향후 검찰 조사는 물론 법정 증언까지도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또한, 세월호와 진도 VTS 모두 그 해역을 지날 때는 상호 간의 '진입 보고'를 해야 하지만 양측 모두 이 절차를 생략했다는 주장도 새롭게 나와 논란이 있다. 손석희 앵커는 이에 대하여,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해명입니다"라고 논평했다.[22][23]

재판[편집]

광주지방법원 형사 11부는 6월 10일 오후 2시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선장 등 4명,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또는 유기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11명 등 피고인 15명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다. 재판에서는 피해자 대표 의견·검사의 기소 취지·피고인별 변호인들의 공소사실 인정 여부에 대한 진술, 검찰의 증거신청이 이어졌다. 피고인들은 대체로 구호조치가 미흡했고 먼저 구조된 데 대한 비난은 감수하겠다면서도 자신들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퇴선 당시 배가 상당히 기울어 더는 구호조치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살인이나 도주 의사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당분간 매주 화요일 재판을 열기로 했다.[24]

승무원 15명에 대한 두 번째 재판(6월 17일)에서 변호인은 승무원들이 과적과 고박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업무상 과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승무원들이 권한이 없어 배 침몰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 '업무상 과실'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사고 이후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은 점(살인죄)만을 따져야 하고 배 침몰은 승무원이 아닌 선사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승무원들은 승객에 대한 구호 조치는 해경의 의무라며 살인죄 적용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선사 측은 침몰의 원인을 제공한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관리 책임이 승무원들에게도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여 책임 공방이 일 것으로 보인다.[25]

이날 재판(6월 17일)에서 세월호 승무원 15명 가운데 1등 기관사만 유일하게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유기치사상,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1등 기관사 손모씨의 변호인은 오전 10시 광주지법 형사 11부 심리로 열린 승무원들에 대한 두번째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시인한다"고 밝혔다. 손씨의 변호인은 "피고인들은 각자 행위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탐욕에 가득 차 세월호를 시한폭탄으로 만들고 결국 침몰하게 한 기업과 이를 방조한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도 반드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선원들이 모두 처벌된다 해도 제2, 제3의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3등 기관사와 조기수 2명 등 다른 3명은 변호인을 통해 배가 급격히 기울어지는 상황에서 공황상태에 빠져 구조 생각을 하지 못했고 설사 구조 의무를 다했다 하더라도 승객 모두를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따라 첫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한 이준석 선장 등 11명과 이날 3명 등 14명은 검찰과 변호인간 유무죄 다툼을 벌이게 됐다. 이들과 달리 혐의를 인정한 손씨는 유일하게 사선 변호인을 선임한 승무원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신청한 1천900여개 증거목록을 대상으로 피고인별로 증거 채택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검찰은 이날 620여개 증거목록을 추가로 제출했으며 사고 당시 휴대전화 영상 등 증거도 앞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이 선장 측은 경찰이 작성한 조서 등 20여개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일부 내용을 부인하는 취지로 부동의 의견을 밝혔다. 피고인들은 일부를 제외한 전반적인 수사기록을 증거로 사용하는데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침몰 원인이나 침몰 후 구조 가능성 등과 관련, 서로 진술 취지가 다를 수 있다며 다른 피고인을 신문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26]

광주지법 형사 11부는 6월 24일 오전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15명에 대한 세 번째 공판준비 절차에서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대부분 안산에 거주하는 점, 무엇보다 사고 후유증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안산지원에서 증인신문을 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말고사가 끝난 뒤인 다음 달 28~30일 이틀 또는 사흘간 학생들의 진술을 듣기로 했다. 또, 재판부는 학생들이 법정이 아닌 별도의 화상증언실에서 진술하게 해 피고인, 검사, 변호사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하고 당일 재판도 비공개로 진행할 방침이다.[27]

광주지법 형사 11부는 6월 30일 오후 1시 인천항에서 오하마나호에 대한 현장 검증을 했다. 이번 검증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운 세월호 대신 유사한 형태의 여객선인 오하마나호를 통해 배의 구조를 간접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이뤄졌다. 검증 결과는 배가 급하게 기울어 승객 구조가 어려웠다는 일부 승무원의 주장이 믿을만한 것인지, 승무원의 업무상 과실이 없었다면 피해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는지 등을 판단하는 데 참고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검증에는 재판부 외에 검사, 기소된 피고인 15명 가운데 이준석 선장 등 5명, 변호인 8명, 피해자 측 가족 4명과 변호사 6명이 참석했다. 재판부는 오하마나호와 세월호가 구조적으로 일부 차이가 있는 점을 고려해 관계자들에게 그 차이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28]

광주지법 형사 13부는 7월 4일 업무상 과실치사 또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세월호 원래 선장 신모(47)씨 등 6명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청해진해운 해무팀장, 화물 하역업체인 우련통운 본부장·현장 팀장,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실장·운항관리자를 맡았던 피고인들이 신씨와 함께 재판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책임을 피하려했고, 일제히 혐의를 부인했다.[29]

광주지법 형사 11부는 7월 8일 오전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15명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을 열었다. 일부 가족의 고성과 욕설이 법정에서 오가기는 했지만, 유가족들은 그동안 세 차례 공판준비 절차와 지난 공판에서 벅찬 분노를 다스리며 승무원들의 과실과 세월호 침몰원인을 규명할 재판을 지켜봐 왔다. 그러나 이날 재판에서는 구조 영상, 세월호에 탄 학생이 찍은 영상을 검찰이 증거로 제시하기로 해 유가족들의 감정이 격앙될 것으로 우려됐다. 검찰은 세월호 도면을 토대로 만든 모형을 선보이며 층별 구조와 승무원들의 위치, 화물 적재 상황 등을 차분히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한숨과 함께 눈물을 보이면서도 비교적 차분하게 검찰의 설명을 들었지만, 목포해경 123정에서 찍은 구조 영상에 무너지고 말았다. 언론 등을 통해 수차례 공개된 영상이었지만 속옷 차림의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들이 차례로 퇴선하는 모습은 유가족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방청석에서는 "밥도 먹이지 말라",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는 등 반말과 고성이 오갔으며 한 유가족은 신발을 벗어 던지려고 법대로 향하다가 법정 경위들에게 제지되기도 했다.

