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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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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복종의 원칙(영어: Principle of obeying orders, Superior orders defence) 또는 상명하복군대, 경찰, 공무원 조직 등 상하 관계가 명확한 위계조직(관료제)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의 직무상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는 조직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지휘체계를 확립하여 국가 기능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원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동시에 법치주의 원칙상 공무원 개인도 법률을 준수할 의무가 있으므로, 상급자의 명령이 위법할 경우 조직의 효율성과 법치주의 준수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게 된다.[1]

이러한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 법치국가에서는 이 원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특히 명령의 위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경우에는 하급자의 복종 의무가 배제되며, 이러한 명령을 이행할 경우 하급자 역시 형사책임이나 민사책임, 징계 책임을 질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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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복종의 원칙은 상급자의 지휘권·명령권에 대응하는 하급자의 핵심적인 의무이다. 만약 하급자가 상급자의 명령에 대해 개별적으로 그 타당성이나 적법성을 자유롭게 판단하여 복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면, 조직의 통일적 운영이 불가능해지고 하극상이 만연하여 국가 기능 수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 원칙은 행정법상의 특별권력관계(현대에는 특별행정법관계로 용어 순화)에서 공무원의 기본 의무 중 하나로 규정되며, 특히 위계질서가 엄격히 요구되는 군(軍)과 경찰 조직에서 더욱 강하게 강조된다. 하지만 국민주권의 원리와 법치주의 하에서, 공무원이나 군인 역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헌법 제7조 제1항) 법률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상관에 대한 복종 의무는 국민과 법률에 대한 충성 의무에 의해 제한된다.

법적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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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러 법률은 공무원 및 군인의 복종 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상위 법규범인 대한민국 헌법은 제7조 제1항에서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하여 복종 의무의 상위 한계를 설정하고, 제5조 제2항을 통해 국군의 사명을 규정한다.[2]

이를 바탕으로, 국가공무원법 제57조[3]와 지방공무원법 제49조[4]는 공무원이 직무 수행 시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동일하게 명시하고 있다. 또한, 경찰공무원법 제24조 역시 직무에 관한 명령 복종 의무를 포함하며, 군인의 경우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5조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5]

특히 이러한 정당한 명령에 불복종할 경우, 군형법 제44조(항명)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된다.[6]

복종의 대상이 되는 명령의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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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자가 복종할 의무가 있는 직무상 명령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로, 명령은 정당한 권한을 가진 상관이 발령해야 하며, 권한 범위를 넘어선 사항에 대한 명령은 효력이 없다. 둘째로, 상관의 직무 범위 내에 있으며 하급자의 직무와 관련된 직무 관련성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상관이 하급자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사적 명령으로, 원칙적으로 복종 의무가 없다. 셋째로, 명령의 내용은 헌법과 법률 등 실정법에 위배되지 않는 적법성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로, 물리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이행이 가능한 실현 가능성이 요구되며, 마지막으로 하급자가 이행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위법한 명령과 하급자의 심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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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복종의 원칙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상관의 명령이 위법할 경우 하급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이다.

명령 심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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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자가 상급자의 명령에 대해 그 적법성을 심사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서는, 크게 형식적 심사권과 실질적 심사권으로 나뉜다. 형식적 심사권은 명령이 권한 있는 상관의 발령인지,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 등 외형적, 절차적 요건을 심사하는 것으로, 이는 모든 하급자에게 인정되는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로 간주된다. 반면, 실질적 심사권은 명령의 내용 자체가 법률에 위반되는지를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학설의 대립이 존재한다.

학설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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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한 명령에 대한 하급자의 복종 의무 범위를 두고 학설은 대립한다. 과거 군주제나 권위주의 체제에서 옹호되었던 명령절대복종설(절대설)은 하급자에게 실질적 심사권이 없으며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는 법치주의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현대에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와 정반대의 견해인 내용심사설(적법성 심사설)은 하급자가 명령의 적법성을 실질적으로 심사하여 위법 시 복종을 거부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법치주의에 가장 충실하나 조직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판례와 다수설은 이 두 견해를 절충한 중대·명백설(수정된 복종설)이다. 이 견해는 명령의 위법성이 중대하고 동시에 명백한 경우에만 하급자가 복종을 거부할 수 있으며, 경미하거나 명백하지 않은 위법의 경우에는 일단 복종해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명백성은 법률 전문가가 아닌, 해당 직무에 종사하는 평균적인 공무원의 상식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하며, 법률적 해석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 명백하다고 보지 않는다.[7][8]

위법한 명령 수령 시 하급자의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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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자가 상관의 명령이 위법하다고 판단할 경우, 몇 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우선, 국가공무원법 제59조의2 등에 근거하여 상관에게 해당 명령의 위법성에 대해 의견을 진술하고 재고를 요청할 수 있다.[9] 만약 위법성이 중대명백설에 따라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판단되면, 하급자는 복종을 거부해야 할 의무를 진다. 더 나아가, 해당 명령이 부패 행위나 공익 침해에 해당한다면,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나 공익신고자 보호법 등에 따라 상급 기관이나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신고할 의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위법한 명령 이행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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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이행에 따른 법적 책임은 그 명령의 적법성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상관의 정당한(적법한) 직무상 명령을 이행한 경우, 그로 인해 국민에게 손해가 발생하거나 형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하급자는 책임이 면제된다. 이 경우 명령을 내린 상관(또는 국가)이 모든 책임을 진다.

