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Xakyntos/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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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설명 추가 부분에 대한 제안

낙랑군 위치에 대한 여러 의견이 팽배한 마당에 진번군, 임둔군같은 설치 여부도 불분명한 단명한 군현에 대한 위치에 대해서도 마치 확정적인 양 단정적인 지도를 첨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귀하가 제작한 낙랑군, 한사군, 대방군 등의 위치를 설명하는 지도에 "남한 학계 통설에 따른"이라는 추가 설명을 붙일 것을 제안합니다. 이것은 오히려 문서 훼손을 당한 엄연한 피해자인 제가 그래도 귀하의 위견을 최대한 존중해서 최대한 양보하고 또 양보한 사안이므로 만약 귀하가 거부하신다면 더이상의 제안은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17일 (월) 15:48 (KST)

1. 해당 토론에 참여도 하지 않은 분께서 피해자 운운하시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2.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학계의 정설은 비단 남한 학계만의 것이 아닙니다. 직접적인 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중국 학계도 명백하게 동의하고 있는 사실이며, 일본 학계도 마찬가지이며, 미국, 유럽 등의 동양사학계에서도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미 귀하에게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를 비롯한 국제학계의 만리장성에 대한 견해를 보여 드린 바 있습니다. 귀하가 신봉하는 극소수의 주장과 학문적 가치가 없는 북한 학계를 제외하면 전 세계가 공통된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데 대체 그것이 어떻게 남한 학계의 통설이 됩니까? 전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을 귀하와 같은 극소수 의견에 맞춰 추측이라 격하해야 한다는 말씀을 대체 어떻게 동의하란 말입니까? 거부하고 말고 할 사안 자체가 아닙니다. 귀하의 행동은 명백한 위키백과의 지침 위반이니까요. 귀하아말로 전 세계의 중국사·한국사학계가 동의하는 정설을 추측이라 격하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십시오. 그래야 귀하의 편집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17일 (월) 16:05 (KST)
국사 교과서에조차 직접적인 언급이 안되는 낱낱이 논파된 폐기된 학설을 가지고 억지 주장을 하는 것 보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중국, 일본이야 당연히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는 것이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그리는 중국 역사 지도 좀 보십시오. 한, 진, 위 전부 국경이 요하에서 그칩니다. 하여간 저로서는 최대한 양보를 한 제안을 거부하시니 저도 더이상의 제안은 없습니다. 그럼--Lhrdrth (토론) 2014년 2월 17일 (월) 16:11 (KST)
“미국이나 유럽에서 그리는 중국 역사 지도 좀 보십시오. 한, 진, 위 전부 국경이 요하에서 그칩니다.”라고 하셨습니까? 직접 보시지요.
영어 위키백과의 통일 진나라의 지도
영어 위키백과의 전한 지도
영어 위키백과의 삼국시대 지도
불어 위키백과의 후한 지도
불어 위키백과의 삼국시대 지도
독어 위키백과의 삼국시대 설명 및 지도
더 찾아드릴까요?--Xakyntos (토론) 2014년 2월 18일 (화) 00:55 (KST)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에 의한 입김으로 제작된 구시대의 지도들입니다. 2005년에 발간된 크리스 피어스의 "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지도들을 보면 한, 진, 위 전부 국경이 요하에서 그치고 지금 나오는 중,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한나라, 위나라 국경이 요하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평안도, 황해도를 차지했다는 것은 얼토당토없는 얘기지요. 교과서가 가장 일반적인 통설로 구성된다는 것은 귀하도 상식적으로 아시리라 생각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2:43 (KST)
교과서 따위보다 더 공신력 있는 국편위의 견해를 보여드린 지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만?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에 의한 입김으로 제작된 구시대의 지도라는 것부터 증명하시지요. 저 지도들이 업로드된 날짜가 2004년인데, 이게 구시대입니까? 북한과 극소수 우리나라의 자칭 재야사학자들을 제외하면 세계 공통으로 인정되는 사실입니다. 증거까지 이렇게 찾아드렸건만 무슨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4:29 (KST)
그러고보니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에 해당하는 발언을 또 하셨군요. 중국이나 일본에 의한 입김으로 제작되었다는 음모론을 또 주장했습니다. 기억해 둘 것이며, 필요하다면 징계 회부의 증거로 활용하겠습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4:33 (KST)

고조선의 영토와 설명에 대해서는 온갖 추측성 글만 난무하게 작성하셨는데 왜 유독 한사군, 명도전 등에서는 이중적 잣대를 표방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귀하에 대한 차단 요청합니다

귀하는 낙랑군 문서에서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않은 지도를 혼자만의 일방적인 이유를 들어서 추가 편집하고 그것을 삭제하는 정당한 편집을 토론 문서에서 해명하라는 저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다시 되돌렸습니다. 이는 위키백과:차단_정책의 "다른 사용자의 토론 제기에 응답하지 않고 잘못된 편집을 강행하는 경우"와 "문서 훼손을 반복하는 경우"에 명백히 해당하므로 차단 요청들어감을 알려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4:19 (KST)

지금 토론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귀하입니다만? 토론:낙랑군에 멀쩡히 해명을 해 놓았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까? 귀하야말로 토론에 응하지 않고 무조건 차단 신청을 하는 어이없는 작태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주의하시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4:24 (KST)
나는 분명 먼저 토론을 제안했었고 거기에 대답을 하지않고 일방적으로 되돌린 것은 귀하입니다. 어쨌든 그럼 일단 거기서 토론합시다.--Lhrdrth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4:31 (KST)

이유립명도전 문서에서의 이중잣대

귀하는 명도전 문서에서 182.212.6.95님의 편집에 대해서 "위키는 사회적 저명성에 따라 분량및 내용에 차등을 두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덕일과 같은 부류는 명백한 소수설로 이렇게 자세히 실을 가치가 없습니다"라면서 편집을 되돌렸습니다. 그런데 이유립 문서에서는 학자도 아니고 일개 소설가이고 그나마 음모임이 명백한 이문영의 주장을 근거로 마치 이유립이 친일파인양 아래와 같이 너무 많은 부분을 자세하게 싣고 있습니다.

  •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 《조선》에 시를 투고하였는데, 시의 내용이 일제 하의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내용이다.
  • 친일 유교 단체인 조선유교회에서 활동하였으며 당 단체에서 발행한 친일 성향의 기관지 《일월시보》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 중일 전쟁 이후에 친일신문이 된 동아일보의 지국장을 역임하였다.
  • 그가 설립한 신풍학원은 조선유교회의 산하단체로 친일 행각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유교회나 동아일보에서 활약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라고 단정짓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고 하여간 이는 중립성의 원칙에 명백히 위배되니 위와 같은 항목은 삭제하고 단지 "친일 의혹이 있다."라고만 서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여간, 참 우스운 이중잣대 아닙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명도전 문서에도 이덕일 소장의 주장을 그대로 다 싣던가, 아니면 이유립 문서에서 이문영의 주장을 삭제하고 단지 "친일 의혹이 있다."라고만 서술하던가 말이죠.--Lhrdrth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5:50 (KST)

1. 친일의혹에 해당하는 항목 하나 하나는 이문영의 책이 아니더라도 자체적인 근거를 갖춘 명징한 사실들입니다만. 조선총독부 간행 《조선》, 조선유교회 및 《일월시보》, 동아일보 지국장 명단 등은 모두 독립적인 출처와 근거를 갖춘 증거로서 이문영의 책은 그것을 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덕일의 자체적인 추론을 통해 성립된 음모론과는 격이 다릅니다.
2. 게다가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회적 저명성을 갖춘 출처 자체가 존재하긴 합니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나 두산백과 등을 제시해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해당 백과사전은 이유립 항목의 내용에 대해서 출처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출처라는 것이 모두 이유립 본인이 쓴 저서입니다. 아래 인용문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제시하는 출처의 전부입니다. 사실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공신력 덕분에 위키백과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지, 그냥 이유립의 저서만 가지고 항목을 만들었다면 삭제 대상에 해당합니다. 위키백과:이해관계의 충돌을 보십시오. 반면 이문영의 책은 이유립 본인의 주장이 아닌, 명백한 증거를 통한 이유립의 행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출처의 격이 다릅니다.
이상과 같은 사항으로 볼 때, 전혀 이중잣대가 아닙니다. 이를 이중잣대라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이유립 본인 혹은 이해당사자의 주장이 아닌 제3자의 사회적 저명성을 갖춘 출처를 가져오시면 됩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6:46 (KST)
  • 『대배달민족사(大倍達民族史)』(이유립, 고려가, 1986)
  • 『한암당이유립사학총서(寒闇堂李裕?史學叢書)』(이유립, 커발한다물회, 1983)
  • 『커발한』 1∼63, (역시 이유립이 쓴 책)
귀하의 주장대로 "친일의혹에 해당하는 항목 하나 하나는 이문영의 책이 아니더라도 자체적인 근거를 갖춘 명징한 사실들"이면 이문영의 책을 출처로 하지말고 그 자체적인 근거로 출처를 수정하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중립성 위반이므로 해당 부분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나 두산백과마저도 부정하는 등 나머지 주장은 귀하의 일방적인 주장이므로 재고의 가치조차 없습니다. 하여간 당장 이문영의 책이 아닌 다른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대체하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삭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6:55 (KST)
1. 이미 그 자체적인 출처가 모두 제시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 《조선》을 찾아 보시죠? 동아일보 지국장을 찾아 보시죠? 조선유교회는 친일인명사전에도 실린 친일단체인데, 그 회원이라는 게 출처 아닙니까? 《일월시보》라고 써 있는 거 안보이십니까? 모두 자체적으로 명확한 근거를 가진 사실들이고, 이 사실들을 보기 쉽게 모아 놓은 것이 이문영의 책입니다. 그러니 이문영의 책만으로도 출처는 완벽하게 충족하는데 말입니다?
2. 이문영의 책이 신뢰할 수 없는 출처임을 귀하가 증명하시면 됩니다. 저는 적어도 이덕일의 책이 신뢰하기 어렵다는 증거를 수없이 보여드렸습니다만. 이덕일의 책은 역사학계라는 사회적 저명성을 갖춘 출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이들이 자신을 탄압한다고 주장하는 명백한 음모론의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신뢰 가치는 극도로 떨어지는데다, 역사학계라는 사회적 저명성을 갖춘 출처 그 자체로 이미 이덕일은 소수설임이 명백해집니다. 반면 이문영의 책이 소수설이라는 것을 귀하는 어떻게 증명하시렵니까? 애초에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대한 제3자의 사회적 저명성을 갖춘 출처가 제시된 견해 자체가 없는데요? 이유립 본인의 저서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거든요.--Xakyntos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7:07 (KST)
이게 말이 됩니까? 현재 이유립 문서에서 해당 행적(?)에 대한 확인할 수 있는 출처는 이문영의 책 밖에 없습니다. 이문영이 거짓말을 한 것인지 모르고, 예컨데 "그가 설립한 신풍학원은 조선유교회의 산하단체로 친일 행각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는 사실이 이문영의 책말고(입증이라고도 볼 수도 없지만) 어디에서 입증이 됩니까? 조선 유교회나 동아일보에서 활약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라고 단정짓는 것도 참 우스운 일 아닙니까? 그리고 이문영같은 음모론자의 저술이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말입니끼?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도 명백히 민족 운동가라고 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지탄받는 일개 음모론자의 헛소리를 근거랍시고 이렇게 엄청난 분량으로 사실을 호도하는 것은 명백한 문서 훼손이자 중립성 위반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귀하의 주장대로 "친일의혹에 해당하는 항목 하나 하나는 이문영의 책이 아니더라도 자체적인 근거를 갖춘 명징한 사실들"이면 이문영의 책을 출처로 하지말고 그 자체적인 근거로 출처를 수정하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중립성 위반이므로 해당 부분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17:15 (KST)
1. 인터넷에서 지탄 받는 다는 것과 이문영의 책이 음모론이라는 것은 전혀 관련이 없는 사항입니다. 반면 이덕일과 같은 부류의 책은 위키백과의 지침 자체를 정면으로 어기는 명백한 음모론 서적이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야말로 이덕일의 주장과 완벽하게 일치하는데요? 이렇게 위키백과에서 음모론의 범주로 명시하고 있는 서적과 그런 서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이문영의 책을 지탄하는 바로 그 무리들인데요? 이런 무리들의 주장에 일일히 대응하고 있는 제가 다 한심스럽습니다.
2. 바로 그 민족문화대백과의 출처가 이유립 본인인데 말입니다? 본인과 그 이해당사자의 주장만이 출처가 되는 문서는 민족문화대백과가 아니었으면 당장에 삭제당할 문서에요. 그나마 민족문화대백과의 공신력 때문에 손을 안대는 것이죠. 중립성 위반은 이유립 문서 그 자체입니다.
3. 원하신다면 일일히 찾아다 넣어 드리죠. 그게 더 이유립 문서에서 치명적이리라는 생각은 안해보셨죠? 그렇게 만들어 드리죠.--Xakyntos (토론) 2014년 4월 8일 (화) 20:33 (KST)
이건 완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인데요, 이제는 하다하다가 이문영같은 지탄받는 음모론자의 헛소리까지 위키에 등장해서 상대해야하니 저야말로 참 한심하다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귀하가 "원하신다면 일일히 찾아다 넣어 드리죠."했으니 그렇게 하십시오. 이문영의 주장은 이렇게 자세하게 실릴, 아니 엄격히 말해서 한줄의 언급이 될 가치 그 자체가 없다는 것은 귀하도 아마 잘 알 것입니다. 지켜보다가 계속 이상태면 삭제 및 수정 편집들어갈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낙랑군 문서에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Hangunhyeon.PNG 이 파일은 왜 자꾸 첨부합니까? 이거 명백한 저작권 위반입니다. 또한 자꾸 귀하의 입장에 맞지않는 이덕일 소장을 비롯한 여러 역사학자분들을 자꾸 음모론이니 뭐니 터무니없이 폄하하는데 이것도 위키백과의 중립성 원칙에 명백히 위배됩니다. 앞으로는 주의해주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4월 9일 (수) 12:40 (KST)

네 이쯤 끝내죠 시간이 아까우니

그래요. 제대로 된 근거는 제시 못할 뿐더러 먼저 요구한 증거를 요구했는데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나 들먹이며 언급을 피하는군요. 근거를 몇 개 밝혀도 아무 언급 없이 자기가 쓴 글을 유지하려 하죠.

남의 글 한구석이 문제가 있다고 전체를 수정하려 드는 태도부터 을씨년스럽더니 이제는 연민스럽네요. 알만합니다. 님도 중립성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소수설'의 정의는 매우 모호하며 '중립적인 서술'과 마찰을 빚는 부분임에도 이덕일류로 매도하는 꼴은 참 처연합니다.

그쪽과 행한 토론은 그야말로 시간의 낭비 였습니다. 30~40년 후 바뀐 역사를 보고 자신의 우둔함을 한탄하세요.

어처구니가 없군요. 과연 30~40년 뒤에 역사가 바뀌나 보죠. 흔한 환빠의 정신승리 잘 보고 갑니다. --Neoalpha (토론) 2014년 4월 9일 (수) 19:05 (KST)

반면 보수사학계가 한 목소리로 복창하는 내용에는 아래와 같은 공통점이 있다.

  • 한국사의 상한 연대를 삭감했다. 이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편견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4천년 전에 단군이 나라를 창건했다는 것도 한갓 신화일 뿐 근대적 학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배척했으며, 한국의 국가 기원은 삼국시대, 그것도 서기 4세기 경에야 이루어 졌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 한국사는 이미 고대 때부터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중국인 기자, 위만이 중국에서 이주했음을 들어 한국사가 중국인 이주자들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이어 한사군에 의한 지배와 임나일본부에 의한 고대 일본의 한국 지배를 강변했다.
  • 한국사는 줄곧 외세의 지배를 받았고, 수많은 외세의 침략 때문에 자주적인 역사를 전개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 우리 문화가 외국의 것을 모방했고, 외국에서 들어왔다는 전파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는 한국 문화의 창조성과 자주성을 부인함으로서 한국사의 독자성을 말살하려는 의도이다.

고조선

사기와 위서를 출처로 하셨군요.

환단고기는 여러 책을 그냥 모아둔 것에 불가 합니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으로, 단군세기도 위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단군세기를 위서라고 주장하시는 논문과 출처를 요합니다.

1. 단군세기는 이암이 지은걸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그런 책들을 모은거죠.
2. 예로 집에 세계명작5권내용을 1권에 모은 책이 있습니다. 근데 전쟁으로 인해 따로 있던 책이 다 없어졌습니다. 왜 책이 따로 있는걸 증명해야하죠?? 이상한 논리군요.
3. 그래서 제가 계속 묻자나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니깐, 그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근거와 출처를 말씀하시라구요.
4. 지금 논리 펼치시는게 성인삼호 격으로, 유명하고 많은 사람이 말했다. 그러니 믿어라. 이 논리를 펼치시는데. 그 근거와 출처를 말씀해주셔야 토론이 진행이 되죠.

논할 가치가 있지요.
위서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을 보면,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논문이 있다고 다 옳은게 아니죠.
위서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이미 다 나온 이야기이니 여기서 계속해봐야
평행이론을 달릴거 같고.

xakyntos님이 관리하시는거 편집할때는
대립이 되는 내용 편집 해봐야. 돌려버리니
대립이 되지 않는 내용을 토대로만 편집해보도록 하죠.