오후 재판에서는 숨진 단원고 학생이 배에서 찍은 영상이 제시됐다.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52분부터 촬영된 영상에는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서로 웃으며 장난을 치다가 상황이 심각해지자 구명조끼를 챙겨 입는 학생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모두 조끼를 챙겨입은 뒤인 오전 9시 6분에야 "구명동의를 입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온 사실을 확인했다.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무표정하게 법정 내 모니터를 바라보던 승무원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 해 놓고 왜 이 자리(법정)에 나와있느냐", "양심선언을 하라"며 분노했다.[30]

세월호 침몰 당시와 이후 승무원, 승객이 각각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7월 15일 법정에서 공개돼 또 한 번 분노를 자아냈다. 3등 항해사 박모씨는 선배 2명과 카카오톡을 통해 사고 상황과 앞으로 있을 수사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했다. 박씨는 민사소송에 대비해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에 "무조건 책임회피 식으로. 이기적일 수 있지만 선장책임으로. 그런 식으로 말해야해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준석 선장의 무책임한 선상 근무를 지적하는 대화내용도 소개됐다. 박씨는 "선장님이 갑자기 말도 않고 방에 들어가셔서 기관장님이 '그 노인네 어디 갔어'라고 묻고는 방에 가보니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카톡이나 게임 아닐까 싶다"고 선배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 선장이 당시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박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해경 수사를 받고 나서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수사에서는 정직하게 답했고 책임도 인정했다"고 변호했다. 침몰 당시 승객들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침몰하는 배 안의 공포와 승무원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31]

광주지방법원 형사11부는 7월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A양 등 단원고 학생 6명과 일반인 탑승객 등 9명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와 승무원 등 15명에 대한 재판을 진행했다. 이날 법원에는 세월호 선실(SP1)에 있었던 학생들이 나왔다. 대부분 탈출과정에서 승무원이나 해경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세월호를 버리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에 대한 엄벌을 요구했다.

A양은 "배 안에 물이 차오르면서 엎어진 캐비닛에 갇히기도 했지만, 친구와 발버둥 치다 보니 다시 물에 뜰 수 있게 됐다"며 "친구와 함께 끌어올리고 밀어주면서 복도로 나와 줄 서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비상구 밖으로 해경이 보여 잠깐 안도하기도 했다"며 "손잡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해경은 들어오지 않았고 2~3분 있다가 파도가 와서 친구들이 휩쓸려 들어갔다. 그 친구들은 다시 못 나왔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또 "처음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 그다음에는 해경이랑 헬기가 오고 있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 제발 단원고 학생들 가만히 좀 있으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B양도 "어떤 아저씨들이 헬기가 왔다면서 호스와 커튼을 내려보내 줘 그걸 잡고 나왔다. 방안에 7명이 묵고 있었는데 물이 차서 2명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배에 탔을 당시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교육을 받았느냐는 검사의 신문에 대부분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A양은 "배에 타자마자 밥 먹고 바로 쉬는 시간이어서 내내 3층을 돌아다녔다"며 "만약 안전교육이나 방송이 있었다면 돌아다니는 동안 봤을 텐데 전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C양은 "선원들의 행동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초반에 탈출하라는 방송이 나왔다면 더 많이 살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사고로 받은 심리적 충격을 지우지 못한 학생들은 친구 또는 선생님 등과 함께 법정에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침몰 당시 배 안에서 벌어진 상황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학생들의 심리상태를 고려해 증인석에 친구 등이 동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 학생은 한 손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인형을 안은 채 법정에 섰다. 학생들은 재판부가 마련한 화상 중계 장치를 이용해 법정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증언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법정 진술을 선택했다. 이날 출석한 학생 6명 중 1명만 화상 중계 방식으로 증언했다.

이날 오후엔 다치고 사고 현장에서 가까스로 구조된 4.5t 화물차 기사 최모씨도 휠체어를 타고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씨는 사고 당시 매점에서 떡국을 먹기 위해 뜨거운 물을 붓던 도중 배가 기울어져 물통이 쓰러지는 바람에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 최씨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배가 기울면서 아래쪽에서 '꽝꽝꽝'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배 밑 쪽인 것 같았는데 화물이 쏠리는 소리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탈출 당시 상황에 대해 "옆에 있던 여학생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줘 구명조끼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배가 금방 침몰할 것 같아 바다로 뛰어들었다"며 "그런데 내가 구명조끼를 벗어준 여학생은 무서웠는지 두 손을 떨면서 뛰어내리지 못했다. 그때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회상했다. 5층 객실에 머물다 구조된 필리핀 가수 부부는 "조타실로 가면 안전한 출구가 있다는 생각에 배가 기울자 조타실로 갔다"며 "선원 1명과 함께 라이프보트를 펼치려고 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날 증인신문에는 광주지법에서 상경한 재판부와 검사, 피고인 측 변호인단 등이 참석했다. 이준석씨 등 피고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신문을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학부모와 취재진 대표의 방청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32]

청해진해운과 유병언[편집]

JTBC 뉴스 9의 보도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인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33]아해(Ahae)라는 이름의 사진가로 활동하였고, 이 과정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많은 돈을 내고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높은 씀씀이가 확인되었다[34]. 또한 세월호 개조 과정에서 유병언 자신이 자기과시용으로 자기 사진을 전용으로 전시하기 위한 목적의 공간을 약 840m2나 추가로 확보하라는 명을 하여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내에 개인 사진 전시관을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무리하게 세월호를 개조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어 논란이 되었다.[35]

이에 비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청해진해운측은 직원 안전 교육비로 54만 천원만을 사용했고[36][37], 심지어 일부 직원은 입사 이후 안전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38], 유병언측은 세월호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유로 매 회 출항할 때마다 100만원씩을 받고[39][40], 선박의 디자인 특허 비용도 상납받은 것으로 알려져[40] 청해진해운 측이 가장 필요한 비용지출은 꺼리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또한 청해진해운 측이 사고 소식을 듣고 탈출 명령은 내리지 않은 것은, 회사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보험사로부터 받게 되는 선체보험 보상금이 감액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41]

청해진해운의 상당수의 직원이 해당 종교의 직원이고, 선장도 이미 은퇴했으나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속 신도였던 관계로 해당 선박에 재취업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42]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은 2014년 4월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생존한 15명 직원 중 교인은 1명이며, 승무원이었던 직원 1명은 숨졌다.'고 밝히며 '이준석 선장 또한 교인이 아니다.'라고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43]

증축·과적·승무원 교육[편집]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 되었다. 이때 여객선 운용 시한이 진수일로부터 25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세월호의 소속 선박사였던 청해진해운은 덕분에,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상 폐선에 가까운 18년된 세월호를 사들여 운항할 수 있었다(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대하여 논평했다). 이후,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개보수 자금 30억원 등 100억원의 차임급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탑승 가능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증축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심지어 여객선을 임의대로 노선에 추가 투입해 출항시킨 뒤, 관계 당국에 통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책임은 과징금 30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세월호의 경우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에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국내 내항선 선박직(선장·항해사·조타수·기관사 등) 대부분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도 월 270만원의 1년 계약직이었다. 이에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니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제 선원에 대한 교육 관리도 열악했다. 청해진 해운은 2013년 선원 교육비용으로 54만 1천원을 썼다.[36][37]

SOS 신호 미작동[편집]

긴급구조 신호를 위한 SOS 버튼이 사고 당시 작동하지 않아 논란이 있다. 선박의 SOS버튼을 누르면, 조난당한 배의 정보가 주변 선박은 물론 전세계에 순식간에 전파된다. 물론 세월호에도 SOS버튼이 있었다. 16일 오전 9시 7분, 세월호의 조난상황을 인지한 진도관제센터(VTS)는 세월호 주변 선박들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세월호에서 SOS가 직접 전파되었다면, 순식간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고 당시 조타실에 있었던 2등 항해사 김아무개는 "조난신고 버튼을 눌렀지만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승무원들이 문제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있다.[44][45]

