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흥다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호치민시에 있는 쩐흥다오의 동상

쩐흥다오(베트남어: Trần Hưng Đạo陳興道 진흥도, 1228년 ~ 1300년)는 베트남쩐 왕조의 왕족이자 장군이다.

생애[편집]

베트남 쩐 왕조의 초대 황제 태종(太宗)의 형인 진류(陳柳)의 아들이다. 본명은 진국준(Trần Quốc Tuấn, 陳國峻)이고, 흥도(興道)는 후에 그 공적을 칭송하여 주어진 호칭이다.

처음에는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있던 진수도(陳守度)에 의해서 아버지 진류가 실각당하고 조정과 대립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용이 뛰어난 인물로 후에는 장군으로 중용되었다. 1257년 몽골이 침공해 왔을 때도 베트남군을 인솔하여 몽골군을 크게 격파, 대승을 거두었다.

1282년 (元)의 쿠빌라이 칸이 군대를 보내 침공하자, 진흥도는 베트남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교묘한 게릴라전을 펼쳐 원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 때, 원의 압력으로 항복하려는 인종(仁宗)에게 "싸우지 않고 항복하시겠다면 우선 신(臣)의 목을 바치겠습니다."라며 원에 항복을 반대했다고 한다. 인종은 원에 저항하기로 하였다.

쩐 왕조의 조정에는 장낫즈앗 등 외교에 뛰어난 자도 있었고, 원군이 쩐 왕조와 참파를 동시에 공격하는 양면 작전을 취하자 쩐 왕조는 참파왕 체만(Chế Mân)과 화해하여 연합 전선을 결성하고,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베트남과 참파의 게릴라전에 골치를 앓던 원군은 결국 1288년 철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때 쩐흥다오는 원군을 바익 강(白藤江)으로 추격, 괴멸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공으로 이듬해에 왕으로 책봉되었다.

1300년에 사망하였다. 임종 때 황제가 그 죽음을 슬퍼하였다고 전해진다. 참파왕 체만은 1306년에 인종의 딸과 정략 결혼을 하고 양국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1307년 체만이 갑자기 죽고, 베트남과 참파는 다시 항쟁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병서요약》(兵書要略), 《만법종비전서》(萬劫宗秘傳書) 등의 저작을 남겼다.