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
백제인 百濟人 | |
양직공도에 나타난 백제 사신의 모습. | |
국가 | |
백제 | |
언어 | |
백제어 | |
종교 | |
불교, 도교, 무속신앙 | |
민족계통 | |
예맥족 | |
기원·발상 | 백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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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연민족 | 고구려인 |
백제인(百濟人)은 고대 한반도의 백제에 거주하던 집단을 일컫는다.
역사
[편집]백제는 부여 계통의 예인(濊人) 지배층들의 중심으로 건국되어 건국되었다. 초기에는 부여 계통의 예인(濊人) 지배층들과 마한 계통의 토착민들로 구성되었지만 4세기 이후부터는 신라, 고구려, 왜, 및 중국 계통의 사람들이 백제의 지배층에 흡수되었다.[1]
660년 백제 멸망 이후 의자왕을 포함한 백제인들 몇몇이 당나라로 끌려가고 나머지는 한반도에 남거나 일본으로 귀화하였으며, 점차 현지 주류 집단들에게 동화되어 소멸하였다.
성씨
[편집]《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백제의 시조 온조(溫祚)가 부여계 사람이기에 성을 부여씨(夫餘氏)로 했다고 한다. 그 외에 사(沙), 연(燕), 협(劦), 해(解), 진(眞), 국(國), 목(木), 백(苩), 왕(王), 장(張), 사마(司馬), 수미(首彌), 고이(古爾), 흑치(黑齒), 귀실(鬼室) 등 10여 개가 확인되었다.[2]이들은 본래 복성(複姓)이 많았지만 중국에서 부여씨(扶餘氏)를 여씨(餘氏)로 표기했듯이 사씨는 사택(沙宅·沙吒)씨, 협씨와 목씨는 목협(木劦)씨, 국씨는 고이(古爾)씨, 연씨는 연비(燕比)씨, 진씨는 진모(眞牟), 조미(祖彌), 저미(姐彌) 등 다양하게 표기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3]
이 중 8개의 큰 성씨인 백제 후기의 대표적인 8개의 귀족 가문 대성팔족이 존재했다.
특징
[편집]7세기 경에 쓰인 중국 《양서》(梁書)의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는 백제인에 대해 “백제인의 키는 크며 의복은 깨끗하다. 그 나라 가까이에 왜가 있어서 문신한 사람들도 꽤 있다.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려(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기록했다[4]
각주
[편집]- ↑ “백제 (百濟)”.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성씨 (姓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김기섭. “대성팔족 (大姓八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장상록 (2023년 3월 9일). “백제인과 고구려인이 만났을 때”. 전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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