님이 관리하시는 기자조선을 현재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은데 기자조선 관련해서 다 지워드릴까요?? 저는 그래도 번조선의 맥으로 보고 있기에. 기자 관련해서 그냥 놓아두고 있는데 말이죠.

1. 그렇다면 고조선 부분에. 단군세기 내용을 추가시킨 후, 님이 기자조선에서 취하는 방식처럼. 이 내용은 학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본다고 적으면 되겠네요??
2. 삼국유사. 제왕운기는 엄연히 역사책인데 신화타령 그만하시죠?? 그런식으로면 사기를 바탕으로 한 년도수 모두 신화가 되는데요.

그렇다면 질문이 있습니다. BC2333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고학적 발굴로 BC2333까지 증명되면 인정을 하신다는건가요?? 아니면 BC2333 가능성을 닫아두고, 고고학적 발굴이 되더라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건가요??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 작성중이신가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고)조선이 언급되어 있고. 그 지역으로 고고학적 발굴이 나타나고 있는데. 고조선의 실존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고)조선과 비파형동검.등의 분포. 고고학적 연결고리를 무시하는 사람. 어떻게든 한반도에 중국 역사를 확장시키려는 사람과 뭘 더 토론이 필요할까요. 평행선을 달릴뿐이죠.
고조선.기자조선.만리장성.등 한반도에 중국을 확장시킬려고 전문적으로 일하신다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 경고의 말과 함께 평화로운 동북아를 위해 글을 남깁니다.


현재 한국사람의 영토 마지노선은 압록강. 백두산입니다. 가까운 조선시대 지도를 보면서 굳혀진 것이죠.
요하쪽은 이미 잊어버린 옛 영토일뿐이며, 전쟁을 통해 회복할려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21세기 평화의 시대에 말이죠. 단지 그리워 할 뿐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이 되는 것은 북한 붕괴시 중국의 북한 진입입니다. 작년 랜드연구소에서 뉴스로 한국사람 심리를 떠보더군요.
북한 붕괴시 빠른 안정화를 위해 잠시 지원을 온 후, 안정 후 다시 돌아가면 문제가 없습니다.(비밀 협약으로 충분히 협의가 가능하죠)
문제는 돌아가지 않게된다면, 위에 언급한 한국 사람의 영토 마지노선과 충돌하여 중국과의 전쟁으로 치닫는것이죠.
(무기쟁이들이 이러한 스토리를 원한다면 중국과의 전쟁으로 치닫을 수 있겠죠. 하지만 한국 시민이든 중국 시민이든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기쟁이와 관련된 윗대가리들이 좋아라 하겠죠)
저는 북한 붕괴가 한반도의 위기이자 평화의 시대를 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악으로 지명받은 북한의 붕괴를 통해 한반도의 통일에 중국.미국.일본이 잠시 지원을 와준다면
이는 과거의 앙금을 털어내고 통일한국.중국.일본이. 혈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엄청난 기회입니다.


또한 이 기회를 바탕으로 요하 문명과 관련된 지역을 동북아공동체의뿌리로 삼아. 더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습니다.
요하 문명을 중국이 독식한다는 것은 잠재적인 엄청난 위험요소입니다.
(서로가 자신들이 정통성을 더 이어받았다고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같은 뿌리라는것을 초점으로 두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한국사람들이 그 정통성으로 말이 많을건데. 한국정부가 특히 힘을 실어 평화의시대에 맞게 공동체의식 뿌리를 심어야 할 것입니다)
요하문명은 중국.한국.몽골.일본 모두가 관련된 것으로 가는게 옳은 방향입니다.
중국이 이 지역을 동북아평화문명공동체 관광도시로 지정한다면, 동방 르네상스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일개 백성으로 윗사람들이 짜는 계획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예상하고 추측할뿐이죠. 단지 백성들의 힘을 모아모아 그 계획에 영향을 줄 뿐이죠.
아무쪼록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으로서 같은 아시아 사람으로서
이제는 그만 전쟁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었으면 합니다.


제발 중국이 한국사람의 영토 마지노선을 자극하여,
잠들어 있는 한국사람의 전투본능을 일깨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나 무기쟁이와 관련된 윗사람들에게 안 휘둘렸으면 합니다)


전 이 계기를 통해, 다른 루트로 동북아가 평화의 길로 갈 수 있게 지속적으로 힘 쓸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같이 평화의 시대를 열길 기원합니다.
건강 하시구요.

나아가야 할 학문적 방향에 대한 동의와 대립

(중국 라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위에 다 했으므로)
중국 라인이 아니라는 가정에 대한 답변도 해야 도리겠지요.(이것도 어제 같이 적을려 했으나, 너무 길어질거 같아서 안 적은..)

1.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는게 학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동의합니다.
하지만 Xakyntos님이 추구하는 방식만!을 추구한다면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많은 사료와 유물들이 훼손되었습니다.(이 내용은 xakyntos님 프로필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더군요)
님이 추구하는 방식만 추구한다면, 훼손되면 역사는 새로 쓰여지게 됩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무서운 부분입니다. 강자에 의해 새롭게 쓰여지는 역사 라고 하죠.
제가 님을 이해할수 없는게 이 부분을 그냥 간과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훼손 되는 역사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로 부터 전해지는 말도 살펴본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전해지는 말이 거짓인지 사실인지를 구별해야 할 필요성과 함께 말이죠.

2. 한단고기는 1번의 마지막부분의 내용으로
아직은 좀 더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서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을 읽어보면 충분히 납득이 안 가고, 어불성설도 있어서요.
위서라고 주장하실 때 학계의 주장이라는 말과 함께 그에 따른 충분한 설명.링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제가 님을 이해할 수 없는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링크나 설명이 부족하며, 어슬렁 넘어가는 대목 때문입니다.

3.4. 요임금이 bc2천년전쯤으로 전해지고 있기때문에.(전해지는 말은 믿지 않으시니)
책마다 요임금 기준이 틀려서 정확한 년도를 하지 않았으나.(저도 이미 알고 있어서, 제가 bc2000년경으로 적은 것도 보셨을 겁니다)
님이 고조선의 역사를 축소시키고 인정 안 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국가적으로 공인 된 년도를 적은 것입니다.(저도 이미 알고 있었으나, 바로 윗줄 내용으로 대립했던것이였죠)

5.Xakyntos님이 인정하고 계시는 중국 역사 책의 범위와 한국 역사 책의 범위가 어떠한지 궁금하네요.
중국 이십사사를 다 믿으시는건지. 그리고 중국 역사 책도 가필 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견해도 궁금하군요.

6.요하문명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요하는 중국 역사 책도 인정하듯 우리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요하는 중국.한국.몽골.일본이 같이 연구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중국이 스스로 훼손하는거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하는 것이고,
떳떳하다면 같이 연구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그러하지 않다는 것은 답을 추론 할 수 있고, 추론 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이 것에 대한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7. 사료를 근거로 해야 된다는거 다 압니다. 하지만 이건 정답의 하나일뿐입니다. 여러 정답 중 제일 중요한 정답 하나라는것이죠.
다른 정답도 있다는 것이죠. 이 정답 또한 곧이 곧대로 믿으면 위험성이 있으므로, 검증이 필요한데.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검증 자체를 하려하지 않는 태도가 있기 때문에, 계속 이런 대립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서로가 체계적인 자료를 만들어서 모두가 납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8. 온라인이란게 참 좋으면서도 나쁜거 같습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죠. 오프라인으로 해야 한다면 좀 힘든 부분이 뒤따르는데 말이죠.
단점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으로 인해서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오프라인으로 만난다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으므로,
불필요한 말은 안 해도 되는데. 온라인에서는 그걸 알 수 없으니 그 불필요한 말까지 해야 된다는게 참 그렇네요.

9. 저는 화공을 전공한 학생입니다. 화공을 전공한 계기도 만물의 근원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간 곳이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궁금한게 많아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치,경제에 대한 관심도 많고, 모든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 근원점을 탐구하려고 하죠.
Xakyntos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궁금하군요.
저는 아직 배울게 많아서 블로그.카페에서 눈팅으로 배우는중이며, 납득이 안 가고 이유가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글을 쓰고 다니죠.
관리하고 계시는 블로그, 추천 블로그, 카페가 있다면 그곳에 있는 자료도 참고하여, 불필요한 논쟁을 막을 수 있을거 같습니다.
--평화平和 (토론) 2014년 4월 30일 (수) 15:34 (KST)

대한민국의 역사학계 정설이라는 미명 하에 중국과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옹졸함을 보이는군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현재 고고학적으로 고조선 자체의 실존조차도 불확실합니다. → 조선이 없었으면, 한사군 자체도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중국 사서에 조선을 멸망시키고 사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조차 부정하다니, 당신의 국적이 의심됩니다. 당신은 고조선 시대와 원삼국 시대조차 부정하고 4세기 경에야 만주 및 한반도에 국가가 생겨났다는 개한민국 식민사학계 일부 만세일계를 주장하는 인간들의 주장을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하고, 그와 반대로 역사서에 기록된 실제 역사를 부정하는 환빠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겁니다. 거듭 질문합니다. 한국인 맞나요? 고조선 편집 목록 중 처음에는 중국 정사를 부정한다고 한단고기, 단군세기를 인용한 부분을 삭제해놓고 이제는 중국 정사마저 부인하는 이율배반적인 언사를 보이십니다. 정말 사상누각이군요.

해당 연도는 추정이 아니라 "신화"일 뿐입니다, 기원전 2333년은 신화적인 연대일 뿐 실제 역사가 아닙니다 → 자신의 견해를, 또 일부 식민사학자들의 견해를 일반화 시키지 마십시오. 과거에는 어 님의 의견은 위서, 고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부정, 뒤에 나오는 규원사화를 포함 많은 역사서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역사학계의 주장보다는 역사서의 서술이 더 중요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누구도 저 연도의 진실을 모르죠. 하지만 저 부분은 역사입니다. 님같은 사람들은 단군조선에 대해서 고려 후기에 창작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고려 목종 9년 (1006) 이전 구월산에 환인, 환웅,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삼성사가 건립되었다는 사실은 단군이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기 전에 이미 알려져 있음을 뜻합니다. 조선시대 서거정 등이 왕명으로 국가 차원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정리한 동국통감에서도 우리 역사의 시작을 단군조선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님 같은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합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18일 (일) 12:00 (KST)

문서 작성 시 위서 사용 자제 요망

안녕하세요. 관리자 RedMosQ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귀하에 대한 차단 요청이 들어와 여기에 글 남깁니다. Xakyntos님께서는 다른 사용자들과의 편집에서 수시로 편집 분쟁이 있어왔다고 생각하며, 이는 귀하의 편집 방식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위서나 신뢰할 수 없는 출처 등으로 작성된 글을 지양해주시고, 다른 사용자들과 사관이 다소 다르더라도, 서로 합의점을 찾아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사용자 관리 요청이 들어오는 판국에 이러한 행위를 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메시지는 일종의 경고 차원으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반론이 있으신 경우, 답글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RedMosQ (토론) 2014년 5월 19일 (월) 01:39 (KST)

차단

Xakyntos 님이 차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사용자와 토론하던 중 "협업 정신에 어긋나는 토론 태도"로 인해 관리자에 의해 2주일간 차단된 것으로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Xakyntos 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높게 평가하던 사람으로서 이번 차단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그동안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와 같이, 토론 태도는 개선이 필요한 것이 맞고, 또한 토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비록 자신의 역사관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특히 토론 상대방에 대해 인격적으로 공격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차단 요청을 남발하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토론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차단 요청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2주일간의 차단 기간을 마치고 돌아오시더라도 이 점을 깊이 생각하여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6월 7일 (토) 13:54 (KST)

보시지요.

그러면 조선이 명과 청에 조공을 바쳤으니, 명과 청이 조선을 다스린다고 해야합니까? 조선은 자주국이었습니다. 다스리다 :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단어 사용부터 잘못되었죠.

전근대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에서, 중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정기적으로 중국에 사절을 파견하여 예물을 헌상하던 행위. [네이버 지식백과] 조공 [朝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헌상의 뜻도 모르십니까? 백과사전 뿐만 아니라 국어사전이라도 좀 보시지 그러셨습니까? 천자는 이를 통하여 여러 제후를 통제하고 지배하였다. 그뒤 이 제도는 한족(漢族) 중심의 중화사상을 기초로 주변 이민족을 위무·포섭하는 외교정책이 되었다. 이러한 사대·자소는 결국 대소국간에 우의와 친선을 통한 상호공존의 교린의 예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접어들자 큰 나라는 약소국에 대하여 무력적 시위로 일방적인 사대의 예를 강요하였고, 이러한 사대의 예에는 많은 헌상물을 수반하는 조빙사대(朝聘事大)가 나타났다. 계속된 전쟁으로 힘의 강약에 의한 지배, 종속관계 대신 헌상물을 전제로 한 조빙사대가 되었으며, 이러한 행위는 한(漢)나라 이후 중국과 주변국가 사이에 제도화되어 조공과 책봉이라는 독특한 동아시아의 외교 형태로 나타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공 [朝貢] (두산백과)

그리고, 명과 여진족의 관계가 한과 초기 고구려의 관계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스리다'라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스리다 :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국어사전을 따르시지요. 명나라가 여진족을 통치하였습니까? 오히려 복속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데요. 예속은 통치와 다른 표현입니다.

차단 알림

몇일 전에 풀린 2주일 차단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토론 태도와 인신공격을 근거로 1개월간 차단하겠습니다. 백:인신 공격 금지백:토론에서 지켜야 할 점등을 참조해 귀하의 토론 태도를 개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분당선M (토론) 2014년 6월 24일 (화) 02:24 (KST)

Lhrdrth 사용자의 반달행위 증거 수집

  • 만리장성 문서 반달 : 해당 지도 이미지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의 지도를 근거로 작성되었다는 명백한 근거와 출처가 제시되어 있음에도 근거가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음.
  • 고조선 문서 반달 : 관련 토론을 통해 해당 내용이 주관적인 견해가 아닌 학계의 공통된 의견임을 아이피 사용자와 합의한 바 있음.--Xakyntos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5:51 (KST)

반대 1.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는 중국에서 촬영하고, 중국인들에게 가이드를 받았으므로 오직 중국만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정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자료를 더 가져오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중국만의 입장을 서술한 것은 비중립적인 표현이 되므로 삭제하는 행위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한반도에 만리장성이 있었다는 증거를 서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문헌의 취합이 아니라 고고학적 증거를요.

2. 관련 토론 에서 Xakyntos 사용자가 발언한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Lhrdrth 사용자가 편집한 내용도 틀린 것이 아닙니다. "기록의 신뢰도가 낮고"라는 부분은 주관적인 견해라서 삭제하고 기록이 많지않다로 수정하며 고조선의 표지 유물 내용을 추가함. 이라고 이미 수정 근거를 밝힌 바 있습니다. 반달 행위임을 입증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반달 행위라는 Xakyntos 사용자의 근거 없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6:33 (KST)