항해기록장치(VDR)[편집]

대형 여객선에 비행기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항해기록장치(VDR) 설치 규정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현행 해상인명안전협약에 따르면 3000t 이상 화물선과 국제 항해 여객선에 이 장비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여객선은 예외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46]

개조상 문제 및 장비 미비[편집]

세월호는 일본에서 구매한 중고 선박을 상당히 한계치까지 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세월호 내부에는 상당한 장비가 미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조 과정과 문제[편집]

세월호 사고 초기 무리한 증축으로 인한 복원성이 저하되었던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추측되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개인 전시실로 사용하기 위해 증축을 지시하였고, 이에 복원성 문제를 야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47] 이와 관련해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 복원성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고, 청해진해운 김한식 대표는 2014년로부터 "증축으로 복원성에 문제가 생겨 과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는 것을 보고 받고도, 세월호 매각 대신 '쌍둥이배'로 알려진 오하마나호 매각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청해진해운 임직원들도 복원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무시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48] 그러나, 추후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세월호의 증·개축 과정에서 허가와 다른 내용이 있었지만 한국선급의 형식적인 검사로 승인되었으며, [49] 유병언 전 회장이 당초 세월호의 복원성 결함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한다. [50]

안전장비[편집]

화물 결박장비[편집]

세월호 전 항해사 김모씨는 4월 21일자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와의 대화에서 스태빌라이저나 평형수, 변침 등의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침몰한 세월호는 결박을 제대로 안했을 것"이라 했다. 세월호에서 "자동차나 콘테이너 등 화물은 형식적으로 결박될 뿐"이라며 "앞뒤 결박은 형식적으로 하지만 좌우 결박은 대개 제대로 안한다"고 전했다. 그는 일상적인 비유를 들어서, 사고원인을 설명했다. 손석희 앵커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매 후 자가용 뒷 자석에 2단으로 쌓아놓은 후, 운전하면서 코너를 몇번 꺾었다고 가정해보라는 것이다. 한 번에 많은 각도를 꺾지 않더라도 작은 각도로 여러번 꺾게 되면 쌓아놓은 물건이 옆으로 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결박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회사에 신청해도 잘 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51] 또, 인천항 선박의 화물 결박을 현장에서 직접 담당하는 인천항운노조는 컨테이너 결박에 꼭 필요한 라싱바와 브릿지피팅 같은 전문 장비가 세월호에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밝혔다.[52]

해운계[편집]

한국선급[편집]

세월호는 한국선급으로부터 월호 정기 중간검사와 증축 당시 복원성 검사를 모두 통과했다. 또 2014년 2월,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배수와 통신, 조타장비, 안전시설 등 200여개 항목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안전검사들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53]

한국해운조합[편집]

내항여객선 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는 25일 정부의 압수수색 이전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파기한 것이 취재에 의해 밝혀졌고,[54] 결국 인천지방검찰청4월 28일 인천지부장과 팀장급 직원 2명을 증거 인멸 혐의로 체포했다.[55]

구조과정에서의 논란[편집]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의 늦장 대처와 언딘과의 유착 논란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다양한 구조 장비의 투입이 해경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연되었다는 음모론이 있다.

초기 대응 미숙[편집]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청와대 등에 상황보고를 하면서 구조작업은 과장하고 실종자 상황은 생략하거나 축소하는 등 엉터리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와 정부가 침몰사고 초기 상황의 심각성을 오판하고 신속 대응하지 못한 원인이 해경의 이 같은 부실 보고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인다.

해경은 사고 발생 약 40분 뒤인 오전 9시 30분 청와대와 국무총리비서실,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등에 처음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이때는 세월호 선체가 45도 이상 기울어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 위험이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다'고만 보고했다. 첫 보고서엔 승객과 선원이 각각 450명, 24명으로 잘못 기재돼 있다.

세월호가 완전 전복됐을 때인 오전 10시 23분 두 번째 보고서에서는 해경과 해군 함선 33척, 항공기 6대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엔 구조정 1척과 헬기 2대만 있었다. 오전 11시25분에 보낸 세 번째 상황보고서엔 '현재 총 구조현황: 162명 구조 완료'라며 밑줄까지 그어놓았다. 하지만 300명 넘는 승객이 아직도 선체에 갇혀 있다는 '실종자' 관련 내용은 없었다. 구조 성과만 강조하고 신속한 현장 대응이 필요한 상황은 누락한 것이다.[56]

검찰5월 11일 선장이 해경 구명보트에 오르던 시간의 배 기울기는 62도에 불과했다며, 해경의 선내 진입 구조가 충분히 가능했다고 결론지었다. 또, 해경이 도착 즉시 선내에 진입했다면 전원 구조도 가능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검찰은 해경의 초기 구조가 잘못됐다는 여러 증거를 확보했다며 해경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57] 검찰 관계자는 “경비정 123정에 탑승해 현장에 출동한 해경들을 보면 깨진 창문 사이로 승객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도 직접 선내에 진입하거나 구조 활동에 나서지 않았다”며 “사고 현장에서 적극적인 구조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58]

사고 발생 당일(4월 16일)에 해경과 해군이 투입한 수중 수색 인원은 모두 16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있다. 뉴스타파는 자신들이 입수한 당시 상황보고서엔 침몰 첫 날 동원된 잠수 요원은 해경 140명과 해군 42명 등 모두 182명으로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9%만이 실제 수중수색 작업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300명 넘는 실종자가 선내에 갇혀 있었던 상황에서 소극적 대응을해 인명피해를 키운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59]

최고의 수중 탐색·구조 능력을 갖춘 공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세월호 침몰사고 당일 현장에 출동했지만 현장 지휘통제 기능 마비로 인명구조 작업에 단 1명도 투입되지 못한 것으로 6월 9일 확인됐다. 요원들은 승객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은 골든타임 내내 헬기 안에서 실종자들에 대한 육안수색만 벌였다. 공군 항공구조대는 평시 항공기 사고구조, 응급처치, 환자 이송 등의 임무를 맡는다. 전시에는 적진에 투입돼 강이나 바다에 떨어진 조종사를 구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요원들은 공중침투뿐 아니라 해상구조와 응급의료 등 특수작전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김광진 의원은 “세월호 침몰 당일 대한민국 국군 특수부대 요원들은 눈뜨고 참사를 지켜보면서 황망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라며 “당시 현장을 통제했던 지휘관은 반드시 문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60]

해경의 초동대응 부실에 대해 수사 중인 광주지방검찰청이 해경 123정의 조타실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도 VTS 해경을 전원 기소한 데 이어 123정 대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위해 수사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인데, 검찰은 이번 압수수색으로 사고 대응 매뉴얼 등을 확보하고, 조타실 구조 등을 면밀히 확인했다. 또 123정 정장과 대원들이 매뉴얼대로 구조 활동에 나서지 않은 것이 확인될 경우, 직무유기 등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61]