반면, 위법한 명령을 이행한 경우, 책임 소재는 위법성의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먼저, 명령의 위법성이 경미하거나 명백하지 않은 경우, 하급자는 복종 의무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거나 감경받는다. 형사상으로는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 과실이 없다면 기대가능성이 없음을 이유로 책임조각사유가 될 수 있다.[10] 국가배상 책임에 있어서도 하급자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다면, 하급자는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고 국가가 배상 책임을 진다.

그러나 명령의 위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경우, 예컨대 고문, 불법 체포·감금, 민간인 학살 명령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하급자는 복종 의무가 없으며 오히려 복종을 거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이를 인지하고도 이행한다면, 하급자 역시 명령을 내린 상관과 함께 공범으로서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형사처벌은 물론 징계구상권 행사의 대상이 된다.

역사적 사례 및 관련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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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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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 전범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의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항변을 배척하기 위해 확립된 국제법 원칙이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 헌장 제8조는 "피고가 자신의 정부 또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이 책임을 면제하는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규정하였으며, 이어 확립된 뉘른베르크 원칙 제4조 역시 "어떤 사람이 정부나 상관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이 국제법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고 명시하였다.[11] 이는 반인도적 범죄전쟁범죄와 같이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 명령에는 복종해서는 안 되며, 복종할 경우 실행자도 처벌받는다는 국제법적 근거가 되었다.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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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서도 상관의 명령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아이히만은 자신은 관료로서 상부의 명령을 효율적으로 수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명백히 불법적인 명령, 즉 그 불법성이 깃발처럼 휘날리는 명령"에 대해서는 하급자라도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하며 그의 주장을 배척했다.

밀그램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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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사회심리학스탠리 밀그램이 수행한 밀그램 실험은 권위 있는 인물(실험자)의 지시에 일반 사람들이 비윤리적인 명령(타인에게 치명적인 수준의 전기 충격 가하기)에 얼마나 쉽게 복종하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합법적인 권위에 대한 복종 심리가 개인의 윤리적 판단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시사하며, 명령 복종의 원칙이 갖는 위험성을 심리학적으로 뒷받침한다.

대한민국 내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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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도 위법한 명령에 대한 복종 여부가 법적, 역사적 쟁점이 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12·12 군사 반란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관련자 처벌 과정에서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는 하급 지휘관들의 주장이 있었으나, 대법원내란죄와 같은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 명령의 경우 하급자도 그 위법성을 인식할 수 있었으므로 복종 의무가 없으며, 명령 이행은 범죄 행위가 된다고 판시하였다.[12] 이 외에도 국군기무사령부계엄령 문건 작성 사건 등 직무 범위를 벗어난 정치 개입이나 위헌적 명령에 대해 하급자가 복종해야 하는지 여부가 사회적, 법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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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준형. (2006). 공무원의 복종의무와 그 한계. 공법연구, 35(1), 241-266. (건국대학교 법학연구소 자료)
  2. 대한민국헌법 (1987. 10. 29. 전부개정)
  3. 국가공무원법 제57조(복종의 의무)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4. 지방공무원법 제49조(복종의 의무)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5.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5조(명령 복종의 의무)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상관'의 개념을 "명령복종 관계에서 명령권을 가진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2016. 2. 25. 선고 2013헌바111 결정례)
  6. 군형법 제44조(항명)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7. 대법원 1995. 7. 11. 선고 94누4615 전원합의체 판결. "행정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하여는 그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
  8. 법무법인(유) 지평. (2024. 4. 10). 과세처분과 당연무효 판단기준. "우리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대법원 1995. 7. 11. 선고 94누4615 전원합의체 판결)"
  9. 국가공무원법 제59조의2(의견 진술) "공무원은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소속 상관의 의견과 다르거나 전문지식 또는 경험에 근거하여 다른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소속 상관에게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10. 대법원. (2018. 7.). 공무원의 의무위반에 대한 고찰.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7두47472 판결 평석. (https://file.scourt.go.kr/dcboard/1531205731835_155531.pdf)
  11. UN International Law Commission. (1950). Principles of International Law recognized in the Charter of the Nürnberg Tribunal and in the Judgment of the Tribunal. (A/1316)
  12. MBC뉴스. (2025. 1. 13). "위법한 명령은 불복종해야"‥전두환·박대령 판결로 본 복종 의무. (https://www.youtube.com/watch?v=2MxxPdve4EI)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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