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론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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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배론성지
(堤川 舟論聖地)
대한민국 충청북도기념물
종목기념물 제118호
(2001년 3월 2일 지정)
수량1廓
시대조선시대
위치
제천 배론성지 (대한민국)
제천 배론성지
주소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좌표 북위 37° 9′ 34.6″ 동경 128° 5′ 1.5″ / 북위 37.159611° 동경 128.083750°  / 37.159611; 128.083750좌표: 북위 37° 9′ 34.6″ 동경 128° 5′ 1.5″ / 북위 37.159611° 동경 128.083750°  / 37.159611; 128.083750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배론성지충청북도 제천시(천주교 원주교구 소속)에 있는 대한민국천주교 성지로, 계곡이 깊어 배 밑 바닥 같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린다.

설명[편집]

배론성지에서는 황사영백서를 쓴 토굴과 신학생들이 병인박해신학교가 닫히기 전까지 라틴어신학을 공부한 옛 성 요셉 신학교 터를 복원하였다. 이곳에서는 또한 해마다 원주교구 사제, 부제 서품식이 거행되고 있으며, 최양업신부와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을 역임했고, 유신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지학순 주교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성지 인근에는 순교자 남상교의 유택과 봉쇄 수녀원이 자리잡고 있다. 황사영순교하고 관련된 신자들이 모두 처형되면서 배론교우촌도 파괴된 후 배론에 교우촌이 다시 형성된 것은 1840년대였다, 1855년 초에는 배론 공소 회장 장주기(요셉)의 집에 성 요셉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교장 푸르티에 신부, 교사 프티니콜라 신부가 조선인 신학생을 가르쳤고, 장주기는 한문 교사와 공소회장으로 활약하였다. 이 신학교가 바로 현 가톨릭대학교가 그들의 전신으로 지목한, 격식을 갖춘 최초의 신학교였다.[1]

황사영 사건[편집]

배론에서 1801년 황사영 순교자가 조선 로마 가톨릭교회의 박해 상황을 베이징 주교에게 알리고자 백서를 썼다.

신학교육[편집]

1855년에는 천주교 사제 양성을 위한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져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까지 신학 교육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1861년에 선종한 한국교회 역사 두 번째 천주교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또한 장주기를 비롯한 여러 명의 순교자들이 살았던 성지이다.

배론[편집]

배론(舟論)은 치악산 동남 기슭에 우뚝 솟아 있는 구학산(985m)과 백운산(1,426m)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계곡 양쪽의 산골 마을로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었다. 이곳은 조선교회의 교우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굽는 육체노동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며 그리스도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1866년 병인박해 전에 배론은 6개 마을로 아랫배론, 중땀배론, 웃배론, 점촌배론, 박달나무골, 비득재마을이 있었으며, 약 70여호가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교통[편집]

  • 대중교통

제천까지는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서 간 후 제천 중앙공원 앞에서 배론성지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하루에 4회 정도만 운행되므로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원주행 버스를 타고 배론성지 입구에서 내려 약 3km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배론성지를 돌아보고 시간이 괜찮으면 다시 5번 국도로 걸어나와 탁사정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돌아올 때는 탁사정에서 원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원주에서 고속버스를 타는 것도 가능하다.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교통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개인 여행자들은 거의 가지 않는다.

연혁[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1. 오영환; 박영자. 《가족이 함께 가는 성지순례》. 가톨릭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