1. 중국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건 말건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명백하게 근거와 출처가 존재하는 지도를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삭제한 것이므로 분명한 반달 행위입니다. 또한 다른 이유 역시 반달행위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한국어 위키백과입니다. 한국 위키백과가 아닙니다. 위키백과는 전세계 모든 학자들의 공인된 견해를 다루는 곳입니다. 물론 한국어 사용자의 대다수가 한국인이고, 그렇기에 한국인의 입장에 부합하는 내용이 더 많이 거론될 당위성은 있습니다만,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건 아니건 위키백과는 명백한 출처가 존재하고 저명성과 중립성이 보장된 내용을 중심으로 수록합니다. 그러므로 중국의 입장 운운은 스스로 중립성을 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이미 만리장성 문서의 본문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만리장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 역사학계는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므로, 해당 지도가 삭제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이렇듯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이에 관한 문헌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나마 남겨진 단편적인 기록이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고조선 [古朝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이 한 문장만으로 끝나는 문제입니다. 적어도 백과사전 수준에서 명시되는 견해를 주관적 견해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며, 이미 관련 토론에서 귀하는 저와 해당 내용에 대해 인정한 바 있습니다. 단지 표현이 모호하여 헷갈릴 수 있으니 단서를 달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귀하 본인이십니다. 이런 토론 과정과 학계의 견해가 분명한데 이를 삭제하는 행위는 명백한 반달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6:44 (KST)
나중에 일일히 귀하의 이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일단 한말씀만 드리겠는데 자신의 견해에 맞지않는다고 일방적으로 반달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매우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의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8:51 (KST)
먼저 귀하께서 저의 고조선 문서 수정 부분과 관련, 반달이라고 주장하신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귀하께서 182.212.6.95님과 토론하신 부분은 고조선 토론 문서에 있는 것도 아니고해서 두분 사이에 그런 토론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귀하께서 출처로 제시하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그런 문구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해당 백과의 집필자가 왜 기록이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다고 하는지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만 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 기록이 있는 사기의 해당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고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기록이 신뢰도가 낮다"라는 부분은 매우 주관적인 견해고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삭제하고 객관적인 사실인 "기록이 적다"로 수정한 것입니다. 반달은 제가 알기로는 아무런 근거없이 마음대로 문서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아는데 따라서 제가 이 부분을 수정한 것을 반달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주장이신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실린 내용이므로 이 부분을 존중하여 이렇게 수정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00:44 (KST)
해당 만리장성 지도 삭제는 거기에 대한 근거를 누누히 댈 필요조차 없는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도대체가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료도 단 하나도 없고 고고학적 증거도 단 하나도 없습니다. 혹시 대령강장성을 예로 드실지 몰라서 드리는 말씀인데 해당 장성은 고구려 장성임이 명백히 밝혀진 상황이라 이를 연장성으로 주장하는 중국 측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사실 왜곡으로 판명난 상황입니다. 결국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표시하고 있는 해당 지도는 당연히 삭제되어야 합니다. 귀하도 저와의 토론에서 "명백하게 잘못된 사실이 잠깐이라도 노출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스가 얼마나 권위를 인정받는 단체인지는 몰라도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표시하는데도 그것이 출처이므로 용인해야된다는 귀하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니므로 근거 출처 자제가 성립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저의 해당 지도 삭제는 매우 정당한 편집이며 그러므로 향후 귀하께서 이를 반달이라고 다시 주장하시거나 지도를 복원시킨다면 이야말로 명백한 반달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받도록 제재 요청을 할 것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와 중국이 주장하는 만리장성의 동쪽끝 문제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967213 이 기사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쪽끝이 압록강까지라고 주장을 하고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럴진데 만리장성의 동쪽끝이 평양 유역이라는 것은 거론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5:36 (KST)
한국의 역사학계가 그리 주장하는 것과,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평가할 자격은 Lhrdrth 사용자에게 없습니다. 위키백과는 공인된 출처가 실린 저명한 의견을 중심으로 작성하도록 대원칙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스, 중국의 역사학계의 주장은 위키백과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완벽한 출처입니다. 이 출처의 내용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은 Lhrdrth 사용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위키백과가 대한민국 한 국가만의 견해를 싣는 백과사전이 아닌 이상, 만리장성의 동단에 대한 대한민국과 중국의 견해는 완벽하게 동일한 수준입니다. 하다못해 동북공정처럼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학계가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는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을 비롯한 모든 나라의 학계가 인정하고 있는 지도니까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스가 출처라는 것 하나만으로 끝입니다. 그러니 귀하의 편집은 명백한 반달행위입니다. 소명할 기회를 드렸음에도 이런 반응을 보이신다면, 운영자에게 메일로 귀하의 제제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5:51 (KST)
도대체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라는 단체가 무엇인데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을 표시하는데도 귀하께서는 이렇게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시는 것입니까?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지도를 수록하시려면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이르렀다는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세요. 그런 증거가 단 하나도 없고 명백히 사실이 아닌데 도대체 이 지도가 왜 수록되어야합니까? 귀하가 저에게 말씀하신 "명백하게 잘못된 사실이 잠깐이라도 노출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라는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귀하는 자꾸 정당한 저의 편집을 보고, 충분한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반달이라느니 운영자에게 제재를 요청하겠다고 하시는데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해당 지도를 계속 수록하시려면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이르렀다는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세요. 전혀 사실이 아닌 일개 단체의 지도를 사실인양 위키백과에 수록하는 것은 명백하게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나고 이것이야말로 명백한 반달행위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6:12 (KST)
또한 귀하께서는 중국의 역사학계의 주장은 위키백과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완벽한 출처입니다라고 하시는데 아시다시피 중국 역사학계는 동북공정을 시도하여 고조선, 고구려 등의 우리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중국측의 주장도 사실로서 수록해야 합니까? 위키백과에 실릴 수 있는 자료의 기준은 그것이 어느 단체, 어느 국가가 주장했다는 것이 아니고 그 자료가 과연 사실인가하는 여부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6:24 (KST)
아니오. 위키백과에 실릴 수 있는 자료의 기준은 공인되고 저명한 출처에 근거한 것인가 아닌가입니다. 그 자료가 과연 사실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것은 위키백과의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한국이건 중국이건 관계 없이 학자들이 알아서 판가름할 것입니다. 이들을 제외하고 귀하는 물론이고 위키백과의 편집자 그 누구도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자격은 없습니다. (위키백과:중립적 시각 참조) 귀하가 해당 지도를 삭제하려거든, 완벽하게 틀렸다는 것을 공인되고 저명한 출처를 통해 증명하시면 될 일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와 중국의 주장이 틀렸다는 공인되고 저명한 출처를 제시하십시오. 그리고 그 출처가 여러 학자들을 통해 인정되고 다수설이자 정설이라는 것을 입증하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는 한 귀하의 삭제는 반달행위일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6:49 (KST)

내셔널 지오그래픽스가 공인되고 저명한 출처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설령 공인되고 저명한 출처에 의한 것이라도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 아닌 경우라면 아무런 설명없이 이것이 마치 사실인양 노출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위키백과의 원칙임은 제가 예를 든 귀하의 발언으로도 귀하 스스로 인정하신 사실입니다. 결국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이르렀다는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시지 못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라는 단체에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여 계속 이런 주장을 하시는데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와 중국의 주장이 틀렸다는 공인되고 저명한 출처는 앞서 제가 예를 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967213 이 기사도 포함됩니다.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쪽끝이 압록강까지라고 주장을 하고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상황 자체를 강단 학자의 의견을 토대로 기사화한다는 그 자체가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입증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기사말고도 얼마든지 더 이와 같은 자료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귀하는 아무런 근거 자료도 없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의 지도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시기 전에 내셔널 그래픽스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런 지도를 제작했는가, 그리고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이르렀다는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이것이 순리인 것입니다. 만약 귀하께서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신다면 당연히 해당 지도의 수록에 절대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근거도 없고 전혀 사실도 아닌데 내셔널 지오그래픽스가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혀 사실이 아닌 지도를 아무런 설명없이 사실인양 수록해야 됩니까? 또한 우리 주류사학계조차도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데 계속 이것이 사실인양 주장하시는 것은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에 해당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7:07 (KST)

이미 지겹도록 말씀드렸다시피, 위키백과는 한국의 의견만 수록하는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해당 신문기사는 한국과 중국의 주장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만 전해줄 뿐, 어느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주류사학계가 틀렸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중국의 학계도 공인되고 저명한 출처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스 역시 공인되고 저명한 출처입니다.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한국 학계의 견해일 뿐, 그 자체로 사실이거나 중국의 견해를 완벽하게 틀렸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의 역사학계를 제외하고 만리장성의 동단이 한반도 내부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역사학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즉, 위키백과의 원칙에 따른 저명성의 비중으로 볼 때 오히려 한국의 견해가 소수설입니다. 물론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에 전혀 해당되지도 않습니다. 무려 한 국가 수준의 역사학계를 비주류 이론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동북공정을 말씀하시려거든, 동북공정에 대한 한중일 역사학자들의 비판이나 제대로 검토하고 오십시오. 같은 중국의 역사학자들조차 비판해 마지 않은 것이 동북공정입니다. 북한처럼 국가 자체가 학문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비주류 이론에 해당되겠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주류 사학자들은 전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8:13 (KST)
일단 우리나라의 주류 사학계조차도 당연히 만리장성은 평양 유역까지 미치치못했다고 보고, 제가 알기로는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송호정조차도 만리장성의 동쪽끝이 요동반도 천산산맥까지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하께서는 "현재까지 한국의 역사학계를 제외하고 만리장성의 동단이 한반도 내부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역사학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시지만 만리장성의 동단이 평양 유역이라는 구체적인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를 전혀 제시하고 있지 못하십니다. 자꾸 저더러 입증하라고 하시는데 저는 앞서 예를 든 기사와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의 의견을 제시하여 나름대로 입증을 했습니다. 저 기사 하나만해도 반박 자료가 여러가지입니다. 이제는 귀하께서 입증하실 차례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와 중국측이 왜 만리장성 동단을 저렇게 주장하는지 그 자료를 단하나라도 제시해주십시오.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조차도 저렇게 아니라고 하고 만리장성의 동단이 한반도 내부였다는 별다른 증거도 없는데 저 지도를 마냥 수록할 수는 없습니다. 만에 하나 수록하더라도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는 저것은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것을 부정하는 우리나라 사학계의 의견도 첨부해야 됩니다. 그런데 저 지도는 그런 부가 설명없이 단순히 "시대별 만리장성의 축조도"라고만 설명하고 문서에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의 첨부는 위키백과의 원칙에 크게 어긋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8:31 (KST)
楽浪郡の位置
중국 측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의 의견이라고 무조건 저런 만리장성 축조도 지도를 첨부하는 것은 중국 측의 의견이라고 중국 위키에 사용되는 이런 터무니없는 한사군 지도를 낙랑군 문서나 한사군 문서에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위키백과는 한국의 의견만 수록하는 백과사전이 아니라고 한 것은 틀린 말씀이 아니지만 한국 위키백과는 특성상 한국 측의 의견이 더 강조되어야합니다. 더구나 만리장성 동단 문제는 한국 주류 사학계조차도 요하까지만으로 보고 그외는 요하는 커녕 난하로 보는 의견도 많습니다. 상황이 이럴진데 만리장성이 무려 평양 유역까지 표시된 지도를 아무런 비판없이 첨부하란 말씀이십니까? 다시한번 신중하게 생각하시고 의견 남겨주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20:30 (KST)
이미 수차례나 말씀드렸습니다. 사료나 유물 따위를 귀하가 입증하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귀하가 사료를 제시한다고 그것이 중국 학계의 주장을 논파하는 것도 아니며, 제가 사료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중국 학계의 주장이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 학계의 공식 주장, 내셔널지오그래픽스는 귀하에게 아무런 자료를 제시할 필요도 없이 그 자체로 위키백과의 수록 요건을 충족합니다. 그러니 귀하의 주장에 제가 응대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 역시 압록강 남쪽의 만리장성은 없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주장을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지도에 설명이 있건 없건, 저 지도는 그 자체로 위키백과의 등재 요건을 충족하므로 이를 삭제하는 것은 빼도박도 못하는 반달행위입니다. 귀하가 할 편집은 해당 지도를 대체할 수 있는 한국 학계의 견해가 담긴 지도를 가져오거나, 아니면 지도에 보충 설명을 다는 것입니다. 삭제를 하는 것은 반달행위일 뿐, 정당한 편집이 절대 아닙니다. 귀하가 위에 가져온 지도만 해도, 한국 위키백과에는 저 지도를 대체하며 완전하게 동일한 수준의 한국 학계에 근거한 지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귀하가 한국 학계의 견해가 담겨 있고, 만리장성의 시대별 축조도를 공인된 출처에 따라 그려진 지도를 가져오지 않는 한, 저 지도를 삭제해서는 안됩니다. 최후 통첩하겠습니다. 지도를 복구하십시오. 그리고 필요하다면 설명을 다십시오. 그렇지 않고 삭제로 일관하겠다면, 차단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여, 엄밀히 말해 저 지도에는 보충 설명을 달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본문 중에 중국 학계의 주장과 한국 학계의 주장이 모두 언급되고 있으니까요. 고작해야 전체 지도 가운데 1~2%에 불과한 내용 때문에 10만리도 넘는 다양한 장성 지도를 모조리 삭제해야 한다는 폭거야말로 문제 아닙니까? 많이 양보해서 보충 설명을 다는 정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내일 오후까지 복구되지 않으면 차단을 신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22:08 (KST)
저와의 분쟁에서는 엄격한 사실 입증을 요구하시는 분께서 도대체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저 지도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수용을 요구하시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귀하의 주장은 일본의 임나일본부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미국 및 유럽이 역사 교과서에 수록한다고(지금도 실제로 그렇습니다) 임나일본부를 사실로 그대로 위키백과에 싣자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지금 내셔널 지오그래픽스는 중국측의 아무런 근거없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수용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명백히 사실이 아닌 저 지도를 그대로 수록할 수는 없습니다. 정히 저 지도의 수록을 원하시면 제가 누누히 요구한대로 내셔널 그래픽스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런 지도를 제작했는가, 그리고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이르렀다는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십시오. 지금 귀하는 누차 요구한 저의 이 요구에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충분히 해명했고 오히려 귀하가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귀하가 저에게 차단 요청을 한다면(이메일로 차단 요청을 했으면 이 토론에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즉시 저는 분란 조장 목적에 의한 차단 요청 남발을 이유로 귀하의 차단 연장을 즉시 요청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우리나라 주류사학계조차도 만리장성의 동단이 평양 유역이라는 주장을 당연히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상황에서 자꾸 이런 주장을 하시는데 우리나라 위키백과에서는 무엇보다 우리측의 의견이 가장 강조되야합니다. 우리나라 위키백과에서 이런 우리측의 의견를 무시하고, 하물며 뭐하나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을 그대로 수록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낙랑군이 평양 유역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라는 곳이 낙랑군을 평양 유역이라고 주장하며 이것이 아직도 다수설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볼때 불가피하게 한국 위키백과에서는 낙랑군 평양설을 주류 이론으로 취급하지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제가 낙랑군 문서에서 그에 따라 편집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귀하께서 잘 아실 것입니다. 귀하의 이런 주장을 제가 낙랑군 문서에 적용해서 지금 평양의 유물 유적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주체가 엄연히 북한인만큼 만약 북한 학계의 의견을 주류 이론으로 차용, 낙랑군 문서를 편집한다면 귀하께서는 거기에 과연 납득하시겠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귀하의 답변을 반드시 듣고 싶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13:36 (KST)
제가 추가 제안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만리장성의 시대별 축조도는 그것이 올바른 내용이라면 당연히 만리장성 문서에 실릴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축조도는 지금은 아무리봐도 없고 그래서 제가 삭제 편집한 "만리장성의 시대별 축조도"가 지도 설명에서 평양 유역까지 만리장성이 표시된 문제를 사실이 아니라고 충분한 설명이 부가되는 조건이라면, 귀하 말씀대로 다른 부분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실을 가치가 있다고도 판단됩니다. 물론 평양 유역까지 만리장성이 표시된 문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없이는 절대로 실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사실이 아닌 부분을 그대로 위키백과에 노출시키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나고 따라서 당연히 수록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일단 귀하께서 이에 입각한 지도 설명을 여기서 제시해주십시오. 그 지도 설명을 보고 그것이 납득할 수준이라면 합의하에 해당 지도를 수록하는 것도 검토해보겠습니다. 저의 제안을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다시한번 강조드리지만 평양 유역까지 만리장성이 표시된 문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없이는 절대로 실을 수가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14:24 (KST)
1. 한일 학계가 합의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고 하는 임나일본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한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외국의 교과서 같은 곳에 실린 것이 잘못된 정보임은 이 합의만으로 명백합니다. 하지만 만리장성에 대해서 그러한 합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만리장성에 대해서 한반도에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한국 역사학계가 있을 뿐입니다. 엄밀히 말해 한국이 소수설에 해당합니다.
2. 지겹도록 말씀드렸습니다. 이곳은 한국어 위키백과입니다. 위키백과는 특정 국가나 특정 집단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이는 위키백과의 대원칙입니다. 한국의 의견이 가장 강조되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귀하는 위키백과를 편집할 자격이 없습니다.
3. 귀하의 제안에 대해서, 이미 위에 그렇게 썼습니다. 제발 사람이 말을 하면 좀 읽으십시오. 다만, “만리장성이 표시된 문제를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위에 말했듯이, 사실이 아니라는 학계의 합의가 없으니까요. 한반도 안의 만리장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학계의 주장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가능한 설명은 이정도가 한계일 뿐입니다. “압록강 너머 한반도 내부의 만리장성은 한국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그리고, 이미 그 내용은 만리장성 문서 본문에 모두 밝혀져 있습니다. 본문만 읽어도 끝나는 문제인데 대체 왜 이 난리를 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오늘 오후 9시까지 복구되지 않을 시 명백한 반달행위로서 차단을 요청하겠습니다. --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15:18 (KST)
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해당 지도를 삭제한 것도 아니고 만리장성이 평양 유역에 이르렀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기에 삭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차단하겠다고 그러시는데 이것도 명백히 협업 정신에 어긋난 태도입니다. 이미 이 문제로 2번이나 차단당하셨는데 주의하시기바랍니다. 그 내용이 만리장성 문서 본문에 이미 있다면 사실 무근의 내용을 가진 그 지도를 그 부분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없이 수록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고 따라서 삭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위키백과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아무런 설명없이 사실인양 싣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무엇보다도 전제하는 가장 큰 대전제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삭제 편집은 충분한 근거가 있으므로 반달이 아닙니다. 하여간 좋습니다. 귀하의 의견을 대폭 수용하여 해당 축조도에 "한국 학계에서는 만리장성이 동쪽으로는 요하 부근까지 진출했다고 본다."라는 설명을 부가하여 수록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한국 주류사학계의 의견이 그러하니 귀하께서도 이 부분에 특별히 이의가 없으시리라 믿고 만약 이견이 있으시다면 여기서 다시 의견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항은 귀하와 저의 합의에 불과하며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이 사항에 대해서는 182.212.6.95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이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하시고 수정 및 삭제 편집이 가능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18:20 (KST)
첨언하자면 만리장성이 한반도 내부에 들어왔다는 것이 세계에서 인정하는 다수설이므로 한국 위키백과에서도 이렇게 기록해야 한다는 귀하의 주장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발해만 해도 발해를 우리 역사라고 인정하는 나라는 남, 북한을 제외하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 위키에서도 발해를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한국 위키에서는 한국측의 주장이 주류 이론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번 건은 정말 제가 크게 양보한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19:18 (KST)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만리장성이 한반도 내부로 들어와 있다는 학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현재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국과 중국 및 기타 동양사/중국사/한국사 연구자들의 갑론을박 주장만 있을 뿐입니다. 귀하의 머리 속에서는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일지 몰라도, 엄연히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주장입니다.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학자들의 연구와 토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적어도 귀하에게는 사실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귀하가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덧붙여, 발해가 우리 역사라고 인정하는 나라는 보기보다 많습니다만? 일본과 러시아의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발해를 중국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라면, 위키백과는 그 사실을 엄밀하게 기록해아 합니다. 중국에서 중국사라고 판단한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중립성 원칙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당연한 내용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곳은 한국 위키가 아니라 한국어 위키입니다. 한국어 위키는 한국뿐 아니라 찾을 수 있는 모든 주장을 합당한 근거와 저명성의 비중에 따라 수록해야 합니다. 중국의 주장이라고 해서 삭제하는 것은 엄연한 반달행위로서 차단 대상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22:22 (KST)