광주지법 영장전담부는 7월 31일 오후 광주지검 해경수사전담팀이 목포해경 123정 정장 김모 경위에 대해 공용서류 손상 및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증거인멸과 도주 염려가 없고 영장에 기재한 피의사실만으로는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김 경위는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 16일 당시 작성된 함정일지를 찢어낸 뒤 '현장에 도착한 오전 9시 30분부터 5분간 퇴선 방송을 했다' '9시 47분 123정 승조원들이 줄을 연결해 선내 진입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을 허위로 적어넣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 4월 28일 진도 서망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퇴선 방송을 직접 했다"고 단언했으며 감사원 감사에서도 "퇴선 방송을 했다"는 식의 답변을 되풀이했다. 현재도 김 경위는 관련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경위의 이같은 주장은 검찰 조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김 경위가 최초 부실 구조에 대한 과실을 덮기 위해 부하 직원을 시켜 함정일지 내용 중 3~4가지 사항을 허위로 기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김 경위에게 부실한 구조 작업의 책임을 물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62]

민간 잠수사 배제 의혹[편집]

한 민간 다이버 관계자는 4월 23일 오전 "해경이 정조시간에 민간 잠수사를 통제하거나 별다른 설명도 없이 수색작업에 제외돼 대기만 하다 돌아왔다"며 "계약된 민간 구난업체 잠수사는 수색을 하는데 이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물살이 약해져 수색이 용이한 정조시간에 주로 해경과 해군이 작업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 민간 측에 들어가라고 하지만 물살이 세서 힘들다"고 주장했다. 22일 오후에는 민간 잠수사 100여명이 철수하고, 이후에는 20∼30명의 잠수사만 팽목항에 남아있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해경 측은 민간 잠수사의 작업 배제가 오해라고 주장했다. 해경 관계자는 "UDT, SSU를 비롯해 베테랑 특수대원 수백명이 대기하고 있고 물살이 약해지는 소조기를 맞아 집중적으로 수색을 하려는 것일 뿐"이라며 "민간 잠수사들은 절차와 방법, 시간대를 고려해 투입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갈등은 수색초기부터 잠재돼왔다는 것이라고 민간 다이버들은 주장했다. 현장의 지휘통제는 해경이 맡았지만 해경, 해군, 소방방재청, 민간 잠수사 등 민·관·군 잠수사들에 대한 효율적인 지휘체계가 없어 지시와 이행이 겉돌고 혼선이 빚어지는 현상도 있다고 하여 논란이 있다.[63] 한편, 한국해양구조협회의 텃세 때문에 협회나 언딘 소속이 아닌 민간 잠수사들이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 때문에 진도항에서 민간 잠수 봉사자들끼리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64]

언딘 관련[편집]

해경과 언딘 사이의 유착 의혹[편집]

세월호가 침몰한 당일 언딘이 구난업체로 신속하게 결정된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언딘이 평소 해경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언딘의 김모 대표는 해양경찰청의 법정단체로 작년 1월 출범한 한국해양구조협회의 부총재다. 총 19명에 이르는 해양구조협회 부총재에는 해경청 경비안전국장, 해경 경무관 출신 김모씨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해경이 해양구조협회에서 부총재로 활동하는 김 대표의 언딘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청해진해운에 언딘을 구난업체로 선정토록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해경은 그러나 청해진해운이 언딘을 세월호 구난업체로 선정하는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해경과 언딘은 4년 전 천안함 사건 때에도 수색작업을 함께 수행한 인연이 있다. 해경은 2010년 4월 천안함 실종장병 수색작업에 참여했다가 침몰한 쌍끌이 어선 금양98호의 선내 수색업체로 언딘을 선정했다. 언딘은 시신 수색작업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계약금액의 10%를 제외한 4억 3천만원을 해경으로부터 지급받았다. 그러나 실종자 시신을 단 1구도 인양하지 못한 업체에 거액의 예산을 지급한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해경은 이에 대해 "금양호 수색작업 때문에 언딘이 다른 현장의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고 계약 조건상 시신 인양과 상관없이 대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65]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이었던 4월 16일, 이틀에 걸쳐 해군의 선내 진입이 해경에 의해 통제되기도 했다. 해군은 사고 둘째날인 4월 17일 밤이 되어서야 수색 작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28시간이 허비되었다. 이를 두고 해경이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계약한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우선권을 주려고 해군의 투입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해경은 해군의 투입을 제지한 적이 없다며 유착 가능성을 부인했다.[66]

6월 30일, 검찰이 해경과 언딘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이를 위해 해양경찰청 간부 3명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사고 직후, 청해진해운과 언딘이 세월호 구난 작업과 관련해 계약을 맺는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의혹을 받는 간부들이다. 수사의 핵심은 해경 '대형 사고 매뉴얼'의 구난업체 목록에 없는 언딘이 수색 업체로 선정된 경위다. 일부 수중업체들은 청해진해운과 해수부로부터 언딘보다 먼저 연락을 받았지만, 언딘이 수색을 맡아야 한다는 이유로 투입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청해진해운에 언딘을 추천한 곳이 해경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조만간 해경 간부들을 소환해 언딘에 특혜를 줬는지, 해경 윗선이 관여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67]

7월 8일 광주지검에 따르면 해경 전담수사팀은 지난 7월 7일 언딘 본사와 진도 현장 등 관련 10여 곳의 장소에 수사관을 보내 서류와 컴퓨터 파일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구난업체 선정 과정에 있어 제기된 특혜 의혹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68]

첫 시신 발견[편집]

사고 발생 나흘째인 지난 19일 새벽 4시 20분쯤, 자원봉사에 나선 민간 잠수사들이 구조작업을 하다 처음으로 세월호 안에 있는 시신 3구를 발견했다. 그런데, 한 민간 잠수사는 언딘의 고위 간부가 "시신을 언딘이 발견한 것으로 해야 한다"며 "지금 시신을 인양하면 안 된다", "이대로 시신이 인양되면 윗선에서 다칠 분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민간 잠수사들은 해경이 나흘 동안 구조작업을 한 상황에서 민간잠수사가 먼저 시신을 인양하면 해경의 구조 능력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며, 언딘 측이 "직원으로 계약을 해주겠다"면서 "모든 일은 비밀로 한다"는 조건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식 브리핑에선 언딘이 시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언딘 측은 민간 잠수사들이 시신을 발견한 게 맞고 실력이 좋아 함께 일하자고 한 건 사실이라고 시인했지만,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으며 "윗선에서 다칠 분이 많다"는 등의 발언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69]

구조장비 투입 지연 논란[편집]

통영함[편집]

