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익 당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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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익 당 전투(베트남어: Trận Bạch Đằng 1288陣白藤1288?)는 오늘날 베트남 하 롱 만 근처의 바익 당에서 벌어진 원 제국과 대월국(베트남)간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대월이 승리함으로써, 베트남 역사에서 외세에 대항한 빛나는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준비[편집]

1288년 오늘날 하노이에 해당하는 수도 탕롱에서 관민을 소개(疎開)한 후, 대월의 총사령관 쩐 흥 다오 장군은 몽골군과의 결전을 다짐하고, 바익 당 강근처에서 진을 치고 전투를 준비했다. 바익 당은 옌 훙 지역과 투이 응우옌 지역을 지나 바다에 도달하는 지점에 있었다. 이곳은 938년에 이미 응오 쿠옌(吳權)[1]이 오대 십국중 하나인 남한(南漢)의 지배에 대항하여 일전를 벌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1288년 3월부터 전투를 준비한 쩐 장군은 응오 쿠옌이 구사한 것과 같은 방식의 전술을 준비했다. 그는 조수간만의 차를 분석하여, 썰물때 바닥에 말뚝을 심어두었으며,복병을 배치하는등 치밀한 전투준비를 기획했다.

전투[편집]

탕롱에 있던 몽골군은 상당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보급선단이 도달했다는 소식이 없는 상태에서 토그한은 그의 군대가 위험한 위치에 있음을 알고, 반 키옙까지 퇴각시켜야 했다. 이 때를 노려 베트남군은 몽골군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들을 다시 탈환하기 시작했다. 민병과 유격대들이 반 키옙으로 퇴각하는 몽골군을 괴롭혔고, 상당한 손실을 입혔다. 토그한은 그의 군대를 둘로 나누어 다시 퇴각시켜야 했다.

4월 초순, 오마르가 이끄는 보급함대가 보병부대에 의해 인솔되고 있었다. 다리와 도로가 베트남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베트남군에 의해 전투도발이 있는 가운데, 몽골군은 바익 당에 도달했다. 베트남의 소함대가 후퇴하는 것처럼 연극을 꾸미자, 몽골해군은 열심히 베트남국을 추적했으며, 그들이 처놓은 함정에 걸어 들어왔다. 양쪽 둑에서 잠복하고 있던 대월 함대가 갑자기 나타나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갑작스런 맹공격에 몽골군은 패닉에 빠져 바다쪽으로 후퇴하려 했다. 그러다가 미리 심어놓은 말뚝과 목책에 많은 함선들이 침몰하기 시작했고, 양 둑쪽으로 도망가려 했던 몽골군은 쩐 흥 다오 장군과 왕이 대기해놓은 대군과 다시 맞딱뜨려야 했다. 몽골 함대는 궤멸하고, 오마르는 사로잡혔다.

해전에서의 완승과 더불어 육지에서도 대월군이 원의 군대를 격파하고 있었다. 토그한의 군대는 랑선까지 후퇴하였다.

영향[편집]

대월이외에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다른 왕국들인 베트남 남부의 안남과 중부의 참파는 쿠빌라이 칸을 그들의 지배자로 받아들였었다. 바익 당 전투는 베트남의 역사에서 초강대국에 맞서 자주독립을 지켜낸 위대한 승리로 추앙받고 있다. 베트남은 몽골 기마병을 맞아 3번이나 승리했다.

1959년에 굴착공사중에 1288년 전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말뚝이 발견되었다.

주석[편집]

  1. 베트남 응오 조(吳朝)의 건국자로, 남한(南漢)의 공격을 물리쳐 응오 조를 개조(開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