귀하(사용자:Xakyntos)께서는 Lhrdrth 님이 낙랑군에 대하여 제안하신 내용에 대해 반박을 하시기 바랍니다. 또 만리장성에서, 삭제된 시대별 만리장성 위치에서는 중국이 주장하는이라는 이야기가 빠져있어 다른 사용자들에게 혼돈을 줄 수 있습니다. 이를 추가하려면 중국이 주장하는 이라는 한정어구를 추가하여야 할 듯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만리장성이 한반도 내로 들어온 순간 그것은 한국의 역사와 연관성을 지니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견해가 중요시 되어야 합니다. 또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견해는 '소수설'과 공신력 없는 출처가 아닙니다. --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15:52 (KST)

182.212.6.95 사용자의 편집에 대한 반박 자료

182.212.6.95 (토론 · 기여[전체 위키 기여 · 삭제된 기여] · 기록[차단 기록 · 편집 필터 기록] · WHOIS · RBLs · 차단)

  • 금번 기여가 요동에 평양이 있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 : 낙랑군이 축출된 이후, 만주와 한반도 일대를 통틀어 가리키는 용어 자체가 요동이 되었습니다. 아주 단적인 예로, 신라가 요동에 있다고 기록한 것만도 부지기수입니다. 천남생 묘지명의 요동군 평양성이라는 언급은 이와 전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당시 당나라에 요동군이라는 행정구역 자체가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크게 퇴색됩니다. 만주+한반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인 요동을 가지고 평양의 위치를 재단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아래에 같은 당나라 시기의 묘지명을 인용합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6:56 (KST)
한(漢)이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遼東)에 숨어 살게 되었다. (중략) 비록 오랑캐 모습을 했으나 그 도(道)를 역시 행하니, 지금 다시 우리 집안은 요동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듯 번성했다. - 대당고김씨부인묘지명, 신라 왕족 출신의 재당신라인 김씨 부인의 묘지명으로, 신라를 요동이라 표현하고 있음


시간 상 한가지만 질문드립니다. 고구려 멸망 당시 요동의 위치를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어디로 봅니까? --182.212.6.95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7:09 (KST)

우리 모두가 아는 바로 그곳입니다. 요하 동쪽, 요동 평야 일대, 현재의 랴오닝성 동부. 다만 이는 좁은 의미의 요동이고, 광개토왕 이후로 요동은 고구려와 동의어로 사용된 적도 많습니다. 요동성이라 명시하지 않는 이상, 요동이라는 지명이 가리키는 범위는 작게 보아도 고구려의 영토 전체이고, 크게는 만주 일대와 한반도 전체를 말합니다. 이미 위에 예를 들었듯이, 신라가 요동에 있다는 기록만 해도 부지기수입니다. 같은 이유로 《후한서》에 당나라 이현이 단 주석에서 낙랑군 관련 지명이 요동에 있다(在遼東)이라 쓴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당나라 당시에 요동이라는 지명은 한반도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Xakyntos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7:34 (KST)
이현에 관한 부분은 전에 귀하와 저와의 토론에서도 나왔던 문제인데 여기서 언급하시니 다시 말씀드리겠는데 당나라 이현은 후한서 주석을 달면서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아무런 근거없이 부인할 수 없다"라고 하여 중국의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는 자들도 한반도 평양의 낙랑군의 위치와 요동을 다르게 인식했다는 것은 언급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당연한 상식입니다. 귀하가 언급하시는 신라의 경우에 쓰인 요동은 단순히 먼 동쪽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확실히 구분하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8:55 (KST)
지난 일이라 굳이 들추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귀하가 언급하시니 말씀드리지요. 해당 문장은 이현이 주석을 달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귀하가 출처라고 달아 놓은 책을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귀하가 적은 그 문장은 책의 저자가 한 말입니다. 한마디로, 귀하는 거짓 증거를 제시한 것입니다. 그 책의 저자는 윤내현 교수의 제자 출신으로, 논문 내용 전체가 윤내현 교수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말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런 저자가 자신의 사견으로 이현이 요동이라 쓴 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엄연히 출처의 격이 다릅니다. 귀하는 이현이 직접 해당 문장을 주석으로 적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님을 저는 분명하게 확인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거짓 출처를 다는 행위는 명백한 위키백과의 지침 위반입니다. 주의하시지요.--Xakyntos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9:06 (KST)
덧붙여 바로 위 신라 묘지명이나 찬찬히 읽어보십시오. 멀리 떨어진 요동에 이르렀다라고 적혀 있는데 말이죠. 원문도 명백합니다. "遠與遼東" 과연 요동이 먼 동쪽이라는 뜻입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19:22 (KST)
다시한번 책을 읽어보니 이현 주석 부분은 제가 착각했습니다. 해당 책의 이 부분을 다른 책에서 다시 인용한 것을 보고 말씀을 드린 것인데 단순 인용 부분만 보고 직접적으로 책을 보지못하여 발생한 저의 실수입니다. 고의적인 거짓말은 아니었으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이 부분은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낙랑군의 위치를 인용할 정도면 구체적인 지리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먼 동쪽이기만 하면 신라도 요동이라고 표시하는 판국에 두리뭉실하게 그런 의미의 요동이라고 표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이때의 요동은 막연한 의미의 먼 동쪽이 아니라 요동군 개념의 요동, 또는 국경 개념의 요동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라를 표현하는 요동과 낙랑군의 위치를 설명할 때 사용한 요동을 같은 의미로 보시는 것은 매우 무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판단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20:39 (KST)
遠與遼東이 막연한 의미의 먼 동쪽이라는 말입니까? 이미 멀다(遠)는 표현이 선행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요동은 명백하게 지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명의 범위에 신라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역사학계의 상식 중 하나입니다. 귀하의 주장대로 먼 동쪽이라는 의미라면, 왜 일본을 가리켜 요동이라 표현하는 경우는 없을까요?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먼 동쪽 아닙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23:58 (KST)
귀하의 "낙랑군이 축출된 이후, 만주와 한반도 일대를 통틀어 가리키는 용어 자체가 요동이 되었습니다."는 주장은 너무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지금 귀하께서는 신라를 요동이라고 했다는 문구를 가지고 그렇게 해석하시는데 요동은 지명이 아니라 "동쪽 끝에 위치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따라서 "遠與遼東"은 "머나먼 동쪽끝에 이르러"로 해석이 가능하며 저 묘지명은 신라를 요동이라는 지명으로 부른 것이 아니고 신라=동쪽끝 지역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01:13 (KST)
그렇게 해석한 권위있는 출처를 가져오십시오. 귀하 혼자 요동이 단순히 먼 동쪽이라 주장해봤자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도 귀하 혼자의 주장일 뿐, 아무런 근거도 없군요. 저는 적어도 대당고김씨부인묘지명에 대한 학계의 권위있는 학자의 해석을 가져왔습니다만. 위키백과에서 요구하는 근거를 완벽하게 충족하는 해석이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합치됩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0:27 (KST)

요동을 그렇게 해석한 것은 저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고대사 문헌학의 최고 권위자이신 윤내현 교수님도 그렇게 해석하셨습니다. 저 묘지명을 누가 해석했던 간에 해석한 사람도 단순히 요동이라고만 했지 그것이 지명이라고는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저건 신라를 동쪽끝 지역이라고 부른 것에 불과합니다.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만주와 한반도를 포괄하는 그 엄청난 넓은 지역을 통틀어 모두 지리적 개념의 요동이라고 불렀다는 것인데 그건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식이라면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고 하면 낙랑군이 만주에 있는지 충청도에 있는지 경상도에 있는지 도무지 가늠을 하기가 힘들게 됩니다. 결국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에서 요동은 요동군 지역, 국경 지역을 의미하는 구체적인 지리 개념의 요동을 전제로 할때만 사용 가능한 부분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신라를 지칭한 요동의 경우는 구체적 지리 개념이 아니라 단순히 먼 동쪽 지역을 의미하는 단순 수사일 뿐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4:02 (KST)

윤내현이 언제 어디서 그런 해석을 했는지 출처를 가져오세요. 그리고 귀하의 말이 맞다고 쳐도, 그렇게 따지면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는 말도 같은 해석을 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만? 똑같이 요동이라 써 있는데 낙랑군과 관련된 요동은 단순히 먼 동쪽 지역이 아니고 신라와 관련된 요동은 단순한 먼 동쪽 지역이라는 해석은 무슨 이중잣대입니까? 애초에 요동이 먼 동쪽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사례 자체가 전무한 것이 현실입니다. 귀하의 말대로라면 요서라는 지명을 돈황이나 서역 지역에 사용한 사례가 단 한 번이라도 있겠지요. 먼 서쪽 지역이라는 뜻 아닙니까? 과연 있습니까? 요동과 요서라는 말 자체가 요하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명입니다. 요하에 단순히 먼 강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미 역사시대에 접어들 무렵이면 遼라는 글자 자체가 요하에만 사용되는 고유명사화된지가 오래인데 말이죠. --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5:22 (KST)
윤내현 교수님께서 그런 해석을 하신 출처는 민음사가 출판한 윤내현 교수님께서 지으신 "고조선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131 페이지입니다. 고대사 문헌학의 최고 권위자이신 이분의 해석은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권위를 가지므로 명백한 근거가 됨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그리고 낙랑군 요동 문제는 제가 이미 앞에서 설명드린 문제입니다. 이중잣대라니요? 귀하 주장대로 요동이 만주와 한반도를 포괄하는 지리적 개념이라면 백제나 부여, 동예, 옥저 등도 당연히 요동이라고 불렀어야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신라를 지칭한 요동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고 단순히 먼 동쪽 지역을 의미하는 단순 수사일 뿐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5:46 (KST)

1

두 분의 의견을 보니 요동보다는 '요동군'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이번 토론의 논제가 되야할 듯 하군요. 또 광개토태왕비에서는 하평양이라는 용어도 출현하고, 연남생 묘지명에서는 '요동군 평양성'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평양은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이고 실제 고구려 천도 횟수는 3번 이상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니 제 생각에는 그 문장을 일단 두는 것이 옳을 듯 싶습니다. 이것에 대해 독자 연구가 아니라 학자들의 체계적인 반박이 제기된 것이 있다면 참고하겠습니다. --182.212.6.95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23:05 (KST)

덧붙입니다. 광개토왕릉비의 王巡下平壤에서 "하평양"이라는 지명을 유추하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인정되지 않고 있는 소수설에 불과합니다. 현재의 권위있는 해석은 “왕이 평양 아래로 순시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평양이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라고 쳐도, 《수경주》에 기록된 패수와 평양, 낙랑군은 현재의 대동강 및 평양과 완벽하게 일치하며, 이후 천 년이 넘도록 현재의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자 낙랑군이라는 사실이 쭉 전해져왔습니다. 복잡하니 그냥 아래의 예시를 직접 보세요. 셀수도 없이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야 겨우 성립되는 낙랑군 요동/요서설을 대체 왜 믿어야 합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0:27 (KST)
a.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2천 년이 넘도록 수많은 사료와 유물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고고학 발굴을 통해 확실하게 실증되었다. 간혹 요동이나 요서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는 낙랑군이 축출된 뒤에 요동,요서 지역에 옮겨서 설치되었던 것을 모르고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다. 북한에서 낙랑군을 요서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멀쩡한 고구려 무덤을 단군릉이라 주장하는 북한의 주장을 어떻게 믿겠나?
b. 낙랑군은 요동 또는 요서에 있었다. 평양에 있다는 수많은 기록들은 사실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요동에 있던 평양이거나, 혹은 중국과 일제가 모조리 다 조작한 것이다. 심지어 고려와 조선 같은 우리 조상들도 모두 중국의 조작에 깜빡 속아넘어갔다. (아니면 조작에 동참한 사대주의자들이거나.) 물론 평양에서 쏟아져나온 낙랑군 유물들도 모두 조작이다. 아니면 낙랑국의 유물이다. 낙랑국이라는 평양 일대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국가가 언제 어떻게 건국되었는지, 대체 왜 한나라의 무제가 헷갈리게도 요동 지역에 낙랑국과 똑같은 이름의 낙랑군을 설치했는지는 알바 아니다. 평양에서 발굴된 중국계통의 유물은 고구려가 잡아온 중국 포로들의 것이다. 고구려가 자비롭게도 중국 포로들이 평양 일대에 중국식 토성을 쌓고 원래 본국의 관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묵인했으며 중국식 무덤을 만드는 것도 관대하게 허락했던 것이다. 물론 낙랑군이 요동이나 요서에 위치해 있음으로써 원래 그 지역에 있던 중국의 군현들이 어디로 옮겨져야 하는지도 알바 아니다. 물론 요동, 요서에서 발굴된 수많은 중국 군현들의 유물·유적들도 모두 중국이 조작한 것이니, 어차피 조작한 것들 모두 다 거짓말이고 아무튼 낙랑군은 요동 또는 요서에 있었다.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아십니까?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어느 주장이 올바른지.--Xakyntos (토론) 2014년 6월 30일 (월) 23:58 (KST)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한 측의 주장을 고의적으로 묵살, 왜곡 축소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일일이 답변할 가치가 없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글은 귀하의 문서에만 서술하십시오. 또 낙랑군이 축출된 뒤에 나온 기록으로 착각한다고요?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등은 낙랑군이 축출되기도 전에 만들어진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낙랑군의 위치를 한반도로 비정하고 있지 않죠. 그럼 낙랑군이 축출되기 전에 쓰여졌던 사서들이 낙랑군이 축출된 뒤에 요동,요서 지역에 옮겨서 설치되었던 것을 모르고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잘못 기록한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언급하신 오캄의 면도날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상기시켜 드립니다.

  • 오컴의 면도날은 단순히 "여러 가지 가설이 세워지게 된다면 그 중 하나를 고를 때 사용하는 일종의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컴의 면도날로 어느 가설을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가설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로, 어느 가설을 오컴의 면도날로 "잘라내"버렸다 하더라도 그 가설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오컴의 면도날은 진위를 가르는 잣대가 아니다.

--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00:10 (KST)

1. 그럼 귀하가 학계의 정설을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한 측의 주장을 고의적으로 묵살, 왜곡 축소해 보세요. 저는 일일히 답변해 드리지요.
2. 《사기》와 《한서》 등에 있다는 그 기록부터 가져와서 보여주시죠? 아직까지 그런 기록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아, 주석서요? 그 주석서들 대부분은 낙랑군 축출 이후에 써 진거 모르십니까?
3. “그러나 역사적으로 봐도, 오컴의 면도날로 배제한 쓸데없이 복잡한 가설들은 후에 잘못된 것이 명백해진 예가 많다.”라는데요? 게다가 이미 역사학계에서는 잘못된 것으로 명백해진지 오래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위키백과는 소수설을 선전하는 곳이 아닙니다. 소수설이 주장하는 것들을 모두 일일히 수록하는 것 자체가 비중립적인 것이라고 이미 수많은 토론에서 결론내린 바 있습니다. 현재 낙랑군 문서에 논란이라고 나열된 것들 대부분이 삭제 대상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10:27 (KST)
1. 저는 이에 대해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한 측의 주장을 고의적으로 묵살, 왜곡 축소할 생각이 없으며, 귀하께 일일히 답변해 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으며, 할 생각조차 없습니다.
  • 사기색은, 太康地理志云 태강지리지에 전하기를 「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장성이 여기서 시작한다」

이게 과연 후대의 주석서이며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까? 이건 관점의 문제지요.

  • 그 다음, <후한서> ‘광무제 본기’는 “낙랑군은 옛 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분명 후대에 주석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밖으로 축출된 낙랑군을 왜 조선국이며, 이를 요동에 있다고 말합니까?