최첨단 수상구조함인 통영함천안함 사건 이후 겪었던 어려움을 교훈으로 삼아 대한민국 정부가 자체 기술로 만든 3,500t급 최첨단 수상구조함이다. 2012년 9월 4일에 진수된 통영함은 실링 로보틱스 HD ROV로 최대 수중 3,000m까지 탐사할 수 있고 해난구조대(SSU)가 수심 90m에서 구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도 갖추었다. 통영함은 세월호 사고처럼 선체 진입이 어렵고 6,800t의 무게 때문에 크레인 인양작업에도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꼭 필요하다. 그런데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통영함 일부 장비, 음파탐지장비·수중로봇장비가 제 성능을 낼 수 있는지 해군이 아직 확인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함정을 진수한 지 1년 7개월이 지나도록 해군이 장비 점검도 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70] 논란 끝에, 4월 20일 밤에 조종사인 미국 해군 2명과 실링 로보틱스 HD ROV 2대가 현장에 투입되었다.[71]

해군본부는 사고 당일인 4월 16일 황기철 해군참모총장 명의로 통영함을 세월호 총력 구조 작전에 지원하라는 지시를 두 차례 보냈다. 수신자는 해군작전사령관, 해군 제5전단장, 통영함장 등이다. 지원 일시는 사고 당일 낮 12시부터 ‘별도 협의시까지’로 돼 있다. 이에 따라 같은 날 해군과 방위사업청, 통영함을 보관 중인 대우조선해양은 ‘청해진함, 통영함 진도근해 좌초선박 구조 참가에 관한 합의각서’를 작성하고 공동 서명했다. 각서에는 황 총장을 대신해 해군 기획관리참모부 최양선 준장이 서명했다. 방위사업청, 대우조선해양도 각각 청장과 대표를 대리해 실무 담당자들이 서명했다. 하지만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사고 이틀 후인 4월 18일 “통영함에 탑재돼 시운전 중인 음파탐지기, 수중로봇 장비 등 구조 관련 장비들이 제 성능을 낼 수 있는지 해군 측에서 아직 확인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었다. 이에 김광진 의원은 “민간 잠수사와 어선까지 총동원된 참사 현장에 1600억여원을 쏟아 부은 통영함은 가지 못했다”며 “해군참모총장이 두 차례나 긴급지원 지시를 내렸음에도 통영함이 투입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군 측은 “곧바로 투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를 대비한 것”이라며 “예비조치로서 통영함을 준비시켜 놓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72]

다이빙벨[편집]

다이빙 벨(잠수종)은 수중 작업을 위해 잠수부를 바다 속으로 이동시키는 장치로, 해난 구조 등에 이용된다.[73] 해난구조 및 선박인양 전문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이 기술을 세월호 침몰 사건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대표는 작업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유속과 시계로 크게 나눈 뒤, 시계보다는 유속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잠수종은 선체 옆에 붙어 있는 출입구까지 일종의 엘레베이터를 설치하는 것과 같아 이를 통해 다이버가 이동을 하면, 유속이 세도 출입구까지 접근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잠수종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이대표에 따르면 알파잠수기술공사는 2000년도에 잠수종을 제작을 하여 이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다이버는 감압을 위해 상당 시간을 물속에서 보내야 하는데, 잠수종은 공기 공간이므로 다이버가 춥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의 경우엔, 조류를 피할 수 있는 어떤 피난처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파잠수기술공사 측에 그러한 기술이 있고, 수심 100m까지 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다이빙계와 군에도 알려져 있음에도, 잠수종이 세월호 침몰 사고 구조에는 채택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이대표는 잠수종 시스템을 이용한 지속적인 작업이 하루에 20시간이 지속 된다면 2, 3일이면 3층·4층·화물칸의 수색이 모두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대표는 지금 구조작업 체계에서는 정부 측에서 책임을 지고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이미 주도가 진행되고 있는 어떤 체계에서는 민간작업자가 끼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작업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구조작업에 대한 전제적인 지휘를 자신에게 넘겨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능한 것은 단지 인력·장비·안전을 보조하는 것뿐이고, 주수색작업을 위해서 계급이 배제된 실질적인 능력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74][75]

하지만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은 다이빙벨 투입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유속에 상관없이 엘리베이터 형식으로 내려갈 수 있어 20시간 동안 작업이 가능하다는 게) 그럴 수 있지만 이쪽의 조류가 워낙 세고 탁도가 높기 때문에 부피가 큰 다이빙벨을 선체 내부에 넣지는 못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다이버에 의한 수색 구조 방법을 사용을 하면서 그 다이버들이 안전하게 오랜 시간 동안 수색 구조를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려할 때 그런 것(다이빙벨 등)들도 후차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걸 설치하기 위해서 우리가 수색 구조 활동을 놓칠 수가 없다”는 이견을 보여 논란이 있다.[76]

이 대표는 4월 21일 새벽, 자비를 털어 다이빙 벨, 작업용 CCTV 등 수십톤의 장비와 인력을 바지선에 싣고 인천항에서 팽목항으로 이동했다. 일부 다이빙벨 투입을 원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경 측에 다이빙벨 투입을 건의했고 이 결과 10여 시간 만에 다이빙벨이 사고현장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이빙벨이 기존 작업에 방해가 되고 이미 바지선이 설치돼 있어 안전 사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구조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77] 이종진 대표는 결국 다이빙 벨 등의 장비를 철수시키며 "생존자 찾아 에어포켓까지 들어가고 싶었다. 그게 구조지 지금 이게 구조인가"라고 하소연을 했다고 전해진다.[78]

그러나, 안전 문제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 대표가 제안한 잠수장비 '다이빙 벨'을 불허한 해경이 대학에서 다이빙 벨을 비공개로 현장에 투입되어 논란이 있다. 고발뉴스는 “23일 새벽 2시30분 강릉 모 대학으로부터 위급한 상황이 있다며 다이빙벨을 빌렸다더라. 언론 몰래 비밀리에 아침 9시에 현장으로 보내는 과정을 포착했다”라고 했다. 이어 “강릉의 모 대학과 통화해 구조 당국이 다이빙벨을 빌린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대학의 한 교수는 돈을 받은 것은 아니고, 위급하다며 협조 요청이 들어와 빌려줬다”고 말했다.[79] 해경측은 "(다이빙 벨을) 실제 구조작업에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80]