그리고 '《수경주》에 기록된 패수와 평양, 낙랑군은 현재의 대동강 및 평양과 완벽하게 일치하며'라는 발언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본인만의 생각일 뿐인가요? 역도원과 정약용, 이병도의 다른 견해들이 나왔고 논란이 있는데 어째서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겁니까?
2.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보여주시는 군요. '대부분'= '전체' 입니까? 아닙니다. 애초에 비논리적인 글이었습니다.
3. 위키백과는 소수설을 선전하는 곳이 아닙니다. 소수설이 주장하는 것들을 모두 일일히 수록하는 것 자체가 비중립적인 것이라고 이미 수많은 토론에서 결론내린 바 있습니다. 현재 낙랑군 문서에 논란이라고 나열된 것들 대부분이 삭제 대상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이 말씀은 사용자:Lhrdrth님께 하십시오. 저는 '평양'에 대한 내용을 출처와 함께 추가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삭제할 의향이 없습니다. 또 이러한 내용들은 위키백과 문서의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합니다. '논란'은 말 그대로 '논란'이지 논문 등이 전문적으로 제시되었는데도 소수설로 매도하는 행보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논란' 부분에서는 중립성도 필수적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20:45 (KST)
* 太康地理志云「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又水經云「在遼西臨渝縣南水中」. 蓋碣石山有二,此云「夾右碣石入于海」,當是北平之碣石.
태강지리에 전하기를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여기서 시작한다”고 한다. 또 수경에 전하기를 “요서 임유현 남쪽 물 속에 (갈석이) 있다”고 한다. 대저 갈석산은 두 개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갈석의 오른쪽을 끼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것은 당연히 북평의 갈석이다.
1. 네.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은, 명백한 거짓 증거입니다. 사기색은의 해당 내용은 그보다 훨씬 기니까요. 위에 보시다시피 “A와 B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B이다”라는 내용에서 뒤를 뚝 잘라먹고 A만 가져오는 행위를 가리켜 단장취의라고 합니다. 속된말로 사기친다고 하죠. 귀하는 갈석산이 요서 지역에 있는 것 하나뿐이라고 알고 있었겟지만, 실제 사료에 전해지는 갈석은 최소 2개 이상입니다. 그리고 모르시나본데, 《사기 색은》은 당나라 때 사마정이 지은 주석서입니다. 후대의 주석서 맞습니다. 《태강지리지》요? 서진 때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일서(逸書)입니다. 후대 맞는데요? (덧붙여, 학자들의 논의에 따르면 태강지리지의 수성현 갈석산 기록은 유주자사 당빈이 추가적으로 장성을 수축한 사실이 진나라 때부터로 잘못 알려졌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2. 《수경주》를 직접 읽어 보시죠. 역도원과 정약용, 이병도의 다른 견해들이 뭔지나 아십니까? 그 세사람 모두 《수경주》의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라고 고증한 사람들인데 말이죠. 논란은 없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소수설이 있을 뿐. 또 이 말을 해야합니까? 창조설이 아무리 쏟아져 나와도 진화론이 논란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3. 그 중립성에 따라 윤내현을 비롯한 소수설의 주장은 소수설에 적합한 비중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소수설에 적합한 비중은 정설의 내용 하나하나에 반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설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 소수설이 주장하는 핵심 주장만 서술하고 자세한 것은 출처를 통해 찾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편집을 볼까요?
a. 논란 항목은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서술되고 있습니다. 헌데 귀하가 현재 해 놓은 평양 관련 편집은 순서를 무시하고 갑자기 반박으로 끼어들어 있죠. 더 심각한 것은 이 문서는 낙랑군 문서인데 평양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대체 왜 언급해야 하냐는 겁니다. 평양의 위치가 다르다거나 2개라는 것은 평양에 대한 소수설입니다. 낙랑군 문서에서 평양의 위치를 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만큼 중요한 논란 사항이라면 모르겠는데, 적어도 평양이 2개라는 소수설은 학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설로서 중요한 논란 사항이라 볼 수 없습니다. 해당 내용은 평양 문서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입니다. 낙랑군 문서에서 평양 논란을 꺼내는 것은 일종의 순환논증이 될 뿐입니다.
b. 복기대, SBS 등의 내용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소수설의 견해를 정리한 것과 완전히 중복되는 내용입니다. 이런 소수설의 주장을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정설의 비중을 작아보이게 만드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아래 인용문 참조) 그러니 해당 주장들은 출처로서 제시될 뿐, 하나하나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게 올바른 편집입니까?
중립적인 시각 정책에 따르면 위키백과의 각 문서가 모든 다수 의견과 중요한 소수 의견을 포함해야 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의견은 위치에 걸맞지 않은 비중으로 실려서는 안 됩니다. 과학계에서 비판적인 검증을 받지 못했거나 거절된 가설은 수준 높은, 다른 믿을 수 있는 출처가 그 가설을 대안적인 것으로 언급했을 때만 위키백과에 수록될 수 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지지하는 의견은 저명할 때만 그 의견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문서에 실릴 수 있습니다. 비주류 이론이 '저명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학설이 긍정적으로든 비판적으로든, 토론된 적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학설을 토론한 단체나 개인이 위키백과에 실릴 만큼 유명하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저명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학설이 제시된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에서 그 학설에 대해 논평하거나 토론하거나 부정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학설은 위키백과에 실릴 수 있을 만큼 저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22:44 (KST)

  • <후한서> ‘광무제 본기’는 “낙랑군은 옛 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분명 후대에 주석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밖으로 축출된 낙랑군이 왜 조선국이며, 이를 요동에 있다고 말합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대답이나 하십시오.

저는 귀하에게 낙랑군의 편집에 대해 자문을 구한 적 없습니다. 반복합니다만 하소연을 하시려면 저에게 하지 마시고 사용자:Lhrdrth 님께 하십시오. 또 편집을 하시려면 본인이 7월 24일날 차단 조치가 해제되고 나서 직접 하십시오.
진화론과 창조론이 이 토론과 무슨 연관성이 있습니까? 제발 말도 안되는 소리 좀 그만 하십시오. 주관적인 견해를 들고 와서 객관화 시키려는 노력이 정말 가상합니다만 이는 명백히 다른 사안입니다.
  • 견해 :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
  • 논란 : 어떤 대상이나 소재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서로 다르게 주장하며 다툼.
견해가 다른 것이 맞고, 논란이 있는 것도 맞습니다. 제발 국어 사전을 버려두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수경주에 대해 제가 언제 결론이 같지 않다고 말하였습니까?
소수설, 소수설 운운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23:31 (KST)
1. 그 주석이 당나라 황족 이현이 쓴 것이라고 이미 위에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요동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지명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당나라 시기 고구려인의 묘지명에 요동 삼한인이라는 표현을 비롯해서, 신라를 요동에 있다고 쓴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요동라는 지명이 가리키는 범위 자체가 만주 일대와 한반도 전체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는 표현은 아무런 문제도 아닙니다.
2. 저도 자문하는 것 아닙니다. 귀하의 오류를 지적하고 추후 편집에 근거를 마련하고 잇는 것일 뿐. 그리고 이를 되돌릴 시에는 명백한 반달 행위로서 차단을 신청할 것입니다. 그런데, 귀하가 저에게 질문을 한 것만도 몇 번이나 되는데 말입니다. 이게 자문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3. 그 논란이 학계에서 얼마나 비중을 가지고 논의되고 있는지부터 증명하십시오. 위에 인용된 지침부터 읽어보시지요. 애초에 학계에서 취급조차 안하고 있으니 엄밀히 말해 위 지침에 의거, 삭제되어도 할말이 없는 내용들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00:11 (KST)
3.

1.

윤내현 교수님께서 그런 해석을 하신 출처는 민음사가 출판한 윤내현 교수님께서 지으신 "고조선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131 페이지입니다. 고대사 문헌학의 최고 권위자이신 이분의 해석은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권위를 가지므로 명백한 근거가 됨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그리고 낙랑군 요동 문제는 제가 이미 앞에서 설명드린 문제입니다. 이중잣대라니요? 귀하 주장대로 요동이 만주와 한반도를 포괄하는 지리적 개념이라면 백제나 부여, 동예, 옥저 등도 당연히 요동이라고 불렀어야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신라를 지칭한 요동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고 단순히 먼 동쪽 지역을 의미하는 단순 수사일 뿐입니다.--Lhrdrth (토론)

→ 저에게 Lhrdrth 님의 글을 인용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또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된 반박을 하십시오.

2.

저는 귀하에게 낙랑군의 편집에 대해 자문을 구한 적 없습니다.

→ 말 그대로 입니다. 토론을 해 보고 맞다 싶은 부분을 수정한 것일 뿐.

  • 자문 : [명사]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려고 그 방면의 전문가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구에 의견을 물음.
제가 질문을 한 적은 있어도 편집에 대하여 귀하의 자문을 구한 적은 없습니다. 제대로 된 해석 부탁드리며, 국어 사전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미 올려진 주장을 나열한 것일 뿐이며, 제가 추가한 내용은 '평양'에 대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한 견해 차이가 있는데요, 원하신다면 이를 명백한 반달 행위로 매도하셔서 열심히 차단 신청하십시오. --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07:34 (KST)
Xakyntos 사용자께서는 자꾸, 전에 저와의 토론도 그렇고 저 사기색은의 주석을 가지고 와서 말씀하시는데 그게 심각한 자충수라는거 정말 모르십니까? 저기서 분명히 갈석이 북평에 있다고 하지않습니까? 북평이 한반도 평양에 있는지 아시나본데 요서 하북성에 있습니다. 저걸 자꾸 반박 자료랍시고 가져오시는 것은 스스로 낙랑군 요서설을 입증하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평양에 갈석산이 있다는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는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낙랑군 평양설을 반박하는 자료들을 추가하는 부분은 낙랑군 문서의 낙랑군 위치에 대한 논란 부분입니다. 그부분에 해당 자료들을 추가하는 것이 도대체가 뭐가 중립적이지 못합니까? 거기는 낙랑군 위치에 대한 논란을 다루라고 편성된 섹션아닙니까? 그리고 도대체 복기대 교수 부분과 SBS 부분에 겹치는 부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정당한 편집을 가지고 자꾸 이러시는 것은 실로 온당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주의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20:53 (KST)
자충수는 커녕, 낙랑군 요서설이 얼마나 저열한 사기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인데 말입니다. 낙랑군 수성현에 있는 갈석(A)과 요서 임유현에 있는 갈석(B) 중에서 북평(임유현 인근)에 있는 갈석(B)이 맞다는 내용이거든요. 갈석이 여러 곳에 있는데, 그 중에서 요서 임유현에 있는 갈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럼 낙랑군 수성현에 있는 갈석은 북평에 없다는 의미거든요. A에 있다는 글과 B에 잇다는 글을 인용하고 그 중에서 B가 맞다는 전체 문장에서 A에 있다는 문장만 가져오는 것은 엄연히 사기 행위에 해당합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22:3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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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은 옛 우북평 북연이다. 라는 글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박하실지 궁금하군요.
'요동'이 만주와 한반도를 포함하는 개념임을 누가 주장하였습니까? 혹시 학계에서 권위 있는 학자의 논문에 언급되어 있나요? 그렇다면 백제나 부여, 동예, 옥저는 요동이라 적혀 있습니까? 그리고 전연에 의해 설치된 낙랑군이 수, 당 때도 존재했던 건가요?

당나라 시기에 작성된 것이라면 요동은 고구려 멸망 당시의 고구려 영토였던 요동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설마 사서에 먼 동쪽이라 두루뭉실하게 서술하였을리는 없고, 혹시 이현이 쓴 주석서나 동시대 사서에 신라를 요동으로 표시하였습니까?

일단 고구려는 '요동' 에 있었으므로 그렇게 불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삼한'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제시하신 신라 김씨의 묘지를 제외하고 또 자료를 요청합니다. 부지기수라 하셨으니까요. 그럼 귀하가 반박하지 않은 부분은 '요사'군요. --211.36.142.196 (토론) 2014년 7월 3일 (목) 00:10 (KST)
1. 낙랑은 실제로 우북평 인근에 있었는데요? 북제 시기에 말입니다. 제발 부탁인데 낙랑군 문서라도 좀 읽어보세요. 고구려가 314년에 낙랑군을 축출한 이후, 모용씨부터 북제 시기까지 요서 일대에 낙랑군이 교치(僑置)되어 이리 저리 떠돌았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위서》〈지형지〉에 그 건치연혁까지 다 적혀 있어요. 낙랑군 요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치고 이 교치 사실을 꺼내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명백하게 교치되어 떠돌아다닌 기록이 있는데, 후대에 낙랑군이 요서에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남영주(南營州) 영구군(營邱郡)은 관할하는 현이 3개로, 부평현(富平縣), 영안현(永安縣), 대방현(帶方縣) -원상(元象) 연간에 설치하였다.- 이다. 낙랑군 -천평(天平) 4년(537)에 설치하였다.- 은 관할하는 현이 1개로, 영락현(永樂縣) -흥화(興和) 2년(540)에 설치하였다.- 이다. ○ 영주(營州) 낙량군(樂良郡)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설치하였다. 전한과 후한 및 진(晉)나라 때에는 낙랑(樂浪)이라고 불렀고, 그 뒤에 혁파하였다가 정광(正光) 말년에 다시 설치하였으며, 치소(治所)는 연성(連城)이다.- 은 관할하는 현이 2개로, 영락현 -정광 말년에 설치하였다-, 대방현 -전한과 후한 및 진나라 때에는 대방군에 속하였으며, 그 뒤에 혁파하였다가 정광 말년에 다시 소속시켰다.- 이다. ○ 평주(平州) 북평군(北平郡) 조선현(朝鮮縣)은 전한과 후한 및 진나라 때에는 낙랑군에 속하였다가, 그 뒤에 혁파하였으며, 연화(延和) 1년(432)에 조선의 백성을 비여(肥如)로 옮기고서 다시 소속시켰다. - 《위서》〈지형지〉의 관련 군현 중에서 발췌, 《해동역사》〈지리고〉에 정리된 것으로 인용
2. 요동이 만주+한반도 일대를 가리키는 개념이 된 것은 당나라 무렵부터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당나라보다 훨씬 이전에 망한 부여, 동예, 옥저 등이 요동이라 기록될 이유가 없죠. 반면 당나라 이후부터 한국과 중국 모두 요동, 해동(海東), 요좌(遼左) 등의 용어로 요하 동쪽(왼쪽) 지역 -만주 및 한반도- 을 표현한 사례가 빈번합니다. 특히 신라 및 고려 시기에 이런 경향이 강하죠. (〈高麗時期 '海東' 인식과 海東天下〉, 《한국사연구》129호, 한국사연구회, 2005 ) 《제왕운기》는 한국사를 읊은 구절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遼東別有一乾坤, 斗與中朝區以分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으니 두드러져 중국과 구분되어 나누어져 있네” 한국 그 자체를 요동이라 표현하고 있죠. 중국 측도 마찬가지로, 《고려도경》에는 “하물며 저 고려는 요동(遼東)에 있는바, 아침에 명령을 내리면 저녁에 와서 바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는 속국(屬國)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도적을 작성하기가 더욱더 어려운 데이겠습니까.”, “대체로 이역 땅에 사신으로 가는 데는 요동(遼東)이 가장 어려우니, 해양이 막혀 있어 위험이 오만 가지인데, 온전히 끝마치고 조정에 복명할 수 있게 됨이 어찌 다행하지 않겠는가?”라고 적고 있습니다. 압록강 이남에 위치한 고려를 요동이라 지칭하고 있죠.
3. 《요사》〈지리지〉는 편찬 당시부터 엉망진창이라고 욕을 먹은 것이 수백 년입니다. 《요사》 따위를 근거로 내미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요사》를 가지고 낙랑군 운운하는 사람들치고 해당 지리지 항목 전체의 내용을 다 본 사람은 없더군요. 직접 《요사》〈지리지〉‘동경요양부조’를 직접 보시죠.
東京遼陽府,本朝鮮之地。周武王釋箕子囚,去之朝鮮,因以封之。作八條之教,尚禮義,富農桑,外戶不閉,人不爲盜。傳四十餘世。燕屬真番、朝鮮,始置吏、築障。秦屬遼東外徼。漢初,燕人滿王故空地。武帝元封三年,定朝鮮爲真番、臨屯、樂浪、玄菟四郡。後漢出入青、幽二州,遼東、玄菟二郡,沿革不常。漢末爲公孫度所據,傳子康;孫淵,自稱燕王,建元紹漢,魏滅之。晉陷高麗,後歸慕容垂;子寶,以勾麗王安爲平州牧居之。元魏太武遣使至其所居平壤城,遼東京本此。唐高宗平高麗,於此置安東都護府;後爲渤海大氏所有。大氏始保挹婁之東牟山。武后萬歲通天中,爲契丹盡忠所逼,有乞乞仲象者,度遼水自固,武后封爲震國公。傳子祚榮,建都邑,自稱震王,併吞海北,地方五千里,兵數十萬。中宗賜所都曰忽汗州,封渤海郡王。十有二世至彝震,僭號改元,擬建宮闕,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爲遼東盛國。忽汗州即故平壤城也,號中京顯德府。太祖建國,攻渤海,撥忽汗城,俘其王大諲譔,以爲東丹王國,立太子圖欲爲人皇王以主之。神冊四年,葺遼陽故城,以渤海、漢戶建東平郡,爲防禦州。天顯三年,遷東丹國民居之,升爲南京。
동경요양부는 본래 조선의 땅이다. 주무왕이 기자를 옥에서 풀어주자 조선으로 갔고, 이에 그곳에 봉했다. (중략) 연나라는 진번, 조선을 복속시켜 관리를 두고 장성(障)을 쌓았다. 한나라 초기에 연나라 사람 만이 빈 땅을 차지하고 왕이 되었다. 무제 원봉 3년, 조선을 정벌하여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의 4군을 만들었다. 후한 때 청주와 유주에 소속되었고, 요동 현도 두 군의 연혁은 상세하지 않다. 한나라 말기에 공손도가 웅거하여 아들 강과 손자 연까지 전하면서 연왕을 자칭하고 소한이라 연호를 정하였으나 위나라가 멸망시켰다. 진나라 때 고(구)려가 점령했고 이후 모용수와 아들 보에게 귀의하였으며 구려왕 안을 평주목에 임명하고 그곳에 거했다. 원위 태무제 때 사신을 보냈으니 평양성으로 요의 동경이 본래 그곳이다. 당 고종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안동 도호부를 두었다. 후에 발해 대씨가 소유하였다. (중략) (발해의) 홀한주는 옛 평양성으로 중경현덕부이다. 요 태조가 건국한 뒤 발해를 공격하여 홀한성을 쳐부수고 발해왕 대인선을 사로잡아 동단왕국으로 만들었다. (후략)
무려 동경요양부를 고구려 평양성이자 발해 중경현덕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사료입니까? 이것 말고도 《요사》〈지리지〉가 엉망진창이라는 근거는 수도 없습니다. 실학자 한진서는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을 정도죠.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요사》에서 이미 요양주(遼陽州)를 평양성이라고 하였으므로 요동의 주현을 이로 인하여 낙랑의 여러 현에 꿰맞춘 것이다. 《요사》 지리지는 모두가 두찬(杜撰)된 것으로 많이 논변할 필요조차 없다.” 이미 편찬 당시부터 개판이라고 욕을 먹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형편없는 《요사》〈지리지〉를 가지고 자기들 마음에 드는 기록만 쏙 빼다 증거랍시고 들이미는 행위가 과연 올바른 것입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7월 3일 (목) 12:03 (KST)

요사는 중국인이 아니라 제3자에게 쓰여진 글로서 그 가치를 지닙니다. 그리고 평양성은 다수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설마 '요동군' 평양성이 단순히 먼 한반도의 평양성이라 보십니까? 만주원류고도 개판이겠군요,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제시하신 요동을 먼 동쪽이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색이 중국의 사서, 지리서인데 낙랑군의 위치를 먼 동쪽으로 두루뭉실하게 표현하였을리는 없으니, 고려도경, 제왕운기가 아니라 중국의 당나라 시기의 정사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고려의 영토는 현재 압록강보다 북쪽이었습니다. 고려사에서 그렇게 설명합니다만 일제에 왜곡되어 그것이 계승된거죠. 고려의 영토가 한반도 밖의 만주에 일부 영토가 있었다는 전제 하에 고려가 요동으로 불린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211.36.141.29 (토론) 2014년 7월 3일 (목) 16:42 (KST)

《만주원류고》에 의하면 《요사》를 인용한 것이 210여 조목이 있고, 《금사》를 인용한 것은 360여 조목인 바, 이들이 《만주원류고》 전편에서 인용한 1,450여 조목과 그 비율을 각각 대조해 보면 이 책의 편자들이 중화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오랑캐라고 얏잡아 보던 자신들의 안목으로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입장에서 기술했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반영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손문량, 《만주원류고 변석(滿洲源流考 辨析)》, 중국인민대학서보자료중심, 1987년, 52쪽) 반면 이러한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사 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여 아무런 연구조차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할 따름이군요. 하여튼 실제로 가보기는 했을까 궁금합니다. 일왕을 천황으로,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고치라 하던 상당수의 식민사학자들이. 마음같아선 한국어 위키백과의 고조선, 고구려 부분에 북한의 정설을 올려놓고 싶군요.

1. 수서 배구열전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중국에서 추측하는 고죽국의 위치가 어디죠? 수서가 당나라 때 쓰여지고 고구려와 비슷한 시기였을테니 고려시대의 삼국유사의 추측보다는 더 신뢰감을 주는군요, 비록 열전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증거들의 뒷받침으로 인해 분명해 지는 것이 있네요.
高(句)麗之地, 本孤竹國也, 周代以之封于箕子, 漢世分爲三郡. 
고구려의 땅은 본래 고죽국인데 주대에는 그곳에 기자를 봉하였고, 서한(西漢)시대에 는 (그곳을) 나누어 3군을 삼았다. 《수서》
2.
요동의 험독현(險瀆縣)에 대해서 응소(應劭)는 말하기를, “조선 왕 위만이 도읍한 곳이다. 험고한 물에 의지해 있으므로 험독이라 한 것이다.” 하였고, 
신(臣) 찬(瓚)은 말하기를,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는데, 이곳이 험독(險瀆)이다. 《한서음의(漢書音義)》
상암현(霜巖縣)은 한(漢) 나라 때의 험독(險瀆)인데, 고구려(高句麗)가 상암(霜巖)으로 고치고, 발해(渤海)가 또 집주(集州)로 고쳐 봉집(奉集) 1현(縣)을
거 느리게 하였다. 봉집현에는 혼하(渾河)가 있다. 상암현은 지금의 승덕현(承德縣)에 있다.《동사강목》
3.
汉武帝在公元前108年灭卫氏朝鲜,于其地置乐浪、真番、临屯、玄冤四郡。汉代的辽东郡与乐浪郡东、西相邻,推定乐浪郡的方位时,必然涉及到辽东郡的方位问题。过去,国内外学者关于辽东郡和乐浪郡的位置问题发表了许多论著,多数学者认为燕、秦、汉的辽东郡在今辽河以东到今朝鲜的清川江一带,郡治在今辽宁省的辽阳市;乐浪郡在今朝鲜的大同江流域,郡治在今朝鲜的平壤。 反对上述通说者认为从燕、秦到汉武帝置四郡以前的辽东郡在今河北省滦河下游以东到山海关地区,汉武帝置四郡以后,才迁到今辽河以东即今辽东半岛①。关于乐浪郡的位置问题,反对通说者认为“汉四郡位于今辽河以西的地方,汉四郡之一的乐浪郡也必然位于该地区之内”,即“今河北省东北部的滦河东部沿岸,是以昌黎县的褐石为其西方境界”;并认为在今朝鲜平壤地区建立的是乐浪国,而不是乐浪郡②。 从反对通说者提出的论据来看,还值得进一步商讨。今仅将其论点和论据以及有待商讨的问题分述如下。 一、汉武帝置四郡以前的辽东郡是否在今滦河下游到山海关附近地区的问题 认为汉武帝置四郡以前的辽东郡在今滦河下游以东到山海关附近,持这种观点的学者其论据主要有以下五

来源:《社会科学战线》1993年第01期 作者: 李健才


--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4일 (금) 20:28 (KST)

반박을 하려고 자료를 찾던 중입니다만, 이번에 쓰신 글도 모두 잘못된 내용 투성이인지라 간단하게 몇말씀 드리지요.
1. 황해도에 수양산이 있는 건 아십니까? 백이와 숙제가 굶어죽은 곳이 고죽국 수양산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황해도 수양산 덕분에 고죽국이 한반도 안에 있었다는 전설이 수천년 동안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물론 현대 학자들은 그런 것 안믿죠. 실제 고죽국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요서에서 발굴되었으니까요. 전설과 실제 역사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겠군요. 참고로 이 전설에 대해서 고죽국 발굴 이전에도 전근대 학자들이 말도 안되는 전설이라 비판한 것이 수두룩합니다.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살다가 주무왕이 혁명을 시작하는 길에 나타나 길을 막았는데, 그럼 황해도에서 장안까지 갔던 것이라는 건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2. 《한서》의 주석도 완전히 왜곡해서 인용하셨군요. 이미 갈석산 관련에서 단장취의를 한 증거를 보여드렸는데, 이번에도 속된말로 사기를 치는 수준의 왜곡입니다. 실제 저 주석의 전문은 이렇습니다.
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臣瓉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師古曰瓚説是也浿音普大反.
응소가 말하길 조선왕 만의 도읍이다. 험한 물에 의지해 있으므로 험독이라 한 것이다. 신찬이 말하길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이곳(험독)은 (왕험성이 아니라) 마땅히 험독이다. 사고가 말하길 찬의 말이 옳다.
또 같은 왜곡이군요. A와 B 중에서 B가 맞다는 문장에서 B가 맞다는 문장만 쏙 빼놓은 것. 뭐, B를 잘못 해석해 놓은 것은 덤이군요. 신찬은 응소의 주석에 대해서 ‘왕험성은 패수에 있는데 왜 험독이 왕험성이냐’고 비판하고 있는 겁니다. 안사고도 신찬의 말이 맞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같은 사료 안에서도 틀렸다고 까고 있는 사료를 가지고 대체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 사료조차도 제멋대로 뚝뚝 잘라다 자기한테 유리한 것만 보여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학문을 논할 자격조차 없는 겁니다.
3. “하지만 요사 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여 아무런 연구조차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할 따름이군요.”라고 하시는데, 완전히 잘못 짚으셨습니다. 요사의 기록을 충분히 연구한 결과 신빙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겁니다. 아무런 연구조차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은 공짜 밥을 먹고 사는 분들이 아닙니다. 학자들이 쓸모 없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쓸모 있는지 없는지 악랄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난 뒤에 평가를 내른 것입니다. 물론 귀하가 가져오는 모든 주장들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귀하가 무엇을 가져오건 거의 다 본 것들이고, 그것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속된말로 사기를 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귀하가 무엇을 가져오건, 그것이 역사학계라는 공인된 출처를 통해 정설 혹은 다수설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하나도 쓸모 없습니다. 그나마 북한 학계라는 특수한 존재 때문에 논란이라고 부를수라도 있는 겁니다. 아니었으면 모두 삭제감일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4일 (금) 23:01 (KST)

낙랑군 문서 역도원 부분의 귀하의 편집의 문제점

귀하는 낙랑군 문서의 "낙랑군의 위치 및 성격에 대한 논란"의 "위치" 부분에서 역도원의 언급을 불필요하게 추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귀하는 고구려 사신이 역도원의 질문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과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 같은 곳이며"라고 대답했다고 편집했으나 실제 상황은 해당 주석을 봐도 그렇고 고구려 사신은 역도원에 질문에 대하여 단순히 패수의 흐름 방향만 답변한 것입니다. 도대체 귀하가 이렇게 편집한 근거가 무엇인지를 밝혀주십시오. 답변이 없거나 납득하지 못할 답변이면 해당 부분을 마땅히 삭제 편집하고 대신 수경의 "패수는 동쪽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부분을 수록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6일 (일) 14:43 (KST)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역도원의 주석을 보면 역도원의 질문에 고구려 사신은 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라고 밖에 답변하지 않았습니다.("余訪蕃使, 言城在浿水之陽") 이후 나오는 강의 설명은 역도원 자신이 주관적으로 붙인 설명입니다. 이런 상황을 가지고 마치 고구려 사신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과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 같은 곳이며 패수가 낙랑군 조선현을 관통하여 흐른다는 대답을 받은 것이 그 내용이다."이렇게 대답했다고 편집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귀하의 이런 편집이 당연히 삭제되어야 함은 귀하도 동의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너무 의도적인 왜곡이 분명하므로 일단 해당 부분은 삭제 편집부터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6일 (일) 16:05 (KST)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도 별반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고구려 사신의 말 뒤의 언급이 역도원 자신의 설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낙랑군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고 그 위치 또한 평양성과 같은 곳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이를 삭제한 것은 엄연히 출처가 분명한 것을 삭제한 행위로 반달에 해당합니다. 내일 오전까지 적합하게 복구하지 않을 시 반달행위 목록에 추가해 넣겠습니다. 추후 귀하에 대한 제제 요청에 사용될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7일 (월) 11:06 (KST)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게 올바른 해석입니다. 그리고 뭐가 달라질 것이 없습니까? 귀하는 지금까지 그런 식의 의도적 왜곡 편집을 통해서 마치 당대의 고구려 사신이 직접 그런 식으로 말을 한 것으로 왜곡하여 위키를 이용하시는 분들께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사신의 말도 아니고 역도원 개인의 언급이, 그것도 잘못된 추론에 의한 언급이 왜 위키에 실려야합니까? 하여간 사과하고 반성하지는 못할 도리어 반달이니 제재 요청을 운운하니 정말 기가 막힙니다. 명백한 왜곡을 제가 왜 복구해야됩니까? 그리고 분명히 경고드리는데 자신의 주장에 맞지않는 편집, 심지어 이번같은 귀하의 명백한 의도적인 왜곡 편집의 삭제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반달이니 제재 요청이니 하시는데 이는 앞서서도 누누히 말씀드렸지만 명백한 협업 태도 위반에 해당합니다. 한번만 더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즉시 차단 연장 요청에 들어가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7일 (월) 13:33 (KST)
번거롭지만 역도원 수경주의 해당 부분 해석을 올려드립니다. 해석하신 분은 바로 그 유명하신 윤내현 교수님이십니다. 의도적 왜곡이 아니라 귀하 스스로가 한문 해석 능력이 부족하여 이상한 블로그의 해석을 보고 이런 주장을 하신 것으로도 판단되므로 제가 번거롭지만 일부러 올려드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余訪蕃使 言城在浿水之陽 其水西流逕故樂浪朝鮮縣 卽樂浪郡治 漢武帝置 而西北流 故地理志曰 浿水至增地縣入海"
"그래서 나는 고구려 사신을 방문하여 물어보았더니 그는 말하기를 "고구려 도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그 강은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군 조선현을 지난다. 조선현은 낙랑군의 치소로서 서한의 무제가 설치한 것이다. 패수가 서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한서 지리지에 말하기를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고..."
고구려 사신은 "고구려 도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라고 밖에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위키백과에 " 당대 고구려 사신에게 역도원이 직접 패수의 위치를 질문하자,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과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 같은 곳이며 패수가 낙랑군 조선현을 관통하여 흐른다는 대답을 받은 것이 그 내용이다."라고 말도 안되는 왜곡을 해놓았습니다. 이것이 의도적이든 한문 해석 능력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든 간에 위키백과에서 마땅히 삭제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복구 요청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7일 (월) 13:53 (KST)

북한 학설의 문제

현재 두 사용자의 문서 편집을 근거로 편집을 하는 사용자가 있습니다. 토론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판단, 토론이 완료되기 전까지 문서의 편집을 제한할 것을 요청할 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Neoalpha (토론) 2014년 7월 16일 (수) 00:57 (KST)

위 토론에 몇차례 언급되었습니다만, 북한의 역사학계는 현재 한중일 삼국 모두 전혀 인정하지 않는 수준의 학설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소위 대동강 문명을 주장하며 세게 5대 문명 중 하나라 주장하는 수준의 북한 학계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엄밀히 말해 북한의 학설이야말로 소수설이며, 단지 지정학적 위치나 직접적인 이해관계만으로 어떤 학설이 다수설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해당 사용자의 주장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독자연구일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6일 (수) 13:25 (KST)

그러한 주장을 한다고 북한의 연구 성과를 완강히 부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반대로 한국의 역사학계는 북한의 역사학계에서 전혀 인정하지 않는 수준의 학설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혈연적으로 동질성을 가질 뿐, 엄연히 다른 국가입니다. 유엔에서도 인정합니다만 대한민국의 헌법만 인정을 하지 않죠. 고조선의 주체는 북한입니다. 귀하가 언급했죠. 이곳은 한국 위키백과가 아니라 한국어 위키백과라고. 만리장성의 한반도 건축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중국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르라고.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잣대를 보이는 이유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반복하지만 북한의 학설은 소수설이 아닙니다. 소수설이라 보는 것은 귀하와 고조선의 영토인 북한에 가보지도 못한 분들이죠. 대한민국의 학설이 소수설이 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만 여러 사안을 감안하여 북한 측에서 주장하는 사진까지 동등하게(제 관점상 대한민국의 공식 학설 아래) 올려 놓은 것이죠. 이를 훼손하는 것은 엄연한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귀하의 논리대로라면 역사 왜곡을 자행한 중국과 일본의 학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또 지금 국내에서는 뉴라이트로 인해 친일파가 횡행하던 시기로 회귀하려 하고 자국 역사를 훼손하기 바쁩니다만. 이러한 점에서 볼때 분명히 북한의 역사학계에서 배울 점은 있습니다. 자국의 역사를 사랑한다는 것이죠. 때로는 그 사랑이 지나쳐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만. 혹시 홍산 문화를 세계 주요 문명에 추가시키자는 주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자가 있다는 주장도 있고(갑골문, 요서지역에서도 발굴됨) [1], 중국의 황허 문명보다 오래되었습니다만. 소수설이라 말씀 안하셔도 됩니다. 그저 의견을 질문한 것이니까요.--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16일 (수) 17:57 (KST)