이에 대해 언딘측의 공식발표에는 언딘에서 단독으로 가지고 온 것이며 이는 현장에 당장 투입하기에 어려운 조건인데 이종인의 다이빙벨이 여론화되자 자신들도 다이빙벨 장비를 가지고 있다라는 목적으로 빌렸다고 밝혔다.[81]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24일 오후 팽목항을 찾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이종인 대표의 작업 참여를 강력히 요구해 다이빙벨 투입을 약속 받았고,[82] 이에 따라 이 대표는 25일 오전 11시 40분쯤 팽목항에서 출항했지만 앵커(일종의 닻)를 설치하지 못했고 거센 조류에도 밀려 다이빙벨 투입에 실패한 뒤 26일 낮 12시쯤 팽목항으로 귀항했다.[83] 그 후, 30일에 재투입되어 2시 55분께 버팀줄 선체 이음매 조이기에 성공했으나, 버팀줄에서 선내 진입구까지 단거리 유도선 설치에 실패했다. 높은 파고로 알파 바지선의 가로·세로 움직임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84] 오후 3시 45분에 다이빙벨을 선미 쪽에 투입했지만 투입 과정에서 잠수부 1명의 공기호스가 다이빙벨 운용 와이어에 씹혀 터지는 바람에 다이빙벨은 투입된지 28분만에 밖으로 건져졌다.[85] 다음 날인 5월 1일 새벽, 사고 해역에 다이빙벨을 투입한 뒤 잠수부 두 명이 세월호 선내에 진입해 각각 20여 분씩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실종자들을 찾지는 못했다. 오전 11시쯤 사고 해역에서 바지선과 다이빙벨을 철수시켰으며, 이 대표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86] 하지만 세월호 침몰 해역에 투입돼 다이빙벨 잠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1시간여 만에 철수한 것과 관련해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87]

다이빙벨이 별다른 성과 없이 철수하면서 이에 대한 피해 가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입 여부 논란 탓에 구조에 시간만 빼앗겼다는 것이다.[88]

대한민국 정부[편집]

해수부 마피아[편집]

선박의 정식 항해를 위해 선사는 첫 출항 1주일 전 해경에 운항관리규정을 심사, 증명 받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이 공개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서 선원들의 역할을 명시한 비상 부서 배치표는 총 44쪽 중 2쪽에 불과하다. 또한, 비상부서 배치표에는 선원 직책별 임무와 비상신호 체계가 적힌 게 전부였다. 다른 선박의 운항관리규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함에도,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은 승인을 받았다.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은 해경과 운항관리실(해운조합), 항만청,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이 포함된 위원회에서 심사해 지난해 2월 25일 인천해양경찰서가 최종 승인했다. 그러나 해경은 4월 22일 기준, 언론의 회의록 공개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해경 측은 회의록 공개에 대해 "유관기관이 모두 합의해야 가능한 사안"이라고 언급했다.[89]

인원집계[편집]

계속 변하는 인원파악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단원고 측은 16일 오전 "11시 5분께 해경으로부터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 측도 학교 측 발표에 따라 11시 7분과 16분에, 출입기자들에게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와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해경 공식 발표'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각각 보내기도 하였다. 이에 학교에 몰려온 학부모 300여명은 환호하고 안도하였다. 그러나 위 발표들은 모두 사실과 달랐는데,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이날 정오, 공식발표를 통해 "탑승객 477명 가운데 179명을 구조 했으며 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에 상황이 다시 '구조 중'인 것으로 확인되자 학부모들은 오열과 분통을 터뜨렸다.[90] 긴급 가동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측 역시도 인원집계의 오류로 논란이 되고 있다. 중대본은 16일 오후 1시 30분경 "476명 탑승, 구조자 368명, 사망 2명 확인"이라고 밝혀, 구조자수가 늘어감에 따라 국민들이 그나마 피해 최소화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가지게끔 하였다. 그러나 돌연, 오후 15시경 "구조자 집계 수 오류 ... 확인 중"이라고 앞선 발표를 번복함에 따라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이어 중대본 측은 오후 16시 30분경 "459명 탑승, 구조 164명, 사망 2명, 실종 293명"이라고 정정하였다. 그러던 중 정홍원 국무총리가 17일 새벽 여객선 침몰 보호소가 설치된 전남 실내체육관을 방문하였다. 정홍원 총리는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물병을 맞아 논란이 되었다. 실종자 가족은 정부의 구조 활동 지체와 피해상황 집계혼란에 답답해하며, 유관 기관들을 총괄하는 책임을 지닌 국무총리 등 정부 당국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91] 그러나 인원집계 혼란은 끝이 아니었다. 총리실 등 주요부처가 꾸린 범부처사고대책본부는 19일 진도군청에서 브리핑을 하고 인원집계를 승선자 476명, 구조자 174명으로 또다시 변경했다. 이평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안전총괄부장은 선사가 작성한 명부를 기초로 확인한 결과, 2명이 안개로 인해 출항이 불명확함에 따라 각각 비행기를 타거나 귀가했으며 생존자 중 3명이 승선원 명부를 작성하지 않고 차량에 동승해 결과적으로 명부보다 1명이 늘었다고 말했다. 구조자 정정의 이유는 다수 기관이 구조와 이송을 하는 과정에서 유사성명 기재로 동일인이 중복집계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 박승기 대변인은 "지금부터 세월호 여객선 침몰 관련 언론 발표는 범부처사고대책본부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조정한다"며 정홍원 국무총리의 언론 발표체계 조정 지시를 전달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과 진도 실내체육과, 팽목항 등 현장은 범부처사고대책본부에서 공지하는 내용을 일원화해서 발표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확정된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다.[92]

수 많은 대책본부[편집]

이번 침몰 사고와 관련해 설치된 대책본부는 총 10여 곳이다.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안전행정부가 서울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하였다. 뒤이어 정부세종청사에는 해양수산부교육부가 각각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차렸다. 해양수산부는 선박사고에 관한 주무부처란 점에서, 교육부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들이 대거 승선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경기도와 도교육청, 안산시는 안산올림픽기념관에 합동대책본부를 차렸으며 안산교육지원청에도 경기도교육청 대책본부가 만들어졌다.[93] 구조·수색 등 사고수습에 주된 책임이 있는 해양경찰청도 인천과 목포에 각각 지방사고수습본부를 꾸렸다. 이와 별도로 산하기관인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목포에 중앙구조본부를 설치했다. 여러 곳에 대책본부가 난립하자 국무총리실은 목포에 범부처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가 철회하는 소동도 벌어졌다.[94] 결국, 17일 진도군청에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11개 부처가 합동으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를 설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본부장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맡고, 부본부장은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과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맡기로 했다.[95][96] 본부의 대변인은 해양수산부 대변인이 맡기로 하고, 언론 등에 대한 브리핑 창구도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97] 뒤이어 19일에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다.[98] 이를 두고 명령과 보고 체계에 집착한 탁상 행정과 부처 이기주의와 무능함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99][100]

각주[편집]