1. 바로 그 한국어 위키백과이므로 사회적 저명성에 따라 북한학계의 주장은 소수설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낙랑군이나 고조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한중일 삼국 모두 북한의 주장은 아예 취급조차 하지 않으니까요. 한국 뿐이라면 귀하의 말씀대로 양립하는 주장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아닌 것이 현실 아닙니까?
2. 위에 썼다시피 지정학적인 위치가 고조선의 실제 영토라는 점과 그 국가가 주장하는 학설의 신뢰성 여부는 무관합니다. 그러한 논리대로라면, 북한은 낙랑군을 요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요서를 영토로 지배하고 있는 중국은 그런 주장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어느 주장이 맞는 것일까요? 동북공정 운운하시려거든 바로 그 동북공정을 비판한 중국의 여러 학자들부터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들이 전혀 인정되지 않는 왜곡이라 치부하고 있습니다. 공식 주장에 어긋나는 학자들을 수용소로 보내버리는 북한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합니다.
3. 단지 한 국가의 학계라는 이유로 북한의 주장을 동등하게 다뤄야 하는 정당성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고 창조설을 공식 입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창조설이 올바른 학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잘 봐줘도 “이슬람에서는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고(혹은 탄압하고) 창조설이 옳다고 주장한다”는 소수설의 하나로 언급될 뿐입니다. 북한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잘 봐줘도 북한만 주장하는 소수설로 취급되는 것이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에 맞는 것입니다.
4. 링크는 무슨 연유로 하신 것인지 모르겠군요. 링크 어디에도 요서의 갑골문과 관련된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데요? 그리고 링크한 기사는 아예 논할 가치도 없는 엉터리 기사고 말입니다. 구체적인 출처는 하나도 없이 누가 그랬다더라, 뜬금없는 한 젊은이의 일갈 같은 것들, 모두 잘 봐줘야 진태하 혼자서 주장한 내용을 그냥 받아쓴 기사에 불과합니다. 정말 진태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학술회의를 개최한 주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누가 참가했는지도 한마디 없으며 젊은이가 누구인지조차 모를까요? 적어도 정상적인 학술 기사라면 학술회의가 어느 단체에서 개최했고 어느 학자가 참가했으며 어떤 토론자가 있었는지 밝혀야 하는 겁니다.
5. 홍산 문화는 황허 문명보다 전혀 오래되지 않은, 그저 적당히 발달한 여러 신석기 문화의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중국의 신석기 문화 목록이라도 보시기 바랍니다. 애초에 현재 고고학계는 황허 문명 자체를 황하 유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양쯔강 유역과 요서/내몽골 지역을 포함하는 중국의 중심 지역 전체에 걸쳐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교류하면서 발달한 문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황하 문명의 설명문 참조) 홍산 문화 하나만 가지고 세계 주요 문명이라 주장하는 경우는 적어도 정상적인 학자라면 없습니다. 심지어 중국조차도 그런 과장은 안합니다. 물론 자칭 재야사학 추종자들은 뻔한 거짓말을 하죠. ‘중국이 우리 고조선의 문화인 홍산 문화를 가지고 자기네 것이라 주장하며 세계 5대 문명이라 우긴다’라고. 귀하께 묻습니다. 어느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각입니까?--Xakyntos (토론) 2014년 7월 17일 (목) 10:46 (KST)
과연 그럴까요? 귀하가 정치라는 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지 의문이 듭니다만, 중국 공산당의 힘이 너무 막강하여 학자들이 왜곡이라 치부하여도 그것이 곧 중국에서는 사실이 되버립니다. 천안문 사태의 탱크 남성 실종, 파룬궁 수련자 탄압, 공개 총살 등의 인권 유린, 자기네 입맛대로 카카오톡 차단, 중국을 비판한 책은 금서가 되는 등 여러 경우를 보면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상당수의 중국 학자들이 동북공정을 신봉하며 길림대학교가 동북공정의 본산이 되는 등 상황이 이렇고, 귀하가 주장하는 내용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중국인인 제 지인이 말한 내용은 그러한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더군요.
링크는 말 그대로 한자가 동이족의 문자라는 주장을 알리고자 하기 위함이었지요. 중국 사학자 쩌우쥔멍(鄒君孟), 왕위저(王玉哲), 장원(張文)과 쑨펑(孫鵬) 창힐문화연구회장, 대만의 문자학자 리징자이(李敬齋)의 논문은 아예 논할 가치가 없는가 봅니다? 귀하의 독단적인 주장 및 견해보다는 이러한 전문가들의 주장이 더 신빙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요서 지역에서 발굴되는 갑골문은 중국의 인근 박물관에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만주지방 옥도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도 있죠.
초중기 황허문명은 신석기 문화입니다. 신석기 문화라고 하여 문명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족이 예로부터 오랑캐의 땅으로 취급하던 곳에 있던 홍산 문화가 황허 문명보다는 오래된 것이며 은나라의 주체가 동이족(물론 그 동이족이 무조건 한국인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이라는 중국 학자들의 주장들도 있습니다. 물론 귀하의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달리 논문에서 언급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홍산문화는 황허 문명보다 오래된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으며, 전혀 오래되지 않았다는 귀하의 주장은 소수설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것들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귀하는 귀하만의 독단적인 주장을 주창하시는군요.
[辽西地区先秦时期居民的体质人类学与分子考古学研究]이라는 赵欣의 2009년도 길림대학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한국인과 홍산인 유전자의 유사성이 언급됩니다. 유전학에 대해서 반박하지 못하시리라 생각하며, 차후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2일 (화) 13:26 (KST)

1. 중국이 아무려면 북한만 하겠습니까. 설사 중국을 못믿는다 쳐도, 북한은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귀하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중국 학계가 그렇건 아니건 무슨 상관입니까? 귀하는 중국 학계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적어도 동북공정처럼 한중일 학계의 학자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한 것이 아닌 이상, 귀하의 주장은 그저 독자연구일 뿐입니다. 게다가 동북공정처럼 첨예한 대립이 있는 부문도 아니고 오롯이 한중일 삼국 모두가 공통된 의견을 내고 있는 사안이며, 게다가 북한 학계의 견해에 대해서는 아예 논외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말이죠. 이런 상황에 단지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는 이유로 북한 학계의 주장을 정설인양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까?
쑨쭤윈의 주장에 의하면, 활을 잘 쏘았다고 말해지는 동명과 주몽은 동일 인물로서 태양의 아들이자 하백의 외손자인데, 백명·봉몽·예 역시 태양을 토템으로 여기는 동이로서 태양의 아들이며 하백과 관련이 있다. “예와 봉몽은 모두 동이”라는 주장은 결국 “백명=봉몽=주몽”이라는 구도를 통해 동명이나 주몽에 관한 서사 역시 중국 역사의 일부로 포섭할 수 있다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32쪽
동이를 중화민족의 일부로 간주하는 중국 측 시각과 동이를 한민족과 중첩시키는 한국 측 시각이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소통할 수 없는 '동상이몽'의 논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호가 치우의 후예이고 동이 집단에 속한다는 중국학자의 주장을 '한민족 동이의 치우'라는 논거로 날것 그대로 끌어다 쓰는 식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략) 진태하가 논거로 삼은 중국학자인 쩌우쥔멍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동방 소호문화를 위주로 한 대문구 문화는 중원과 동이의 양대 집단이 융합된 결정체로서 '화하족' 문화의 보배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담론의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한 단장취의는 결국 왜곡된 논의를 조장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 237쪽

— 《동북아 활쏘기 신화와 중화주의 신화론 비판》 이평래 외 지음, 동북아역사재단

2. 쩌우쥔멍을 비롯한 중국 학자들의 견해야말로 진태하가 제멋대로 왜곡해서 가져다 쓴 물건들이죠. 위 인용문을 보시다시피, 결국 저들 중국학자들의 주장이 바로 동북공정입니다. 신화 속의 동이와 연관된 부족들을 역사 시대에 끼워맞추고, 그 동이가 한국의 고대 국가의 원류이며 동시에 중국 한족에 흡수되어버린 존재라는 주장. 한마디로 한국의 고대 국가는 중국 한족의 방계라는 주장이 동북공정이며 쩌우쥔멍을 비롯한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저 학자들이 한자를 동이가 만들었네 어쩌네 하는 것은 결국 그 동이도 중국의 일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태하는 이런 사실은 전부 감춰두고 중국도 한자를 동이가 만들었다고 인정한다는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죠. 동북공정의 주장을 그대로 베껴다가 자기 멋대로 써먹고 있으니, 실시간으로 나라를 팔아먹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정작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한국 학자들은 진나라 이전의 동이와 이후의 동이는 다른 존재라고 판정하고 있습니다. 고대 신화에서 제아무리 동이족 어쩌구가 나와도 그 동이는 한민족과 관련이 없는, 산둥성, 강소성 일대에 거주하던, 현재는 중국에 완전히 통합되어 버린 고대의 종족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는 정상적인 중국 학자들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죠. 아래 세계일보 기사를 보시죠.
21CN은 전문가 말을 인용, ‘동이족’이란 고대 동방민족의 통칭으로, 많은 부족이 포함돼 있다며 동이족이 한국인의 선조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자가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오랜 역사 과정을 겪었다며 동이족이 기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한자의 발명자가 동이족이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화민족’이라는 개념도 들고 나왔다. 동이족이 이미 중화민족에 흡수됐다는 것. 21CN은 동이족이 주거했던 땅도 산둥(山東)성 등 중국의 동방지역이며 이곳은 지금은 중국 영토라고 덧붙였다.
3. 중국의 신석기 문화 목록을 좀 보시라니까요? 펑터우산, 페이리강 문화 안보이세요? 홍산 문화요? 황허 문명의 시초로 언급되는 양사오 문화보다 300년이나 뒤쳐졌는데 말입니다. 고작해야 후계 문화도 남기지 못하고 멸실되어버린 홍산 문화 하나를 가지고 문명 운운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문명이라는 것은 한 지역, 한가지 문화 유적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수많은 층위에 걸쳐 다양한 발전을 거치고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 유적이 발굴되어야 하는 겁니다. 황하 문명보다 오래되었다는 것이 중국 학계에서 인정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증거를 가져오세요. 아래 귀하의 말 어디에도 학계 수준의 증거는 보이지 않는군요. 저는 적어도 위키백과에서 정리한 신석기 문화 목록이라도 제시하였는데 말이죠.
초중기 황허문명은 신석기 문화입니다. 신석기 문화라고 하여 문명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족이 예로부터 오랑캐의 땅으로 취급하던 곳에 있던 홍산 문화가 황허 문명보다는 오래된 것이며 은나라의 주체가 동이족(물론 그 동이족이 무조건 한국인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이라는 중국 학자들의 주장들도 있습니다. 물론 귀하의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달리 논문에서 언급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홍산문화는 황허 문명보다 오래된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으며, 전혀 오래되지 않았다는 귀하의 주장은 소수설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것들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귀하는 귀하만의 독단적인 주장을 주창하시는군요.
4. 유전자 분석 결과는 아마도 여기서 검색해서 가져왔겠지요. 이 블로그 주인장의 해석은 엄밀히 말해서 틀렸습니다. 본문 중에 분석에 필요한 자료가 모두 나와 있으니 보시지요.
우하량 유적의 N9a가 35.71% → 한국인의 N9a는 6~7%
그러니까, 소위 홍산 문화의 구성원 중 1/3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한국인 전체 구성원의 6~7%와 같다는 말입니다. 절반도 아니고 1/3도 아니고 7%! 그리고 나머지 홍산 문화 구성원 2/3은 어디에 있을까요? 게다가 정작 저 논문 자체의 결론은 전혀 딴판인데 말이죠. 북방 한족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 논문인데, 논문의 데이터만 따다가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독자연구입니다. 반박을 못하긴 커녕, 완전히 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 논문을 가져다 내밀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차후 얼마든지 질문하십시오. 또 어디가 틀렸는지 다 말씀드릴테니.--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2일 (화) 18:04 (KST)

홍산 문화 유전자 분석

뭐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하셨으니 인정해 드리지요. 하지만 유전학과 관련된 부분에서

N9a는 중국 현대 한족에도 나타나지만, 그 하위 변이형은 대부분 16172가 아니라, 16129에 속하는 것으로, 16172에서 내려 가는 하위 하플로, N9a2,N9a2a,N9a4,N9a5 등은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만 발견되고 있고, 위의 16172에 속하는 유형은 현대 한국인의 mtDNA분석자료에서 완전히 동일한 유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The Peopling of Korea Revealed by Analyses of Mitochondrial DNA and Y-Chromosomal Markers>

이 내용이 설마 이해가 되지 않으신가봐요? 추가 설명 부분과 요서 지역 출토 고인골과 현대 한중일몽 민족간의 관계를 보시면 이해하시렵니까?--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3일 (수) 21:58 (KST)

이해가 안되긴 커녕 별 의미 없는 해석이라는 겁니다. 번동아재 님의 글을 링크하셨는데, 제가 그분과 교분이 있어 잘 압니다. 정작 번동아재 님의 견해는 저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만. 글 첫머리에 링크된 글만 해도 홍산문화와 한국의 고대 국가를 연결해서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해당 글에서도 유관할 가능성은 있지만 신뢰도가 낮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chojae라는 블로거의 해석 자체도 대단한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고 말이죠.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블로거들이 쓴 글은 위키백과에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독자연구일 뿐이라는 겁니다. 정작 해당 논문은 체질 인류학 분석결과를 비롯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현대 한족과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의 주인이 가장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 결론이 동북공정이건 중국식 왜곡이건 간에 일개 블로거의 글로 논문의 결론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위키백과의 원칙입니다. 그러니 귀하야말로 제대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3일 (수) 22:32 (KST)

야율초재 님의 해석 자체도 대단한 무리를 하고 있다는 귀하의 주장에는 근거가 수반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The Peopling of Korea Revealed by Analyses of Mitochondrial DNA and Y-Chromosomal Markers>을 이용하여 논박하였기 때문이죠. 저는 홍산문화가 한국의 고대 국가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해당 블로거는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완전히 자의적인 해석이군요. 다시 한번 읽어보시지요. 신중한 태도를 보이십니다만 저는 위키백과의 편집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독자 연구라는 멍에를 씌워도 소용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만? 네, 하지만 동북공정의 본산 길림대학교에서 나온 내용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일개 블로거에 의해 쉽게 반박되다니 그만큼 오류가 심각하다는 것이 핵심이죠. 이 일개 블로거가 귀하의 분야가 아닌 유전학에서도 매우 뛰어난 지식을 보이는데 말입니다.

홍산 문화 우하량 유적에 주로 나타나는 N9a의 HVS-I 의 염기서열값을 보면 16172 16223 16257 16261에서 변이가 일어나므로,이는 N9a2의 값과 일치하고, 이 유형는 한국과 일본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4일 (목) 09:09 (KST)

우하량 유적의 N9a가 35.71% → 한국인의 N9a는 6~7%
1. 홍산 우하량 유적 인골 유전자의 1/3과 한국인 7%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것이 홍산인과 한국인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해석으로 바뀌는 것이 뻥튀기라는 말입니다. 엄연히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만? 전체도 아니고 1/3이고, 그나마 그 비교 대상도 한국인 전체를 기준으로 7%에 불과한 수치인데 이를 일치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2. “다시말해 (십이대영자문화를 제외한 좁은 의미의) 하가점상층문화를 한국사와 연계시켜 이해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지만 그 외 홍산 문화-소하연 문화-하가점하층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부분은 제가 잘못본 부분이네요. 하가점상층(청동기시대) 문화가 여지가 없다는 것을 전체로 잘못 보았습니다. 이점은 인정합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4일 (목) 10:12 (KST)
1. 에서 저는 홍산인과 한국인의 유전자가 일치한다고 말한 적이 없으므로 뻥튀기를 한 적도 없는데요? 엄연히 유사성과 관련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만? 번동아제 님과 야율초재 님께서 해당 링크에서 일치한다는 언급을 하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근거로 일치한다는 해석을 누가 했다는 것인가 보죠? 또 자의적인 해석을 하셨나 보군요. --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4일 (목) 12:56 (KST)
저는 귀하가 뻥튀기를 했다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요? 사람이 말을 하면 제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해당 블로거의 해석이 무리한 것이라고 수없이 말씀드렸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0:14 (KST)

그럼 도데체 일치했다고 누가 뻥튀기를 했다는 겁니까? 그리고 엉뚱한 대답을 하시는군요. 저 뿐만 아니라 해당 블로거의 글에도 일치한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만? 귀하 혼자서 해당 블로거가 일치한다 말했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그리고 무리한 해석이라고 지적을 하면 되지 "일치한다는 해석으로 바뀌는 것이 뻥튀기라는 말입니다."라 근거 없는 지적을 한 건 귀하입니다만? 사람이 말을 하면 좀 제대로 보시기 바랍니다.--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3:15 (KST)

당신을 위해 커피 한잔!

A small cup of coffee.JPG 때로는 머리를 식혀줘야 좋은 생각이 나오는 법이지요. :) 커뷰 (토론) 2014년 7월 30일 (수) 20:34 (KST)

차단 이의

이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명백한 사실 호도입니다. 한번만 더 이렇게 주장하시면 제재를 요청하겠습니다.