  1. 신종철. 새누리 “대통령 7시간 궁금증 풀렸다” vs 새정치 “의혹만 키운 해명”. 로이슈. 2014년 8월 13일.
  2. 이제훈. 대통령의 7시간, 그 기괴함에 대하여. 한겨레신문. 기사입력 2014년 8월 20일. 최종수정 2014년 8월 21일.
  3. 정찬. 수사권-기소권 부여와 ‘박대통령의 7시간’. 폴리뉴스. 2014년 8월 23일.
  4. 권영철. "'세월호 특별법 괴담' 누가 왜 계속 퍼뜨리나?". 노컷뉴스. 기사입력 2014년 8월 22일. 최종수정 2014년 8월 25일.
  5. 김종구. ‘7시간 미스터리’와 세월호 특별법. 한겨레신문. 등록 2014년 8월 27일. 수정 2014년 8월 28일.
  6. 김동환·손지은·이승훈·최경준·황방열. '박근혜의 7시간' 알아야 '왕따' 안 당한다?. 오마이뉴스. 2014년 9월 6일.
  7. 온라인뉴스팀. “[세월호 침몰사고]세월호 선장 "책임의식은 무면허, 탈출은 1등 항해사". 동아닷컴.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8. 문연철. “사고 당시 선장·선원들, 승객 두고 먼저 탈출”. MBC. 
  9. 이현영. “세월호 선장 '승객 두고 먼저 탈출'…서해 훼리호 선장은 어땠나”. 티브이이데일리. 
  10. 김지애. 서해 노을위에 詩를 쓰다. 제주투데이. 2004년 1월 1일.
  11. 박지혜 (2014년 4월 17일). “[진도 여객선 침몰] '2급 항해사' 세월호 선장, 선원법 어겼나”. 이데일리. 2014년 4월 17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2. 강현석·배문규 기자 (2014년 4월 21일). “세월호 선원들, 자신들만 아는 통로로 탈출”. 경향신문. 2014년 4월 28일에 확인함. 
  13. 특별취재팀. “<세월호참사> 해경 공개 영상에 드러난 승무원들의 비정함”. 연합뉴스. 2014년 4월 28일에 확인함. 
  14. 한겨레 (2014년 4월 16일). “[진도 여객선 침몰] 물 차오르는데 "가만히 있어라" 안내방송이 피해키웠다”. 한겨레. 2014년 4월 16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5. 이지은 (2014년 4월 19일). “세월호 선장 "퇴선명령 내렸다"…승무원 "듣지 못해". JTBC. 2014년 4월 19일에 확인함. 
  16. 강현석 (2014년 4월 19일). '선장 퇴선명령' 없었다…삼등항해사는 '묵비권'. JTBC. 2014년 4월 19일에 확인함. 
  17. 헤럴드경제 (2014년 4월 21일). “[단독] '세월호 침몰' 조타수 오씨 "선장이 1항사에게 퇴선명령 내렸다". 헤럴드경제. 2014년 4월 21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8. 이경미 진명선 기자. “3등 항해사는 침몰원인 알까?…사고 당시 조타지휘 맡아”. 한겨레. 
  19. 강현석. '선장 퇴선명령' 없었다…삼등항해사는 '묵비권'. MBN. 
  20. 박상진. “무리한 방향 전환? 세월호 침몰 원인 3가지 추정”. SBS. 
  21. 세계파이낸스 뉴스팀. “[세월호참사] '뻔뻔한' 조타수 인터뷰 논란”. 세계일보. 
  22. “세월호 前 항해사 '채널 16번' 사용 안 하는 이유 폭로 (동영상) : 손석희의 JTBC '뉴스9'에서 밝혀”. 허핑턴 포스트 한국어판. 2014년 4월 21일. 
  23. 해경 "연락만 안 했을 뿐 쭉 지켜봤다" 어이없는 해명 - JTBC 뉴스특보, 2014년 4월 23일 방영
  24. 세월호 승무원 15명 첫 재판…살인 등 혐의 부인(종합2보) - 연합뉴스, 2014년 6월 10일
  25. <세월호 침몰책임 누구에게…승무원·선사 공방 예고> -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26. 세월호 승무원 15명중 1등 기관사 1명만 혐의 인정(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27. '세월호 재판 증인' 생존 학생들 안산지원서 증언(종합2보) - 연합뉴스, 2014년 6월 24일
  28. 광주지법, 세월호 '쌍둥이 배' 오하마나호 현장 검증 - 연합뉴스, 2014년 6월 30일
  29. 세월호 원래 선장은 누구?…재판서 서로 떠넘기기 - 연합뉴스, 2014년 7월 4일
  30. <"내 새끼 살려내"…세월호 유가족 법정서 울분 폭발>(종합) - 연합뉴스, 2014년 7월 8일
  31. <"노인네는 핸드폰하고 있어"…법정서 공개된 카톡> - 연합뉴스, 2014년 7월 15일
  32. "단원고 학생들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했다"뉴시스, 2014년 7월 28일
  33. 심수미 기자 (2014년 4월 18일).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따로 있었다…자취 감춘 '세모 일가'는”. JTBC 뉴스 9.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34. 이승녕 기자 (2014년 4월 21일). “[단독] 자취 감춘 청해진해운 대주주 '세모 일가' 추적해보니…”. JTBC 뉴스 9.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35. 류란 기자 (2014년 4월 23일). “유병언 사진 전시실 만들려고 세월호 5층 증축”. SBS 8 뉴스.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36. 청해진해운 이전에도 '표류'…참사 부른 배짱 운행, SBS 2014년 4월 22일
  37. 총체적 '인재'의 결정판 세월호…"곳곳에 원인 있었다", 머니투데이 2014년 4월 22일
  38. 김선미 기자 (2014년 4월 24일). “일부 선원 "비상 안전교육 한 번도 안 받았다" 진술”. JTBC 뉴스 9.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39. 이가영·정효식 기자 (2014년 4월 29일). “세월호 이름 짓고 출항할 때마다 100만원 … 유씨 일가, 상표장사로 회사돈 500억 챙겨”. 중앙일보. 2014년 4월 30일에 확인함. 
  40. “[세월호 참사]"세월호 출항 때마다 이름값 '100만원' 지급". 조선일보. 2014년 4월 29일. 2014년 4월 30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41. “[세월호 침몰]"선장이 회사에 연락했지만 퇴선 명령 안한 이유는?". 동아일보. 2014년 4월 27일. 2014년 10월 13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42. 송지영 기자 (2014년 4월 23일). "선장 포함해 직원 대부분 구원파 신도" 증언 잇따라”. JTBC 뉴스 9. 2014년 4월 25일에 확인함. 
  43. “<세월호참사> 기독교복음침례회 "이준석 선장 교인 아니다". 《연합뉴스》. 2014년 4월 24일. 
  44. 박상욱. “121명 사망, 생존자 구조 소식은 없어…야간 수색 집중”. JTBC. 
  45. 강신후. “누르기만 하면 전세계 전파…SOS 버튼 안 눌렀나?”. JTBC. 
  46. 최성국 기자. “노후 여객선 들여와 증축…法에 구멍 뚫린 해상안전”. 한국경제. 
  47. 세월호 무리한 증축·구조 변경, 유병언 전 회장 지시? - JTBC, 2014년 5월 2일
  48. <세월호참사> 유병언 복원성 문제 알고있어 '과실치사죄'(종합) - 연합뉴스, 2014년 5월 26일
  49. 증개축 공사 관계자 "검사 형식적이었다" 증언 - 세계일보, 2014년 11월 25일
  50. 4월16일 이전 침몰하고 있었다 - 한겨레21, 2015년 10월 5일
  51. 세월호 전 항해사 "16번 채널 쓰면 문제 커져 사용 안 해"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1일 방영
  52. '결박 장치'…세월호에는 애초부터 없었다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3일 방영
  53. 특별취재팀. “<세월호참사> 수사본부, '한국선급' 본격 수사(종합)”. 연합뉴스. 
  54. 이가혁 기자 (2014년 4월 25일). “찢긴 수상한 문서 조각들…해운조합, 증거 없애려 했나”. JTBC 뉴스 9. 2014년 4월 26일에 확인함. 
  55. 박대한 기자 외 (2014년 4월 28일). “檢, '증거인멸' 해운조합 인천지부장 등 3명 체포(종합)”. 연합뉴스. 2014년 4월 28일에 확인함. 
  56. 구조는 과장, 실종자 상황은 생략… 해경 초기 보고서 ‘엉터리’ - 경향신문, 2014년 5월 6일
  57. 검찰 "해경, 선체 진입 기회 충분"…수사 불가피 - SBS 8 뉴스, 2014년 5월 11일 방영
  58. “깨진 창문 새 승객 보고도 방치”…해경에 ‘과실치사’ 적용 검토 - 한겨레신문, 2014년 5월 12일
  59. 침몰 당일 수중 구조대 고작 16명 투입 - 뉴스타파, 2014년 4월 21일
  60. 세월호 사고 당일 출동한 공군 특수부대, 지휘 마비로 손 한 번 못 썼다 - 경향신문, 2014년 6월 10일
  61. 3일째 수색 중단…선체 외판 제거 위해 '유압 톱' 도입JTBC 뉴스 9, 2014년 7월 25일
  62. '탈출 지시 거짓말' 123정 정장 영장 기각 - 뉴시스, 2014년 7월 31일
  63. '작업배제' 민간 잠수사 불만 폭발 - 국제신문, 2014년 4월 23일 작성
  64. 해양구조협회 텃세? 구조 현장서 잠수 봉사자와 갈등 - JTBC 뉴스 9, 2014년 5월 9일
  65. <세월호참사> 해경과 언딘 유착 의혹 갈수록 확산 - 연합뉴스, 2014년 5월 1일
  66. 해경·'언딘' 유착 의혹…'언딘'에 구조 우선권 주었나? - 매일방송, 2014년 5월 1일
  67. 해경 간부 3명 출국금지…'언딘 유착' 밝히나 - JTBC 뉴스 9, 2014년 6월 30일 단독 보도
  68. 검찰, 세월호 침몰사고 구난업체 언딘 압수수색 - 뉴시스, 2014년 7월 8일
  69. 첫 시신 발견 "언딘이 한 것으로…" 인양 조작했나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8일
  70. 류정화 (2014년 4월 18일). “최첨단 수상구조함 '통영함', 구조에 투입 못 해 논란”. JTBC. 2014년 4월 18일에 확인함. 
  71. “<세월호참사> 미국 원격조종 무인잠수정, 효과는?”. 연합뉴스. 2014년 4월 21일. 2014년 4월 21일에 확인함. 
  72. 통영함 투입 지시·각서까지 썼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끝내 투입 안해 미스터리 - 국민일보, 2014-05-12
  73. Monica Mark. Nigerian sailor 'a phenomenon' for surviving in air pocket for 60 hours. The Guardian. 12 June 2013.
  74. 손석희. “이종인 "공기 주입, 생존자 있을 만한 곳에 해야..조타실은 의문"세월호 사고원인 '변침' 잠정결론 ... 시간대별 구성”. JTBC. 
  75. 브리태니커. 《잠수종》. 브리태니커. 
  76. 정재호. “[진도 여객선 침몰] 이종인 '다이빙벨 투입' 주장에 황대식 "부적합" 입장 이유”. 이데일리.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77. 이종인 '다이빙벨' 투입 무산 - 뉴스1, 2014년 4월 21일 작성
  78. 이종인 대표의 눈물
  79. “이종인이 제안한 ‘다이빙벨’ 거부한 해경, 대학서 빌려 몰래 투입” - 경향신문, 2014년 4월 24일 작성
  80. <세월호참사> 민간 '다이빙벨' 거부하던 당국, '뒷북 투입' 논란 - 연합뉴스, 2014년 4월 24일
  81. 다이빙벨 빌린 언딘 대표 "이상호 기자가 전문가인가" - 데일리안, 2014년 4월 24일
  82. 이종인 대표 "해경이 다이빙벨 투입 요청했다"… '언딘' 특혜 의혹은? - 뉴스1, 2014년 4월 25일
  83. ‘다이빙벨’ 투입 임박…30일 새벽 2시 전후 예정 - 파이낸셜뉴스, 2014년 4월 29일 작성
  84. 다이빙벨 버팀줄 설치 완료…투입은 '아직' - 뉴스1, 2014년 4월 30일
  85. <세월호참사> '다이빙벨' 내일 새벽 2~3시 재투입(종합 2보) - 연합뉴스, 2014년 4월 30일
  86. 다이빙벨, 성과 없이 현장서 철수…"실종자 가족에 죄송" - JTBC 뉴스 9, 2014년 5월 1일 방영
  87. 이종인은 다이빙벨 잠수시켜놓고 왜 철수했는가 - 미디어오늘, 2014년 5월 5일
  88. 실종자 가족들 “다이빙벨 ‘다’자도 꺼내지 마라” - 문화일보, 2014년 5월 2일
  89. 뉴시스. “[세월호 참사]해경,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부실 심사 의혹”. 뉴시스.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90. 강수정 (2014년 4월 16일). “<진도 여객선 침몰>'전원 구조' → '구조 중' 오락가락 발표에 학부모 분통”. 뉴시스. 2014년 4월 16일에 확인함. 
  91. 연합뉴스 (2014년 4월 17일). “<여객선침몰>”. YTN. 2014년 4월 17일에 확인함. 
  92. 특별취재팀 (2014년 4월 18일). “<여객선 침몰>승선자 476명, 구조자 174명으로 정정”. 연합뉴스. 2014년 4월 18일에 확인함. 
  93. 장아영, 사공만 있고...'대책본부'만 10여 개, YTN, 2014년 4월 19일
  94. 이태영, 부처마다 대책본부… 협업은 없고 책임 떠넘기기 급급, 세계일보, 2014년 4월 20일
  95. 음성원, ‘재난 비전문’ 안행부가 총괄지휘…‘허술대응’ 우려가 현실로, 한겨레, 2014년 4월 20일
  96. 정의종, 범정부 차원 대책본부 구성… 정총리 본부장 맡아 진두지휘, 경인일보, 2014년 4월 18일
  97. 김태경, 구조활동 발표, 범부처사고대책본부로 일원화, 스타뉴스, 2014년 4월 19일
  98. 김현철, 정 총리 “민간 전문가 공식 브리핑 참여 시켜라”, 아주경제, 2014년 4월 19일
  99. 신혜권, 재난 컨트롤타워 위상 강화 등 정부 재난정책 `대수술` 시급, 전자신문, 2014년 4월 20일
  100. 심화영, 실전서 `무능` 보여준 새 재난대응체계, 디지털타임스, 2014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