국가가 앞장서서 학생들에게 거짓을 가르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앞서도 그렇고 지금 귀하가 반박 자료라고 올리는 것들이 죄다 이런 식의 터무니없는 것들입니다. 한번만 더 이런 식으로 토론에 임하신다면 부적절한 토론 태도로 제재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 서술 문제에 관해서는 이제는 솔직히 귀하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했는데도 귀하께서 제가 억지를 부린다식으로 주장하시는 대해서는 정말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도대체가 제 답변을 제대로 읽기는 하시는지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정상적인 토론의 의지 자체가 있으신지 솔직히 의문이 갑니다.
이거야말로 명백한 고의적인 사실왜곡아닙니까? 귀하의 이런 편집태도야말로 차단 대상임을 명백히 인지하십시오.
정말 너무도 어이가 없습니다. 국사 교과서에 수록된 그대로의 내용도 거부한다면 귀하야말로 차단 대상입니다. 얼마든지 차단 신청해보십시오. 귀하는 분란조장에 의한 차단 남발의 이유로 차단 대상이 될 것이니까요.
정말 도대체 왜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거듭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를 방해 편집이라고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1. 딱 5분만에 찾은 사용자:Lhrdrth의 인신공격성 발언입니다. 제가 한 소위 인신공격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저 역시도 이 토론에서 위와 같은 수준의 발언을 여러차례 했습니다. 하지만 논쟁이 격화되다보면 과격한 발언이 나올 수 있고, 그래서 저는 도를 넘어선 인신공격이 아니면 그저 토론 태도만 가지고 차단을 요청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관리자 RedMosQ 님께서는 이런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쪽의 말만 듣고 단번에 차단을 시켜버리십니다. 이게 과연 공정한 사관입니까? 앞서 2번 차단을 당했을 때도, 저는 제가 과격한 발언을 한 것을 인정하고 넘어갔습니다. 해당 논쟁들에서도 상대방 역시 전혀 못지 않은 과격한 발언을 수차례 했죠. 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이번 사관에 대해서 불공정함을 저뿐만 아니라 샐러맨더, Neoalpha 님 등도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이렇게 불공정한 차단이 세 번째쯤 되면 RedMosQ 님께서 고의로 상대방의 편만 들어준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더라는 수식어때문에 "아직까지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약간 더 진전하여 확정적인 것인 마냥 인정했다"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해당 인신공격 발언이 나오게 된 원인은 사용자:Lhrdrth이 제 발언을 고의로 왜곡하여 인용하는 등 거짓말을 한 것 때문입니다. 위에 인용한 사용자:Lhrdrth의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해당 사용자는 문제가 된 발언에서 중요한 것이 라는 부사임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용자는 전혀 다른 의미인 확정적으로 서술이라는 말로 제 말을 왜곡했습니다. 이것이 왜곡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당신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당신의 주장은 비중립적입니다’와 같이 상대방의 주장 또는 편집 행위에 대해 비판한다면, 그리고 그런 비판을 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인신 공격이 아닙니다.” 위키백과의 인신 공격 금지 지침에는 이렇게 상대방의 주장 및 편집 행위에 대한 비판이 인신공격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거짓이라 말하는 것이 차단되어야 할 이유입니까? 제가 감정적으로 거친 언행을 한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해당 사용자의 거짓을 거짓이라 말하는 것은 인신공격이 아니라 정당한 비판입니다.

3. “다른 편집자의 질문, 편집에 대한 설명 요청, 편집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반복적으로 묵살합니다. 다른 편집자의 편집 설명을 반복적으로 무시합니다.” 이미 제가 사관 요청에 글을 썼듯이, 사용자:Lhrdrth는 바로 이에 해당하는 방해 편집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토론:낙랑군#《수경주》 문제의 내용을 보시다시피, 같은 설명을 무려 4차례나 반복하고 논점을 재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설명을 무시하고 논점을 흐리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사용자:Lhrdrth는 고의로 논점을 회피하고 토론을 망치면서 제가 감정적이 되도록 도발하고 있었다고 보기에도 충분합니다. 이러한 사용자:Lhrdrth의 토론 태도 문제는 Neoalpha 님께서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언사가 과격했을지언정 정당한 비판이 차단의 사유라면 사용자:Lhrdrth의 방해 편집은 영구 차단감입니다. 관리자 님의 현명한 판단 바랍니다. --Xakyntos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11:56 (KST)

우선 Xakyntos 님이 차단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감을 표시합니다. 다만, 차단을 해제하려면, 본인이 차단을 받게 된 구체적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본인의 잘못도 있지만 본인과 토론한 다른 상대자도 잘못이 있으니, 두 명을 같이 차단하라는 말인가요?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차단 재검토 요청을 하면서, 토론 상대방이었던 사용자:Lhrdrth 님의 잘못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게다가 자신을 차단한 관리자에게까지 "고의로 상대방을 편들어준다"고 지적하는 것은 금도를 넘은 행위입니다. 차단 당한 억울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최소한 지켜야 할 예의는 있으니까요. 이번이 Xakyntos 님의 첫 차단도 아니고, 벌써 여러 번 차단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기 전에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토론 태도를 개선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다시 돌아오셨을 때는 달라진 토론 태도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12:21 (KST)
우선 상대편만 들어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합니다. Xakyntos님께서는 지금도. 매우 격한 감정을 가지고 말씀을 하시는데, 위키백과에서 상대를 거짓말을 한다고 무시하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해라고 허용한 적은 없습니다. 또, 위키백과를 편집하신 지는 거의 7년 정도 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정도면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을 누구보다 잘 준수하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에게 공격적인 반응을 하는 등의 도를 넘는 행동을 반복하셨기 때문에, 저번에는 간단한 구두 경고를 드리기도 했었죠. 3개월 간 위키백과에서 벗어나서 휴식 시간을 좀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물론 저는 차단을 시행한 사람이기 때문에 차단 재검토를 처리할 권한이 없습니다. 다른 관리자 분들께서 해주시겠죠. --RedMosQ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13:45 (KST)
어차피 제 차단 자체를 부정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위에 인용한 발언들을 근거로 사용자:Lhrdrth를 인신공격으로 사관을 요청합니다. 엄연히 서로 인신공격을 주고 받았음에도 이를 한쪽만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아니, 위와 같이 토론을 고의로 회피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여 인신공격을 유도하는 행위는 오히려 더 공동체의 협업정신에 위해가 됩니다. 해당 사용자의 토론 태도를 이유로 사관을 요청한것은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이정도면 해당 사용자의 행위가 사관 대상임은 자명하다고 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14:12 (KST)
위키백과에서 시행하고 있는 차단 이의 제도는 본인의 차단에 대해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재고를 요청하거나, 혹은 차단된 것은 수용하겠지만 그 기간을 조정해 줄 것을 요청할 때 사용하는 권리 구제 장치입니다. Xakyntos 본인이 이번 차단에 대해서 받아들이시겠다고 한다면, 차단 이의 제기 자체가 아무런 실효성이 없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본인이 본인을 기각한 셈입니다. 따라서 이번 차단 이의 제기는 자동 종료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본인과 논쟁을 벌였던 상대방도 같이 차단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 그다지 보기에 좋은 토론 태도는 아닙니다. 사용자 Lhrdrth 님이 토론 중 예의를 어긴 것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정말 예의에 어긋난 것인지, 아니면 설령 예의에 어긋난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차단까지 해야 할 정도인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Xakyntos 님이 3개월간 차단된 상황에서 굳이 다른 사용자도 같이 차단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PC와 키보드를 떠나서 좀 머리를 식히면서 지난 수개월간 본인의 토론 태도에 대해 차분히 재검토하는 시간을 가지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15:14 (KST)
요청자의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의 문제는 정책에 따라 redmosq님이 아닌 다른 관리자가 판단하면 될 일입니다. 관리자도 아닌 아사달님께서 굳이 해설을 달아주시고 하실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 이런 과잉 친절은 보는 사람에 따라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4년 8월 3일 (일) 17:16 (KST)
글쎄요. 제가 비록 관리자는 아니지만, 오직 관리자만 차단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3월 22일 (일) 16:52 (KST)

토론:기원전 24세기

안녕하세요, 귀하의 해박한 역사 지식으로 토론:기원전 24세기에서 진행되는 토론에 관련하여 언급을 해 주실 수 있으신지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21:48 (KST)

Xakyntos 사용자는 현재 3개월간 차단된 상태라서 당분간 어떤 의견도 듣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단, 굳이 의견을 듣고자 하신다면, 위키백과에서 제공하는 이메일 등의 방법으로 연락해 보실 수는 있을 겁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8월 5일 (화) 01:39 (KST)

차단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합니다.

답변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만, 과열된 토론을 중지하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를 차단하는 것은 역효과만을 가져옵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편집 분쟁 당사자들 간에서 발생한 심각한 정책 및 지침 위반 행위가 아니라면, 분쟁 당사자들을 차단하지 않습니다. 편집 분쟁에서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위키백과:사용자 관리 요청/2014년 제31주#사용자: Shyoon1의 인신공격성 발언과 원색적 비난에서의 관리자 발언

1. 제가 어느 정도 거친 발언을 한 점을 인정했기에 차단 자체에 대해서는 이의를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관리자 RedMosQ 님의 발언으로 볼 때, 저에 대한 차단은 명백하게 불공정한 것이라 판단되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합니다. 저를 차단한 것은 명백하게 편집 분쟁에서의 균형을 깨버린 것입니다. 또한 현재 해당 토론과 관련되어 계속되고 있는 사관 요청을 볼 때, 제가 한 발언은 인신공격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저에게만 유독 엄격하게 지침이 적용된 점은 명백합니다. 이미 앞선 이의 제기에서 말했다시피, 인신공격을 지적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 역시 상대방에게 사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토론 상황을 존중해서 사소한 인신공격으로 사관을 요청하지 않는 사용자는 차단당하고, 인신공격을 마주 했음에도 먼저 사관을 요청한 것만으로 차단당하지 않는 현 상태는 명백하게 한쪽에게만 불리한 것입니다.
덧붙여 전과(?)를 논하시려면 토론 상대방 역시도 엄연히 전과가 있는 사용자입니다. 게다가 해당 사용자의 편집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와의 분쟁을 제외하면 거의 편집 자체를 하지 않는 사용자입니다. 사실상 저를 저격하기 위해서만 위키를 사용하는것이죠. 대체 왜 이런 사용자 때문에 정당한 원칙 하에 위키를 편집하는 선량한 사용자가 피해를 받아야 합니까? 제가 거친 언행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현재 사관에서의 관리자 판단으로 보건대 차단에 이를 수준은 아닙니다.

토론:고조선#.국사교과서 문제를 보면 아시겠지만 사용자:Xakyntos는 "기존 교과서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문장을 건국하였다라고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하였다."라고 하여 분명히 "확정적으로 서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부분을 지적했는데 저에게 오히려 "또 다시 거짓말을 하는군요.", "왜곡해서 귀하 멋대로 써먹는군요. 이렇게 뻔히 바로 위에 써 있는 사람의 말마저 왜곡해서 써먹는 귀하에게 이제 더이상 양보 따위는 없습니다."라면서 저에게 거짓말을 했다, 왜곡해서 써먹는다 등의 허위사실에 입각한 인신공격적 발언으로 저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명백한 인신공격이고 협업정신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 추가만으로도 차단 사유는 더 충분해졌다고 보여집니다.

2. 저에게 적용한 지침에 “위키백과:법적 위협 금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위 신고 당사자의 신고 내용에도 그러한 내용은 없으며, 저 역시 결단코 법적 위협을 한 일이 없는데, 왜 이것이 제 차단 사유가 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관리자의 합리적인 해명을 요구합니다. --Xakyntos (토론) 2014년 8월 6일 (수) 11:48 (KST)

답변 요청자가 지속적으로 제 개인 이메일로 해명을 요구하고 있어, 답변합니다. 해당 사용자의 차단 이유는 토론 상대에 대한 도를 넘는 공격적인 발언과 인신공격, 즉 지속적인 백:토론에서 지켜야 할 점 위반이며, 해당 사용자는 이전에도 공격적인 언사에 대한 지적을 저에게 받은 바 있습니다. 한편, 법적 위협은 차단 당시 요청자가 범하지 않았으며, 해당 사유로 차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순전히 요청자의 오해임을 밝힙니다. 또한, 저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것과 재검토를 요청하지마시고, 다른 관리자에게 차단 재검토 요청을 하셔야 요청이 진행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차단을 진행한 관리자로서 해당 요청에 대한 판단 권한이 없습니다.--RedMosQ (토론) 2014년 8월 9일 (토) 00:43 (KST)
답변 "RedMosQ (토론 | 기여 | 차단) 사용자가 Xakyntos (토론 | 기여) 사용자를 3개월 차단했습니다 (계정 만들기 금지됨) (협박/욕설/인신 공격/법적 위협)" 이 메시지 보고 오해하신 듯합니다만, 관리자가 차단 사유를 설정할 때, "협박/욕설/인신 공격/법적 위협" 이라는 단락이 있습니다. 해당 사건의 경우 인신 공격에 해당되기 때문에 해당 사유를 선택하여 부착한 것입니다. --RedMosQ (토론) 2014년 8월 9일 (토) 23:34 (KST)

차단이 만료되어 재검토의 실익이 없으므로 각하합니다. 차단 재검토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것은 유감입니다. — Revi 2015년 1월 27일 (화) 17:45 (KST)

미리 경고드립니다.

토론 후 합의 편집을 거부하고 귀하가 일방적으로 기존의 내용을 훼손하고 독단적인 편집을 강행하여 편집분쟁이 발생, 결국 1달간 보호조치 됐던 낙랑군 문서가 다시 문서훼손 이전의 상태로 복구되었습니다. 귀하의 아래 편집은 의도적으로 귀하의 주장에 맞지않는 내용들을 임의로 삭제하는 등 명백한 위키백과:중립적_시각 위반이고 앞서서 벌어진 편집분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도 반대하는 편집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낙랑군&oldid=12703304
따라서 이 경고를 분명히 보았음이 확실한데도 이를 무시하고 귀하의 차단이 풀린 뒤에 또다시 이 내용들에 대해서 토론 후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기존의 내용을 훼손하고 독단적인 편집을 강행한다면 이번에는 일단은 문서 복구로 대응하지않고 발견 즉시, 위키백과:차단_정책의 "다른 사용자의 토론 제기에 응답하지 않고 잘못된 편집을 강행하는 경우"와 "문서 훼손을 반복하는 경우"에 명백히 해당하므로 차단 요청을 들어갈 것임을 미리 경고드립니다. 귀하의 문서훼손에 대하여 문서 복구로 대응했다가 똑같이 편집분쟁을 행한 것으로 간주당해 오히려 이전 판으로 문서가 되돌려져서 보호조치되는 경우를 당했으므로 부득히 이렇게 미리 경고하는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27일 (수) 15:18 (KST)

낙랑군 문서 송호정 부분의 귀하의 편집의 문제점

귀하는 낙랑군#.낙랑군의 위치 및 성격에 대한 논란에서 전에 이부분에 대해서 저와 귀하의 논쟁도 있었지만 송호정의 책을 근거로 모든 낙랑군 평양설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을 "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다수의 고고학적인 증거를 근거 없이 무시하고 잘못된 문헌 사료의 취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이 아니라 비판하고 있다."라는 문장 하나로 마치 아무런 근거없는 터무니없는 것인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 편집은 실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송호정이 과연 귀하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라고 대표될만한 인물인가?
  2. 이런 송호정의 주장 하나만을 가지고 앞서 말했듯이 모든 반박을 모두 뭉뚱그려서 비난하는 것이 과연 위키백과의 원칙에 부합되는 것인가?(송호정이 직접 하나하나의 주장에 대해서 지칭한 내용도 아니고 심지어 송호정의 저 주장이 실린 책이 발간된지 훨씬 지난 이후의 학설까지 저 주장으로 반박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대표적인 문제점만 일단 2개 들어드렸는데 이렇게 편집한 귀하의 의견을 직접 듣고자합니다. 귀하가 차단 상태라서 낙랑군 토론 문서에서 해야할 토론을 또다시 부득이 귀하의 토론 문서에서 의견을 올립니다. 만약 의견이 부적절하거나 별다른 반론이 없을 경우 귀하의 이 편집 부분을 낙랑군 문서에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송호정이 그런 주장을 한 부분이 귀하가 출처로 제시한 송호정의 책 어디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있는지 찾을 수 없으므로 정확한 페이지와 구체적인 문장을 제시해주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9월 4일 (목) 13:43 (KST)

이글을 올린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귀하의 의견을 듣고자 많이 기다렸고, 앞서서 상술한 이유들과 함께 출처의 자의적인 해석과 오용 내지는 악용으로 명백히 틀린 내용이라고 판단됩니다. 3~4일 더 기다려본 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다면 언제까지나 귀하의 대응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틀린 내용이 언제까지 문서에 노출되는 것을 마냥 방관할 수도 없으므로 말씀드린대로 해당 부분을 문서에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9월 9일 (화) 13:01 (KST)

고조선-후조선 평양은 2곳

BC300년~249년 연나라 진개 고조선 침공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침공전 고조선 평양은 중국에서 양평으로 부르던 곳으로 요동성, 요양시, 침공 이후는 현재 평양성입니다. 연나라 사람 위만 반란에 BC194년 고조선 망하고, 위만이 그대로 쓰다 BC108년 망했으니, 현재 평양엔 141~192년 정도 고조선 평양이 존재 했던 셈이고, 요하 평양은 훨씬 오랫동안 존재했기 때문에 그곳에 고조선 유물이 많은겁니다. 전조선은 단기 1212년, BC1122년, 동북공정 BC1046년 보다 훨씬 오래 된 기원전 2천년전 국가들이고, 그 시대 국가들은 현대 한국과 중국 중앙 아시아에 모두 후손들이 포함돼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몽고, 중앙아시아 현재 국가들 조상으로 특정할 수 없는 요소, 교류 섞이는 과정 있습니다. 특히 만주 지역은 정권이 뒤바뀌는 과정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시절 국가는 내 몇% 조상이다 언급하는 것이 맞는, 100% 특정 국가 조상이 아니지만, 주 세력은 한반도로 밀렸습니다. 주나라 이전 국가들은 북방계와 남방계로 크게 구분할 수 있고, 세세하게 나누는 것은 섞이는 과정 많아서 의미가 없습니다.--Tol6560 (토론) 2019년 7월 2일 (화) 13:37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